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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두 번째 히트 (22/22)

외전 3: 두 번째 히트

유신은 익숙하게 약 껍질을 깠다. 매일 아침 챙겨 먹는 오메가용 억제제였다.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기분 좋았다. 캘리포니아는 오늘도 맑은 날씨다. 부엌에서는 갓 내린 커피와 토스터에서 빵이 구워지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의 오른손 약지에서는 한 쌍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각각 금색과 은백색이었다.

“아빠! 아빠!”

거실 쪽에서 어린아이가 제 아버지와 장난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스러운 두 사람의 기척에 유신의 입가에는 절로 흐뭇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그렇게 그가 물 한 잔을 곁들여 작은 알약을 삼킬 때였다.

“잠깐.”

유신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손으로 계산했다가, 핸드폰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작게 혀를 찼다.

“이런, 마지막 히트 이후로 벌써 2년도 더 지났잖아.”

그것은 다시 말해, 어서 빨리 다음 히트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

2년 전 8월, 유신은 3.1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엄마와 아빠의 머리색을 합한 듯한 찻빛 머리칼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예쁜 아기였다. 얼굴은 아빠의 어린 시절을 쏙 뺐지만, 사랑스러운 눈매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

아기의 이름은 유진이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쓸 수 있는 이름으로 짓자고 닉이 먼저 제안했다.

덧붙여 유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는 남녀 다 쓰이지만 주로 여자 이름으로 더 많이 쓰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100% 남자 이름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예브게니가 같은 어원의 이름이었다. 그래서인지 닉의 러시아 가족들은 아기 유진을 예브게니의 애칭인 제냐라고 불렀다.

“어떻게 유진이 제냐가 되는 거예요?”

솔직히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유신이 한 번 대놓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닉은 딱히 놀라지도 않고 손으로 써서 보여 주었다.

“유진의 철자가 Eugene이잖아. 여기 ‘진’ 그러니까 ‘gen’ 부분에 ‘ya’를 붙여서 귀엽게 부르면 ‘제냐’가 되는 거지.”

설명을 들으니 더 알쏭달쏭했지만 굳이 그렇게 부르면 안 될 이유도 없었기에 유신은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도 아기를 점점 제냐로 부르게 되었는데, 유진이라고 부르면 제 이름과 너무 비슷해서 저부터도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신과 닉은 아기가 태어나고 해가 바뀌기 전, 늦어도 그해 12월에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듬해 5월에야 치러졌다. 아기는 건강하게 쑥쑥 자라 당시 벌써 9개월이었다.

단, 혼인 신고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했다고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결혼반지도 예전 SNS에 올렸던 금색과 은백색의 두 쌍의 심플한 반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날 이후, 항상 두 사람의 오른손 약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유신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점에서 충동적으로 샀던 반지는 감정 결과 놀랍게도 노점 주인이 주장했던 대로 진짜 순금이 맞았다. 앞으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색하지 않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닉 메드의 위상과 인기에 맞춰 언론과 팬들은 대규모의 호화로운 결혼식을 예상했다.

하지만 부부는 가족과 친구들만의 작고 소박한 결혼식을 기획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소속사 직원들 외에 일절 배제되었다. 물론 소박하다는 것은 할리우드의 기준으로, 정확히는 다른 스타들의 결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원이 소수라는 의미였다.

솔직히 유신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화려하다 못해 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번 미루기도 했고, 애 때문에 초대 손님 명단 외의 준비는 거의 올가에게 맡겨 버렸던 터였다. 신경 써서 준비해 줘서 고마웠지, 불만은 전혀 없었다.

결혼식 장소는 LA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그림 같은 리조트 호텔이었다. 부부는 일주일간 호텔을 통째로 대여했다.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날아올 가족들을 포함한 소수의 손님들을 위해서였다. 전 세계와 미국 각지에서 도착한 하객들은 그 일주일 동안 원하는 만큼 호텔에서 묵을 수 있었다. 물론 왕복 비행기 티켓도 함께 제공되었다.

그렇게 결혼식에 맞춰 한국과 러시아 양쪽에서 가족들이 도착했다.

“유신아, 엄마 아빠가 왔어.”

“네 엄마가 짐 싸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못 오는 줄 알았지 뭐니.”

“아유, 너희 아빠는 엄살이 너무 심하다니까. 어머나, 우리 손주 그동안 엄청 컸네!”

유신의 부모님은 제냐가 태어났을 때, 이미 미국을 방문해 닉과 인사를 나눈 뒤였다.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못 본 사이 훌쩍 자란 손주를 보고 그들은 매우 기뻐했다.

“형, 진짜 오래간만이다.”

남동생인 유호도 간만에 함께 왔는데, 유신과는 정말로 몇 년 만에 보는 거였다. 유신이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안부만 전해 들었지, 직접 통화를 한 적은 없었다.

간만에 본 동생이 기억에 비해 완전히 어른이 되어서 유신은 놀랐다. 키도 덩치도 원래부터 큰 편이었지만, 거기에 더해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졌다.

유호는 형에게 인사시키고 싶다면서 애인을 데리고 왔다. 베타인 그와 달리 남자 오메가였다. 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으로 그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둘밖에 없던 오메가 중 한 명이라, 유신도 학창 시절에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사귀게 됐는지 매우 신기했지만, 별개로 둘이 매우 사이가 좋아서 유신은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결혼 축하한다.”

“결혼 축하해요, 유신! 니카, 네가 나보다 먼저 갈 줄은 알았지만, 막상 이날이 진짜로 올 줄이야.”

닉의 아버지 세르게이와 누나 블라다도 물론 결혼식에 참석했다. 세르게이도 제냐가 태어날 때 미국에 찾아왔기에, 유신의 부모님과는 그때 이미 인사를 나눈 상태였다.

“아이고, 러시아 사돈! 이쪽으로 와서 우리 손주 좀 봐요.”

사실 유신의 부모님은 처음에는 키가 큰 러시아인 우성 알파를 당연히 낯설어했다. 하지만 손주에 대해 서로 뜻이 통한 걸까?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죽이 맞아서 핸드폰 번역기로 잘도 대화하더니, 헤어질 때는 며칠 사이에 십년지기를 떠나듯 서로 슬퍼했다.

두 집안의 사이가 나쁘면 어떡할지 계속 걱정하던 닉과 유신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좋고 반가운 방향의 예상외였다.

“유신, 이 사람이 전에 말했던 제 애인이요.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에요.”

블라다도 유신의 남동생 유호처럼 제 애인을 데려왔다. 여자 오메가로 그녀의 박사 논문이 끝나는 내년쯤 결혼할 예정이라고 했다. 유신이 축하하며 결혼식에 꼭 간다고 하자 두 사람은 매우 기뻐했다.

“유신, 자기야! 나 왔어. 호텔 정말 멋져.”

“저도 왔답니다. 드디어 이날이 왔구나, 니키!”

밀리는 가브리엘과 함께 나타났다. 둘은 이미 같은 집에서 동거 중이었다. 이 명랑한 커플은 대놓고 유신과 닉을 향해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드디어 결혼하냐고 반가워했다. 둘과는 뉴욕에 들를 때마다 종종 만나는 만큼 유신은 어제도 만난 것처럼 익숙했다.

“캣이 진짜 오고 싶어 했는데. 5월에 감기에 걸리다니 운도 없지. 대신 내가 동영상 잔뜩 찍어 가기로 했어.”

밀리의 설명대로 안타깝게도 캣은 오지 못했다. 유신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 루이의 사장인 루이스의 가족들을 모두 초대했지만, 하필 딸인 캣이 심한 감기에 걸려 버린 거였다.

캣은 닉을 왕자님으로 부르며 좋아했던 만큼 아픈 것보다 결혼식에 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무척 슬퍼했다. 좀 나중의 일이지만 닉은 그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제 사인을 한 장난감과 과자를 잔뜩 보내 주었다.

“네, 유신.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어요. 모든 것은 완벽하게 진행 중이니, 걱정하지 말고 아기랑 쉬고 계세요. 아, 아기 때문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라구요? 그것까진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겠네요.”

앞서 말했듯 올가는 제냐 때문에 반쯤 혼이 나간 유신을 대신해 결혼식 준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는 열과 성을 다하다 못해 영혼을 갈아 넣을 기세로 결혼식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 제 결혼식이면 오히려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라는 그녀였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들일 돈도 없었고, 그림 같은 외모의 두 사람이니까 이렇게 돈을 들이는 대로 보람이 있어서 더 뿌듯하다나?

그렇게 말하는 올가의 왼손 약지에서도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최근 아이잭과 약혼한 것이다. 둘은 언제부터 교제하게 됐는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좋아, 닉.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도 마치면 제발 이제 다음 대본도 살펴보는 거야.”

아이잭은 여전히 닉의 소속사 사장이자, 실질적으로는 매니저로서 마구 닉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 사랑이라도 찾아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솔직히 그가 아니었다면 닉은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욕 넘치는 소속사 사장님은 스타성 넘치는 제 배우가 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닉은 영화 작업은 잠시 쉬고 있었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 광고나 홍보 대사 일은 어느 선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인터뷰나 화보 작업도 물론이었다. 그쪽 일은 유신도 적극 환영했기 때문에 더더욱 진행이 쉬웠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각종 광고료와 출연료 등등으로 원래도 많았던 닉의 재산은 그사이에도 착실히 늘어 갔다. 요즘같이 변동성이 높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노동(?) 소득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앞으로 한 가정의 가장의 업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요소기는 했다. 그에 따라 아이잭과 올가의 보너스가 늘어난 것은 덤이다.

사실 이번 결혼식과 관련해서도 가능한 부분은 협찬을 충분히 활용했다. 공짜로 준다는데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이잭의 생각이었다. 굳이 콕 집어 말한 적은 없었지만 올가도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내 제자, 결혼 정말 축하한다. 부모님과도 화해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유신의 발레 선생님인 진아도 물론 결혼식에 참석했다.

“유신, 초대해 주다니 너무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 죠앤하고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아 오는 건 좀 그랬지만.”

“내가 할 말이거든요, 데이브! 유신만 아니었으면 거절했다니까, 정말.”

유신은 코스모 대리모 센터에서 자신의 담당자였던 죠앤과, 같은 병원 산부인과의 담당 간호사였던 데이브를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둘은 영광이라며 기꺼이 참석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감격스럽군.”

산부인과에서 유신의 담당 의사였던 매튜도 물론 결혼식에 왔다. 알고 보니 그는 닉이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던 사이라고 했다.

매튜는 제냐를 마치 친손주처럼 귀여워하며 종종 멋진 선물을 보내곤 했다. 제일 최근에는 멋진 아기 책 세트를 보냈는데, 닉은 벌써부터 공부를 시키라는 거냐며 재밌어했다. 헝겊도 붙어 있고 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거의 장난감에 가까운 책들을 아기 제냐는 무척 좋아했다.

“좋아요. 아까 이야기한 대로 할당된 구역은 책임지고 촬영하는 겁니다.”

참고로 많은 사진사와 카메라맨이 이번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해 아이잭에게 고용되었지만, 그중 메인 촬영 카메라맨은 다른 누구도 아닌 채드 링컨이었다.

누구나 궁금해하는 유명인의 결혼식, 무엇보다 비공개, 거기다 결혼식 당사자 둘의 외모는 피사체로서 매우 빼어나다. 링컨은 열정에 넘쳐 다른 카메라맨들을 지휘했다.

올가는 결혼식장을 온통 흰색으로 꾸몄다. 봄답게 노랑과 분홍 색색의 꽃이 가득한 녹색 정원과 푸른 하늘, 바다를 배경으로 두는 만큼, 굳이 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해, 싱그러운 봄의 정원에서 흰색으로 꾸며진 결혼식장은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마침 날씨도 좋아 하늘조차 바다만큼 새파랬다.

올가는 웨딩 케이크에도 무척 공을 들였다. 3미터 높이의 새하얀 케이크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꽃과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진주로 장식되었다.

계절도 봄이라 생화를 써도 좋았지만 유신은 먹는 음식에 안 먹는 걸 올리고 싶지 않다고 딱 잘랐다. 결혼식 관련해서 그가 유일하게 강하게 거부한 부분이었다.

생크림의 안쪽은 레몬이 듬뿍 들어간 상큼 달콤한 케이크로, 레몬을 넣자고 한 것은 닉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장소도 멋지고, 식장은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은 행복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모두의 축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단, 케이크를 자르는 장면은 올가의 기대만큼 로맨틱하지 못했는데, 유신이 계속 제냐를 안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식 후반부에 들어서며 한껏 짜증이 난 아기는 엄마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겨 있는 모습만은 그야말로 천사라서 사정을 모르는 하객들은 마냥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유신은 임신 초기에 하도 입덧으로 고생한 데다 임신 중에 이런저런 일을 겪은 만큼 어서 빨리 애부터 낳고 싶었다. 결혼식을 서두르는 대신 출산 후로 미룬 데는 그런 심리도 컸다.

하지만 제냐가 태어나고서야 유신은 왜 사람들이 차라리 애가 태어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라고 하는지, 수많은 산모들이 임신해 몸이 무거운 채 결혼식을 올리는지 알게 되었다.

아기는 귀엽다. 천사 같았다.

하지만 성가셨다.

무엇보다 제냐가 엄마를 너무 좋아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엄마 껌딱지였다.

닉은 제냐가 태어나기도 전에 모든 연줄을 동원해 업계 최고라는 보모를 고용했다. 그것도 한 명으로는 부족할까 봐 팀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유신과 제냐를 분리하는 데 실패했다.

웃기게도 제냐는 유신의 품 안에서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천사였다. 단, 떼어 놓으려고 하면 난리가 났고, 억지로 떼어 놓다 보면 심기가 불편해져서 도리어 계속 안고 있어야만 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런 얌전한 아기라니 키우기 정말 쉽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그렇게 멋진 결혼식이었지만 유신은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결혼식 내내 제냐를 달래거나 안고 있던 기억밖에 없었다. 나중에 결혼식 영상을 보고 친구들의 인사말을 기억해 냈을 정도였다.

신혼여행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신혼여행지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었는데, 닉은 섬 전체를 통째로 대여했다. 그가 거기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유신과 단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위해서였다.

솔직히 유신도 이때만큼은 제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혼식 내내 심기가 완전히 상한 제냐 때문에 그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애초에 그 중심에 있는 유신이 애가 계속 울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 만큼 의지가 크지 않다는 점부터 문제였다.

결국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에서 세 가족은 단란하게, 제냐의 일어서기 연습과 엄마 아빠 말하기 연습만 보다 왔다.

***

그것도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사이 닉은 장편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올가을 개봉 예정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잭이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닉은 지금까지 계속 놀기만 했을 것이다.

촬영이 끝난 현재 닉은 일단 휴가 중이었다. 당분간 새 영화 촬영은 없을 거라고 못 박은 상태였지만, 이번 봄 새신랑이 된 아이잭은 지금도 열심히 논의를 시도하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벌써 두 돌이 되는 제냐는 이제 걸음마가 아니라 뛰어다니는 수준이었다. 남자아이에다 여러 언어가 섞인 환경이다 보니 말은 느린 편이지만 이제는 제법 잘했다.

엄마 껌딱지도 많이 좋아져서 인사만 잘하고 다녀오면 반나절 정도는 유신 없이도 잘 놀았다.

“아빠, 딸기! 딸기!”

“제냐, 장난치지 말고 먹어야지.”

지금도 닉이 아침밥을 먹여 주고 있는데 그럭저럭 잘 따르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다. 물론 닉의 오른손 약지에도 유신과 같은 한 쌍의 금색과 은백색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옆에 대각선으로 앉아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유신은 참으로 평화로운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마주 보는 두 개의 꼭 닮은 얼굴은 그저 사랑스러웠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유신은 제냐가 닉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닉은 제냐가 유신을 닮았다고 주장했다. 웃을 때 눈매가 쏙 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냐는 전체적인 외모는 닉을 쏙 뺐는데, 웃는 얼굴이 유신을 많이 닮았다. 결국 각자 상대방의 얼굴을 아기에게서 찾고 기뻐하는 거였다.

문득 유신은 아까 억제제를 먹으며 생각난 이야기를 꺼냈다.

“니카, 나 아무래도 곧 히트 날짜를 잡아야 할 거 같아요.”

혹시 또 까먹기 전에 빨리 말해 놓자는 생각이었다. 제냐가 토스트를 잘 먹는지 확인하다 말고, 닉이 당황한 듯 얼어붙었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유샤?”

“히트 날짜요. 벌써 마지막 히트가 끝난 지 2년이 훨씬…… 앗, 제냐!”

부모님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냐가 딸기와 토스트가 든 식판을 엎어 버렸다. 멋진 대리석 식탁 위로 딸기와 토스트가 도르르 굴렀다.

“이, 장난꾸러기.”

한숨을 내쉬는 닉을 두고 유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부른가 봐요. 그만 먹여요.”

저를 안아 드는 유신에게 폭닥 안기면서 제냐가 식탁에 떨어진 딸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딸기.”

“안 돼. 그만. 딸기도 없어.”

하지만 유신은 단호하게 제냐를 안고 식탁에서 멀어졌다.

“딸기, 줘.”

“너 엄마한테 좀 혼나자. 적게 먹는 건 상관없지만 그릇 엎으면 안 된다고 했지.”

“힝.”

유신은 웬만해선 울리기 싫어할 정도로 제냐에겐 물렀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매우 엄했다. 제냐는 어지간히 혼나는 걸로 기가 꺾이지 않는 성격인 데다, 사랑스러운 외모 때문에 항상 주변의 예쁨을 받는 편이라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게 유신이 제냐를 혼내는 사이, 닉이 식탁을 바로 정리했다. 매일 있는 일이라는 듯 익숙한 태도였다.

LA에서 조금 떨어진 캘리포니아의 해안가에 있는 닉의 저택이었다. 멋진 숲에 둘러싸인 채 넓은 잔디밭을 끼고 멀리 태평양까지 내려다보였다.

여덟 개의 침실과 일곱 개의 욕실, 세 개의 식당에 파티 룸과 미디어 룸, 넓은 체력 단련실, 엘리베이터 등을 갖춘 멋진 건물이다. 최근 약간의 수리를 거쳐 아기를 위한 공간도 추가되었다. 별도로 차가 일곱 대가 들어가는 천장 달린 주차장도 있었으며, 외부에는 멋진 수영장과 농구 코트도 붙어 있었다.

원래 닉이 결혼하기 전부터 지내던 집으로 뉴욕에서 지낼 때는 한동안 비워 두었다. 그는 이 집을 구하면서 프라이버시를 제일 중요시해 근처 땅까지 모두 한꺼번에 구입했다. 덕분에 저택의 면적에 비해 부지가 매우 넓었다.

외관부터 그런 점까지 어딘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닉의 본가 저택과도 비슷했지만, 거기에 비하면 훨씬 간소하긴 했다. 대신 날씨는 이쪽이 훨씬 따뜻했다.

닉은 제냐도 태어났으니 더 큰 집을 새로 사거나 아예 집을 새로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신이 이것도 너무 넓다고 주장한 덕에 일부 수리하는 데서 타협했다.

물론 이 큰 저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신과 함께 있게 된 이후로 닉은 둘만의 시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경향은 제냐가 태어나고 더 심해져서, 유신이나 제냐와 있을 때는 다른 사람 없이 셋이서만 지내고 싶었다.

거기다 유신도 고용인을 쓰는 걸 그렇게 편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깨닫자,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출입을 극히 줄였다. 청소도 주에 2회 정도 시간 맞춰서 들르도록 했다.

그 외의 날짜는 유신이 매일 간단한 정리 정도는 알아서 했다. 식기 세척기나 로봇 청소기 따위의 최신 가전제품이 완비되어 있기도 했다.

단, 제냐 때문에 로봇 청소기는 잘 사용하지 못했고, (실제로 기어 다니면서 이미 한 대 부수기도 했다) 대신 유신이 아기 옆에서 한국에서 받았다는 찍찍이 청소 도구 따위를 들고 맨날 밀고 있었다.

닉은 그러는 유신을 볼 때마다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그는 유신이 찍찍이를 밀고 있는 옆에서 아기 있는 곳만 피해 청소기를 돌리는 담당이었다.

저택이 크다지만 아기랑 있을 때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은 침실과 거기에 붙은 욕실과 거실, 간이 주방 정도라서 청소라고 해도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았다.

침실과 좀 떨어진 곳에 멋진 아기 놀이방이 있었지만 제냐는 엄마 아빠와 같이 정원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넓은 잔디밭 정원은 뛰어놀기 딱 좋았다.

사실 닉이 영화 촬영 등으로 길게 집을 비울 때면 유신은 익숙한 뉴욕으로 돌아가곤 했다.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보안이 잘되어 있는 작은 아파트가 있었다. 유신은 제냐를 유모차에 태우고 센트럴 파크를 정원처럼 오가거나, 밀리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한국이나 러시아에 다녀올 때도 있었다. 어르신들은 언제 손주가 오냐며 항상 보고 싶어 했다.

닉과 유신이 혼인 신고를 한 것은 정확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반지도 교환했고 서로의 마음도 확인했으며 양가 부모님의 허락조차 이미 끝났으니 더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닉의 주장이었다. 유신도 어차피 청혼을 받아들였고 애까지 있는데 굳이 미룰 필요를 찾지 못했다.

국제결혼에 거주국이 제3국이기까지 하다 보니 혼인 신고 절차도 복잡했고 비자 문제도 복잡했지만, 그들에게는 만능 비서인 올가가 있기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이후, 제냐의 출생 신고도 그녀가 도맡아 진행했다.

“그래서, 유샤. 히트라고 했지?”

겨우 식사를 끝내고 닉과 유신은 드디어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제대로 식사를 마친 것은 제냐뿐이었지만.

일단 지금 제냐는 유신의 발치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저 관심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아니, 그냥. 아침에 억제제를 먹다 문득 깨달았는데, 마지막 히트부터 벌써 2년이 훨씬 넘게 지났더라고요.”

유신의 말에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냐가 생겼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죠? 제냐가 다음 달이면 벌써 두 돌이잖아요.”

“그러고 보면 지난번 건강 검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아.”

“그때는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었잖아요. 조만간 해야지 하고 우리 둘 다 까먹은 거죠.”

보통 억제제를 먹으면 알파도 오메가도 발정기를 겪지 않을 수 있고, 오메가의 경우에는 피임 효과도 있었다. 단, 2년에서 최대 3년에 한 번 정도 휴약기가 필요했다. 이 시기에는 원래보다는 훨씬 가벼운 발정기가 찾아온다.

사실 몇 달 전 병원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이미 늦어서, 바로 계획을 잡았어야 했다. 더 미뤘다가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언제 히트가 터질지 몰랐다.

“뭐죠? 왠지 기분이 들떠 보이는데요, 니카?”

하지만 나름 심각한 내용과 다르게 닉은 어딘가 기분 좋아 보였다. 영 미심쩍어하는 유신의 눈빛에 그는 어디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시선을 피했다.

“아니, 후식 먹을까 해서. 후식.”

닉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온갖 인맥을 동원해 업계 최고의 보모 팀을 고용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신이 힘들까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그래야 애가 태어나도 유신하고 둘이서 마음껏 놀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제냐는 어느 순간부터 유신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천사 같으면서, 엄마가 안아 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보통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 방에서 따로 재운다. 하지만 제냐는 유신이 없으면 절대 잠들지 않았다. 여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갖은 수단을 사용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유신은 아이와 같이 자도 딱히 상관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닉은 사실 내심 꽤나 슬퍼했었다.

제냐가 있어도 두 사람 사이의 부부 관계는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잠깐의 짬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닉은 앞으로 찾아올 히트 기간 내내 만 하루 동안 있을 합법적인 섹스를 상상하고 들뜬 거였다.

“아!”

한 박자 늦게 유신도 닉이 들떠 보인 이유를 깨닫고 조금 뺨을 붉혔다. 마침 닉이 간이 주방의 냉장고에서 케이크 상자를 꺼내던 중이었다.

“컵케이크 있는데, 먹을래, 유사?”

“난 괜찮아요.”

유신은 고개를 저었지만, 발치에 있던 꼬마 악당이 바로 반응했다.

“제냐도 케이크!”

벌써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는 제냐를 닉이 안정적으로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우리 아들, 케이크 먹고 싶어?”

“응, 케이크!”

“그래, 제냐도 먹자.”

유신이 도끼눈을 떴다.

“니카, 너무 많이 주지 말아요.”

“조금만 줄게.”

닉은 상자에서 레몬 프로스팅이 가득 얹어진 커다란 컵케이크를 꺼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레몬 맛을 제일 좋아했다. 물론 유신의 페로몬 때문이었지만 쑥스러워 절대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유신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물었다.

“일단 병원 예약부터 하는 게 좋겠죠? 이러다 또 까먹으면 진짜 큰일이니까요.”

닉이 갑자기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언제쯤으로 생각 중이야?”

“예약요? 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요.”

“아니, 히트 시기 말야.”

“글쎄요. 일단 병원 가 봐야 확실하겠죠? 그래도 다음 달 말은 제냐 두 번째 생일이고, 다음 학기는 내가 복학 예정인 데다가, 9월에는 블라다의 결혼식도 있으니까. 차라리 이른 게 나을까요?”

“음, 역시 그렇겠지.”

갑자기 얼버무리는 듯한 닉의 태도에 유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금까지 확실히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럼 일단 지금 병원 예약해요?”

“음, 뭐, 고마워.”

저 슈퍼스타가 자신 몰래 또 뭐 이상한 걸 꾸미는 건 아닌지, 유신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빠, 케이크!”

두 사람이 대화에 빠진 사이, 기다리다 지친 제냐가 아빠를 졸랐다.

“미안.”

닉은 컵케이크를 포크로 쪼개서 제냐의 입에 작은 부스러기를 넣어 주었다. 새콤한 크림을 맛본 아이가 기뻐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닉과 유신은 웃음을 터트렸다.

***

“안 그래도 둘 다 까먹은 거 같아서 슬슬 연락할까 하던 중이었지.”

닥터 매튜 테일러는 웃으며 세 가족을 맞았다. 이 백발노인은 오늘도 허허허 너털웃음이 친근했다.

그는 관절염을 핑계로 뉴욕에서 LA로 병원을 옮겼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나. 영국에서 자란 그는 우울한 날씨는 더 이상 사양이란다.

“죄송해요, 매튜 선생님.”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유신의 옆에서 닉이 당당하게 주장했다.

“어쩔 수 없잖아. 둘 다 애 키우느라 바빠서 깜박한 것뿐이야. 거기다 난 영화 촬영도 한걸.”

“쉿, 니카. 여기선 좀 가만히 있어요.”

유신은 그런 남편이 살짝 부끄러웠다.

“매튜 할부지, 안녕!”

제냐가 유신의 무릎 위에서 기분이 좋아서 꺅꺅 소리쳤다. 아직 마냥 외출이 좋은 23개월이었다.

매튜도 그런 제냐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제냐도 안녕? 못 보는 사이에 많이 컸구나!”

천성적인 매력으로 원래도 주변의 귀여움을 쉽게 받는 아기였지만, 특히나 매튜는 그를 마치 손주처럼 귀여워했다. 닉을 어릴 때부터 봐 와서 더 그런 듯했다.

“그나저나 여전히 둘 다 사이가 매우 좋군요.”

“당연한 이야기를!”

“아…… 네.”

매튜의 말은 유신이 닉의 알파 페로몬에 거의 절여진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뻔뻔하게 대답하는 닉의 옆에서, 유신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워했다.

사실 유신도 싫지 않기에 내버려 둔 쪽에 가까웠지만, 역시나 둘이 있을 때가 아니면 자제시켜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이 지켜질지 아닐지는 본인조차 확신은 없었지만.

어차피 유신은 닉을 상대로 항상 무르기만 했다. 참고로 그런 점은 닉 역시, 아니, 굳이 따지자면 닉 쪽이 훨씬 더 중증이었다.

“뭐, 부부 사이가 좋은 건 나쁜 게 아니니까. 덕분에 히트 없이도 안정적으로 둘 다 2년 넘게 버틴 것도 있을 거고.”

매튜가 허허 웃으며 차트를 확인했다.

“그래서, 둘 다 히트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난 바로 다음 주…….”

“선생님은 언제 정도로 생각 중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닉의 말을 슬쩍 끊으며 유신이 물었다.

“그게 말이지.”

매튜의 말에 따르면, 호르몬 검사 결과 유신의 히트는 빠른 편이 좋을 것 같고, 닉의 러트 쪽은 좀 더 여유가 있어서 3년을 꽉 채워 올해 안에만 하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정해진 날짜는 유신은 다음 달인 8월 초, 닉은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였다.

호르몬 상태를 포함, 여러 가지 요소를 두루두루 고려한 결과였다. 8월 말에 있는 제냐의 두 번째 생일과, 이후 유신의 복학 준비, 9월에 있을 블라다의 결혼과, 가을에 예정된 닉의 영화 개봉까지.

유신의 히트와 닉의 러트에 간격을 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둘의 발정기가 겹치면 임신 확률이 너무 올라간다는 것이 매튜의 의견이었다.

“임신 계획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안타깝지만 다음 가족계획까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생각하게.”

그 대답에 유신이 뺨을 붉혔다.

“네, 제냐의 동생 생각이 없진 않지만, 일단 대학 졸업은 마치고 나서요.”

“오, 드디어 대학에 복학을 하기로 했군.”

매튜가 바로 반가워했다. 정작 유신은 멋쩍게 목뒤를 긁적였을 뿐이었다.

“좀 더 일찍 해야 했는데, 살짝 부끄럽네요.”

사실 제냐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낳자마자 그다음 달에 바로 복학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벌써 어영부영 2년이 지나 버렸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유신은 괜히 찔렸다. 확실히 닥치기 전까지는 뭐든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법이다.

“8월 초.”

문득 닉이 신음했다. 묘하게 불만을 감추지 못하는 태도가, 유신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그래요, 니카? 제냐의 생일 파티는 그때부터 준비해도 충분해요.”

“음, 그렇지.”

누가 봐도 뭔가 계획한 것이 어그러져 당황한 모습이랄까? 그러고 보면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히트에 대해서는 반기면서도, 시기와 관련해서는 묘하게 저런 태도기는 했다.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여태껏 닉이 벌여 온 쓸데없지만 딱히 피해도 없던 이벤트들을 떠올리며, 유신은 일단 조용히 지켜봐 주기로 했다.

혹시 모르는 법이다. 이번엔 닉의 의도대로 감동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딱히 기대감은 없는 채로, 유신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닉은 잘생겼으니까!

어떻게 매일 봐도 안 질리고 볼 때마다 더 좋은지 자신도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런 게 바로 사랑이었지만,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어차피 닉을 상대로 유신은 항상 무르기만 했다. 덧붙여 그런 점은 닉 역시 마찬가지, 아니, 굳이 따지자면 닉 쪽이 훨씬 더 중증이었다.

이후 매튜는 유신에게는 바로 히트를 위해 억제제 변경 처방을, 닉은 러트에 대해 까먹지 않도록 아예 10월 초에 진료 예약을 확정했다.

“이러면 깜박할 일 없겠지요, 니콜라이?”

“그러게. 고마워, 닥터 테일러.”

“매튜 선생님, 저도 기억해 둘게요.”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세 사람이 진료실을 나올 때였다.

내내 유신의 무릎에 앉아 있던 제냐는 이제 닉의 팔로 위치를 옮겼다. 확실히 유신보다 힘이 좋아서, 그는 두 돌이 다 된 남자애를 마치 인형처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이대로 나온 김에 셋이서 다 같이 멀리까지 드라이브를 갔다가, 멋진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설마, 닉 메드?!”

그때 지나가던 여자가 닉을 향해 소리쳤다. 우연히 그와 마주친 일반인들이 흔히 보여 주는 반응이었다.

조금 늦게 그녀의 존재를 깨달은 유신은 먼저 앞서 나가는 바람에 약간 멀어지고 말았다. 그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둘(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닉의 품에 안긴 제냐까지 포함해 셋)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나, 저 팬이에요! 지난번 영화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세상에, 내가 닉 메드와 만나다니.”

아이가 태어나면서 확실히 예전처럼 주변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일은 줄었지만, 어쨌든 닉 메드는 유명한 슈퍼스타였다.

“고마워요. 다음 영화도 기대해 주세요.”

닉은 여자를 향해 능숙하게 웃어 보였다. 그가 잡지 등에서 흔히 보여 주는 미소였다.

“당연하죠! 개봉일 날 바로 극장으로 달려갈게요. 그나저나 당신 실물 정말 잘생겼네요. 정말 멋있어요! 아, 이 그 아기가 바로 그? 세상에나, 말도 안 돼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귀엽네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끊듯이 닉이 여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악수하시겠어요?”

“네!”

여자는 거의 황송해하며 그 손을 맞잡았다. 짧고 간결한 악수는, 닉의 몸에 익은 팬 서비스의 일종이었다.

“그럼,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오늘 여기서 본 거 SNS에 올리지 않으실 거죠?”

“물론이죠!”

여자는 감동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닉은 협조에 감사해 마지않는다는 듯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녀를 지나쳐 유신의 옆으로 갔다.

“방심했어. 병원에서 알은척이라니. 최근 들어 거의 없었잖아.”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닉은 유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겉옷 주머니에서 한껏 구겨진 모자를 꺼내, 눈에 튀는 화려한 금발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맙긴 하지만 당황했다는 듯한 그를 향해 유신이 쿡쿡 웃었다.

“우리가 한동안 거의 집에만 지내서 그런 거 아니고요?”

“아, 그건가?”

겨우 납득하다 말고, 닉이 화들짝 놀랐다.

“잠깐, 혹시 나 없이 제냐와 둘이 종종 외출할 때, 이런 성가신 일에 휘말리고 그런 거 아니지? 나야 익숙해서 괜찮다지만, 너나 제냐한테도 그런 거면.”

“걱정 말아요. 그런 일 없어요. 당신만 문제인걸요.”

여전히 제냐를 품에 안은 채 닉의 청록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만 문제라고?”

“그렇죠. 내 남편이 너무 잘생겼다는 문제.”

유신은 닉에게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제야 그가 자신을 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닉은 방금과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나도, 뽀뽀!”

갑자기 제냐가 자신을 빼먹지 말라는 듯 빽 소리쳤다. 자신도 잊지 말고 거기 끼워 달란 거였다.

“이런, 제냐! 미안.”

“나도 해 주지!”

미안하다며 아기의 뺨에 뽀뽀를 하는 유신을 뒤따라, 닉도 지지 않겠다는 듯 제냐의 반대편 뺨에 쪽 뽀뽀했다.

***

“응, 밀리. 그렇게 됐어. 언제냐고? 아마, 지금?”

유신은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비명 같은 커다란 목소리에 핸드폰을 잠깐 귀에서 떼야만 했다. 잠시 후 겨우 밀리가 진정하기를 기다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래서 지금 니카가 한창 짐을 싸는 중이야.”

그 말대로 지금 유신이 앉은 소파 앞에서는 닉이 한창 짐을 싸느라 바빴다. 와중에 제냐가 꺅꺅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에이, 밀리. 아니야!”

핸드폰을 반대쪽 귀로 옮기며 유신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내가 지금 둘째를 임신하면 대학 복학은 어떡하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냐, 진짜라니까. 정말이야.”

그렇다. 오늘이 바로 유신의 히트 예정일이었다.

슬슬 몸이 더워지는 게 꼭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유신은 다시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솔직히 말하는 본인도 일말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부분은 이제 닉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방금 아침을 먹이고 세수를 마친 제냐는 마치 천사같이 예뻤다. 발갛게 달아오른 오동통한 뺨에 커다란 눈동자가 마냥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껍데기만은 아기 천사는 제 아빠의 목에 온 체중을 걸어 매달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닉이니까 버티지, 자신이었으면 이미 누워 버리고 말았을 거다.

왠지 저리될 것 같아서 아까도 유신이 도와주려 했는데, 괜찮다며 닉이 극구 말렸던 것이다. 히트가 코앞인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라, 유신도 웬만하면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는데.

“니카, 그건 필요 없어요! 제냐는 요새 공룡은 별로고, 크레인 장난감을 좋아하거든요. 네, 그 노란 거.”

닉이 선반에 정리된 공룡 모형 세트에 손을 뻗는 것을 보고, 유신이 다급히 소리쳤다. 사랑하는 남편의 외침에 닉은 슬그머니 공룡을 내려놓고, 노란색 자동차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제냐가 자기랑 놀아 주는 줄 알고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댔다.

“제냐, 크레인 좋아!”

“그래, 우리 아들. 네가 크레인을 좋아하는 건 알겠어. 근데 아빠 지금 이걸 짐 가방에 넣고 싶은데.”

“아빠는 소방차 해.”

아무래도 지금 느긋하게 전화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했다. 유신은 급히 밀리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응, 응, 주변이 좀 시끄럽지? 그래, 가브리엘에게도 안부 전해 줘. 고마워. 다 끝나고 연락할게.”

여하튼 밀리가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어쨌든 복학하면 좀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니카,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요?”

유신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제냐와 한창 고전 중이던 닉이 멈칫했다.

“아냐! 거의 다 끝났어. 쉬고 있어, 유샤.”

“크레인, 빠방!”

그 발치에서 제냐가 소방차 옆으로 크레인을 빙글빙글 밀면서 신이 나 있었다. 귀엽긴 하지만 확실히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폼이 저래서야 언제 짐을 다 쌀지 모르겠다.

“니카, 아무래도 안 그래 보이는데요?”

“아냐, 대충 다 챙겼으니까, 이제 이것만 닫으면, 앗!”

닉은 허둥지둥 가방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장난감을 너무 많이 넣은 가방은 제대로 잠기지 않고, 오히려 열린 지퍼 사이로 모형 기차가 툭 떨어졌다.

“기관차!”

제냐가 신이 나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옆으로 넘어진 가방 입구에서는 우르르 짐이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닉이 포기하고 양손을 들었다.

“그래, 유샤. 네가 돕는 게 낫겠어.”

“봐요, 함께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내가 그랬죠?”

둘은 제냐가 모형 기차에 잠시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가벼운 키스를 했다.

솔직히 유신도 닉이 히트가 코앞인 자신을 걱정하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 구는 것도 있었다. 실은 꽤나 아슬아슬한 상태로, 방금 전의 가벼운 키스만으로도 아랫배 안쪽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어쨌든 닉과 유신은 짐을 다 싸는 데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크레인은 제외였다. 제냐가 끝까지 놓지 않는 바람에 짐 가방에는 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크레인 장난감은 그냥 따로 손에 들고 가기로 했다.

짐을 싸느라 지친 두 사람은,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것만으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다. 제냐만 손에 든 크레인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멋진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는 알록달록한 카 시트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유신은 제냐를 카 시트에 앉히고 자신은 그 옆으로 앉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조수석에 앉았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차는 그리 오래지 않아 LA의 고급 주택가에 도착했다. 하얀 벽에 갈색 지붕을 올린 멋진 이층집이었다.

“오, 닉! 너무 안 와서 올가가 슬슬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셋 다 어서 와요. 안녕, 제냐!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아이잭과 올가가 그들을 맞이했다. 특히 올가는 제냐에게 일부러 따로 인사를 했다.

여기는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집이었다. 유신의 히트 기간 동안, 제냐를 여기서 맡아 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밀리는 자기한테 왜 부탁하지 않았느냐고 아쉬워했다. 물론 뉴욕이었다면 밀리에게 제일 먼저 부탁했겠지만, 비행기로도 몇 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돌이 지난 이후로 제냐의 보모는 낮에만 고용하고 있었다. 그런 보모에게 밤까지 맡겨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닉과 유신에게, 올가가 자신과 아이잭이 맡아 주겠다고 나섰다.

사실 몇 년이나 가까이 지내다 보니, 이제는 어떤 의미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기는 했다. 제냐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봐 오기도 했고, 아이잭과 올가도 슬슬 2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해 더 적극적인 듯했다.

“낮에 원래 도와주는 보모는 좀 있다 이쪽으로 출근할 거예요.”

유신의 걱정스런 설명에, 닉도 비슷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정말 괜찮겠어? 밤에 두 사람만으로?”

정작 올가는 여유만만하게 제냐를 안아 들었을 뿐이었다.

“걱정 말아요. 어차피 하룻밤이잖아요. 성인 두 명이 붙어서 아기 하나 못 돌보겠어요? 거기다 제냐는 이렇게 천사 같은데! 어머, 생각보다 묵직하네. 그래도 귀여워.”

“올가! 제냐 좋아요?”

“물론, 좋지!”

닉에게서 짐 가방을 받아 들며 아이잭이 어깨를 으쓱했다.

“올가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서 나도 좀 걱정이긴 한데, 나도 있으니 뭐 어떻게 되지 않을까?”

유신은 여전히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낮에 실컷 밖에서 놀게 하면, 밤에 일찍 잘 잘 거예요. 밥은 아이스 팩에 든 거 한 개씩 데워서 먹이면 돼요. 제가 메모도 같이 넣어 뒀어요. 아, 그리고 요새 단거 너무 좋아하는데, 혹시 조르더라도 너무 많이 주진 마시구요. 목욕 후에 저녁 먹이고, 졸려하면 그냥 눕혀요. 아니면 좀 더 놀다가 잘 시간 맞춰서 불 끄고 눕히면 잘 잘 거예요. 옆에 같이 있어만 주면 잠은 잘 자는 아이거든요. 그래도 꼭 같은 방에서 함께 자야 해서 좀 불편할 수도 있어요. 옆에 사람이 없으면 새벽에 꼭 깨서요.”

덕분에 점점 길어지는 이야기에, 올가가 제냐를 안은 채 웃어 보였다.

“괜찮을 거예요, 유신. 너무 걱정 말아요.”

“아, 미안해요.”

그제야 제가 너무 말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신이 살짝 뺨을 붉혔다. 안 그래도 슬슬 열이 올라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갈래요? 마침 쿠키도 구웠어요.”

그런 유신의 상태를 잘 모른 채 올가가 닉과 유신을 집 안으로 불렀다. 다행히 알파인 아이잭 쪽은 이미 유신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다.

“아냐, 올가. 그랬다가 제냐가 괜히 헷갈리면 우리만 힘들지.”

“어머, 그럴까요?”

아이잭이 적절히 화제를 돌린 덕에, 올가에게 자세한 설명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유신이 제게 슬쩍 기대도록 하며, 닉이 아이잭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올가가 제냐에게 말했다.

“그럼, 엄마 아빠한테 안녕 하자, 제냐.”

“엄마, 아빠, 안녕! 잘하고 와.”

“제냐, 엄마 아빠가 언제 온다고?”

“한 밤 자고 와.”

“어머, 잘 알고 있구나.”

똘똘한 대답에 올가가 빙그레 웃었다. 닉과 유신이 미리 제대로 설명해 둔 것이었다.

“안녕. 이따 봐!”

해맑게 밝은 제냐의 배웅을 뒤로하고 닉과 유신은 차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차에 타는 것을 본 아이잭과 올가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냥 들떠 보이는 올가와 반대로, 아이잭은 좀 긴장한 기색이었다.

“뭐야, 울지도 않잖아.”

잠시 망설이다 조수석으로 탄 유신이, 괜히 섭섭한 듯 중얼댔다. 안전띠를 매는 것도 잊은 채였다. 닉이 짓궂게 물었다.

“왜? 제냐가 울었으면 했어?”

“아뇨,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유신은 멋쩍어하며 괜히 안경만 고쳐 썼다.

제냐가 태어난 이후, 두 사람이 단둘이 있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하루 내내 밤까지 오롯이 둘이서 지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신과 제냐가 하룻밤을 떨어져 지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신은 약간 감정이 북받친 듯했다. 슬슬 히트가 시작해, 호르몬이 널을 뛰는 것도 영향이 있을 수 있었다.

산뜻한 레몬 향이 확실히 평소에 비해 짙어진 채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곧 여기에 달콤한 데이지 향도 섞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까 거기서 더 지체했다면 아이잭도 이 향을 맡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닉은 상황에 걸맞지 않게 조금 안달복달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여기서 다그칠 수도 있었지만, 닉은 굳이 그러는 대신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이게 끝나면, 이제 곧 제냐의 두 번째 생일이잖아?”

“맞아요. 슬슬 생일 파티 준비도 시작해야죠. 첫 번째보다야 간소하게 할 거지만요.”

닉은 귀 앞으로 흘러내린 유신의 옆머리를 살살 뒤로 넘겨 주었다.

“유샤, 기억나? 제냐의 첫 번째 생일 파티 말야. 한국말로 ‘돌잔치’였지.”

제냐의 첫 번째 생일은 결혼식이 끝나고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찾아왔다. 하지만 첫 번째 생일은 특별하다며, 유신은 거의 한 달도 전부터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유신은 한국과 러시아의 가족들과 밀리, 가브리엘 등 아주 친한 친구들만 불러 한국식 돌잔치와 비슷한 파티를 열었다. 제냐는 유신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멋진 아기 한복을 입고 돌잡이도 했다. 물건으로 아이의 미래를 예상해 보는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돈이나 마이크, 아니면 발레의 토슈즈(유신의 남동생 유호가 일부러 올렸다)를 잡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제냐는 청진기를 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의사는 상상도 못 했다고 놀라는 유신의 옆에서, 닉은 뭐든 좋다며 웃고 있었다.

“그날 즐거웠어. 그게 벌써 거의 1년이나 지났네.”

“그러게요. 그때 제냐는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잖아요. 말도 엄마, 아빠밖에 못 했었는데. 이제 뛰어다니고, 말로 막 우리 이겨 먹으려고 하질 않나.”

“많이 컸어. 다 네가 열심히 키운 덕분이야.”

닉의 몸이 슬그머니 유신을 향해 기울어졌다.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유신이 조금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니카, 당신도 같이 키웠는걸요.”

“그래도 결국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정적으로 잘 해낼 수 없었을 거야, 유샤.”

그때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유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닉의 얼굴은 어느새 바로 코앞에 있었다.

“잠깐, 지금 이거 칭찬하는 거예요?”

“일단 그렇다고 해 둘까?”

당연하다는 듯 서로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혀가 뒤엉키자 유신의 목 안쪽에서 달콤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흐응.”

알파의 베르가못 향이 유신의 허리를 녹아내리게 했다. 유신의 한쪽 팔은 시트를 붙잡은 채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다른 한쪽 팔이 닉의 목뒤를 끌어안았다.

입 안에서 뒤섞이는 열기가 뜨거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유신으로서는 그저 허덕이는 것이 다였다.

“읏, 응.”

동시에 그는 제 귓바퀴에 다가오는 단정한 손길을 느꼈다. 손가락은 그대로 달아오른 귓불을 거쳐 목덜미까지 미끄러졌다. 자연스럽게 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좀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유신은 거의 조수석 시트에 거의 누운 듯한 상태였다. 닉은 지긋이 웃으며 살짝 젖은 유신의 입술에 한 번 더 짧은 키스를 날렸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유신을 바로 앉히고, 안전띠까지 채워 주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둘 사이에 흐르는 눈빛은 달콤하게 끈적하고, 더없이 나른했다. 유신은 이제 거의 쌕쌕 숨만 내쉬면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처음 날짜가 정해졌을 때, 닉은 따로 호텔이나 다른 비슷한 장소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신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왜 굳이 돈을 쓰냐고 바로 거부했다.

집에 침실만 여덟 개가 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결국 닉은 유신의 히트를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는 말은 단어 그대로의 뜻이었던 것이다.

오늘 고용인들은 모두 휴가를 보냈다. 제냐는 올가와 아이잭에게 맡기고 왔으니, 덕분에 지금 이 넓은 성에는 닉과 유신, 완전히 단둘뿐이었다.

닉은 처음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유신도 제냐도 없이 혼자였지만, 외로움에 너무 익숙해 자신이 외로운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촬영이나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멀리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와 나직하게 속삭이는 유신의 목소리까지.

언제 이 집이 조용했는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니카?”

“쉬이, 괜찮아.”

닉은 유신을 공주님 안듯 옆으로 안아 든 채, 미리 준비해 둔 침실로 올라갔다. 평소라면 자신이 걷겠다고 밀어 낼 유신이 지금은 오히려 닉의 품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제냐가 생겼던 지난번 히트 때도 이런 식으로 유신을 자신이 지내던 펜트하우스로 데려왔었다. 지나고 보니 죄다 추억이라, 닉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어렸다.

목적지는 평소 사용하던 메인 침실에서 제일 떨어진 침실이었다.

양쪽으로 큰 창이 있어 내려다보면 제법 전망이 좋았다. 물론 지금은 혹시 몰라서 꼼꼼하게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넓은 침실이었지만, 가구는 방 한가운데 놓인 대형 침대와 협탁뿐이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닉의 침실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단, 요즘 지내는 메인 침실은 전혀 달랐다. 일단 제냐까지 함께 잘 수 있도록 특수 주문한 커다란 3인용 가족 침대가 방 한가운데서 존재감을 과시 중이었다. 거기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장난감에다 알록달록한 아기 담요 등등. 이 방 같은 차분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그 차이가 앞으로 자신들이 여기서 할 행위를 설명하는 듯해 닉을 오히려 흥분시켰다.

“유샤, 도착했어.”

그대로 닉은 유신을 커다란 침대 한가운데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원래도 예쁜 제 오메가는 지금 히트로 살짝 열이 오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대로 영원히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유신을 위해 닉은 준비를 미리 다 해 둔 참이었다. 침구는 히트로 감각이 예민해졌을 피부를 위해 좀 더 부드러운 소재로, 시각적 자극까지 고려해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으로 새로 맞추었다. 그 외 자극을 추가할 만한 물건들도 모두 치워 두었다.

특히 쓸데없는 향이 날 만한 물건들은 완전히 제외되었다. 덕분에 지금 이 넓은 침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순수히 유신과 닉의 페로몬뿐이었다.

침대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는 간이 냉장고와 미니바를 추가했다. 그 안에는 생수부터 시작해 각종 음료수와, 바로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가 채워져 있었다.

중간에 교체할 수 있도록 여분의 시트와 수건도 물론 준비해 놓았다. 손이 닿는 협탁 서랍에는 콘돔도 가득 채워 두었고, 러브 젤도 종류별로 있었다. 아니, 히트 중인 유신에게 러브 젤 쪽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니카.”

닉이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것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열기로 흠뻑 젖은 촉촉한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데려왔다. 물론 꿈이나 환상보다도 이 현실 쪽이 더 달콤했다.

손가락이 닉의 옷자락을 꼭 붙든 채 떨어지지 말라고 조르는 듯했다. 그게 또 사랑스러워서 닉의 가슴이 뛰었다.

“나의 유샤.”

부름에 응하듯 닉은 몸을 숙여 유신에게 키스했다. 두툼한 매트리스가 겹쳐진 체중만큼 움직이고, 뜨겁고 부드러운 숨결이 두 사람 사이에서 뒤섞였다.

물론 안경을 벗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리깐 긴 속눈썹 아래, 별을 박은 것 같은 초콜릿색 눈동자가 촉촉이 젖은 채 반짝였다. 자신이 정말로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가볍게 입술을 물고 빠는 사이, 닉은 자신의 셔츠의 단추부터 풀었다. 유신도 귀찮은 듯 제 티셔츠를 끌어당겼지만, 열이 올라 나른한 팔은 그 간단한 동작도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닉은 슬그머니 그런 유신을 도왔다. 옷에서 목을 빼며 그가 키득키득 웃었다.

“왠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해?”

닉은 유신에게서 벗겨 낸 티셔츠를 빼앗듯 받아 들어, 아무렇게나 바닥으로 던지며 다정하게 되물었다. 그의 셔츠는 진작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드러난 목덜미에 팔을 감으며 유신이 다시 쿡쿡 웃었다.

“그냥 당신과 여기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거?”

확실히 두 사람이 섹스를 위해 이런 식으로 여유롭게 끌어안고 있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처음 했을 때는 임신이 목적이었고, 둘 다 발정기라 이래저래 여유가 없었다. 당시에는 닉이 데리러 갔을 때 이미, 유신은 거의 이성이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바로 아이가 생겼으니까.

이후로도 섹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유신이 임신 중이라서, 태어난 이후로는 아기인 그가 옆방에서 자고 있기 때문에 항상 후다닥 끝내곤 했다.

이후 첫 발정기였다. 무엇보다 히트를 이유로 처음으로 아이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거기다 지금은 유신은 히트라도 닉은 아니었다. 물론 유신의 페로몬의 영향으로 흥분하기는 했지만, 본인이 러트일 때처럼 아예 이성이 나가지는 않았다.

유신 쪽도 억제제 휴약으로 찾아온 히트라, 그렇게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하룻밤 혹은 길어야 이틀 밤 정도 지속될 것이다.

그때에 비해 의식도 한층 더 명확해 그래서 괜히 더 부끄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런 점이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으면서, 뭘.”

“물론 아니라고는 말 안 할 거지만요.”

일부러 능글맞게 말하는 것이 분명한 닉을 향해 유신이 입술을 내밀자, 쪽 입맞춤이 떨어졌다. 그 뺨을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닉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귓가까지 미끄러트렸다.

“흣.”

그가 슬쩍 귓불을 깨물어 유신이 목 안쪽에서 낮은 신음을 흘렸다. 히트가 시작되며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한 몸은 평소보다 한결 쉽게 흥분하고 있었다.

이제 닉의 혀는 맛보듯 귀를 핥고 있었다. 유신은 간지러움인지 쾌감인지 모를 감각에 닉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끌어안고 어디랄 것 없이 입 맞추느라 서로 바빴다. 항상 어딘가 부끄러워하던 유신이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닉을 더 부채질했다. 유혹하듯 퐁퐁 배어 나오는 달콤한 페로몬에 이미 흠뻑 젖어 버렸는지도 몰랐다.

닉의 손이 드러난 유신의 옆구리를 지분거렸고, 가볍게 스치는 손길이었지만 유신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니카, 어서.”

가볍게 입술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 끌어안은 손을 풀지 않으며 유신이 끙끙 보챘다. 닉은 그 입술에 바로 제 입술을 다시 겹치며, 동시에 손으로는 유신의 바지 버클을 풀어 냈다.

속옷까지 한꺼번에 바지를 끌어 내리자, 유신이 슬그머니 돕듯이 허리를 들었다. 이미 젖은 속옷 안쪽에서 주룩 흘러내리는 액체에 부끄러워할 정신도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닉의 숨결도 좀 더 들떴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유신의 뒤가 아닌, 앞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가볍게 손으로 훑어 내리는 것만으로 반쯤 발기한 성기가 금세 완전히 빳빳해졌다.

“앗, 그거.”

그리고 다음 순간, 아래에 닿는 뜨거운 감각에 유신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 닉이 이미 완전히 발기한 제 성기를 유신의 성기에 대어 온 것이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두 개의 성기를 동시에 감싸 쥐었다.

“좋지?”

닉의 보석같이 아름다운 청록색 눈동자가 지긋이 유신과 시선을 맞추어 왔다. 지금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면서도, 일부러 주지 않으며 반응을 살피는 거였다.

보통은 부끄러워하며 흥분을 감추거나, 부추기듯 유혹하던 상대가, 먼저 더 흥분으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신은 어쩔 줄 모르며 고개를 저었다. 좋으면서도 아쉬운 이중적인 감각이 그의 허리를 들썩이게 하는 듯했다. 엉덩이 안쪽부터 울컥 애액이 흐르고, 그를 감싸는 데이지 향이 짙어졌다.

오른쪽 다리의 흉터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대놓고 더 흥분한 듯 허리가 떨렸다. 닉과 함께하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 흉터를 신경 쓰지 않게 된 유신이었다.

닉은 그대로 성기를 겹쳐 잡은 채,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한꺼번에 부드럽게 쓸어 올리고 뿌리 쪽까지 쓰다듬고는, 남은 한 손으로는 유신의 고환을 주물럭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아, 니카, 그거, 흑.”

능숙한 자극에 견디지 못하고 유신이 울먹였다. 이미 아까부터 빳빳하던 성기는 벌써 끝에서 맑은 액을 흘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신의 성기는 반듯하고 모양이 좋았고, 유난히 작거나 하지 않고 베타에 가까울 정도로 충분히 컸다. 특히 흥분하면 예쁜 핑크색으로 달아올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알파를 흥분시켰다.

솔직히 닉은 아무리 만져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질릴 정도로 듬뿍 핥아 주고 싶었지만, 여유를 부리기에는 더 급한 누군가가 있었다.

“거기 말고, 어서.”

유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닉을 졸랐다. 완전히 흥분해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태도였다.

물론 닉도 유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지 않았다. 알기에 일부러 더 모르는 척, 앞쪽을 자극하는 손길을 빨리할 뿐이었다.

“왜? 여기는 충분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흐윽, 그, 그치만.”

지금 유신의 아래는 안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거의 웅덩이를 만들 지경이었다.

엉덩이 안쪽은 아까 속옷을 벗겨 냈을 때도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 닉이 앞쪽의 성기만 계속 자극하자, 어설프게 가해진 흥분으로 몸이 더 달아 버린 거였다.

“아, 니카, 나.”

“응? 이쪽으로 한번 할까?”

닉이 대놓고 사정을 유도하듯 손에 쥔 성기를 주무를 때였다. 유신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닉을 밀어 냈다.

“싫어요. 나, 나, 여기.”

그리고는 크게 허벅지를 벌리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양쪽으로 벌려 보였다. 한참 전부터 이미 흠뻑 젖어 있던 은밀한 구멍이 공기 중으로 드러나자 새삼 움찔대며 안에서부터 액을 흘렸다.

겉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히트는 히트였다. 그것은 평소의 유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지나친 흥분에 반쯤 마비된 이성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니카, 어서.”

보이는 것만으로 더 흥분한 듯, 유신의 손가락이 슬금슬금 구멍 근처를 지분대기 시작했다. 섬세한 주름이 눈앞의 알파를 대놓고 유혹했다.

“멋진 경치야.”

속삭이는 닉의 목소리는 어딘가 갈라져 있었다.

솔직히 그는 간만에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하룻밤 내내 느긋하게 유신과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저런 광경을 보고도 이성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공교롭게도 흥분으로 자신의 알파 페로몬이 짙어지자, 유신의 허리가 더 들썩였다.

“응, 어서.”

유신의 손끝이 한 번 파고들자, 이미 더는 멈출 수 없어졌다. 이미 젖은 구멍은 거칠 것 없이 손가락을 안까지 빨아 당겼다. 가볍게 손끝이 몇 번 입구를 드나들자 그것만으로도 흥분해 등까지 부들부들 떨리고, 앞쪽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유샤.”

닉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신을 부르며 몸을 숙였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오메가의 평소보다 유혹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물론 즐겁지만, 확실히 이 이상은 제 아래가 견디지 못할 듯했다.

아래에서 손가락을 빼내자 유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이 흥분 때문인지 기대감 때문인지는, 본인조차 모를 듯했다. 곧바로 닿아 오는 뜨거운 열기에 유신이 달콤하게 울었다.

“흐응.”

닉의 발기한 성기가 이미 부드럽게 녹아 있는 입구에 닿은 것이었다. 콘돔은 이미 착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닉은 그대로 바로 삽입하는 대신 젖은 구멍을 놀리듯 지분거렸다. 단단한 귀두가 슬쩍 느슨해진 입구 근처를 깔짝대자, 입구의 주름이 반기듯 오물거렸다. 그것만으로 유신은 너무 느껴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으응, 응.”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의식도 없이 달콤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부족했다. 흥분으로 뇌가 녹아내릴 듯 몽롱한 가운데, 유신은 좀 더 크고 깊은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이 자신에게 그 쾌감을 줄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신은 닉을 껴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주며, 넓은 어깨 아래 근육으로 꽉 조인 허리에 날씬한 다리를 감았다.

“어서.”

흥분한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차피 닉도 아까부터 한계였다. 더는 참을 이유도 없었다.

“하, 유샤!”

그는 그대로 유신의 허벅지를 더 깊게 벌려 누르며, 거칠게 유신의 안으로 박아 넣었다.

아무리 한껏 흥분해 유신이 조르고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발기한 닉의 성기는 컸다. 평균은 충분히 되는 유신의 성기가 매우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납작한 아랫배에 성기가 파고드는 대로 굴곡이 생겨났다. 갑작스럽게 깊이 삽입해 오는 커다란 흉기에 유신의 몸이 파드득 튀었다.

“아흣!”

거의 동시에 유신의 핑크색으로 흥분한 성기 끝에서 두 사람의 벗은 허벅지와 배 위로 정액이 튀었다.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예민한 몸이, 삽입만으로 사정해 버린 것이었다.

하얀 몸이 온통 발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흥분으로 젖은 눈동자는 촉촉하고, 긴 속눈썹에 물기가 어려 묘하게 순진해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은 평소보다 달콤해 보여, 깨물면 그대로 단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닉은 제 오메가는 어쩜 저럴 때조차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와중에 사정을 끝낸 유신의 내벽이 자신의 성기를 좀 더 빠듯하게 물어 와, 닉은 낮은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좀 더 깊이까지 자신을 박아 넣었다. 납작한 아랫배의 굴곡이 좀 더 성기 모양으로 윤곽을 더했다.

“유샤.”

“흐응, 니카.”

유신은 너무 흥분하다 못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계 이상의 자극으로 사정은 했는데 엉덩이 안쪽은 여전히 그득하다 못해, 아니, 도리어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했다.

허리를 접은 자세라 그런지 배 속을 채우는 성기의 느낌이 너무도 리얼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감각조차 쾌감이었다. 흥분한 내벽이 거대한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뚝뚝 애액을 흘리고 있었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알파의 숨결이 뜨거워, 유신은 매달리듯 그를 좀 더 세게 껴안았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자신의 것인지 닉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느껴져? 내가 네 안에 모두 들어갔어. 네 안이 나를 오물오물 씹고 있어.”

낮고 듣기 좋은 닉의 목소리는 귀에 마냥 달았다. 익숙한 베르가못과 계피의 알파 페로몬 향이 유신의 흥분을 좀 더 부채질했다.

이어져 있다는 이상할 정도의 실감이 유신을 휘감았다. 처음도 아니고, 오히려 이제는 서로 익숙해지고도 남을 만큼 몸을 겹친 상대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싫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야릇한 부끄러움에 유신은 괜히 고개만 저었다.

“그런 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응.”

마침 닉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규칙적인 움직임에 유신의 신음도 점점 커져 갔다.

솔직히 닉은 맞춘 듯 자신을 감싸 오는 유신의 내벽에 금방이라도 싸 버릴 것 같아 간신히 참아야만 했다. 움직이는 대로 유신이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것 또한 닉의 흥분을 부채질했다.

“아, 니카, 안 돼요.”

그대로 닉의 손이 어느새 다시 흥분하기 시작한 앞쪽 성기를 감싸, 유신의 사고가 잠시 정지되었다.

방금 사정한 성기는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닉의 손가락은 천천히 뿌리까지 내려와 고환까지 한 번에 부드럽게 문질렀다가, 그대로 위쪽으로 쓸어 올려 이번엔 축축하게 액을 흘리는 귀두를 자극했다.

앞도 뒤도 동시에 자극하자, 유신의 목 안쪽에서부터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그대로 침대에 녹아내렸다.

앞을 만지는 손길도 좋았지만, 사실 유신은 뒤를 쑤시는 성기가 더 좋았다. 너무 커서 뱃가죽을 뚫다 못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감각이 오히려 흥분을 부추겼다. 그의 안에서 배어 나온 애액과 히트의 영향을 받은 부드러운 내벽 덕분에 아픔은 전혀 없이, 그저 몸을 가르는 압박감이 달콤한 쾌감으로 변화할 뿐이었다.

자신이 이상해진 걸까? 닉과 섹스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유신은 울먹이며 닉에게 매달렸다.

“니카, 나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아요.”

“왜, 유샤?”

“나,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응, 봐요, 지금도!”

갑자기 닉이 한껏 느끼는 부분으로 찔러 넣어, 유신의 신음이 커졌다. 흥분으로 바르작대는 온몸은 한껏 야했다.

하지만 정작 닉은 여유롭게 받아칠 뿐이었다.

“괜찮아. 그냥 히트라서 그런 거야.”

그 한마디에 유신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히트?

“맞아, 그랬어.”

그리고 자신의 알파, 저의 사랑하는 알파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유신은 울먹울먹 녹아내리면서도 닉에게 더 매달렸다. 그런 유신이 닉은 그저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좋아?”

“응, 좋아요.”

뭘 해도 쉬이 흐물흐물 달아오르는 유신의 상태를 다 눈치채 놓고도, 아니 그게 너무 예뻐서, 닉은 더 짓궂게 유신을 괴롭혔다.

“평소에는 안 좋았어?”

앞쪽 성기의 뿌리를 막은 채 일부러 제일 느끼는 부분을 비껴 찔러 올리자, 애가 닳는 듯 허리가 흔들려 왔다. 덕분에 손안에서 성기가 비벼졌는지, 움찔하는 것이 귀여웠다.

“평소에도 좋, 아, 안 돼.”

이번에는 같이 사정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닉은 일부러 유신의 뿌리를 세게 감싸며 단번에 깊이까지 찔러 넣었다. 너무 느낀 몸이 파드득 튀며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너무, 깊!”

“너무 깊어서, 좋지?”

“거기 이상, 이상해져, 응.”

점점 빨라지는 닉의 움직임에 따라 달콤한 신음이 사정없이 유신의 입술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내벽을 비벼 대는 흉기도, 앞쪽을 막고 있는 손가락도, 그저 뜨겁고 거칠고 좋았다.

닉이 속도를 높이며 엇박으로 쳐올리자 유신은 너무 느껴 흐느꼈다. 그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유신의 내벽을 거칠게 돌리듯 긁어내렸다. 얇은 아랫배가 크게 불거졌다 다시 가라앉았다.

“아, 흐응.”

배 속을 뒤집는 거친 자극에 유신이 어쩔 줄 모르며 닉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괴롭다기보다 너무 느껴서였다. 방금의 자극에도 다시 힘을 더하는 성기는, 닉이 손을 놓았다면 몇 번이나 사정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유신에게 달콤하게 입 맞추며 닉이 다시 물었다.

“좋아?”

“좋, 아아.”

어느새 닉은 거침없이 유신이 느끼는 부분을 쳐올렸다. 슬슬 절정에 가까워지는지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열기가 닉을 올려다보는 유신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그가 넣었다 빼는 것에 따라 겹쳐진 몸도 앞뒤로 흔들리고, 달콤한 신음이 거침없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닉이 유신의 성기를 붙잡은 손을 놓으며, 그의 안으로 거칠게 사정했다.

“큿, 유샤!”

“니카!”

거의 동시에 유신도 절정에 닿았다. 그로서는 이미 두 번째였다. 슬슬 말라붙기 시작하는 아까 사정한 정액의 위로 다시 한번 더 유백색의 액이 튀었다.

***

닉의 사정은 유신의 안에서 몇 번에 걸쳐 길고 깊게 이루어졌다. 정액이 콘돔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그럴 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유신은 제 배 속이 닉의 정액으로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앞도 뒤도 두 사람분의 정액으로 흠뻑 적셔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서로를 침식하는 상대의 페로몬에 푸욱 절여진 채, 어차피 서로의 페로몬으로 안도 밖도 가득 채워져 있으니 결국 같은 건지도 몰랐다.

“하아, 하아.”

유신의 얇은 가슴이 깊게 숨을 내쉬는 것에 따라 크게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사정의 여운에 취해 초점이 풀린 젖은 눈동자가 멍하니 닉을 올려다보았다.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힘이 풀린 허벅지가 느슨하게 벌어진 모습이 미칠 듯이 야했다.

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을 유신의 안에서 빼냈다. 콘돔 끝에 동그랗게 정액이 맺혀 있었다. 알파의 정액은 베타에 비해 양이 많아 그 자체로 꽤나 존재감이 있었다.

“응.”

성기와 콘돔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감각에 유신이 낮게 신음했다. 특히 선단까지 성기가 모두 빠져나온 뒤, 이어 정액이 고인 콘돔이 주름을 통과하는 감각은 몇 번을 느껴도 익숙해지지 않고 야릇했다.

사실 알파는 발기했을 때 성기의 크기도 대단하지만, 정액의 양도 많아서 전용 콘돔이 아니고서는 버티지 못했다. 그나마 오늘은 닉이 러트가 아니라 노팅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이전의 문제였다.

다른 대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콘돔은 부가적인 피임 도구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 사정한 성기를 콘돔이 빠지지 않도록 몸에서 빼는 데에는 은근히 요령이 필요했다.

한껏 예민해진 유신의 내벽이 아쉬운 듯 움찔대며 마지막까지 알파의 성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잔뜩 고인 정액으로 콘돔이 물 풍선처럼 부푼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빠져나오자, 안쪽에서 고여 있던 애액이 주룩 흘러나왔다.

“하아.”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긴 숨이 유신의 입술에서 새어 나오고, 힘이 빠진 몸이 옆으로 늘어졌다.

덕분에 하얗고 둥근 엉덩이 안쪽이 허벅지까지 질척하게 젖은 모습이 닉에게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동그란 두 개의 둔덕 사이 숨겨진 은밀한 구멍이 야하게 움찔대는 모습까지 다 보일 듯했다.

닉은 절로 눈이 가는 것을 애써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며 콘돔의 뒤처리를 했다. 익숙하게 끝을 묶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데, 묘하게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는 유신에게도 지난 2년간 꽤 익숙할 광경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무심히 돌아보던 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무리 그라도 쉽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니카, 흑.”

다시 발정이 난 유신이 제 손가락으로 직접 뒤를 쑤시고 있었다. 히트 중이라 바로 다시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옆으로 누운 채 한쪽 허벅지만 접어 올려 노골적으로 구멍이 드러난 채였다.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찔러 넣어서는 열심히 안을 휘젓자,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젖은 내벽 안쪽에서 지꺽지꺽 끈적한 소리가 울렸다.

“나, 이상, 여기가 이상해서. 근질근질, 하윽!”

평소와 다른 제 몸의 반응에 유신이 어쩔 줄 모르며 울먹였다. 안에서 손가락을 접자 허리가 튕기고, 이어진 손가락을 타고 애액이 흘러넘쳤다.

오메가의 온몸에서 배어 나오는 달콤한 페로몬이 닉의 흥분을 돋웠다. 그는 바로 유신을 향해 몸을 숙였다.

“또 원해?”

“으응, 응.”

정작 유신은 지나친 흥분으로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듯했다.

고개가 까딱까딱 끄덕이자, 아래에서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동시에 움직일 정신이 없는 거였다. 그게 또 귀엽다고 생각하며, 닉은 달콤하게 그의 귓가로 속삭였다.

“넣어 줘?”

뒤를 쑤시는 쪽의 손목을 붙들자, 유신이 멈칫 몸을 굳혔다. 설마 싫은가? 잠시 당황하던 닉의 고민이 길어질 틈도 없이, 흥분으로 촉촉이 젖은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소리 내어 대답할 필요조차 없이, 유신의 벗은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하, 진짜.”

닉은 바로 유신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접어 올려진 허벅지를 좀 더 벌리며 손을 빼게 하자, 완전히 녹아내린 음란한 구멍이 그대로 드러났다.

“너무, 그렇게.”

노골적인 시선에 이제 와서 수줍어하는 대답과 반대로, 유신의 구멍은 대놓고 반기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커다란 닉의 성기를 물고 있던 주름은 살짝 부은 건지 흥분했는지 발갛고, 안에서부터 배어 나온 애액으로 아까보다 더 젖은 채였다.

닉은 위로 접힌 허벅지 뒤쪽을 더 깊게 누르며, 유신의 안으로 손가락을 하나 밀어 넣었다.

“왜? 이런 걸 원한 거 아냐?”

“아흑!”

갑작스런 자극에 유신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아까 남겼던 키스 마크가 여기저기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희고 긴 목줄기가 목뒤에서 배어 나오는 페로몬과 함께 알파의 흥분을 더 부추겼다.

닉은 유신의 그 목줄기를 가볍게 깨물고, 쇄골과 가슴으로 몇 번이고 입술을 떨구었다. 동시에 뒤쪽을 쑤시는 손가락은 착실하게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방금까지 닉의 커다란 성기를 물고 있던 구멍은 손가락 하나 정도는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직전까지 유신이 손가락 두 개로 열심히 직접 쑤셨더랬다. 부드럽게 안쪽을 늘리듯 천천히 공간을 넓혀 가자, 그 자극에 유신이 더 자지러졌다.

뒤를 파고드는 닉의 손가락은 어느새 두 개로 늘어 있었다. 닉이 안에서 손가락을 휘젓자 유신이 너무 느껴 힉힉 흐느꼈다.

“거기, 하응!”

안에서 손가락을 양쪽으로 벌리듯 하자, 너무 심한 자극에 유신의 허리가 그대로 튕겼다. 이미 몇 번이나 했던, 아니 방금도 했던 행위지만, 뭔가 부끄러워 어쩔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쾌감 쪽이 훨씬 더 높았다.

슬쩍 입술을 떼며 닉이 유신의 뒤로 다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벌써 세 개째였다. 달래듯 유신의 입가와 뺨으로 입술을 떨구며, 그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꾹꾹 안쪽을 늘리듯 자극했다.

제일 느끼는 부분은 깊이 있어 손으로 닿지 않았지만, 이미 예민해진 내벽은 그 움직임만으로도 잔뜩 느꼈다. 앞쪽 성기도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유신은 더 깊은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물론 손가락도 너무 좋지만, 더 좋은 것을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한 만큼, 너무 잘 알고 있어 더 아쉬웠다.

“하, 그만.”

“정말? 네 여기는 아닌 거 같은데.”

능글맞게 받아치는 닉의 목소리는 이미 다 읽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유신에게는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아니, 어서. 당신을, 나에게.”

대신 닉을 향해 달콤하게 속삭였다. 분명 그는 자신의 그런 속삭임이 닉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닉이 낮게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성기가 이미 한참 전부터 완전히 발기한 상태인 것을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단번에 유신의 안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처 입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리어 유신 쪽에서 한껏 몸이 달아, 그 움직임에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빨리.”

닉은 한 손으로는 유신의 허벅지를 짚은 채, 새 콘돔을 꺼내 끝을 입에 물고 다른 한 손으로 익숙하게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박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사랑해.”

이 상황에 고백이란 뜬금없었지만, 제 아래서 흥분한 유신을 보자 닉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서 이미 수천수만 번을 주고받은 말이건만, 언제 하더라도 새삼 두근거리고 뭔가 쑥스러웠다.

“응, 니카. 나도 사랑해, 요, 아흣!”

정작 유신은 다급히 제 안으로 파고드는 닉 때문에 대답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했다. 그는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 닉이 제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옆으로 누운 채 한쪽 허벅지를 옆구리 쪽으로 접어 올린 듯한 자세였다. 아까와 각도를 달리해 찔러 들어오자, 새롭게 느껴지는 자극에 닉이 붙잡은 유신의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떨렸다.

히트로 흠뻑 젖은 안쪽은 상관없이 닉을 빨아들였다. 두 번째 삽입이라 아까보다 수월했지만, 워낙 크다 보니 압박감은 여전했다. 애초에 유신에게는 그조차 이미 쾌감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점점 깊이까지 슬금슬금 들어오자 금세 유신의 숨이 뜨거워졌다. 두 번째지만, 아까와 다른 방향으로 안쪽에서 비벼지자 마치 처음처럼 안쪽이 근질근질했다.

“니카, 더.”

새삼 더해지는 자극에 유신의 페로몬이 짙어졌다. 한쪽 뺨은 침대 시트에 댄 채, 흠뻑 젖은 초콜릿색 눈동자가 조르듯 닉을 비껴 올려다보았다.

닉이 더는 참지 못하고 단번에 쑤욱 끝까지 박아 넣었다. 갑자기 파고드는 강한 자극에 유신이 자지러졌다.

그대로 닉은 퍽퍽 거칠게 박아 넣기 시작했다. 유신의 허리가 엇박자로 튕기고, 잔뜩 민감해진 내벽이 반기듯 떨리며 닉을 감싸 왔다. 닉의 움직임대로 정신없이 흔들리며 유신이 흐느꼈다.

“너무, 세, 너무. 아흐.”

“싫어?”

“아니, 좋, 응!”

힘이 풀려 자꾸 뒤로 빠지는 유신을, 닉이 허리를 붙들어 삽입을 좀 더 깊게 했다. 어차피 아까부터 유신의 뺨은 침대 시트에 정신없이 쓸리는 중이었다.

“니카.”

유신은 어쩔 줄 모르며 그나마 자유로운 한쪽 팔로 닉에게 매달렸다. 다른 쪽 팔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얀 몸은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오르고,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헝클어진 채였다. 목덜미와 가슴까지 닉이 남긴 키스 마크가 번져 있고, 아까 사정한 정액이 하얗게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닉이 꾸욱 유신의 허벅지 아래쪽 연결된 부분을 문질러 왔다. 분명히 이미 전부 들어와 있을 텐데, 좀 더 깊이까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유신은 달뜬 숨을 내뱉으며 허리 아래서부터 번지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감각에 미처 적응할 사이도 없이, 닉이 거의 빠질 듯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단번에 쳐올렸다.

“흑.”

아랫배를 헤집는 강렬한 감각에 유신이 울먹였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몸이 흔들릴 때마다 꺼떡꺼떡 움직였다.

그대로 닉이 몇 번을 반복하며 거칠게 느끼는 부분을 스치듯 찔러 와, 유신은 힉힉 울었다. 너무 느껴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좋아 어딘가 망가진 것만 같았다.

“이상, 이상해.”

“후우, 뭐? 너무 좋다고?”

그러나 유신의 간절한 애원에도 닉은 한층 더 거칠게 움직일 뿐이었다. 어차피 다 눈치채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깊이 연결된 안쪽에서는 닉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찌꺽찌꺽 젖은 소리가 났다. 그대로 닉이 허리를 돌리며 안에서 크게 긁어내자 유신은 그냥 녹아내렸다. 그는 힘겹게 흔들리며 닉에게 매달렸다.

유신의 페로몬이 짙어지며 달콤한 데이지의 향기가 번져 갔다. 그 향에 저도 모르게 부추겨진 채로, 닉이 크게 아래에서 허리를 쳐올렸다.

지금 닉이 어디를 찔러 대든, 유신은 너무 느껴 죽을 것만 같았다. 이어진 내벽 전체가 지끈지끈 저려 오고, 앞쪽 성기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샤, 나의 유샤.”

닉의 입술이 다시금 아까 한참 괴롭히던 유신의 귓가와 목덜미와 쇄골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유신에게는 너무도 자극적이라 어디에 입술이 닿듯 온몸을 움찔움찔 떨 정도였다. 이미 온몸이 성감대나 다름없었다.

연결된 채 허리를 비틀어 유신은 자신이 더 느낄 수 있도록 자세를 맞추었다. 호응하듯 닉의 허리 놀림이 더 거칠어졌다.

이제 거침없이 제일 약한 부분을 퍽퍽 쳐올려, 유신은 금세 흐트러지며 다시 흐느꼈다. 평소와 다른 자세인 덕분에 정면이 아니라 스치듯 찔러 오는 것이 또 못 견딜 느낌이었다.

너무 느껴 어쩔 줄 모르는 채 유신은 온몸을 떨며 흐느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손도 대지 않은 유신의 성기가 이미 완전히 발기해 꺼떡거리고 있었다. 닉은 여전히 거칠게 유신을 향해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하윽!”

순간 유신은 너무 느끼다 못해 꼭 눈앞이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손도 대지 않은 그의 앞쪽이 빳빳한 채로 무엇이 터진 것처럼 줄줄 액을 흘리기 시작했다.

“큿.”

유신의 안이 조여 와 닉이 신음했다. 하지만 그의 성기는 아직 사정하지 않고 여전히 단단했다.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 채 계속 유신을 몰아붙였다.

사정 아닌 사정이 이어지는 상태에서 계속되는 자극에 유신은 어쩔 줄 모르며 흐트러졌다.

닉은 유신과 이어진 채, 그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몸을 뒤집었다. 유신과 닉의 아래위가 바뀌며, 이제 유신이 닉의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 유신의 체중만큼 삽입이 깊어졌다.

“흑.”

크게 바뀐 자세에 유신이 비명 아닌 비명을 흘렸다. 방금 사정해 한껏 민감해진 안쪽에는 지나칠 정도의 자극이었다.

닉이 달래듯 그런 유신을 향해 살짝 허리를 튕겼다. 이어진 부분이 안쪽부터 깊게 긁어내리는 듯한 허리 짓이었다.

아래에서 닉이 각도를 달리하며 아까와 다른 방향으로 찔러 오자, 유신의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슬슬 힘이 빠지던 성기도 다시 완전히 발기했다. 유신의 기분 탓인지 닉의 성기가 제 안에서 더 커지는 듯했다.

“안, 괜찮, 너무, 깊.”

“응? 네 여긴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닉은 한 손으로 유신의 가는 허리를 단단히 붙든 채, 반대편 손은 흥분한 성기를 슬쩍 스쳤다. 한껏 예민해진 몸에는 그 가벼운 접촉조차 엄청난 자극이었다.

“그런, 하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

“흐응, 너무해요.”

심술궂은 말에 유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대번에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보이지만, 그대로 닉이 이어진 채 아래를 가볍게 움직이자 그것만으로 유신의 허리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대놓고 느끼는 부분을 자극당하자 닉의 성기에 앉은 유신의 허리가 슬금슬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하얀 엉덩이와, 이어진 잘 단련된 허벅지가 야했다.

흥분으로 안에서 줄줄 애액이 흘러넘쳤다. 그것만으로도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연결된 안쪽으로 질척질척 젖은 소리가 울렸다. 점점 과격해지는 움직임에, 이어진 틈 사이로 배어 흐르는 듯했다.

“이상, 해, 이거.”

입으로는 이상하다 하면서도, 유신은 점점 더 허리를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쾌감에 익숙한 몸이 무의식적으로 더 센 자극을 찾는 것이었다. 분명 안쪽에 훨씬 더 기분 좋은 부분이 있는데, 각도와 바뀐 자세 때문에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애가 탔다.

“좀 더, 니카.”

유신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마치 닉을 가지고 뒤로 자위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잘게 허리가 떨릴 때마다 꽉 조인 마른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는 것이 선명했다.

흥분으로 자연스레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젖은 머리칼이 뒤로 넘겨지자, 반듯한 이마와 그 아래 예쁜 얼굴 윤곽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 사이로, 빨간 혀가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긴 속눈썹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진주처럼 반짝였다.

“그거, 으응.”

잠시 그 모습을 즐기듯 감상하다, 닉은 슬그머니 유신의 가슴으로 손을 향했다. 흥분으로 봉긋 솟은 작은 유두가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만져 줘야 한다는 생각의 흐름이었다.

예상치 못한 손길에 한창 아래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집중하던 유신이 흠칫 몸을 굳혔다.

“니카, 안 돼요. 간지러워.”

“그냥 간지럽기만 해?”

“앗.”

그대로 닉이 유두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유신은 바로 소스라쳤다.

닉이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해 제법 형태가 분명해진 유두는 성기와 같이 예쁜 분홍색이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살짝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닉은 솔직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말하면 더 손도 못 대게 할 것 같아서 대놓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닉은 손끝에서 작은 핑크색 돌기를 굴리기 시작했다. 유신이 평소에 잘 만지지 못하게 하는 만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실컷 만끽할 작정이었다.

“흐읏.”

끝에 가볍게 손톱을 세우자 유신의 허리가 튕겼다. 닉은 물론 이어진 아래쪽을 계속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느낀 허리가 힘이 빠져 훅 아래로 꺼졌다가, 그 바람에 더 깊어진 삽입으로 더 느껴 다시 떨려 왔다. 유신은 정신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싫, 거기만, 흑. 가슴, 싫어.”

한계 이상의 자극에 유신은 등이 활처럼 휘며, 자연스럽게 닉을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바짝 끝을 세운 유두가 아까보다 좀 더 탐스러웠다. 닉은 손을 떼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속삭였다.

“유샤, 싫다고 말하는 거에 비해 너무 느끼는 거 같은걸.”

“싫어, 싫어요. 어서, 아래.”

힘이 빠져 뒤로 넘어가는 유신의 허리를 닉이 한 손으로 가볍게 받쳤다. 반대쪽 손은 여전히 유신의 한쪽 유두에서 떼지 않는 채였다.

“어서, 여기.”

유신은 움찔움찔 몸을 떨며, 자신의 허리를 붙든 닉의 손을 그와 이어진 엉덩이 골 사이로 수줍게 이끌었다. 하지만 방금 전 닉의 눈앞에서 제 손으로 직접 안쪽을 쑤셨던 것이 마치 없던 일처럼, 괜히 부끄러워하며 머뭇머뭇 그 근처까지만이었다.

한껏 흥분해 발갛게 달아오른 사랑스러운 모습에 닉이 눈을 떼지 못했다.

“유샤, 너는 정말이지.”

“싫어요, 니카?”

적극적으로 흔들리는 허리와 달리,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수줍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물론 아닌 척 돌려 말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어서 세게 박아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유신의 성기가 한계인 듯 바짝 서 있었지만, 사실 닉도 이제는 한계였다. 짧은 한숨과 함께, 그는 반쯤 이성을 잃고 유신에게 덤벼들었다.

“그럴 리가.”

두 사람은 이어진 채 거칠게 흔들렸다. 두 쌍의 팔다리가 침대 위에서 뒤엉키고, 어느새 누가 위인지 누가 아래인지 불분명해졌다. 커다란 침대가 성인 남자 두 사람의 체중과 격한 움직임에 못 견디겠다는 듯 삐걱거렸다.

밑에서 거칠게 밀어붙여 오는 감각에 유신이 견디지 못하고 끙끙 울었다. 닉도 꽤 급한 탓에 참지 못하고 과격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흥분으로 유신의 몸은 온통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뒤쪽은 닉의 성기로 꿰뚫린 채, 빳빳이 선 유신의 성기도 두 사람 사이에서 꺼덕였다.

하지만 닉은 이제 봐주지 않고 거칠게 추삽질을 계속했다. 덕분에 유신은 이게 거의 흑흑 울고 있었다.

닉의 숙인 고개를 타고 뚝뚝 땀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뜨거운 숨결이 두 사람 사이에서 뒤섞였다. 그대로 사정할 것 같은 감각을 간신히 억누르며 유신은 흐느꼈다.

“좋아, 으응.”

더 깊이 원한다는 듯 유신의 허리가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갈구하듯 끌어안아 오는 그를, 닉이 답하듯 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닉이 더 세게 쳐올리는 대로 유신의 몸이 점점 침대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거의 머리를 부딪힐 뻔한 것을, 닉이 다시 단번에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좋아? 여기?”

순식간에 거의 빠질 듯 허리를 뒤로 뺐다 한 번에 끝까지 찔러 넣자, 너무 느껴 유신이 자지러졌다.

“하.”

“아님, 여기?”

“흐읏.”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자극에 유신은 그저 흔들리며 흐느낄 뿐이었다.

“거기, 좀 더, 안.”

지금 닉은 일부러 유신이 제일 느끼는 부분을 비껴서 박고 있었다. 너무 좋으면서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만큼, 감질나는 느낌이 유신을 더 미치게 만드는 중이었다.

유신은 이미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닉의 움직임에 박자를 맞추며 자신의 쾌감을 좇는 것이었다. 그 유신의 모습이 닉은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여기?”

“흣, 안 돼!”

드디어 정통으로 제일 좋은 부분을 푸욱 찔러 넣자, 유신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거짓말처럼 흥분했다. 한층 짙어지는 페로몬이 그 사실을 여과 없이 내보이는 중이었다.

지나친 쾌감에 유신의 발가락 끝까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닉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런 유신을 몇 번이고 괴롭혔다. 퍽퍽퍽 거세게 박아 넣자, 유신은 제 배 속 전체가 완전히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닉이 미묘하게 각도를 바꾸며 체중까지 실어 박는 것을 반복하자, 유신의 허리가 파드득 튀었다. 결합된 사이에서 나는 꿀쩍꿀쩍 야한 소리가 확실히 아까보다 더 컸다.

“니카, 너무, 읏!”

이제 닉은 유신이 거침없이 느끼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박아 넣을 때마다 안쪽이 맞춘 듯 자신을 감싸 오는 것이 너무도 기분 좋았다. 너무 느낀 유신의 얼굴은 이제 눈물로 엉망이었다.

“흑, 으응.”

아니, 이제 대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머리가 이미 어떻게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닉은 자신 때문에 쾌감에 젖은 그 얼굴이 너무 좋아, 더 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이제는 정말 서로 한계였다.

견디지 못하고 유신이 다시 절정에 닿았다. 흥분으로 온몸이 파드득 튀어 오르는 듯했다. 저도 모르게 사랑하는 알파의 이름을 속삭이며, 그는 제 안쪽이 세차게 수축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니카, 나, 흣!”

“하, 유샤.”

그 자극에 답하듯 거의 동시에 닉도 유신의 안으로 사정했다. 그로서는 오늘 중 두 번째였다. 이번에도 마치 유신의 안으로 제 전부를 쏟아부을 것 같은 기세였다.

사정이 끝나도 닉은 몸을 일으키는 대신 오히려 유신을 꼭 껴안으며 거친 숨을 토했다. 유신은 허리 아래가 완전히 녹은 듯한 감각과 함께 이미 반쯤 의식이 날아가 있었다.

목덜미에 닿아 오는 뜨거운 숨이 왠지 간질간질하다고 생각하며, 유신은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로 닉을 마주 껴안았다.

***

이미 점심때도 한참 지나, 창밖은 벌써 훤했다.

유신은 샤워실에서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 하루 이상을 풀로 섹스하는 바람에 지금 굉장히 허기가 졌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니카,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응, 으응?”

식탁에 접시를 차리다 말고 닉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유신은 그런 그를 향해 티셔츠의 목 부분을 당겨 보였다.

“씻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어떻게 피부가 제대로 보이는 곳이 없어요.”

그 말대로 지금 유신의 목덜미는 온통 울긋불긋했다. 죄다 닉이 만들어 놓은 키스 마크였다.

“아니, 그게 말이야, 유샤. 나도 그럴 작정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그렇게.”

“이걸 어떡하냐고요. 진짜 당분간은 아무한테도 못 보여 주겠어요.”

“잠깐, 대체 누구한테 보여 주려고!”

“이 더운 날씨에 티셔츠도 못 입게 생겼는데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요?”

“아니, 난 농담 아닌데.”

본인도 찔리긴 했는지 닉도 거기서는 입 속으로만 웅얼댔다. 유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나 옆구리는 그렇다 쳐요. 어떻게 목이나 허벅지까지 성한 구석이 없냐구요. 당분간은 집에서 반바지도 못 입겠어. 아, 목이 제일 문젠데, 셔츠 깃으로 가려질까요? 한 일주일 스카프라도 두르고 다녀야 하나.”

유신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닉이 점점 작아져 갔다. 마침 전자레인지에서 땡 소리가 울려, 닉이 대번에 반가운 얼굴을 했다.

“배고프지? 식사 준비 다 됐어.”

“잠깐만요, 니카. 그렇게 얼렁뚱땅, 응?”

닉이 유신의 입에 뭔가를 쏙 넣어,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살짝 혀로 굴려 보니 포도알이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 안에 퍼지자 유신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조심할게.”

닉이 사과했다. 어떤 의미로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태도였다.

“진짜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라니까?”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돼요.”

다 알고도 속아 준다는 눈빛으로 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닉은 유신의 뺨에 키스를 하고, 레인지에서 음식을 꺼내 왔다. 큰 키와 멋진 외모에 걸맞지 않게 쪼로록 다녀오는 뒷모습에, 유신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뒤이어 빵에 과일에 샐러드에 주스까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는 바로 감탄했다. 거기에 지금 닉이 레인지에서 꺼내 오는 수프도 있었다.

“와, 당신이 다 준비한 거예요?”

“별거 아냐.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고, 수프를 데운 것뿐인걸. 가정부가 미리 준비해 놨더라고.”

하지만 유신은 그것도 결국은 닉이 시켜서 그랬을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맛있겠다. 충분히 진수성찬인걸요.”

유신은 바로 식탁에 앉았다. 닉의 자리는 그 바로 옆이었다. 제 앞에 수프를 덜어 주는 그를 보며 유신이 주스부터 입으로 가져갔다.

“아, 정말 배고파요.”

“어서 먹자.”

“응, 먹고 빨리 제냐를 데리러 가요.”

임신 중반부터 식욕이 돌아온 유신은 이제 보통 사람 정도로는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수프를 먹는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닉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안 그래도 아이잭이 제냐 사진을 보내 줬는데, 볼래?”

“봐요, 봐요.”

유신은 닉에게서 핸드폰을 받았다.

“아, 귀여워!”

사진을 보자마자 유신은 절로 감탄사부터 튀어나왔다. 팔불출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들의 외모가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니 그 사실이 더 와닿은 덕분이다. 거기다 하루 못 봤다고 약간 그리워서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사진은 아이잭이 찍었나 봐요.”

그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띤 채 사진을 슥슥 넘겼다.

“그런 거 같지?”

“앗, 이런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혼자! 제냐가 완전 신났겠어요. 이런, 이 사진을 보니까 늦게까지 안 잤나 보네요. 이건 오늘 아침인가? 하하, 올가 눈 아래 다크서클 장난 아니야.”

닉이 너도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런 유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다 먹고 나면, 우리 아이잭에게 전화부터 하자.”

“좋아요.”

반가운 제안에 유신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를 다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닉은 저런 사진을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발정기로 히트를 겪은 사람은 저뿐이었고, 닉은 아니었다. 그렇게 뜨거워져서, 자신보다 흥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의 이성이 나갔던 자신과 달리, 닉은 결국 계속 제정신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랬는데 목은 또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역시나 용서해 주지 말 걸 그랬나?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유신이 닉에게 물었다.

“니카, 근데 나요. 혹시 중간에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았어요?”

“이상한 소리?”

“아뇨, 새벽녘에 살짝 기억이 없어서.”

무슨 소리냐는 듯 닉이 빙그레 웃었다. 방금까지 화를 내느라 잠시 깜박했지만 유신은 새삼 눈앞의 이 알파가 얼마나 매력적인 외모인지를 재확인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나 자신의 취향인지도.

“안 했어.”

“아, 다행이다.”

유신이 안심해 가슴을 쓸어내릴 때였다.

“중간에 둘째 갖고 싶다고, 콘돔 없이 그냥 하자고 나한테 매달려 엉엉 운 거 말고는.”

“그런 소릴 했다고요? 내가요? 미쳤나 봐! 거짓말이죠?”

“글쎄 어떨까?”

말도 안 된다며 얼굴이 새빨개지는 유신을 향해, 닉이 싱글벙글 얼버무렸다.

“아, 진짜! 놀리지 말구요, 니카. 정말이에요, 아니에요?”

“진짜야. 너 가을에 복학해야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내가 최선을 다해 참았다니까.”

사실 둘 사이에는 나중에 둘째는 물론 셋째까지 태어난다. 하지만 몇 년은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솔직히 유신은 지금 닉이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전혀 판단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하기에는 어렴풋이 그런 기억이 날 듯 말 듯 애매해 막 우길 수가 없었다.

“정말이면 너무 창피한데.”

정작 닉은 그런 유신이 귀여워 죽는 중이었다. 양손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하는 그를 향해, 닉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괜찮아. 난 좋았으니까.”

“좋아요?”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신을 보자, 닉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난 어떻게 널 이렇게나 사랑하는지 신기할 정도인데도, 매일같이 점점 더 너를 사랑하고 있는걸.”

“니카.”

싱거운 소리 말라며 유신은 어이없어했지만, 닉을 바라보는 눈은 이미 살짝 감동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상을 줘, 유샤. 새벽에 네 유혹에 안 넘어간 내 자제력에.”

“상이라면, 어떤?”

“사랑하는 남편의 키스.”

장난스러운 대답에, 유신이 바로 닉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 정도는 보너스까지 얹어서 드려야죠.”

유신은 닉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닉의 손이 자연스럽게 유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번 떨어졌던 입술이 당연하다는 듯 다시 겹쳐지자마자, 닉의 혀가 유신의 입술을 가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질척한 숨이 두 사람 사이에서 뒤섞였다. 방금 먹은 포도와 복숭아 맛의 키스였다.

그 뒤 겨우 시작된 식사는, 어쨌든 배가 심하게 고팠기 때문에 유신은 차려진 음식을 거의 싹 비웠다.

설거지는 식기 세척기에 맡기고 대충 정리를 끝내자마자, 닉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물론 아이잭에게, 정확히는 그와 올가의 집에 맡긴 제냐에게 영상 통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아이잭은 밝은 목소리로 둘을 맞았다.

- 걱정 마! 애는 지금 잘 놀고 있으니까. 잘 정리하고 천천히 오라고.

알파인 그가 유신의 히트를 맞이해 닉과 그가 뭘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유신이 살짝 눈가를 붉혔다.

“감사해요.”

- 엄마, 안녕! 아이스크림 맛있어!

명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해맑게 끼어들었다. 물론 제냐였다. 입가와 티셔츠에 아이스크림과 딸기 자국을 묻힌 채, 누가 봐도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응, 잘됐네. 엄마랑 아빠랑 금방 데리러 갈게.”

- 응!

마냥 밝은 아이와 달리, 오히려 그를 안고 있는 올가 쪽은 확연히 어제보다 수척했다.

“올가, 괜찮아요?”

걱정스런 유신의 질문에 그녀가 애써 웃어 보였다.

- 물론이죠! 전 아주 좋아요. 제냐랑 너무 즐거워요. 근데 이야기랑 좀 다르더라고요. 밤에 너무 안 자서, 하암.

- 엄마, 나! 아이스크림!

“그래, 제냐. 잘됐네. 좋았겠구나.”

유신은 혼자 신이 난 아들에게 영혼 없이 대답하고는, 올가에게 미안해했다.

“죄송해요. 원래 안 그러는데, 다른 집에서 처음 자는 거라 신이 났나 봐요.”

- 아뇨,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즐거웠어요.

그때 아까부터 뭔가를 벼르고 있던 닉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 와중에 이야기하기가 좀 미안한데 말이지. 나 역시 어서 빨리 우리 아들과 다시 만나고 싶지만, 데리러 가는 길에 약간 돌아가도 될까?”

- 아, 그게 오늘이었군.

무슨 소린가 하는 유신보다 한 박자 먼저, 아이잭이 아는 기색을 했다. 닉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부탁할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 그래, 잘하고 와.

“고마워.”

아마도 두 사람끼리는 미리 이야기가 다 끝난 듯했다.

유신은 히트 날짜와 관련해서 닉이 몇 번 석연찮은 태도를 보이던 것이 기억났다. 아마 지금 저 꿍꿍이와 관련 있을 거라는 사실도 눈치챘다.

하지만 아무리 유신이 걱정스레 예상해 봐도, 닉은 항상 유신의 그런 걱정을 가뿐히 뛰어넘곤 하는 것이다.

***

“세상에, 이게 뭐야?!”

눈앞에 펼쳐진 노랑과 녹색의 물결에 유신은 입을 쩍 벌렸다.

닉이 평소와 다르게 웬일로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 자동차를 타자고 하나 했다. 뭔가 싶었더니 이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던 듯했다. 확실히 지붕이 없는 쪽이 더 잘 보이긴 하니까.

지금 유신은 목의 자국을 가리기 위해 셔츠 안에 작은 남성용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붉은 흔적을 볼 때마다, 닉은 내심 혼자서 뿌듯해했다.

두 사람은 제냐를 데리러 아이잭과 올가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은 것처럼 약간 돌아서 조금 멀리까지 나왔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가볍게 드라이브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유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게 웬 해바라기예요?”

그렇다. 꽤 넓은 해바라기 밭이었다. 그것도 한 송이 한 송이가 노란 꽃잎 하나 시들거나 찌그러진 것 없이 싱싱하고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닉의 꿍꿍이였던 것이다.

“어때? 마음에 들어, 유샤?”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대놓고 뿌듯해 보이는 닉의 모습이 살짝 불안하다고 생각하다가, 유신은 흠칫 놀랐다.

“잠깐, 저게 다 몇 송이죠?”

부디 닉이 모르기를 바랐지만, 대답은 지나칠 정도로 곧장 돌아왔다.

“999송이.”

“몇 번을 다시 태어나더라도 당신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유신의 중얼거림에 닉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구나! 맞아. 해바라기 999송이의 꽃말이지.”

“예전에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블라다한테 들었어요.”

“너의 대학 복학에 맞춰서 뭔가 기념으로 선물을 하고 싶어서 말야. 근데 필요한 걸 물어보면 어지간한 건 다 있다 그러고, 제냐 꺼만 이야기하고.”

“정말 그런걸요. 니카, 난 당신하고 있으면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요.”

대놓고 신이 난 닉은 그런 유신의 말을 그렇게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봄부터 준비했거든. 해바라기꽃이야 심고 기르면 볼 수 있다지만, 정확히 999송이가 한꺼번에 딱 맞게 피도록 맞추는 건 좀 수고가 필요하더라고. 거기다 마침 네 히트 예상 시기와 계속 겹쳐서 좀 걱정했는데, 아이잭이 차라리 그때로 맞추라잖아. 생각해 보니 또 좋은 생각 같아…… 서?”

그제야 닉은 한 박자 늦게, 유신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유신이 신음하듯 속삭였다.

“니카, 내가 해바라기 999송이에 대한 블라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터무니없어서라고요.”

“응?”

유신은 이마를 짚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요즘 들어 좀 잠잠하다 했다. 이 알파는 왜 이렇게 자신에게 꽃을 못 줘서 안달인 건지.

해바라기 999송이라니! 키우는 정성은 둘째 치고, 시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해바라기 씨는 털어서 먹을 수 있는 건가?

잠깐, 혹시 이거 밭을 산 거야?? 문득 뇌리를 스치는 아마도 거의 확실할 듯한 충격적인 예감에 유신은 그 주변을 재빨리 눈으로 훑었다. 닉의 성격상 만약 저 밭을 샀다면, 주변 땅도 다 샀을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왜? 다시 태어나면 날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유샤?”

정작 닉은 지금 매우 대단히 심각했다. 이제야 비장의 선물이 유신의 취향과 어긋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적인 표정인 그를 향해, 유신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낌새는 눈치챘지만, 이렇게 또 스케일이 클 줄이야. 이제 애가 태어난 지도 2년이나 지났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변한 게 하나도 없죠?”

“난 그냥 내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몇 번을 태어나도 당신만을 바라보다니. 솔직히 너무 부담스럽다구요.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아니, 마음만도 솔직히 부담스럽긴 한데.”

“유샤.”

“진짜, 내가 아니면 누가 받아 줘?”

제 남편을 향해 양팔을 벌리는 유신을 닉이 덥석 껴안았다.

“사랑해, 유샤.”

“알아요. 알아요.”

혹시 도망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는 양 으스러지도록 자신을 껴안아 오는 닉의 등을, 유신도 토닥토닥 두드렸다.

“나도 정말로 사랑해요, 니카.”

- 두 번째 히트, 끝 –

어느 우성 오메가의 개인적인 우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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