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메시지를 받은 금명결은 놀라 당장 각성자 관리국에 연락을 넣었다. 그러나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 관리국 내의 어떤 기관도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결국 금명결은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가실 겁니까?”
“오라는데 가야지, 그럼.”
아침까지 기다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S급 능력치가 셋이나 달린 귀속 아이템. 기다리는 사이에 누군가 그걸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차 준비해. 그리고… 천령 길드장이랑 연결해라.”
혹여나 자신이 한차수를 해쳤다는 오해를 받으면 곤란했다.
‘정이흔 녀석, 충격받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안타까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금명결은 재빨리 옷을 갖춰 입고 시동을 걸었다. 때마침 정이흔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본론부터 말할 테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렇게 금명결은 방금 전 그가 받은 메시지에 대해 털어놓았고.
“정이흔, 너 갑자기 왜 그래? 야, 불 꺼, 미친놈아!”
금명결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은 정이흔은 길드를 통째로 불태워 버릴 뻔했으며.
“뭐야, 화재경보기? 어디 불났어?”
“위층에서 울렸다나 봐, 그, 회의실.”
“거기 지금 길드장님 계신 거 아니었어?”
“어, 같이 있던 공략팀 사람이 들었다는데…. 그 사람 있잖아, 한차수 씨.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든가 봐.”
“헉.”
소문이 입에서 입을 타고 번진 끝에.
“혀, 형. 차수 형이 죽었다는데 거짓말이지? 아니지?”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를 씨부려.”
“같은 팀 사람이 문자로 물어봤어….”
한차수의 사망 소식은 마침내 동생을 만나던 백담에게까지 흘러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한차수는 재생 스킬을 상대로 평화로운 실험을 벌이고 있었다.
자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하는 자그마한 실험이었다.
[ 주의! ]
[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합니다. ]
[ 숙면을 위해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권장합니다. ]
[ 남은 수면 시간 : 8시간 ]
아, 정말 시끄러워서 못 살겠군.
얼른 자라는 듯 삐롱삐롱 울려 대는 시스템 메시지에 한차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히 좀 있어 봐라.’
어느덧 시간은 12시를 살짝 넘긴 상태. 11시부터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했으니 1시간가량을 버틴 거였다.
‘역시 에너지가 어느 정도 비축되면 제약도 그리 강하게 적용되지는 않는 모양이군.’
세 끼 모두 꼬박꼬박 챙겨 먹고 중간에 따로 약까지 먹은 보람이 있었다. 만족스러운 실험 결과에 한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일주일 정도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잠깐이지만 한차수는 희망을 품었다. 목소리도 함께 회복되는 것 같으니 아주 헛된 기대는 아니었다.
“아아.”
아침까지만 해도 생각 없이 소리를 내면 목이 쥐어짜이는 듯 아팠는데 지금은 멀쩡했다. 내일이 되면 예, 아니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포스트잇에서 벗어나는 건가….’
한차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이불을 덮었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얼쩡거리던 시스템 창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 남은 수면 시간 : 8시간! ]
그래, 그래. 알았다고.
8시간 꽉 채워서 잘 테니 그만 좀 보채라. 고른 숨소리와 함께 한차수는 눈을 감았다.
[ 대상자의 원활한 회복을 위해 숙면 상태로 돌입합니다. ]
[ 숙면 상태 돌입 3초, 2초…. ]
[ 돌입 완료 ]
쿠우웅!
그때, 관리국을 둘러싼 거대한 방어벽에 흔들렸다. 격자무늬의 푸른 막이 거칠게 출렁이고.
위이이이잉―!
곧 비상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CCTV를 확인한 당직 공무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미친 새끼! 왜 내가 당직일 때만 이 지랄이야!”
“실장님…. 저 새끼 영국에서 약 빨고 온 거 아닐까요?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새까만 방탄 차량에 탄 금명결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건물을 정면으로 들이박고 있었다.
***
금명결은 구금실로 끌려오는 내내 당당했다.
“애초에 24시간 시민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할 각성자 관리국이 6시만 되면 칼같이 차단벽부터 올리는 게 잘못 아닌가?”
“관리국은 편의점이 아닙니다, 금명결 길드장. 시민한테 개방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요.”
기태연이 피곤한 낯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누가 오밤중에 관리국을 들이박을 생각을 하나 했더니….’
역시나 예상을 깨지 않고 S급 중 한 명일 줄 알았다. 머리를 쓸어 넘긴 그가 귀찮은 얼굴로 탕! 책상을 내리쳤다.
“대충 하고 끝냅시다.”
“내가 이래서 기 실장을 좋아해.”
“저도 평소에는 엑실리스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빨리 털어놓고 집으로 돌아가시죠. 자, 차량을 이용하여 관리국 정문을 부수려 한 이유가 뭡니까?”
귀찮음에 절여 있다시피 한 목소리에 금명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언짢다 못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남자에 기태연이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굉장히 불쾌한 눈빛인데요, 금명결 길드장. 지금 공관을 부수려다 붙잡혔다는 자각은 있는 겁니까?”
하여튼 이놈의 S급들이란 하나같이 건방지기 짝이 없다. 쯧쯧, 혀를 찬 기태연이 후룩 커피를 들이마셨다.
어딘지 애매한. 마치 떠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가?”
“뭘요?”
“…….”
“금명결 길드장?”
“잠깐, 잠깐만.”
금명결은 손을 흔들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변명을 하려고 저러나. 기태연은 지루한 얼굴로 발을 까딱였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혹시 의료 센터 내에서 사망자가―.”
후우우욱, 콰아아아앙!
위이이이이잉―!
“실장님, 이번엔 백담 헌터입니다! 백담 헌터가 단신으로 쳐들어와서, 그…!”
“혀 깨물지 말고 숨부터 쉬어.”
“예, 허억! 휴, 백담 헌터가 빈사 상태에 있던 연구실 키메라들을 모두 회복시켰습니다! 식인 식물 열 종도 전부 되살아나서 지금 연구원들이 대응 중이라고 합니다.”
“…….”
“오, 역시 백담이야. 키메라도 한 방에 회복시킨다, 이거지. 대단한데?”
금명결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박살 나는 게 제 길드가 아니라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기태연의 시선은 더없이 싸늘했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이 난동을 피웠다는 말은 뭔가 있다는 소리군.’
하지만 도대체 백담과 금명결이 동시에 관리국을 헤집어 놓을 만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백담과 정이흔이라면 몰라도, 이 두 사람은 그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 따로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다면….
기태연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던 순간이었다.
국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기태연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하…. 알겠습니다.”
툭, 통화를 끊는 미간에 굵은 혈관이 돋아 있었다.
“금명결 길드장.”
“으음?”
“그쪽도 한차수 헌터 때문에 온 겁니까.”
말 한마디 없이 싱긋 웃는 남자를 보며, 기태연은 담배를 빼어 물었다.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기색이 만연한 금명결을 향해 기태연이 툭 하고 내뱉었다.
“아주 떼로 지랄을 떨고 계시는군요.”
연락이 안 되다고 정문을 들이박는 금명결, 말도 없이 쳐들어와 시위를 벌이는 백담.
거기다 더해 국장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넣어 버리는 정이흔까지.
이 나라 S급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였다. 하나같이 정신머리가 돌아 있다는 것.
“일어나세요.”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차수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인다는 거였다.
***
“…차수 씨, 한차수 씨!”
“뭐야, 왜 사람이 일어나지를 못해?”
“이상하네요.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시는데….”
환한 햇살이 눈을 찌르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신경을 건드리는 아침.
[ 주의! ]
[ 적정 수면 시간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
[ 남은 수면 시간 : 2시간 ]
[ 부족한 수면은 신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 스킬 ‘재생’의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할 시 숙면 상태에 돌입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
한차수는 짜릿한 경고창과 함께 잠에서 억지로 깨어났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차수 씨, 괜찮습니까? 어제 욕실에서 쓰러졌다면서요. 왜 날 부르지 않은 겁니까.”
“잠깐만. 이거 진짜 한차수 맞아? 가짜 아니야?”
“기 실장님, 이것들 데리고 좀 꺼져 주면 안 될까요? 힐링도 못 하는 쓸모없는 놈들을 도대체 왜 데리고 온 거예요?”
차례대로 정이흔, 금명결. 그리고 백담까지.
분명 제 병실에 없어야 할 것들이 떼거리로 나타나 미친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아, 제발….”
조용히 좀 해라, 이것들아. 잠도 덜 깼는데 곁에서 시끄럽게 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깐, 이거 왠지 익숙한데.’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한에 위기감을 느낀 것도 잠시.
[ 경고! ]
[ 대상자의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습니다. ]
[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부 자극을 차단합니다. ]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한차수가 탄식을 터트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 외부 자극 차단까지 남은 시간 : 3초, 2초, 1초…. ]
[ 외부 자극을 차단합니다. ]
“한차수 씨!”
“아니, 이렇게까지 약하다고? 진짜 사람 맞아? 더미 갖다 놓은 거 아니야?”
“둘 다 입 다물고 당장 꺼져요.”
누군가 성큼 다가온 듯 자그마한 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그리고 이내 이마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뜨거운 빛줄기.
한차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부디 다시 눈을 떴을 땐 혼자이길 바라면서.
물론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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