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521)

외침을 들은 반이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마녀의 손바닥에 난 구멍이 진동하며 공격이 시작됐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는 수십 갈래의 암흑 송곳.

퍼버벅!

반의 등허리를 타고 날아간 암흑 송곳이 뒤편의 나무에 처박히고. 충격을 받은 송곳은 즉시 여러 조각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반은 자신이 피한 공격을 확인하는 대신, 틈을 놓치지 않고 검기를 흩뿌렸다. 미처 장막을 만들어 내지 못한 마녀가 몸을 물렸으나. 검기는 그녀의 어깨를 스쳐 지나며 얕은 상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쳇!”

보라색 핏방울이 그녀의 흰 뺨 위로 튀어 올랐다. 따끔한 고통이 짜증스러운 듯, 마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인간 따위가!”

형형한 눈빛이 카델을 향했다. 자신의 마법을 간파당했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한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델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저기서 [그림자 난사]를 쓸 줄이야. 반이 반응 속도가 뛰어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구멍 뚫린 시체가 여기까지 날아올 뻔했잖아.’

누가 마녀 아니랄까 봐 시전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암흑 속성 마법답게 공격이 전부 어두컴컴했다. 이런 늦은 밤에, 이런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상대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환하게 불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짓을 하면 열심히 마녀의 신경을 긁은 보람이 없다. 입맛을 다신 카델이 <마법 속성 창>을 열었다.

<마법 속성 배분>

보유 포인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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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10/100

얼음: 0/100

번개: 0/100

바람: 0/100

대지: 0/100

빛: 0/100

암흑: 0/100

‘저번 튜토리얼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 어떤 적을 만날지 모르니 일단 아껴 두고 있었지. 슬슬 써먹어 봐야겠는걸.’

안타깝게도, 「히어로 오브 나이츠」는 유동적인 속성 배분이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번 결정한 포인트 배분을 되돌리려면 값비싼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러니 기사 육성에 주력해야 할 현재. 허투루 포인트를 낭비할 수는 없다.

‘적이 암흑 속성이니 상반되는 빛 속성에 배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똑같은 암흑 속성만 아니라면 뭘 골라도 중간은 가겠지만…… 어중간하게 굴지 말고 불에 올인하는 것도 괜찮아.’

짧은 시간 동안 카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반은 끊임없이 검기를 날리며 마녀를 견제했고, 마녀는 여신도를 방패 삼아 물러서면서도 집요하게 공격할 타이밍을 쟀다. 하지만 아직도 주위를 경계하는 걸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쪽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둘을 주시하던 것을 그만두고 신경의 절반은 반에게, 나머지는 주변을 살피는 데에 쓰고 있었다.

‘사람이 더 몰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 생각조차 못 하도록 이쪽에서 확실하게 시선을 잡아 둬야 하는데!’

반에게 전력을 다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마녀에게 잡힌 여신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전의 보상을 위해서라도 살아 있는 신도를 데려가야만 했으니. 간만 보는 상황에서도 여신도를 고기 방패로 사용하는데, 거친 싸움이 이어진다면 미래는 안 봐도 뻔했다.

‘다시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야 해. 최소한의 마력으로 내 실력을 부풀려 줄 수 있는…… 그런 속성이 필요하다.’

결정했다. 카델은 마른침을 삼키며 포인트 배분을 마쳤다. 이것이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써 보면 알겠지.

한편 작은 상처를 허락한 마녀는 제대로 긁힌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슬슬 본격적인 공격태세를 취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확실하다. 저 인간 검사는 이 여자를 해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여자를 방패막이로 사용한 뒤, 코앞에서 일격을 먹여 주리라.

그 뒤에는 요란한 빈 수레인 마법사를 해치우고, 잘 차려진 만찬을 음미하면 된다.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으나 다른 인간들이 합세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 이깟 허접한 놈들에게 당하기 위해 춥고 고됐던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다.

‘너희는 너희도 모르는 새, 서서히 고립되어 갈 것이다. 대업이 가까워진……. 응?’

하지만 마력을 모으던 중, 내내 뒷전으로 미뤄 두었던 마법사 쪽에서부터 뜨거운 열풍이 몰아쳐 왔다. 당황한 그녀가 시선을 움직이자, 거대한 구렁이처럼 머리통을 치켜든 불줄기가 위협적으로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화염 마법? 저 무식한 크기는 대체…….”

게다가 저 움직임은 또 뭐란 말인가? 저렇게 큰 불줄기가 나무와 풀을 전부 피하면서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는 게 가능한가?

불줄기는 마치 자아를 가진 생명처럼 자유자재로 몸을 구부리며 그녀가 발을 디딘 땅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이쪽을 향하고 있을 뿐임에도 살갗이 달아오를 만큼 강한 열풍이 훅훅 끼쳐 왔다.

‘이 정도로 섬세하게 불을 다룰 수 있다고? ……설마. 처음의 화염구는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일부러 부족한 위력으로 내 눈을 속였구나!’

당연하게도, 카델의 화염 마법 위력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그의 마법 속성에 ‘바람’이 추가되었다는 것뿐. 하지만 카델이 바람길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화염의 범위와 이동 반경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그녀에게, 인간의 수법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모욕적이었다.

빠득, 이를 간 그녀가 다가오는 불줄기를 막기 위해 검은 구체를 연달아 날렸다. 그러나 불줄기는 얄미울 정도로 잽싸게 궤적을 바꿔 가며 그녀의 공격을 회피했다. 이대로 가다간 저 불줄기와 인간 검사에게 포위당하고 만다!

처음으로 조급함을 느낀 마녀가 휙 고개를 돌려 반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틈이 보일 때마다 검기를 날리고 있었다. 지금 또한 거대한 대검 위로 시뻘건 검기가 응축되어 있었고.

마녀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마법사의 공격은 아군까지 집어삼키진 못할 것이다. 검사는 불을 피해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녀의 행동을 ‘궁지에 몰린 자의 오판’으로 여길 테지만.

‘끝장을 내 주마.’

바라는 바다. 그녀는 지척까지 다가온 불줄기로부터 벗어나 반을 향해 몸을 던졌다. 반은 곧장 마녀의 목을 노리며 대검을 치켜들었으나.

“어디 한번 죽여 보려무나!”

마녀는 들고 있던 메리를 앞세우며 입꼬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소름 끼치는 미소. 예상대로, 반은 대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메리를 보며 멈칫하는 반. 기회였다.

그녀는 메리의 등 위에 손을 올린 채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마쳤다. 메리의 몸을 사이에 두고 좀 전의 암흑 송곳을 난사할 계획이었다. 공격을 최전방에서 받아 낼 메리의 육체는 못 먹을 상태가 되어 버리겠지만, 상관없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

“잘 가라, 성가신 인간.”

마녀는 메리를 반의 품 안으로 쑤셔 넣듯 밀쳤다. 메리의 등에 올라간 손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메리를 감싸 안은 반이, 느껴지는 짙은 살기에 주춤한 바로 그 순간.

“안 돼! 피해, 반!”

당황한 카델의 외침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그들의 사이를 스쳐 지났다.

“뭣…….”

의기양양하던 마녀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완벽하게 마법 전개의 준비를 마쳤던, 검은 마력에 물들었던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에서 더 이상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이럴 수가 있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시전 직전의 마법을 배출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의아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마력을 불어 넣으려던 그때.

툭.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붙어 있던 그녀의 오른팔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망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

일순, 사고가 정지했다.

그녀는 팔꿈치 아래의 텅 빈 공간을 응시하며 작게 입을 벌렸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깔끔한 절단면. 누군가 잠시 팔꿈치 아래를 가려둔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진 오른팔은 현실감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뒤.

푸슈슉!

잘린 팔에 대한 고통보다 먼저, 절단면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짙은 보라색의 핏물은 그대로 그녀의 정면에 있던 반을 향했고. 반은 그 핏물을 전부 대검의 면으로 막아 냈다.

순식간에 피를 흡수한 대검이 전보다 붉어진 기운을 띠며 진동했다.

“으, 으아…으아아악!”

뒤늦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그녀가 부릅뜬 눈으로 반을 노려보았다. 앞을 막은 대검에 반쯤 가려진 얼굴. 붉게 물든 그의 눈동자가 음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작게 휘어졌다.

“잘 먹을게.”

난데없이 팔이 잘린 충격 때문일까. 그녀는 좀 전까지 자신이 미끼로 사용하려 했던 메리가 더 이상 반에게 안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라진 메리가 여태껏 눈치채지 못한 제삼자에게 들려, 아주 잠깐 경계했던 마법사의 손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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