소설리스트

34화 (3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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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밀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치고는 꽤 좋은 선생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술식을 맺는 법도 모르면서 마법을 사용했다고? 대체 어떤 식으로 살아온 게냐? 여태껏 죽지 않은 게 신기하군. 자, 봐라! 모든 마법은 한 줄 한 줄의 마력을 엮어 어긋남 없는 술식을 완성시켜야만이 비로소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게다. 그렇지 못한 마법은 무식하게 마력을 끌어 올려 분출시키는, 마법사의 몸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미개한 무식자의 자살 시도일 뿐이지.’

단어 선택이 조금 살벌하긴 했으나, 이론 설명은 기가 막히게 뛰어났다. 천재치고는 남의 수준에 잘 맞춰 설명해 준다고나 할까.

덕분에 카델은 이 세계의 ‘마법’, ‘마력’, ‘술식’, 이라는 존재에 대해 심도 있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마법 성취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칭호 [7성 마법사]까지 남은 성취도: 55/100」

마족의 뼛가루를 바친 보람이 있는 성과를 얻었으며.

「[중급 마법서(바람)]의 해독을 완료했습니다!」

「속성 포인트(바람)가 10 증가하였습니다.」

두둑한 보상도 챙겨 갈 수 있었다. 참으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밀은 자발적으로 카델에게 추가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나서기까지 했다.

‘매일 점심마다 이곳으로 와라.’

‘그 말씀은……!’

‘넌 기본 지식이 너무 부족해. 기본이 없으면 아무리 난놈이라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뼛가루를 두 개나 받게 됐으니, 특별히 추가 수업을 진행해 주마.’

정말 루멘이 준 뼛가루 때문인지, 젠가 라이토스의 존재 때문인지는 몰라도, 잘된 일이었다. 일부러 귀찮게 쫓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피를 빨아먹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됐으니.

카델은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머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굴리지 않는다면, 당장 눈앞의 루멘에게 달려가 제발 사람 말 좀 처들으라며 엉덩이를 차 버릴 것 같았으니까.

“내일 점심은 뭐 먹을래, 대장?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루멘은 할 일도 없는지 카페 밖에서부터 계속 카델을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대화를 시도해 왔다.

“내가 너랑 밥을 왜 먹냐?”

“마법사가 점심은 따로 먹고 만나자고 했잖아. 어차피 수업도 같이 듣는데,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움직이면 편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네가 왜 나랑 같이 수업을 듣냐고! 마법도 못 부리는 게 술식을 어떻게 맺는지 알아서 뭐 하게? 검으로 마법진이라도 그리게? 마법 소년이 꿈이야? 안됐지만 하나도 안 어울리거든. 일찌감치 포기해 줬으면 좋겠는데.”

마밀에게 ‘마족의 뼛가루’를 제물로 바치고 기어이 청강 기회를 얻어 낸 루멘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 귀한 아이템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더 모르겠는 건 그걸 굳이 마밀에게 넘겨 쓸모도 없는 마법 수업에 끼어드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주었다면 지금까지의 싸가지를 상쇄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카델이 신경질적으로 루멘을 쏘아보자, 심드렁한 얼굴로 눈알을 굴리던 루멘이 살살 눈웃음을 쳤다. 보기 좋다는 점이 더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그런 눈웃음이었다.

“왜 그렇게 싫어해? 내가 대장이랑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는데.”

“……뭐?”

“서로 열 올리는 것보단 이쪽이 낫지 않나? 내 힘이 필요하다며, 대장.”

가만히 서서 이쪽을 돌아보고 있던 루멘이 저벅저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루멘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제야 둘의 눈높이가 동등해지며 얼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럼 날 제대로 봐 줘야지.”

향수인지 체향인지 모를 시원한 박하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기울어진 고개 사이로 닿아 오는 따뜻한 숨결이 간지러웠다. 높게 뻗은 콧날이 아슬아슬하게 광대뼈를 스치고. 내리깐 눈꺼풀 아래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푸른 눈동자가 고요히 빛나는 그 순간.

카델의 사고가 정지했다.

무언가 반응하기에는 루멘의 행동이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며, 자신을 덮치듯 드리운 루멘의 커다란 그림자가 덫이라도 되는 양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루멘의 얼굴. 코앞에서 마주한 루멘의 얼굴이, 충격적일 정도로 잘생겼다!

남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빌어먹게 고풍스러운 얼굴이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응시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카델은 그답지 않게 머뭇거렸고, 루멘의 얼굴이 천천히 멀어질 즈음에야 겨우 마른침 한 번을 삼킬 수 있었다.

루멘은 그런 카델을 잠시 응시하더니, 곧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버렸다.

“먹고 싶은 거 없으면 내가 고른다.”

좀 전의 행동은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멀어지는 루멘의 뒷모습이 눈에 띄게 작아질 무렵. 카델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제대로 내뱉었다. 뒤늦게 머리에 피가 돌았다.

대체 얼마나 잘생겼으면 아직도 눈앞에 그 잔상이 아른거린단 말인가. 이래서 미남은 안 된다는 거다.

이 불쾌한 감각을 지워 버리겠다는 듯 벅벅 얼굴을 문질러 대며, 카델이 한껏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성향 게임은 원래 다 이래……?”

뭐가 됐든 일단 얼굴로 밀어붙이고 본다니. 정말 파렴치한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보름.

카델은 정확히 보름 동안 마밀의 밑에서 제대로 된 마법을 배웠다. 기본적인 마법 시전은 물론 두 가지 속성의 조합, 응용까지.

마밀이 즐겨 사용한다는 화염계 마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 보기도 했다. 그것은 게임 내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카델만의 오리지널 스킬이었기에, 처음 터득했을 당시엔 잠도 못 잘 만큼 들떴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마법을 배운 보름간, 카델의 주변은 사소하게 변했다.

첫 번째로, 열흘 넘게 점심을 함께 한 효과인지, 루멘과의 관계가 꽤 유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루멘이 덜 까불거렸고, 카델도 자신을 여러 방면으로 보조해 주는―특히 금전적으로― 루멘을 좋게 봐 주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반과의 수련 시간이 있었다. 카델은 자신이 터득한 마법을 시험할 곳이 필요했고, 반은 그의 수련 상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반 본인의 연습도 포함되었기에 카델은 흔쾌히 수락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매일 밤 여관 뒤편의 인적 드문 골목에서 검과 마법을 맞댔다.

그 과정에서 반의 호감도가 80을 돌파했지만―카델은 정말 영문을 몰랐다―, 걱정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반이 카델을 말없이 응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카델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마밀이 카델을 자신의 제자로 인정했다. 직접적으로 그리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카델에게 [인연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인연의 종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양피지로, 그 안에 담긴 마력 주인의 현재 위치를 보여 준다.

사람과 엮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하는 마밀 키파였다. 그런 그가 본인의 의지로 위치를 노출시키는 아이템을 선물했다는 것은, 카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뭐, 곧 드라키움을 떠날 예정이라는 소리기도 하지만.’

종이를 선물받은 카델의 예상대로, 마밀은 근 시일 내에 드라키움을 떠나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를 계획이었다. 애초에 지금껏 드라키움에 머물며 스스로의 발을 묶은 것도 전부 카델을 위해서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수업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가 될 카델을 따로 불러냈다.

“마밀 님? 더 알려 주실 게 있나요?”

마밀은 똘똘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비록 첫 만남은 끔찍했으나. 직접 지도해 본바, 카델은 기대 이상으로 명석했다. 하나를 알려 주면 둘을 깨달았으며, 둘을 깨달으면 셋을 습득해 왔다. 인재였다.

그는 귀찮은 인간을 혐오했지만, 목표를 위해 아득바득 기어오르는 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뭘 더 알려 달라는 게냐? 양심 없기는.”

“하하, 원래 배움은 끝이 없는 법 아닌가요?”

“말만은 항상 번지르르하게 하지.”

잠시 침묵하던 그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그는 평소보다 좀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델. ‘환혹의 숲’이라는 곳을 알고 있느냐?”

“환혹의 숲이요……?”

“마이뉴 왕국과 화이트 왕국의 국경선 사이에 자리한 숲이지. ‘금지된 숲’으로 불리기도 한다.”

환혹의 숲이라. 가만히 마밀을 올려다보던 카델은 어렵지 않게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긴 요정족이 사는 곳 아닌가?’

「히어로 오브 나이츠」에 등장하는 기사 중에는 이종족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중 ‘환혹의 숲’이라는 필드는 요정족이 거주하는 곳이었는데, 그들은 아름다운 외형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특히나 인기가 좋았다. 카델 또한 특별 가챠 페이지에서 ‘환혹의 숲 출신 기사 출현 확률 증가!’ 같은 문구를 종종 본 기억이 있었고.

하지만 준수한 외형을 떠나 카델은 요정족에게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밀은 왜 갑자기 똥캐의 숲 얘기를 꺼내는 거지?’

그곳에서 등장하는 요정족은 등급을 불문하고 스펙이 저조하거나, 스펙이 뛰어나도 쓸데없는 봉인―정말 쓸데없는 컨셉이었다―이 걸려 그걸 해제하기 위해 노가다를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제외하고도 좋은 기사들은 넘쳐 난다. 굳이 그런 귀찮음을 무릅쓰고 요정족을 육성시킬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성능을 분석하기 위해 카드를 각성시키기만 했을 뿐, 실제 덱에 넣어 데리고 다닌 적은 없다.

‘환혹의 숲’ 필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장소가 아니었고, 드랍하는 아이템도 전부 질이 떨어졌다. 행동력을 낭비하기 싫어 첫 클리어 보상을 받은 뒤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물론 이 세계에서도 요정족을 영입시킬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마밀이 전혀 예상 못 한 발언을 내뱉었다.

“그곳으로 가거라.”

“……예? 왜요?”

“지금의 너에겐 ‘환혹의 숲’에서만 나는 약초가 필요해. 강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약초를 먹는다면 네가 한계를 뛰어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다.”

잠깐. ‘환혹의 숲’에서만 나오는 약초? 한계를 넘는 데 도움을 줘?

이건 꼭 특정 필드에서만 등장하는 한계 초월 아이템을 설명하는 NPC 같은 소리가 아니던가. 마밀의 발언을 되새기는 동안, 카델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하얗게 질려 갔다.

‘이거 설마, 주인공 각성 찬스인가?’

「히어로 오브 나이츠」에 등장하는 특수 NPC는 가끔 아주 낮은 확률로 ‘주인공 각성 찬스’라는 것을 제공했다. ‘주인공 각성 찬스’는 말 그대로 주인공의 등급을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예를 들어 현재 6성 마법사인 그가 ‘주인공 각성 찬스’를 얻어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다음 각성까지의 게이지가 부족해도 곧장 7성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좋은 기회인 건 맞아.’

이 찬스를 획득할 확률은 태생 S등급 기사를 뽑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그러니 분명 만세를 외치며 기뻐해야 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델은 순수하게 환호할 수 없었다.

“약초의 생김새와 특징은 적어 주마. 마력의 흐름을 촉진하는 신묘한 힘이 담긴 약초다. 지금의 네 몸은 요령이 부족해 가진 마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니, 약초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겠지.”

하필 퀘스트 장소가 똥캐의 숲이라니! 똥캐의 숲에 간다면 필연적으로 똥캐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 똥캐들이 용병단의 미미한 명성에 끌려 기웃댈지도 모르는 일이다.

‘절대 안 돼. 태생 S급이라도 요정족은 절대 사양이라고.’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끌어온 좋은 흐름인데. 앞길을 막는 짐 덩이를 새 기사랍시고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기껏 얻은 찬스를 내다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런 카델의 막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밀은 지금껏 봐 온 것 중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그곳엔 요정족이 살고 있다, 카델. 절대 녀석들에게 들켜서는 안 돼. 만약 들킨다면 도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거라.”

“많이 위험한 곳인가요? 그럼 차라리 덜 위험한 곳에서 자라는 비슷한 효력의 약초를 추천해 주시는 건…….”

“큰 걱정은 마라. 약초는 숲의 초입에 있는 데다, 숲에 오래 머무르지만 않는다면 요정족을 만날 일도 없을 테니.”

“그래도 혹시…….”

“강해지고 싶다고 하였지. 라이토스의 재기를 꿈꾼다 하였고. 그렇다면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

마밀은 단호하게 말하며 노트를 꺼내 카델이 얻어야 할 약초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카델은 이 비극을 피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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