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격으로 폭발을 뚫고 마녀의 목을 확실하게 베어 낸다. 그것이 루멘의 계획이었다. 공격을 막아 주는 장막은 마녀의 입장에서도 보호막인 셈이었으니, 완벽한 처리를 위해선 없는 편이 나았다. 그러므로, 루멘은 자신의 공격이 준비되는 동안 반이 모든 폭발을 감당하는 작전을 제안한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되는 계획이었으나, 반은 곧장 수락했다. 루멘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보호하는 장막을 거두면, 카델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걸 지켜보는 카델에겐 황당무계하며 열불이 터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 미친놈들이! 폭발만 버티면 대놓고 한 대 칠 기회를 주는데 왜 그걸 못 기다리고 저 지랄을 떨겠다는 거야!’
장막을 거둬 달라는 부탁을 듣지 않자 아예 장막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 둘이었다. 이것만 버티면 빈틈이 생길 테니 조금만 버텨 보자는 외침도 무시하고, 몇 번이고 장막의 위치를 옮겨 가며 지켜 줘도 그 난리라, 카델은 어쩔 수 없이 장막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밥 먹으려고 오토를 돌려 놨더니 헛짓만 하다가 자멸하는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다. 카델은 자신의 소중한 기사들이 어이없이 죽어 버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그들을 주시했다.
‘저 광딜 페이즈만 지나면 프리 딜 타임이 주어져. 보통은 그때까지 버티다가 마무리를 하는데……. 젠장, 그 전에 공격하면 어떻게 됐더라?’
워낙 초반인지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척 짜증스럽고, 울화가 치밀었다는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남아 있는데.
그는 검기를 휘둘러 폭발을 통째로 베어 내는 반과, 그 뒤에서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발도술의 시동을 걸고 있는 루멘을 바라보았다.
‘뭔가,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던 것…….’
과거의 기억을 더듬던 카델의 얼굴에 일순 핏기가 가셨다.
‘대미지 반사!’
그는 쓰러진 신도를 버려둔 채 황급히 둘을 향해 달려 나갔다.
“멈춰!”
⚔️
루멘은 자신을 덮친 가벼운 무게감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분명 [월광쾌검]의 준비를 마치고 기술의 초입까지 다다랐었는데.
[월광쾌검]은 그 기세부터가 공격의 시발점인 발도술이었다. 아직 미완성이기는 하나, 지금으로선 그가 자랑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이기도 한. 그런데 그 공격을, 눈앞의 적이 아닌 이 비실비실한 마법사가 저지했다.
“대체 무슨……!”
뒤늦게 되돌아온 이성에 자신을 깔고 뭉갠 마법사를 욕하려는데, 별안간 내장을 쥐어짜는 듯한 매서운 고통이 느껴졌다.
“커헉……!”
“휴, 뒈질 뻔했네.”
……뭘 할 뻔했다고?
되묻고 싶었으나 루멘의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것은 한 움큼의 핏물이었다. 그는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상체를 구부렸고, 카델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이유 모를 내상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루멘을 싸늘하게 내려 보았다.
“몇 번이고 말했지. 방심하지 마라, 빈틈이 생길 테니 기다려라.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시하는 재주 하난 뛰어나군.”
그 빈정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루멘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위협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이 마법사가 자신의 공격을 억지로 멈춰 주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이 정도의 내상으로 그친 것이라고.
몸속 장기가 경련하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땅을 짚자, 카델이 손을 뻗었다. 루멘은 그 손을 잡고 간신히 일어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폭발을 베어 내던 반 또한 후방으로 밀려 난 상태였다.
그 앞을 막아선 것은 다시 한번 장막을 생성해 낸 카델. 반은 혼난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카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다, 단장…….”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물러서 있어. 물러나란 말도 안 들리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코앞에서 말해 주는데.”
“전 단장을 무시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앞에서 보였던 싹수없던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자, 마찬가지로 처음의 능구렁이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냉랭한 표정의 카델이 코웃음을 쳤다.
“처음부터 내 말을 제대로 들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겠지.”
목소리에서부터 제법 화가 났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솔직히 위엄은 느낄 수 없다. 그게 루멘의 현 심경이었다.
그는 오직 이해득실만 따져 용병단에 입단했다. 그러니 카델의 제대로 된 실력도 모를뿐더러, 충성심을 느낄 만한 믿음직한 구석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냥 얼굴 좀 곱상한 마법사. 거기에 머리도 꽤 굴러가는 듯하고, 적당히 야망도 있어 보이고.
반 헤르도스라고 했나, 성격과는 달리 실력은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저 희멀건 마법사의 어디에 끌려서 부하를 자처한 것일까. 자신과는 달리 충심이 대단한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감상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자신보다 약한 자를 상관으로 모시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가문을 떠난 것이지, 누군가의 허접한 무리에 들어가고자 떠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비관적인 의심이 들키기라도 한 것일까.
“누가 뭐래도 난 너희의 단장이다. 그러니 그 불량한 눈깔에 똑똑히 새겨 두도록 해.”
선언하듯 외친 카델이 장막을 거뒀다. 아직 폭발이 이어지고 있을 텐데. 저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장막을 거둬 버리면 공격을 온몸으로 맞게 된다. 카델의 비실비실한 몸은 한 번의 폭발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리라.
그리 생각하며 입술을 흥건하게 적신 피를 훔쳐 낸 루멘이었으나.
콰아아―
장막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마녀가 있던 자리를 향해 굵직한 불기둥이 쏘아졌다.
뱀의 머리를 연상케 하는 매끄러운 불기둥이 한껏 아가리를 벌린 채 정면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자태에 루멘은 일순 넋을 잃었다.
‘영창도 없이 두 번째 마법을 곧장……? 폭발은? 그 엄청났던 폭발은, 전부 저 화염에 먹혀 버린 건가? 그 정도로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카델이 만들어 낸 화염 밖으로 단 한 줄기의 마력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매섭게 이글거리는 적색의 불기둥만이 숲속을 환하게 비출 뿐.
불기둥은 오래지 않아 거둬졌다. 그리고 드러난 잔해에는, 마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 타들어 간 잿더미와 듬성듬성한 뼛조각만이 전부였다.
루멘의 입이 벌어졌다. 아무리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폭발만 해 대는 상태였다지만, 폭발에 담긴 마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마녀를 끝장내기 위해 현재 가진 최강의 무기를 꺼내려던 것은 괜한 겉멋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이토록 쉽게 해치웠다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지만, 안 믿기에는 눈앞의 결과가 너무도 확실했다. 루멘은 이쪽을 돌아보는 무심한 눈빛을 마주하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이건…… 확실히 예상 밖이네.’
⚔️
‘허세 들켰을까? 안 들켰겠지? 일부러 폭발 멈춘 거 안 보여 주려고 바로 가려 버렸는데.’
한편, 말 안 듣는 기사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약간의 허세를 떨어 본 카델은 표정 관리에 열중이었다. 장막을 만들어 마녀를 가린 뒤, 폭발이 멈추는 시점을 노려서 보란 듯이 있어 보이는 마법을 날렸다. 바람 마법을 이용해 몸집을 불린 과시용 불기둥이었다. 프리 딜 타임에 돌입한 마녀의 육체는 상당히 약해져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마법만 사용해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메인 퀘스트 ‘신전의 그녀’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속성 포인트가 10 증가하였습니다.」
「명성이 15 증가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 [검은 그림자를 막은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고급 아이템 [마녀의 뼛가루]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