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영입 가능한 기사가 존재합니다.」
「인원수: 1」
‘응? 영입 가능한 기사라고?’
뜬금없이 떠오른 시스템 창에 카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하지만 거리의 인원이 워낙 많은 탓에 누가 그 기사인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단장?”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카델의 행동이 의아한 듯 반이 물었다. 카델은 대답하는 대신 그의 팔을 붙든 채 지나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눈에 불을 켜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히어로 오브 나이츠」에 등장하는 기사들은 등급이 어떻든 외모가 범상치 않다. 당장 옆에 선 반만 봐도 그랬다. 그런 훤칠한 청년이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것이 당연했고, 카델은 단번에 그 기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맞힐 자신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델은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홀로 머리 한 통이 우뚝 솟아 있는 장신의 사내 한 명을 발견해 냈다.
‘후드를 뒤집어써도 저 잘난 실루엣은 못 숨기지. 저놈이 새로운 기사구만.’
음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카델이 어리둥절하게 멈춰 선 반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은 곳을 찾은 것 같아. 가 보자고.”
새로운 기사 후보가 여관으로 들어가거나 어느 뒷골목을 향했다면 곤란했겠지만, 다행히 그가 향한 곳은 ‘에밀리의 두건’이라는 이름의 주점이었다. 음식이 맛있는지는 몰라도 이곳을 채운 인물이 대부분 기사나 용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이곳의 단골일 뿐인 게 아니라면, 새로운 기사 후보 또한 헤르멜 도시의 정보를 입수하고 싶은 듯했다.
일부러 그와 가까운 자리를 선점한 카델이 평범한 손님 행세를 하며 반을 향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카델을 마주한 반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언제부터 술꾼이 된 겁니까, 단장? 몸이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주점이라뇨. 이럴 땐 든든하고 건강하게 먹어 둬야 하는데.”
“괜찮아, 괜찮아. 원래 상처는 술로 소독하고 그러잖아? 내 몸에 들어간 술도 마찬가지야. 날 소독시켜 줄 거라고.”
“그 논리는 주정뱅이에 가깝네요.”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스럽기는 해서, 카델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먼저 고르라며 반에게 메뉴판을 넘겨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옆 테이블에 앉은 기사 후보의 얼굴이 보였다.
‘미친. 얼굴에서 빛이 나잖아?’
여전히 후드를 쓰고 있어 온전한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후드의 그림자를 뚫고 나오는 잘생김이 느껴질 정도였다. 카델은 티 나지 않게 그를 훔쳐보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 내 기사단 최대 코스트가 10이었지. 반이 B급이니 남은 코스트가 7일 거고. 명성을 올려서 코스트를 높이기 전까진 기사들의 각성까지 염두에 두고 영입해야 할 테니…….’
게임의 초반 코스트 제한은 10이었다. D급 카드의 코스트가 1, C급이 2. B급이 3, A급 4, S급은 5였다. 전부 현재 등급으로 측정되었는데, 만약 미각성 기사들로 코스트 10을 꽉 채운다면, 한 명도 각성을 할 수 없게 된다. 각성을 하면 등급이 오르며 자연스레 코스트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중위 등급 기사 한 명과 상위 등급 기사 한 명, 하위 등급 기사 한 명을 두는 편이었다.
‘태생 A급이나 D급이 적당하겠네. S급이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욕심이고, C급이라면 고려해 봐야겠어.’
혹시나 싶어 ‘능력치 열람’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소속 기사가 아니거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떤 기사인지 확인하려면 저 거슬리는 후드부터 벗겨 봐야겠군.’
카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시킬 음식을 골랐다며 반이 내민 메뉴판을 낚아채고는, 옆 테이블 쪽으로 슬쩍 몸을 뺐다.
“실례합니다.”
“……?”
후드에 가려진 시선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카델은 그의 잘생긴 하관을 향해 최대한 화사하고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가 이 주점은 처음이라 그러는데,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메뉴가 있을까요?”
“그런 건 직원에게 물어보시죠.”
남자의 목소리에선 일말의 호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귀찮게 들러붙지 말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카델은 아니었다.
“제 경험상 직원들은 가장 비싸거나 만들기 쉬운 음식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그것보단 역시 단골손님의 추천이 낫죠.”
“……제가 단골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압니까?”
“이 주점이 아는 사람만 오는 맛집이라고 들었거든요. 확률에 의거한 감이죠.”
당연히 그런 얘기는 들은 적 없다. 반 또한 다른 손님들이 먹는 후줄근한 식사를 일별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카델은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실수인 척 물구나무를 서서 얼굴을 훔쳐볼 각오도 되어 있었다.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짧은 침묵이 지나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이내 낮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보낸 사람인가? 그런 것치곤 수준이 낮은데……. 못 본 새 형님의 안목이 한물가 버리기라도 한 모양이군.”
나지막이 대꾸한 남자가 천천히 후드를 벗어 내리며 맨얼굴을 드러냈다. 수작질이 곧장 들킬 줄은 몰라 잠시 당황하던 카델은, 드러난 얼굴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 얼굴은……!’
정성스럽게 먹을 갈아 한 가닥씩 심혈을 기울여 그려 낸 듯 고풍스런 검은색 머리칼과 그와 확연하게 대조되는 새파란 눈동자. 선이 굵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고집스레 다물린 입매, 묵직한 분위기 속 형형히 빛나는 살벌한 눈빛까지. 한 폭의 고전 명화를 보듯 고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저 얼굴은…….
“혹시 추격자가 아니라면 사과하지. 그렇게 까만 속셈이 빤히 보이는 표정은 오랜만이라, 좀 웃겼거든.”
카델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채고 충격에 빠져 있을 동안. 반은 잔뜩 날을 세운 채 남자를 노려보았다.
“웃는 건 나중에 하고, 사과부터 하시지.”
그는 카델에게 무례한 언사를 퍼붓는 낯선 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고, 한 손은 이미 옆자리에 세워 둔 대검에 가 있었다. 남자는 그런 반을 일별하고는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행동에서 그가 반을 무시하고 있다는 태가 났다.
“단장에게 네 무례를 사과해라.”
“단장? 기사였나?”
남자가 돌연 흥미를 보이며 잘생긴 눈썹을 치켜올렸다. 닿아 오는 시선에 그제야 자신이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델이 급히 표정을 꾸며 냈다.
“용병입니다. 추격자 같은 건 아니고요.”
“오해해서 미안하게 됐군.”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카델은 자꾸만 음흉한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꾹 참고, 애써 태연한 척 입가를 매만졌다.
“그나저나, 평소에 귀찮게 구는 사람이 꽤 많은 편이신가 보네요.”
“……그런 편이지.”
“외모가 뛰어나서?”
본인도 본인이 잘생긴 건 아는지, 남자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히려 반이 충격을 받은 듯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카델을 바라보는 눈빛이 촉촉했다. 카델은 그런 반의 시선을 무시한 채 능청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아니면, 집안이 뛰어나서?”
이번엔 남자의 미간이 꿈틀했다. 남자가 말을 잃은 동안, 카델은 직원을 불러 반이 골라 두었던 메뉴와 이곳에서 가장 잘나가는 메뉴 하나,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과 마주 보았다. 반은 남자가 어지간히 불쾌한지 심통 난 표정으로 그를 힐긋거리기 바빴다.
“인성을 똥통에 빠뜨린 놈인가 보군요. 추천 메뉴 좀 물어봤다고 과민 반응하는 꼴을 보면.”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는 처지인가 보지.”
“……단장, 사람은 얼굴이 전부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물론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니지만, 그걸 며칠 못 씻어도 얼굴에서 개기름이 아닌 윤기가 흐르는 미남자에게 듣고 싶진 않았다. 카델은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 보이는 반의 말을 무시하곤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저 남자, 루멘 도미닉이야.”
“루멘 도미닉이요……?”
“도미닉가의 차남.”
반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도미닉가는 마이뉴 왕국 소속의 유명한 세가였다. 왕족은 아니나 그 못지않은 권력과 부, 힘을 가지고 있는 후작가.
루멘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는 「히어로 오브 나이츠」 속 기사 중 인기 순위 상위권에 랭킹 된 얼굴마담이었고, 성능 또한 최상위권이었다. 실제로, 카델의 최종 덱에는 루멘 도미닉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웬 횡재냐! 루멘은 최종 각성 등급이 S급인 데다, 마침 태생 등급은 A급이고, 기본 딜량이 어마어마한 갓캐라고! 절대 놓칠 수 없어. 무조건 가진다, 루멘 도미닉.’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의 성격이 오만하다거나 영입 조건 충족과 충성도 관리가 까다로운 편이라는 사실은 뒷전으로 밀어 두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루멘 도미닉만 용병단에 합류시킨다면, 앞으로의 여행길은 탄탄대로일 것이 분명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