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2)(3권) (12/22)

어느 우성 오메가의 개인적인 우울 3권

제2부 제2장 (2)

「유신 리의 대학 친구분이시라고요, 미즈 매디슨?」

「네, 대학에서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기자가 내미는 마이크에 여자 알파가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알파답게 여자치고는 큰 키에, 제법 외모가 단정했다. 유신은 매디슨이란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그녀는 지난 학기 그와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뇨, 유신은 학교에서 아주 훌륭해요. 늘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한 친구지만요. 전형적인 아시안 유학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과제는 항상 점수가 높고요, 가끔 발표할 때면 논리적이라 다들 감탄하곤 하죠.」

의외로 인터뷰 내용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실은 주변에서 은근히 인기 많아요. 당사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거 같지만요.」

매디슨은 마지막 부분은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사실 본인부터가 지난가을에 이미 유신이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호기롭게 연락처를 건넸다가 바로 거절당한 적이 있었지만, 여기서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기자들은 유신의 학교 친구는 물론, 유신의 하우스메이트도 놓치지 않았다.

「뭐야, 기자? 전 인터뷰 안 해요.」

물론 퇴근길에 갑자기 수상한 남자에게 붙잡힌 밀리는 대놓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 알파를 인터뷰한 영상을 휴대폰으로 보여 주자, 바로 안색이 바뀌었다.

「잠시만요, 이게 뭐야?! 지금 절 빼놓고 유신의 다른 친구랑 인터뷰를 한 거네요? 그거 실수하신 거예요!」

밀리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 바람에 그대로 기자에게 낚여 인터뷰를 하고 말았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유신 리의 하우스메이트예요. 벌써 3년, 아니 이제 4년째라구요. 제일 친한 친구가 바로 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분명 처음에는 이거 방해다, 개인 정보 침해다, 문제 될 수 있다고 버럭버럭 신경질을 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밀리였다. 물론 완전히 정신을 빼놓은 것은 아니라서 문제 될 만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네, 어느 순간 둘이 그렇게 된 거 같더라고요. 닉이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몰라요. 바쁜 와중에도 매번 우리 집에 계속 왔다니까요.」

무엇보다 밀리는 판을 깔면 말이 장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닉 메드, 내가 한마디 하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책임지라고.」

그 장면에서는 답지 않게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동작이지만, 앞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서 그럴까? 숨겨져 있던 인격이 튀어나온 건지도 모른다.

「내 친구를 울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인터뷰 잘 봤어, 밀리. 네가 날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놀리지 마, 자기야. 저거 완전 흑역사 적립이야.”

재생이 끝난 동영상을 끄는 유신을 보며, 밀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유신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두 사람은 닉의 펜트하우스에 있었다. 거실 한쪽의 대형 벽걸이 텔레비전에는 고전 영화가 재생 중이었지만, 둘 다 이미 몇 번이고 본 영화라 딱히 집중하지는 않았다.

유신은 닉의 카디건으로 몸을 꽁꽁 감싼 채 따뜻한 레몬차(디카페인)를 홀짝였고, 밀리는 감자칩을 먹었다.

결국 다음 주 봄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기로 한 유신이었다. 닉은 그냥 그가 휴학했으면 싶은 듯했지만, 당사자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신이라면 이상하지만, 열애설 인정 기사가 나온 다음 날부터 밀리는 퇴근하고 여기 들러 저녁을 먹고 놀다 집에 갔다. 처음에는 노트북 등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준다는 핑계였지만, 어느 순간 별 이유도 없이 그야말로 ‘놀러’ 왔다.

거실에 있는 최신형 홈시어터 시스템도 최고였고, 냉장고와 찬장에 가득 채워진 간식들도 매력적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뭐든 말만 하면 준비가 됐는데, 반쯤 장난삼아 엄청 비싼 걸 말해도 다음 날이면 다 준비되는 것을 보고, 좀 무서워져서 오히려 요즘은 그냥 있는 걸로 때우는 중이었다.

닉은 낮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었지만 오히려 오후부터 밤까지 스케줄이 많아, 이렇게 저녁 시간에 밀리가 들르는 것을 대환영했다. 유신이 심심하지나 않을까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빤히 보였다.

정작 유신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집에 있을 때보다 컨디션이 더 좋았다. 원래 임신한 오메가는 상대인 알파와 접촉하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안정이 된다. 지금 닉이 아침까지 입고 있던 카디건으로 몸을 둘둘 감고 있는 것도, 아무래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응? 밀리, 왜?”

갑자기 제 친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에 유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자기 기사 사진이 진짜 잘 나왔다 싶어서. 나 처음에 못 알아봤잖아.”

“그렇게 차이가 심해?”

“원래도 훌륭한 외모지만, 역시 꾸미니까 더 멋지더라. 아무리 내가 신경 써 줘도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달까.”

“그게 뭐야.”

유신은 말도 안 된다며 웃었다.

여기서 기사 사진이란, 열애설을 인정하며 뿌린 산부인과 방문 사진을 말한다. 물론 고용된 파파라치인 링컨이 찍었다.

인물을 잘 찍는다는 닉의 평가는 틀리지 않아서, 사진은 진짜 훌륭했다. 못 알아봤다는 밀리의 말도 과장은 아니었다. 유신도 제가 이런 표정을 지었나 싶어 한참을 들여다봤을 정도다.

밀리가 그러는데, 루이스는 지금도 그 열애설의 상대방이 유신인 줄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두 번이나 직접 만나고도 닉이 진짜 할리우드 슈퍼스타 닉 메드 본인인 것을 못 알아본 눈썰미를 생각했을 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인터넷에는 한동안 재미있는 소문이 돌았다. 유신이 같은 회사의 신인 연기자가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절대 일반인으로 보이지 않는 외모가 그 근거였다.

하지만 유신이 이미 임신한 데다, 절대 꾸민 것으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 사이의 끈적한 분위기에 바로 말도 안 되는 헛소문으로 일축되었다. 오히려 유신의 데뷔를 바라는 추종자들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우성 알파도 그렇지만, 우성 오메가 또한 일반인에게는 신비한 존재였다. 특히 명품 옷을 포장지 삼아 미디어라는 필터를 한 번 거치니, 그런 신비로운 부분은 극대화되고 일반 대중들은 열광했다.

아이잭은 우성 오메가고, 평범한 대학생이라는 사실 외에 유신의 개인 정보를 모두 극비로 감추었다. 유신의 사생활 보호라는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속속들이 밝혔다가 꼬리가 길어져서 대리모를 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은 그 또한 표면적인 이유고, 닉이 유신에 대해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아는 걸 질색한 덕이었다.

덕분에 앞으로도 한동안, 혹은 영영 유신의 과거는 베일에 싸여 있을 예정이었다.

아이잭은 이대로 둘을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우성 알파오메가 셀럽 커플로 포장할 작정이었다. 올가와 함께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유신은 과연 생각대로 될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샤!”

문이 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닉이 달려와 유신을 껴안았다. 유신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어서 와요, 니카.”

“피곤해 죽겠어. 오늘 일도 너무 재미없었지 뭐야. 진짜 빨리 집에 가 널 보고 싶었어.”

“오늘도 신작 영화 홍보용 인터뷰였나요?”

“비슷해. 계속 홍보, 홍보, 홍보. 차라리 영화 촬영을 하고 싶다니까.”

닉이 어리광을 부리듯 유신에게 제 뺨을 비볐다. 유신이 그런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뭐야, 완전 사이좋아. 나 괜히 낀 거야?”

하지만 닉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유신은 프랑스 억양이 강한 명랑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인사했다.

“가브리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신.”

가브리엘도 친근한 태도로 유신에게 인사했다. 이미 몇 번 만나 서로 낯이 익었다. 주로 점심때쯤, 가브리엘이 자기 가게의 메뉴를 포장해서 직접 가져오거나 했다.

처음 닉의 친구라며 인사해 왔을 때, 유신은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가브리엘의 넘쳐 나는 에너지에 당황했다. 그리고 예전에 닉과 갔던 레스토랑의 지배인이라서 놀랐다. 알고 보니 그 레스토랑 체인의 사장님이고, 그날은 닉을 놀리려고 일부러 지배인인 척했다는 이야기엔 두 번 놀랐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 이제는 그냥 웃겼다.

“이사는 좀 알아봤어, 에밀?”

닉의 질문에 밀리가 바로 날을 세웠다.

“아직요. 한겨울에 어떻게 바로 이사를 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의 유샤가 여기로 옮기면 좋은데, 통학이 힘들다고 계속 거절하고 있다고. 갑자기 혼자 방을 빼면 네 월세 부담도 커져서 문제라고 하니, 너랑 같이 이사하는 수밖에 없잖아.”

“저도 더 좋은 집에 가는 건 좋아요. 비용도 다 대 주신다고 하고.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는 못 하죠.”

“내가 이사 관련 컨설턴트를 붙여 줄까? 집을 새로 구하는 것부터 이사 뒷정리까지 전적으로 맡아서 해 주는 사람이야.”

“와, 그거 솔깃한데요.”

“좀 비싸긴 하지만 내가 지불하면 되니까.”

“만약 맡긴다면 그건 언제부터.”

옆에서 듣고 있던 유신이 그건 아니라고 닉을 가볍게 나무랐다.

“니카, 밀리를 성가시게 하지 말아요. 쓸데없이 돈 쓸 생각도 말구요. 그리고 여러 번 말하지만 전 지금 밀리랑 사는 집이 좋아요.”

전혀 여지가 없이 딱 잘라 거절하는 유신이었다. 닉이 대놓고 실망했다. 굳이 따지자면 밀리도 어딘가 실망한 표정이었다.

여태껏 조용하던 가브리엘이, 그런 밀리를 가리키며 유신에게 물었다.

“유신, 이 처음 보는 귀여운 친구는 누군가요?”

“제 친구인 하우스메이트 밀리예요.”

“밀리, 귀여운 이름이네요.”

그는 밀리를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보냈다. 밀리도 키 크고 몸 좋은 알파가 싫지는 않은 기색으로, 눈을 반으로 접으며 생글생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밀리라고 불러 주세요.”

“본명은 에밀이야.”

물론 닉은 그런 내숭을 가만 보고 있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신경도 쓰지 않았을 뿐.

“난 가브리엘이에요. 닉의 친구죠. 가브라고 부르면 돼요.”

가브리엘과 밀리는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은근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닉은 여전히 떨어질 생각도 않고서 유신의 등 뒤에서 그를 품에 꼭 껴안은 채였다. 귓가에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속삭였다.

“유샤, 토요일의 데이트 장소가 결정됐어. 지난번에 갔던 가브의 가게 기억하지?”

“가비스 오가닉 체인 말이죠?”

유신은 간지러운 듯 살짝 어깨를 움츠리긴 했지만, 그런 닉을 밀어 내지 않았다.

“네, 사장으로서 책임지고 창가에 있는 제일 눈에 띄고 좋은 자리로 준비해 둘게요.”

가브리엘이 싱글싱글 웃으며 끼어들었다. 닉이 툴툴댔다.

“고마운 참견이지만, 네놈이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짜증이 난단 말이지.”

“친구로서의 애정이 효과가 넘쳐서라고 생각하도록 해.”

그때 밀리가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번쩍였다.

“잠시만요! 혹시 친구분 성이 르노신가요? 미스터 가브리엘 르노?”

“네, 맞습니다.”

유신이 대답하기 전에, 가브리엘 본인이 냉큼 대답했다. 밀리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졌다.

“세상에, 가비스 오가닉 체인의 창립자잖아! 엄청 유명인이야.”

“운이 좋았죠.”

“겸손하시긴요. 유신, 자기야, 그런 대단한 분이라는 걸 나한테 먼저 이야기했어야지. 저 거기 진짜 좋아해요. 엄청 맛있어서.”

누가 봐도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닉 메드를 앞에 둔 것보다 더 열정적인 반응이었다. 가브리엘 쪽도 대놓고 그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오, 감사합니다. 메시지 ID 알려 주시면 나중에 무료 쿠폰 보내 드릴게요.”

“정말요? 물론이에요. 바로 알려 드려야죠.”

둘은 바로 ID를 교환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에밀.”

“헉, 시간이 벌써 이렇게.”

닉의 말에 밀리가 시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차는 언제나처럼 주차장에 준비해 놨어. 운전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닉, 언제나 감사해요. 물론 내가 아니라 유신을 위해서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그럼 나 갈게, 자기야.”

밀리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는 만큼 이 시간에는 돌아가야 했다. 그는 후다닥 짐을 챙겨서 서둘러 펜트하우스를 떠났다. 물론 먹다 만 감자칩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분이 참 귀엽네요.”

가브리엘은 밀리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유신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밀리 귀엽죠?”

“거기다 업계 사람이 아닌 미국인이 우리 가게 이름을 제대로 발음한 건 처음이에요. 다들 개비스 오가닉 키친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인으로서 참을 수 없다는 듯 가브리엘이 몸을 떨었다. 질 수 없다는 듯 닉이 끼어들었다.

“난 네가 더 귀여워, 유샤.”

“니카, 친구를 앞에 두고 쓸데없는 소린 그쯤 해요.”

닉은 여전히 유신을 뒤에서 꼭 껴안은 채였다. 유신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웃으며 저를 끌어안은 그 손등에 제 손을 겹쳤다.

사실 앞으로 있을 토요일의 데이트 역시, 산부인과 정기 검진 때처럼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슬슬 진짜 데이트 사진을 공개할 순서란다. 개별 룸에서 단둘이 식사했던 지난번과 다르게, 제일 눈에 띄는 창가 좌석으로 준비한다는 가브리엘의 이야기도 그런 맥락이었다.

이번에는 정기 검진 때와는 다른 브랜드의 협찬 의상을 입을 예정이었다. 산부인과 정원에서 찍힌 사진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협찬을 원하는 브랜드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을 지경이라고 했다. 뭐 때문에 그렇게 난리인지 유신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음 주부터는 닉의 영화 홍보 일정도 바빠지고, 새로운 영화 촬영도 시작될 예정이고, 공교롭게도 유신도 다음 주가 개강이었다. 덕분에 둘이 만날 여유가 있는 날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아이잭은 이미 앞으로 어떤 식으로 커플(?) 떡밥을 뿌리고, 어떻게 홍보를 할지 다 짜여 있다고 했다. 유신은 여전히 지금 이 상황이 자신에게 적절한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토요일 기대된다, 그렇지?”

하지만 등 뒤에서 닉이 좀 더 세게 끌어안아 오자, 훅하고 풍겨 오는 페로몬에 감싸인 채 저도 모르게 그에게 등을 기대 버렸다.

“응, 니카. 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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