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뚫고 높게 도약하자 몸체에 새까만 구멍이 뚫린 봉오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미라 퀸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몸체를 휘감고 있던 붕대를 풀어 둘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쳤다.
그리고 반은.
“몸에 힘주세요.”
그대로 카델을 봉오리 너머로 집어 던졌다.
“이런 미친……!”
빈 땅으로 내리꽂히는 카델을 노리며 뿌리들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뿌리가 카델의 몸이 닿기도 전, 곧장 날아든 검기가 그런 놈들을 양단했다.
추락한 카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딱딱한 바닥에 부딪힌 갈비뼈에 충격이 가며 일순 눈앞이 새하얘졌다. 반사적으로 가슴께를 움켜쥔 카델이 숨을 몰아쉬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반을 살핀 그 순간.
“……!”
그의 시야로, 봉오리에 집어삼켜지기 직전인 반의 모습이 들어왔다. 뻗어진 수십 갈래의 붕대가 반을 에워쌌으며, 반은 대검을 치켜든 채 그 안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펼쳐진 장면이 비현실적이었다.
“반!”
찢어지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외침이 닿은 것인지 짧은 순간, 붕대의 틈으로 반의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가세요, 단장!”
그것이 마지막 대답이었다.
반은 봉오리 속에 완벽하게 갇혀 버렸다. 그를 삼킨 봉오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모든 붕대를 회수해 몸체를 방어했다. 카델의 눈빛이 허망하게 떨렸다.
‘이렇게 먹힌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시작부터 이러는 게 어딨어. 시작부터 이렇게 경우 없이 구는 게 말이 돼? 웃기지 말라고!’
다급히 몸을 일으킨 카델이 봉오리를 향해 달리려 했다. 그러나 움직임을 포착한 뿌리가 기다렸다는 듯 솟아올라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반! 반, 이 미친 새끼야! 공격하랬지 누가 잡아먹히랬어? 누가 뒈지랬냐고!”
발악하듯 소리친 그가 뿌리의 공격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끔찍했다. 이것이 보통의 게임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스테이지를 나가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아쉬운 실수를 만회하고, 누구도 다치지 않을 작전을 짜 무난하게 클리어했겠지.
‘수련부터 해야 했나? 반의 무기부터 바꿔 줘야 했나? 그래, 그랬어야 했어. 내가 너무 섣부르게 스토리를 진행한 거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의욕만 앞서서는…….’
너무 이른 절망감이 해일처럼 거침없이 몰려와 전신을 뒤흔들었다. 카델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반이 정말 죽은 건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었고, 도주를 결심하기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다급한 마음과 달리 아무런 행동도 실행하지 못하는 몸뚱이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렸다.
“저, 저깄다! 마법사야!”
“어이! 도망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그런 그를 발견한 것은 론과 바빌이었다. 그들은 카델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와서는 멍하니 선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튀자고!”
“반…… 반이 저 안에…….”
“나도 봤어!”
넋을 잃은 카델을 질질 끌며 바빌이 인상을 구겼다. 외곽을 돌며 도주하는 동안, 바빌도 목격했다. 반이 카델을 보내기 위해 스스로 미라 퀸에게 잡아먹힌 모습을.
하지만 그는 반을 도울 수 없었고, 미안하지만 도울 마음도 없었다. 그가 벌어 준 짧은 시간을 통해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이 바빌의 최선이었다.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면, 그것은 굳어 버린 카델을 울타리 바깥으로 빼내는 것. 반이 지키고자 했던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바빌은 목석같은 카델을 끌고 출구를 향해 달리려 했다.
하지만.
“놔.”
“고집 피우지 말게. 지금은 그럴 때가―”
“놓으라고!”
어디서 나온 힘인지, 카델이 우악스럽게 팔을 비틀어 바빌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물론 자신의 부하를 두고 도망쳐야 한다는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은 안다. 괴롭겠지. 그렇지만 사람은 고집을 피울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해야 한다. 괜한 고집으로 상대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다.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발휘해 바빌은 다시 카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뒤편을 바라본 그는, 더 이상 카델을 붙잡지 못했다.
“저게…….”
마물의 봉오리가 미친 듯이 부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팽하게 늘어난 본체가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게다가 내부의 팽창으로 한껏 가늘어진 붕대의 틈새를 따라 새빨간 핏물을 연상케 하는 붉은 오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도망가던 것도 잊은 채 멈춰 선 론과 바빌. 그리고 제일 먼저 그 모습을 발견한 카델은, 등허리를 타고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저건 설마, 혈류검?’
[혈류검(血流劍)]
광전사 반 헤르도스가 가진 각성 스킬로, 그의 대검이 일정량 이상의 피를 머금으면 발동된다. 피를 닮은 붉은 오라의 범람이 그 특징 중 하나.
반 헤르도스는 [혈류검] 상태 전과 후로 공격력이 크게 갈리며, 때문에 그의 진가는 전투 후반에 갈수록 빛을 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언데드는 피를 흘리지 않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미간을 좁힌 그때였다.
끼에에엑!
골을 울리는 시끄러운 괴성과 함께, 한계까지 부풀었던 미라 퀸의 중심부가 마침내 폭발했다. 강풍을 동반하며 터져 나온 오라가 근방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일대를 휩쓸었다.
카델은 훅 끼치는 오라의 물결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짙은 피비린내를 실은 바람을 따라 흙먼지가 몰아쳤다. 따끔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의 눈앞으로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내용을 확인한 카델의 입이 벌어졌다.
「축하드립니다! 메인 퀘스트 ‘저주받은 땅’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속성 포인트가 10 증가하였습니다.」
「명성이 5 증가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 [스모그 평원의 용병]을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아이템 [퀸의 붕대]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