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유신은 뭔가 피곤해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중 방으로 돌아갔다. 밀리의 걱정은 덤이었다.
“자기야, 괜찮아?”
“응, 좀 피곤한가 봐. 잠깐 누워 있으면 괜찮을 거 같아.”
그대로 몸이 나른해서 침대에 누웠다.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히트 직전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해열제는 먹지 않았다.
히트 예정일은 바로 내일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낮에 코스모 센터에서 특별 배송으로 닉의 정자가 도착했다. 히트 때 인공 수정을 위해서였다.
이 특수 케이스를 받은 것도 벌써 두 번째다. 처음 받았을 때는 민망하고 긴장해서 손도 잘 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감흥 없이 방 한쪽 구석에 그대로 던져두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유신은 한껏 예민한 상태였다. 가뜩이나 호르몬이 불안정해서 컨디션도 안 좋은데, 아르바이트나 학교 일정에 관련한 스케줄을 조정하는 작업 하나하나가 그의 신경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지난달에 그가 히트를 겪은 것을 다들 알고 있어 힘들었다. 억제제를 먹으면 두 달 연속으로 히트가 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침 크리스마스와 시기가 겹쳐 그쪽으로 연결해 둘러댔지만,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편이라 정말로 곤욕이었다.
거기다 이번 히트 때 임신이 되지 않으면 졸업이 밀릴 거라 큰일이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이번에 반드시 임신이 돼야만 했는데, 또 막상 진짜 임신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그것대로 걱정이었다.
일단 애를 낳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 전에 주변에 말할 수도 없는데 배가 불러 오면 어떻게 할지도 문제였다.
너무 걱정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 귀찮아져서, 그냥 미리 받은 계약금으로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장소는 코스모 센터에 문의하면 왠지 추천해 줄 것 같달까.
그나마 기말고사라도 어제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성적은 자신 없었지만.
시험이 끝나자마자 닉을 만날 수 있어서 제일 좋았다. 본인도 바쁜 게 분명한데, 먼저 보자고 이야기를 꺼내 줘서 기뻤다.
그리고 얼마나 잠들었을까. 유신은 온몸에 뒤끓는 열기에 어쩔 줄 모르며 잠에서 깼다.
“흣, 몸이, 뜨거워.”
바깥에서는 밀리가 텔레비전을 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길게 잠든 것도 아니었다. 아직 이른 저녁이고, 날짜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히트가 시작되었다. 조금 이르게. 본래라면 내일에야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윽, 니카.”
유신은 침대에서 몸을 비틀며, 무의식적으로 닉의 이름을 불렀다. 온몸이 이상했지만, 특히나 다리 사이는 앞뒤 할 것 없이 죄다 제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더듬더듬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닉의 비니와 손수건으로 손을 뻗었다. 비니에 뺨을 비비며, 손수건에 코를 박고 희미하게 남은 향기를 정신없이 쫓았다.
닉의 페로몬은 상큼하고 달콤한 베르가못에 톡 쏘는 시나몬이 섞여 있었다. 베르가못은 거의 날아가고, 시나몬 향만 어렴풋이 남아 애가 탔다.
반대편 손은 당연하다는 듯 다리 사이로 향했다. 하지만 대놓고 만지거나 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딜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채, 몸이 달아서 어쩌지도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거, 너무.”
제대로 말이 되지 못한 단어들이 툭툭 입 밖으로 쏟아졌다. 제 목소리지만 자신이 이렇게 달콤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솔직히 유신은 지금 당황하는 중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지난번 히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억제제를 끊고 첫 번째 히트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때도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이렇게 흥분할 수 있는 거냐고 생각했었다. 이보다 더 심하다니, 과장이 섞인 게 분명하다고.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현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유신은 이제 자신이 너무 물렀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매튜가 혼자서 히트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니카.”
유신은 어쩔 줄 모르며, 여기 없는 사랑하는 알파의 이름을 불렀다.
좀 더 그의 향이 밴 소지품을 원했다. 빙 둘러 제 주변을 감싸게 하고, 그 안에 들어가 숨을 수 있다면. 이 뜨거운 몸을 그 사이로 감출 수 있다면. 그럼 좀 더 그의 페로몬에 감싸일 수 있을 텐데.
물론 제일 원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본체였다. 닉이 너무도 그리웠다. 바로 어제 만났는데도, 그 일이 꿈처럼 멀다.
유신은 멍하니 열에 들뜬 채 어제 닉과 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허리가 절로 흔들리며 괜한 침대만 괴롭혔다.
어제 유신이 닉을 만났던 장소는, 지난번에 겨우살이의 부케를 받았던 바로 그 공원이었다. 그가 가져온 샌드위치 맛있었는데. 텀블러에 든 커피도 따뜻했다.
타고 싶었지만 자신은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던 회전목마를 같이 타자고 해 주었다. 즐거웠다.
그 뒤에는 스케이트도 빌려, 타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처음으로 올라갔던 빙판이지만 생각보다 금방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재밌었다.
아이스 링크의 정비 시간에 잠시 쉬던 중, 그가 키스해 줄 뻔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대로 정비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진짜 키스했을까. 솔직히 자신도 키스하고 싶었는데.
“아.”
문득 엉덩이 사이로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느낌에 유신은 흠칫했다. 동시에 자신이 지금 닉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런 쪽의 의미를 포함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히트에 들어선 오메가의 몸은 알파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 누구든 자신을 안아 준다면, 쉽게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난번 히트 때 사용한 딜도는 세 개 다 깨끗이 씻어서 서랍장 안에 정리해 두었다. 애초에 버리기도 쉽지 않은 물건들이다. 그중 제일 커다란 핑크색 거근으로 지금 뒤를 쑤신다면, 곧장 근질거리는 안쪽까지 흠뻑 자극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딴 장난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대는 한 명밖에 없었다. 자신은 그 알파가 닉이었으면 했다. 아무리 본능에 젖어 있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싫어, 하.”
정신 차려. 이건 그냥 조건 반사다. 십 년도 넘게 혼자 좋아해 온 상대다. 보답을 받을 거라고 기대도 한 적 없는 마음을 바친 상대였다. 그런 우상이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로 제 바로 앞에서 웃어 주기에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동시에 그렇기에 더더욱 그것이 언제까지 갈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었다. 유신은 팬으로서 여태껏 닉의 연애 편력과 스캔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다.
만에 하나 그가 질려 자신을 떠나 버린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에게 다시 한번 더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그를 원망하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흑.”
유신은 갑자기 눈가가 시큰해졌다. 안 그래도 흥분으로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한 상태에서 감정이 북받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지금 여기 닉은 없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곁에 있었으면 싶었다. 지금 자신은 그를 원했다.
“니카, 제발.”
온몸을 휘감는 열기에 한계까지 내몰린 채, 유신은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뿐인 알파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잃었다.
***
밀리는 유신의 방문을 노크했다.
“자기야, 내일 히트 시작하는 거 맞지? 언제 숙소로 옮길 거야?”
실은 그는 여차하면 제 쪽이 나가 있겠다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유신이 들으면 절대 아니라고 손을 내저을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쪽이 훨씬 합리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왜 유신은 솔직하게 자신에게 요구하거나, 고마워하지 못할까? 몇 년을 같은 집에서 살았는데,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나? 애초에 이번 일만 해도.
거기까지 생각하고 밀리는 한숨만 크게 내쉬었다. 하아, 생각하면 뭘 해.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거기다 아까부터 느꼈던 심상찮은 예감은 적중한 게 분명했다. 노크에 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으, 흑!”
대신 방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낮은 신음에, 밀리는 바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유신? 자기야, 괜찮아?!”
유신은 침대에 쓰러진 채 끙끙 앓고 있었다. 잠옷 대용의 실내복이 묘하게 흐트러져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밀리는 제 친구의 뺨에 손등을 갖다 댔다.
“헉, 뜨거워! 아픈가?!”
불덩이처럼 열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유신에게서는 묘한 열감이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뺨과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가볍게 스치는 손길에도 그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신음했다. 더운 숨결이 열린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밀리는 당황했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는 거지? 구급차, 911이라도 불러야. 아, 비용. 돈 많이 나오려나?”
911을 부르더라도 구급차 비용과 병원 비용은 청구된다. 이러다 입원해 검사라도 몇 개 한다면, 최소 몇천 불, 잘하면 몇만 불은 훌쩍 넘길 것이 뻔했다. 학생용 의료 보험이 그걸 다 커버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밀리가 알기로 유신은 금전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자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물론 최근 유신에게는 돈이 좀 생긴 것 같았지만, 본인부터가 딱히 사용할 생각이 없는 돈이라고 했다. 쉽게 쓰자고 할 수 없었다.
“내가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쉽게 결정하지 못한 채 밀리는 망설였다. 사실 그도 유신이 지금 무슨 상태인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일 점심때 시작할 예정이던 히트가 조금 일찍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다고 당장 달라질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발정기라면 괜히 병원에 가는 게 더 안 좋을지도 몰랐다. 함부로 이동하다가 중간에 다른 알파를 자극한다거나 하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
그럼 대체 어떡해야 하지?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가 베타인 밀리에게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페로몬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그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누군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유신!”
반짝이는 백금발이 인상적인 길쭉한 그림자의 정체는, 지금 밀리가 여기서 볼 거라고 절대 예상치 못했으면서 동시에 그도 아주 잘 아는 상대였다.
“닉 메드.”
밀리는 눈앞에 선 할리우드 슈퍼스타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검은 코트로 몸을 휘감은 살아 있는 조각상이 거기 서 있었다. 깎은 듯한 선을 그리는 새하얀 얼굴과 거의 흰빛으로 빛나는 백금발 아래 보석 같은 청록색 눈동자, 그 주변을 감싸는 밝은 빛의 긴 속눈썹까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었다.
지난번 카페 루이에서 다 같이 밥을 먹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밀리는 그때도 닉이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당하지는 않았다. 두르고 있는 공기가 전혀 다르달까?
정말 같은 사람일까? 그대로 무릎을 꿇고 싶어지는 존재감이다.
우성 알파의 능력 탓일 수도 있지만, 밀리는 베타고 그 영향이 없진 않아도 그리 크지는 않을 터였다. 그저 사람 자체의 매력이 그대로 압박해 왔다.
닉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슨 이유인지 살짝 눈부터 찌푸렸다. 그리고는 한 박자 늦게 밀리의 존재를 깨달은 듯 돌아보았다.
“안녕, 에밀.”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엷은 미소에 밀리는 그대로 홀렸다. 눈은 전혀 웃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매혹적이었다.
그나저나 닉은 고집스럽게 자신을 애칭이 아닌 본명으로 불렀다. 지난번엔 그 사실에 쉽게 반박했던 밀리지만, 이번에는 왠지 불가능했다.
대신이라면 좀 이상하지만, 밀리는 그에게 다른 궁금한 부분에 관해 물었다.
“어떻게 들어왔죠? 분명 문은 잠겨 있었을 텐데.”
그 질문에 닉이 곤란한 듯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었다. 갑자기 그를 둘러싼 주변만 영화 스틸 컷처럼 보여서 신기했다.
“미안, 내가 좀 서두르다 보니. 아마 수리를 불러야 할 거야.”
“네, 뭐라고요?”
“문이 말이지. 좀 부서졌거든.”
하지만 갑자기 영문 모를 소리를 해서, 밀리는 긴장이 팍 풀려 버렸다.
설마하니 문을 부쉈단 소린가? 아니, 애초에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거야?
당황해 현관 쪽을 흠칫 살피는 밀리를 향해 닉이 지갑을 꺼냈다. 못해도 수십 장은 족히 될 100불짜리 뭉치를 건네받고, 밀리는 어버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고 보면 닉이 지금 코트 안에 입은 옷은 편안해 보이는 실내복이었다.
물론 뭘 입는다 한들 저 외모, 저 몸매에 안 어울릴 리 없지만. 밝은 금발이 이마 위에서 살짝 헝클어져 있기까지 한다.
설마 저 남자, 여기까지 온다고 엄청 서둘렀나?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지.”
닉이 유신을 침대 시트째 안아 올렸다. 고개는 제 어깨에 기대게 하고, 양손으로 등 뒤와 허벅지 아래를 단단히 받쳤다. 마치 아이라도 안아 드는 듯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그대로 유신이 닉의 품으로 아이처럼 파고들어,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여전히 손에 든 100불짜리 뭉치를 어쩔 줄 모르는 채, 예상치 못한 전개에 밀리가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으응.”
그 난리 통에 유신이 살짝 눈을 떴다. 처음 밀리가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어딘가 진정한 듯한 모습이었다.
베타인 밀리로서는 미처 몰랐지만, 닉의 알파 페로몬 덕분이었다. 아직 완전히 히트가 시작되기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히트였다면 애초에 닉까지 영향을 받아, 밀리와 이 정도 대화도 불가능했다.
유신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아직 초점이 명확히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눈만 떴지 완전히 정신을 차리진 못한 듯했다.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래도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이 젖은 채 눈앞의 상대가 누군지를 천천히 인식하는 중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그 모습이 가릴 것 없이 그대로 보였다.
“니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 밀리는 자신이 그 둘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져 버렸다.
“응, 나야.”
닉이 다정하게 그런 유신에게 제 뺨을 비볐다. 유신도 마치 어미를 찾는 아기 새처럼 그런 닉에게 고개를 묻으며 매달렸다.
“니카다. 니카, 보고 싶었어요.”
유신은 영어가 아닌 단어를 속삭였다. 밀리가 미처 알아듣지 못한 그 언어는 한국어였다.
닉은 얼마 전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의 알파벳을 외우는 단계에 불과했다. 어서 빨리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여기에 뛰어들었을 때, 닉은 방 안이 온통 유신의 오메가 페로몬으로 가득 차 있어 놀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것이 유신의 히트가 시작됐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입 안의 여린 살을 일부러 깨물어야 했다.
여러 의미로 예상대로였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본인도 몰랐지만, 닉은 유신의 호르몬이 폭주를 시작한 것을 알았다.
다음 날 시작할 러트를 대비해 조금 일찍 스케줄을 끝내고, 마지막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쉬면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코트만 껴입고 차를 몰고 있었다. 혹시 몰라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로서는 엄청나게 발전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정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정신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다수의 증언이 있었다. 특히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 사이에서 그 빈도가 압도적이었다.
여태까지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닉이었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고 보니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어머니가 넘어지거나 할 때면, 귀신같이 아버지가 나타나 부축해 주곤 했다. 참고로 두 사람은 러시아에서 유명한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 커플이었다. 여태껏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예사로 넘겼지만, 이제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유신의 집에 도착한 닉이었지만, (정확히 몇 호실인지는, 센터에서 작성한 파일의 정보를 살짝 빌렸다)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벨을 눌러도 제대로 울리는 것 같지도 않다. 전화도 마찬가지다.
도착하고 보니 왜 자신이 그렇게나 초조해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유신의 페로몬이 복도 바깥까지 은은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닉은 충동적으로 어깨로 현관문을 밀었다. 낡은 문은 분명 잠겨 있는데도 바로 경첩이 삐걱댔다. 세 번 거칠게 밀자 바로 경첩은 뜯기고, 현관은 원래 열리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열렸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는 굳이 따지자면 머리를 쓰지, 절대 몸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었다. 저지른 본인이 제일 당황하는 중이었다.
사실 유신만 히트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닉 역시 알파의 발정기인 러트가 코앞이었다. 덕분에 지금 그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이었는데, 특히 자신이 마음에 둔 오메가에 관해서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문을 부순 데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했다. 얼결에 밀리에게 수리비부터 건넨 데는 그런 의미도 있었다. 단, 그게 맞는 행동인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할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집이 너무 낡아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 뿐이었다. 어깨로 좀 밀었다고 그대로 부서지다니! 수리는 당연한 이야기고, 어서 빨리 이사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자신의 힘이 정상인의 레벨이 아니라는 사실은 가뿐하게 무시 중이었다.
처음 집에 들어오고 현관인 줄 알았던 좁은 공간이 집 전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작지만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소파 옆의 작은 트리가 특히 귀여웠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며, 닉은 그게 유신이 말한 밀리가 만든 트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거실과 연결된 몇 개의 문 중 어느 것이 유신의 방인지는 그의 페로몬 덕에 묻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침 열려 있던 문으로 뛰어들자, 열이 올라 의식을 잃은 유신과 그런 친구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밀리가 보였다. 닉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유신의 방에는 자신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지난번 카페에서 캣이 말했던 두 개의 포스터에, 조만간 개봉할 신작 포스터까지 세 개나 되었다. 신작 포스터는 이번에 나온 것이니 아마도 새로 샀겠지.
정말 자신의 팬이로구나. 이미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조금 쑥스러웠다.
“니카,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내가 지금 지내는 집.”
여전히 어딘가 멍한 듯한 유신의 질문에 닉이 다정하게 대답했다. 금방이라도 유신의 어딘가에 입 맞출 기세였다.
“안 되는데. 오늘부터 히트를 보낼 숙소 이미 예약해 뒀어요. 안 가면 그대로 돈 날릴 거야.”
“괜찮아, 유신. 지금부터 가는 곳이 훨씬 더 지내기 좋을 테니까. 분명 더 마음에 들 거야.”
“그래도.”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트리를 보여 줄게. 보고 싶다 했잖아.”
“응.”
유신의 팔이 닉의 목을 껴안았다. 그대로 닉이 성큼 발을 옮기려는데, 마침 생각났다는 듯 유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니카, 저거 가져가야 해요.”
“응, 유신?”
“저기 저 케이스.”
그것은 센터가 보낸, 닉의 정자가 든 특수 케이스를 말하는 거였다.
“저게 뭔데?”
“센터에서 온 건데. 꼭 가져가야 해요.”
닉은 그게 뭔지 잘은 몰랐지만 왠지 알 것 같았고, 자세한 건 지금 묻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챙기지.”
대놓고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닉은 순순히 유신이 부탁한 대로 케이스를 챙겼다. 혹시 모르니 유신의 핸드폰과 안경도 함께. 뭐, 다른 건 필요 없겠지.
유신은 안심했다는 듯 닉의 품 안에서 열에 들떠 다시 의식을 놓았다. 본격적인 히트에 들어가기 직전, 알파 페로몬에 살짝살짝 취한 듯한 상태였다.
사실 닉도 딴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라도, 밀리가 보든 말든 유신을 덮쳐 버리고 싶었다. 이성이 나가 버려 짐승이 되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했다.
“자, 잠시만요!”
그렇게 유신을 품에 안은 채 나가려는 닉을 밀리가 막아섰다. 본인으로서는 나름 굉장히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닉이 내뿜는 무지막지한 존재감은 여전히 장난이 아니었다. 뭐지? 하고 되돌아오는 거만한 청록빛 눈동자에 밀리는 몸이 굳는 듯했지만, 최대한 기력을 끌어냈다.
“제 친구를 갖고 노는 거면 용서 못 해요.”
아, 이렇게 품위 없이 말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조금 당황하는 밀리를 향해, 닉이 피식 웃었다.
“웃기는 소리. 나는 이 녀석이 나를 갖고 놀까 봐 두렵다고.”
으르렁거리듯 중얼대고 그는 그대로 휙 돌아섰다. 아무리 말랐다지만 성인 남자를 안아 들고 있다고는 절대 보이지 않는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본의 아니게 배어 나오는 압박감이 밀리를 다시 긴장시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밀리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 뭐야! 역시 서로 좋아하는 거 맞잖아!”
괜히 머쓱한 기분에 크게 소리쳐 봐도, 어차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건가? 근데 유신이 워낙에 꼬인 데가 있어서. 아휴, 모르겠다. 둘이 알아서 하겠지.”
어색한 기분에 그는 괜히 뒷머리만 긁적였다.
***
닉이 지금 유신이 데려갈 만한 장소는 단 한 곳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지내는 펜트하우스였다.
“그래, 내가 부탁할 만한 베타는 당신 정도니.”
닉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보너스는 충분히 지급하지.”
유신은 눈을 떴다.
천장이 높고 밝은 공간이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생활감이 극히 없어 사무실 같기도 했다.
목 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붕 머릿속이 들떠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도 간신히 이성으로 의식을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언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은, 약간 만취한 것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훨씬 음란한 기분이랄까.
이것이 진짜 히트구나. 확실히 지난달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다니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유신은 저도 모르게 답답한 옷깃을 끌어당겼다.
“아, 끊어야겠어. 고마워. 부탁할게.”
유신이 깨어난 것을 깨달은 닉이, 전화를 끊고 몸을 숙여 왔다. 부드러운 손길이 유신의 뺨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유신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내가 뉴욕에서 지금 지내는 펜트하우스.”
대답하는 닉의 목소리가 방금 전 전화할 때와 전혀 다르게 달콤하다는 것에, 유신은 우쭐해지는 자신을 애써 억눌렀다.
통화 중 상대방이 베타라는 언급과 대화의 내용에서 유신은 그가 올가와 전화했다고 생각했다. 그와 그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저런 사무적인 말투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프라이버시와 보안은 이만한 곳도 없지. 모든 방문객은 경비실을 거쳐야 하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다른 거주자들과 분리되어 있으니까. 불특정 다수가 오갈 수밖에 없는 호텔 같은 숙박업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걸.”
“그렇군요.”
드러난 제 목덜미에서 닉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유신은 굳이 옷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 더 당기며 가는 목덜미를 손끝으로 훑었다. 제 바로 앞에서 그가 동요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히트 때 널 여기로 데려온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있었어. 사실은 좀 더 제대로 준비한 후, 좀 더 순서를 밟아 부를 생각이었지만. 네 히트가 예정보다 반나절이나 빨리 와 버려서 말이지.”
마음에 둔 알파의 그런 반응조차 예민해진 오메가에게는 그대로 기쁨이었다. 유신은 온몸이 나른하고, 다리 사이가 앞뒤 할 것 없이 질척해졌다.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어차피 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신의 뺨을 쓸던 그의 손끝이 천천히 목덜미까지 미끄러졌다.
“그래서 올가에게 부탁했어요?”
열 오른 살갗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손길이 기분 좋다고 생각하며, 유신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안경을 쓰지 않아, 닉은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렌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었다.
“뭐를?”
“방금 통화.”
“맞아. 그녀에게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들을 부탁했지.”
“뭘요? 내 히트가 시작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샴페인?”
유신은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의외로 닉은 진지하게 반박했다.
“물론 그 제안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지금 상태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면 어떻게 될지 제대로 생각해 봤어?”
그 설명에 유신은 아차 했다. 닉은 유신의 입술을 엄지 끝으로 가볍게 쓸고는 손을 뗐다.
“내가 부탁한 건, 중간에 당이 떨어져서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초코바였지. 지금 냉장고에는 신선한 재료만 있어서 말야. 우리에게는 정크 푸드가 필요할 테니까.”
더하여 닉은 올가에게 아이잭이나 가브리엘에게는 이 일에 대해서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별 의심 없이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는데, 베타로서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부탁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겉으로는 무척 침착한 척 굴고 있었지만, 유신만큼 나사가 나간 것은 닉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거의 히트 중인 것과 다름없는 유신보다야 낫다지만, 그 역시 곧 러트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실은 유신의 히트에 맞춰 일부러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굳이 밝힐 생각은 없었다.
“실은 널 바로 침실로 데려갈까도 했지만.”
유신은 꼬물거리며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왜 굳이 안 그랬어요, 니카?”
“그래도 동의를 구하는 게 예의니까. 만약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할 생각은 없어.”
“그냥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해 버리면 좋잖아요. 그러면 우리 둘 다 사고라고 우길 수 있을 텐데.”
자신이 뇌를 거치지 않고 터무니없는 진심을 속삭이는 것도 모두 히트가 시작한 탓이 틀림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닉이 당황하는 대신 논리적인 척 이렇게 맞받아치는 것 또한 러트가 코앞이라 그럴 것이다.
“아직 그 정도까지 이성이 날아가지 않았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맞아요. 콕 집어 일일이 짚어 주시고. 거참, 정중하시네요.”
그래, 어차피 모두 본능 탓이다. 유신은 욱해서 고개를 들었다가, 어느새 닉의 얼굴이 코앞까지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눈썹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유신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아무리 히트가 왔다 하더라도, 넌 나와 실수로 섹스하고 싶어, 유신?”
“니카, 꼭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사고로, 어쩌다가, 우연히?”
왜 이 사람은 항상 내가 댈 수 있는 핑계를 없애 버리려고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좀 더 쉽게 그쪽으로 피해 버릴 수 있을 텐데. 마치 도망치면 안 된다고 간절히 외치는 것처럼.
무엇보다 닉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 어차피 자신이 그를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유신, 난 그렇지 않아.”
어차피 둘 다 이성의 마지막 조각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듯한 상태였다. 서로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입술부터 마주 닿았다.
호흡이 겹쳐진다. 어차피 둘 사이에서, 이제 키스가 처음도 아니었다.
“읏, 응.”
유신은 지난번보다는 좀 더 능숙하게 제게 파고드는 닉의 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음은 제 것 같지 않아 부끄러웠다.
동시에 닉이 지난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지분지분 만지는 그 모든 흔적마다 유신은 몸이 달아올랐다. 단단한 손가락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입 안을 거칠게 탐하는 혀는 뜨거웠다.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호흡이 점차로 가빠지고, 둘 사이에서 좀 더 열기가 뒤섞였다.
애매한 흥분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 유신은 필사적으로 닉에게 매달렸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팔다리가 뒤엉켰다.
유신의 몸이 소파로 넘어갔다. 분명 닉이 일부러 쓰러트렸을 것이다.
“아, 니카.”
“유신.”
닉이 당연하다는 듯 유신의 위로 올라탔다. 손이 스웨트 셔츠의 아랫단 아래로 파고들더니, 마른 허리에 헐렁하게 걸린 트레이닝 바지의 고무단을 가볍게 튕겼다.
남의 손을 탄 적 없는 맨살에 스치는 알파의 손길을 유신은 예민하게 느꼈다. 저도 모르게 닉을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래서야 닉이 굳이 침실로 가지 않았던 보람이 없다. 하지만 키스에 열중해 둘만의 세계에 빠진 한 쌍에게는 이미 잊힌 이야기였다.
“하아.”
겨우 입술이 떨어진 것은 유신이 너무 숨 가빠 했기 때문이다. 코로 숨을 쉬면 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행위에 눈앞의 알파에 주의를 집중하다 보면 왠지 쉽지 않았다.
입술은 뗐어도 닉은 유신에게서 바로 떨어지는 대신, 입가와 뺨에 쪽쪽 계속 입술을 떨구고 있었다. 이대로 키스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손가락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귀 옆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상대적으로 점잖은 닉의 입맞춤이나 손길과 달리, 유신이 제 위에 겹쳐진 하반신에서 느끼는 묵직한 압박감은 노골적이었다. 물론 유신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제 쪽이 더 급했다. 동시에 닉이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이제부터 우리 섹스하나요?”
노골적인 질문에서 느껴지는 오히려 순진한 분위기가, 피식 닉을 웃게 만들었다.
“어때? 적어도 난 하고 싶어.”
“히트가 왔다고 해서, 오메가가 꼭 알파와 섹스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유신은 닉의 보석 같은 청록색 눈동자와 눈을 맞추지 못한 채, 슬쩍 시선을 옆으로 흘렸다.
“원래라면 저 케이스.”
“그래, 네가 부탁해서 일부러 가져왔지. 코스모 대리모 센터에서 대체 네게 뭘 보낸 걸까?”
“저 안에는 내 히트 중 인공 수정을 위한 당신의 정자가 들었어요.”
닉은 놀라지 않았는데, 이미 다 예상해서 그런 듯했다.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내 앞에서 네 몸에 내 정액을 넣는 걸 직접 보여 줄 거야, 유신?”
천박한 말투는 분명 일부러였다. 유신이 살짝 화를 냈다. 덕분에 잠깐이지만 이성도 살짝 돌아왔다.
“이상한 소리 말아요. 난 계약에 따라 당신의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요. 그 비용은 당신이 모두 지불하도록 되어 있고요.”
유신의 진지한 반응에 닉도 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맞아. 그런 계약이야.”
“왜요, 니카? 당신은 이제 나와의 아기를 원하지 않는 건가요?”
“원해. 여럿도 좋아.”
“계약은 한 명이에요.”
유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끓는점 직전의 물처럼, 이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굴고 있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뺨을 붉힌 그 모습에는 의도와 다르게 야한 데가 있었다.
“그러니 나한테 케이스를 줘 봐요, 니카.”
닉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시킨 대로 케이스를 가져다주었다.
“정말 이런 걸로 임신하고 싶은 거야, 유신? 네 눈앞에 그 정자의 주인이 있는데? 본인을 앞에 두고?”
“히트 중에 한 번 이상은 케이스가 열린 기록이 있어야 해요. 나중에 센터에서 다 확인해서.”
케이스를 열기 위해서 유신은 몇 가지 약속된 단계를 거친 뒤, 수령자의 홍채 체크까지 마쳐야 했다. 히트로 열에 들뜬 데다 닉이 그런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탓에 긴장으로 손이 몇 번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유신은 이번에도 무사히 케이스를 여는 데 성공했다.
그대로 유신은 그 안에서 작은 시험관을 꺼내 닉에게 건넸다. 물론 시험관 안에는 닉의 정액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끈적하게 겹쳐졌다. 닉은 유신이 뭘 요구하는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어떤 의미로 혼란에 빠진 본인보다 더 명확히 깨닫고 있는지도 몰랐다.
닉이 천천히 시험관의 뚜껑을 돌리자, 유신의 호흡이 좀 더 가빠졌다. 그는 지금 닉의 단단한 두 허벅지 사이에 갇힌 채, 거의 누운 듯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닉은 시험관을 천천히 기울였다. 그대로 자신의 정액이 오메가의 다리 사이를, 사타구니를 적신다.
“아.”
유신이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에게서 풍겨 오는 데이지꽃의 달콤한 향기가 좀 더 짙어졌다. 닉은 이럴 때 풍기는 페로몬조차, 마냥 질척하지 않고 산뜻한 데가 있는 점이 왠지 이 오메가답다고 생각했다.
엉덩이 사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축축이 젖은 유신이었지만, 앞섶 역시 흥분으로 살짝 부푼 채였다. 그 위로 닉이 쏟은 액체가 작은 젖은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딱히 감각이 느껴질 만한 양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 그 자체에 자극받은 듯 유신의 앞섶이 좀 더 팽팽해졌다. 그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던 닉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번졌다.
“이런 거 말고, 넌 좀 더 신선한 걸 원하잖아?”
그대로 들고 있던 시험관은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잘생긴 알파가 천천히 제 위로 몸을 겹쳐 왔다. 유신으로서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이름을 부르며 그의 목을 끌어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아, 니카.”
허벅지에 닿는 두툼한 존재감에 몸이 떨렸다. 그 크고 단단한 감촉이 알파의 성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발기하고 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 때문에 닉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유신을 황홀하게 했다. 십 년도 넘게 줄곧 마음속에 품어 온 우상이 지금 자신과 섹스를 하려는 것이다.
저 성기가 곧 자신에게 들어올 것을 상상하자, 몸의 안쪽부터 조여드는 듯했다. 내벽이 수축하며 울컥 안에서 쏟아진 액체에 엉덩이가 젖는 감각이 노골적이었다.
히트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몸은 처음이라는 두려움보다 흥분이 훨씬 더 컸다. 경험이 없기에 구체적인 것은 상상도 못 하면서도, 순진하게 흥분한 채 허벅지를 바르작댄다.
닉에게서는 평소보다 진한 꽃향기가 풍겼다. 유신은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며 폐 안쪽까지 깊숙이 그 향을 들이켰다.
정확히 무슨 꽃인지는 몰랐지만, 존재만으로도 화려한 향기였다.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곧 히트를 앞둔 그 역시 마찬가지로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닉을 유혹 중이었다.
동시에 유신은 자신을 향해 사정없이 쏟아지는 그 페로몬에, 마찬가지로 눈앞의 알파 역시 러트를 코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일치가 그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기쁨으로 몸이 떨리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발정기에 들어간 오메가가 있고, 곧 발정기가 시작하는 알파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둘 사이에 할 일은 하나뿐이다. 게다가 그 알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닉이라면.
“원해?”
다른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유신은 그저 멍하니 소파에 거의 드러누운 채 닉을 올려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눈앞에서 알파가 입고 있던 상의를 성가시다는 듯 벗어 던졌다.
그것은 단순히 단기간 맹렬히 벤치 프레스를 한다고 만들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성장기부터 오랫동안 몸을 단련해 자연스럽게 생긴 섬세한 근육을, 이후 전문가의 손길로 재조립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육체였다.
유신은 저도 모르게 그의 조각 같은 복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핥아 먹고 싶다는 그 맹렬한 눈빛을 상대 또한 모를 리 없었다. 애초에 벗기 전부터 자신을 원해 애가 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을 감출 기색조차 없었다.
닉은 망설임 없이 유신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직접적으로 닿아 오는 자극이 좋으면서도, 처음 느끼는 타인의 손길에 유신은 어쩔 줄 몰라 버둥댔다.
“아, 안 돼요. 이건, 너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닉의 눈썹이 조금 치켜 올라갔다.
“왜 그래, 유신? 겨우 이 정도는 가지고.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요.”
“응?”
“처음, 이라고요.”
유신은 당황해 제 바지 안을 노리는 닉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든 채였다. 방금까지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던 얼굴이, 이제는 명백히 수줍음으로 귀까지 새빨개진 채였다.
닉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대꾸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 네 파일에는 성 경험이 풍부하다고.”
“망할 파일!”
유신이 소파의 등받이로 얼굴을 묻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급히 도망칠 때 얼굴만 감추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거 내가 직접 작성했다고요. 그 뒤로 아무도 나에게 그 질문의 대답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걸요. 다른 건 다 확인해 놓고, 그거에 대해서는 끝까지 아무도, 아무도 나한테 정정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드디어 진실을 깨닫고 닉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말은 즉, 파일에 있던 성 경험 ‘풍부’라는 항목이 완전히 틀렸다는 의미였다.
유신은 안 그래도 히트로 온통 예민해 감정이 격해져 있던 만큼, 이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처음으로 날 집까지 바래다줬을 때, 내가 당신에게 데이트도 안 해 봤다고 했던 거예요. 당신은 전혀 다르게 이해했었지만.”
“미안해, 유신. 난 그런 뜻인 줄 전혀 몰랐어.”
닉은 그런 유신의 고개를 억지로 돌려 저와 마주 보게 했다. 다행히도 그는 아직 울지는 않았지만, 흥분과 창피함이 뒤섞여 새빨개진 얼굴이 꽤나 볼만했다.
다시 말해 그저 사랑스러웠다는 의미다.
“창피해. 창피해 죽을 거야. 그딴 거 거짓말했다가, 굳이 이런 상황에서 들키기나 하고.”
유신은 지금 자신이 제법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중이었다. 사실 닉 또한 그런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그럴 수도 있지.”
“어째서 당신은 좋아 보이는 거죠, 니카?”
“기분 탓이야.”
쪽. 닉은 유신의 뺨에 키스했다.
질투할 상대가 줄어들어서 기쁘다고는 절대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닉에게는 자신이 유신의 (실은 있지도 않았던) 예전 데이트 상대를 질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쪽이, 유신이 성 경험이 없다고 고백하는 만큼이나 창피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읏.”
간지러웠는지 유신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상관 않고 닉은 쪽쪽쪽 입술을 점점 움직이며 여기저기 입 맞추었다. 귓바퀴, 코끝, 입가, 턱. 그리고 그대로 목덜미까지.
“응.”
명백히 성적인 의도로 깊게 빨아 당기자, 유신의 목소리가 바로 달콤해졌다.
“흑, 니카.”
닉은 유신의 가는 목줄기와 마른 쇄골에 몇 번이고 입술을 떨구는 중이었다. 목이 늘어난 헐렁한 실내복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 몇몇은 분명 진한 자국이 남을 테지만 개의치 않고, 아니 오히려 마킹이라도 하듯 흔적을 남기는 데에 열중했다.
동시에 손이 헐렁한 스웨트 셔츠의 아랫단을 파고들었다. 바지에 비해 이쪽의 저항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한창 목덜미를 빨아 당기는 자극에 파들파들 몸을 떠느라 정신이 없는지도 몰랐다.
사실 유신은 닉이 어딜 만져 와도 달아오른 몸에 기분 좋았다. 허리 안쪽이 지끈지끈 쑤시는 듯했다. 단단한 손끝이 이미 바짝 일어선 가슴의 돌기를 훑자, 그것만으로도 뒤쪽이 새삼 젖어 들었다.
“니카, 안 돼, 그만.”
결국 유신은 닉의 금발에 손가락을 얽으며 울먹였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내가 그만둬도 돼?”
닉은 고개를 들지 않고, 입술을 여린 살에 댄 채로 속삭였다. 닿는 숨결만으로도 유신은 허리가 떨렸다.
입술은 이제 슬슬 유신의 가슴 근처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닉은 유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입 맞출 기세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분명 흥분해 있으면서, 닉이 자신에 비해 여유 있어 보이는 점이 유신은 괜히 얄미웠다. 정작 제 쪽은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몸 안쪽이 욱신거려 견딜 수가 없는데.
“거기 말고, 어서.”
그는 머뭇머뭇 닉의 손을 끌어당겨 제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방금 전 그 손목이 바지 안으로 파고들었을 때, 너무 빠르다며 밀어 댄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척이었다. 어차피 처음이라는 고백도 한 이상, 이제 와서 더 수치스러울 것도 없었다.
“유신, 내가 뭘 해 주길 원해?”
닉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졸라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귓가에 울리는 알파의 목소리가 너무 달아, 그것만으로도 유신은 어쩔 줄을 몰랐다. 아래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바지가 벗겨지고 있었다.
물론 속옷까지 한꺼번에였다. 허리가 고무 밴딩으로 된 넉넉한 옷은 전혀 걸리는 것 없이 쉽사리 벗겨져 버렸다. 그 와중에 유신은 살짝 엉덩이를 들어 돕기까지 했다.
“아아, 니카.”
하지만 부드럽게 허벅지를 벌리게 하는 닉의 손길에는,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칭얼대고 말았다. 닉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빤했다.
“귀엽게도, 벌써 이렇게 흠뻑 젖어서는.”
“그건 히트가, 응.”
갑자기 공기 중으로 드러난 엉덩이 안쪽이 흥분해 움찔거렸다. 안에서 배어 나온 애액이 좁은 구멍 사이로 넘쳐흐르는 모양이 야했다. 물론 모두 히트 탓이었다.
부끄러움에 제게 매달려 팔뚝에 고개를 비비는 유신에게, 닉은 분명 다 알면서 일부러 능글맞게 물어 왔다.
“이 정도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는 거 아냐?”
유신은 어쩔 줄 모른 채 다리를 모으려고 했지만, 이미 닉의 탄탄한 허벅지에 막혀 불가능했다. 그는 빠르게 포기하고 뺨을 붉혔다.
“그, 그건 당신이나 그렇겠죠?”
“정말?”
확실히 유신의 지난번 히트는 사람이 아니라 차가운 실리콘 딜도가 상대했다. 만족했는지는 불분명했지만. 하다 보니 너무 흥분해 판단할 여지가 없었던 쪽에 가까웠을지도.
“난 아냐. 다른 어느 알파가 아닌, 당신을 원해요.”
하지만 이 말은 단어 뜻 그대로의 진심이었다.
문득 유신은 생각했다. 어쩌면 히트가 예정보다 빨리 시작된 까닭도 전날 닉을 만나, 자신이 그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그를 원해서.
“그러니까 나랑 해요, 니카.”
이건 또 예상 못 했다는 듯 닉이 눈을 크게 떴다. 밝은 빛의 속눈썹에 둘러싸인 청록색의 보석 같은 눈동자에 유신의 얼굴이 정면으로 비치고 있었다.
저 눈동자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유신은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이마에 흘러내린 그의 아름다운 백금발을 쓸어 올렸다.
닉이 그 손목을 붙잡고, 손끝에 가만히 입 맞추었다.
“미안, 심술궂은 말을 해서. 사실 나도 네가 아니면 싫어.”
“니카.”
“정말이지 너한텐 못 이기겠어. 널 알고서 너한테 계속 지고만 있어. 근데 왜 그게 더 기쁠까?”
한숨은 달콤했고, 미소가 섞여 있었다. 유신이 양팔을 뻗어 닉을 끌어안았다.
“모르겠어요? 난 십 년도 넘게 당신한텐 항상 그랬어요.”
“진짜 못 이기겠다니까. 그리고, 유신. 나도 다른 오메가를 원하지 않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너와 러트를 지내고 싶어.”
닉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런 유신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분명 처음에는 그저 부드럽게 입술을 머금고 가볍게 혀로 핥는 정도였다. 하지만 곧 둘 사이의 호흡이 가빠지고, 오가는 숨결에 열기가 뒤섞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기 위해 입술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신의 상의가 벗겨져 저 뒤로 던져졌다. 둘 다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한껏 기대하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유신은 바지를 내린 닉의 다리 사이를 목격하자, 움찔 몸을 뒤로 빼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조건 반사였다.
“아, 너무 커.”
완전히 발기한 닉의 성기는 유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죠앤이 줬던 핑크 딜도 정도는 ‘저것’에 비하면 애교였다.
“크면 싫어, 유신?”
“안 들어갈 거예요.”
“그럴 리 없어.”
“아, 왜 더 커지는 거죠?!”
당황해 소리치는 유신을 향해 닉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네가 귀여운 소리만 하니까 그렇지.”
“그거 분명 일부러죠.”
유신이 눈을 흘기며 항의하는데, 갑자기 휙 몸이 뒤집혔다. 가슴은 소파에 댄 채, 엉덩이만 높게 들어 올린 자세였다.
“무, 무슨.”
덕분에 벗은 엉덩이가 죄다 닉에게 드러나, 유신은 부끄러움에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단단히 허리를 붙들린 채라 자세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처음이면 이렇게 엎드린 자세가 더 편할 거야.”
“하읏.”
그대로 닉의 손이 엉덩이의 갈라진 틈으로 파고들어, 유신은 부끄러움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녹아내렸다.
아까부터 알파를 기다리던 뒷구멍은 흠뻑 젖은 채 전혀 힘들 것 없이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반기는 것 같기도 했다.
“벌써 세 개 째야. 느껴져?”
“모, 몰라, 흑.”
“맛있다는 듯 안쪽에서부터 오물거려.”
닉은 분명 일부러 들으라고 하나하나 중계하는 것이 분명했다. 유신은 엉덩이의 틈새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지끈거리는 쾌감에 제대로 된 생각이 불가능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몸 안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지난번 히트 때 자신의 손가락으로 느낀 이후로 처음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때가 그가 제 엉덩이에 무언가를 넣은 첫 경험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남’의 손가락은 존재 자체로 자극적이었다. 유신이 남자치고 작은 손이 아니었는데도, 신장 차이만큼이나 닉은 손도 더 컸다. 손끝까지 잘 손질된 긴 손가락은 유신에 비해 단단해, 안을 늘리며 깊숙이 짚을 때마다 깊게 내벽이 자극당했다.
안쪽에서 주르륵 애액이 넘쳐흘러 닉의 손까지 적시는 것이 죄다 느껴졌다. 그 와중에 엉덩이는 더 큰 자극을 원하며 무의식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응, 더어.”
유신은 뺨을 소파에 박은 채 저도 모르게 달콤하게 조르기 시작했다. 문득 제 안을 휘젓던 손가락이 멈추어 그는 반사적으로 숨을 죽였다. 보이지는 않아도, 등 뒤에서 남자가 기쁜 듯 웃는 기색이 기분 탓은 아니리라.
“핥아 줄 필요도 없겠어.”
갑자기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허전함에 몸을 떨 새도 없이, 허리가 양쪽에서 좀 더 단단히 붙들렸다.
그대로 안으로 파고드는 단단하고 뜨거운 열기에 유신은 신음했다. 무엇보다 내벽을 강제로 벌리는 듯한 부피감이 강렬했다.
“아, 너무 커.”
지금 유신의 뒷구멍은 발정기를 맞이한 오메가답게 성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히트 덕에 넘쳐흐른 애액으로 완전히 젖고, 여러 개의 손가락으로 안을 늘려 두었어도, 닉의 성기를 오롯이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알파의 남성기는 일반 베타 남성의 평균보다 훨씬 컸고, 우성 알파는 그런 알파 중에서도 더 컸다. 발기 전에도 딱 봐도 차이 날 정도니, 발기 후는 말을 보탤 필요조차 없었다.
어지간히 경험이 풍부한 오메가가 아니고서는 전체를 받아들이기조차 힘겨워했다. 물론 그와 과거 섹스했던 상대들은 결국 큰 게 작은 것보다 훨씬 낫다는 만족스러운 합의에 이르렀었다.
유신은 섹스가 처음이었고, 손가락조차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태였다. 히트가 아니었다면 분명 넣기 시작하는 것부터 난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은 우성 오메가에, 지금 히트 중이었다. 그의 구멍은 빠듯하나마 어떻게든 닉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하반신을 덮치는 낯선 압박감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닉이 들어오기 쉬운 각도를 찾아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여 자세를 바꿔 가기까지 했다.
숨결에 금세 달콤함이 섞이기 시작했다.
“으응, 좋아.”
히트는 강제로 몸을 벌리는 이 버거운 감각조차 쾌감으로 치환했다. 물론 그 변화를 닉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하, 좀 더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
발기한 제 성기가 흉기에 가깝다는 사실은 닉도 모르지 않았다. 처음인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 또한. 아마 유신이 히트 중이 아니었다면, 상처 입혀 버렸을지도 몰랐다.
원래라면 좀 더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삽입을 진행할 작정이었다. 애초에 첫 시도에 바로 끝까지 삽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않았다. 러트가 시작되며 평소보다 성기가 더 커지는 중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매달려 오는 숨결의 달콤함이 닉을 자극했다. 아직 제일 앞쪽 굵은 부분이 간신히 파고들었을 뿐인데, 그는 충동적으로 가장 안까지 단번에 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유신의 엉덩이에 자신의 금빛 음모가 닿을 만큼이나 깊었다.
“느껴져, 유신? 뿌리까지 들어갔어.”
닉의 성기를 품은 유신의 아랫배가 그 커다란 부피감에 조금 부풀어 있었다.
이어진 몸을 좀 더 끌어안으며 닉은 눈앞의 뒷목에 입 맞추었다. 한껏 예민해진 등줄기가 가늘게 떨리고, 매끄러운 살갗에 천천히 땀이 배어났다.
“당신이, 내 안에.”
유신은 제 몸을 억지로 벌리는 그 흉기가 충분히 버거우면서도, 동시에 온몸을 떨며 그 결합을 기뻐했다. 흥분해 무의식적으로 완전히 발기한 제 성기를 소파에 문지르는 채였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닉은 제대로 말이 되지 않는 욕을 내뱉으며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거기.”
유신은 울먹였지만, 그 흐느낌은 결국 쾌락과 기쁨의 탄성으로 이어졌다. 흥분한 알파가 허리를 움직이는 대로 오메가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고개가 사정없이 소파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반기며 정신없이 그 흐름에 몸을 내맡겼다.
“거기, 너무, 좋아.”
본인도 기쁜 듯 허리를 흔들려 했지만, 너무 흥분해 제대로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자꾸 무너지는 가는 허리를 닉이 좀 더 단단히 붙들었다.
알파의 성기가 거칠게 드나드는 것에 따라 유신의 안쪽에서 흘러넘친 애액이 이어진 틈을 타고 거품처럼 배어 나왔다. 그 내벽은 처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 강하게 조이면서도, 동시에 삽입한 성기 전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미롭게 감싸 왔다.
닉은 분명 속도를 조절할 거라던 자신의 처음 결심을 완전히 잊은 채였다. 애초에 자신이 이 오메가와 섹스 중에 조절이 가능하다니, 가장 멍청한 생각이었다.
“응, 니카. 나, 나.”
갑자기 유신이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닉의 아래에서 몸을 바르작댔다. 닉은 한창 쾌감으로 허우적대다 말고, 갑자기 기분이 뚝 싸늘하게 식는 듯했다.
“왜?”
“얼굴, 당신, 당신의 얼굴이 안 보여.”
하지만 이어진 유신의 대답은 닉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키스, 키스해 줘요, 니카.”
유신은 엎드린 채 닉의 거친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억지로 고개를 돌려 알파와 마주 보려 했다. 열이 들뜬 채 졸라 오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닉은 유신을 향해 몸을 숙였다.
“넌 정말이지!”
가볍게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짧은 키스만으로도 유신의 입술이 기쁜 듯 느슨해졌다. 그 사랑스러운 자극에 이미 한계인 것 같던 닉의 성기가, 아니었다는 듯 유신의 안에서 좀 더 부피를 더했다.
“으흐, 응!”
깊게 안을 파고든 알파의 흉기는 드디어 오메가의 자궁 입구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정확히 어디가 목적지인지를 아는 듯한 강한 자극이었다.
유신의 온몸이 움찔거리고, 허리가 튀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앞쪽 남성기가 정액을 토했다.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거의 한 달 만의 사정이라 꽤 진했다. 지난 히트 이후 자위조차 변변히 하지 않던 그였다.
동시에 안쪽 내벽이 좀 더 강하게 닉을 죄었다.
“윽, 유신.”
닉이 사정하며 제 귀에 이름을 속삭이는 것이 유신은 기분 좋았다. 제 안을 채우고도 넘친 정액이 이어진 틈을 타고 소파를 더럽힌다는 사실에는 달콤한 죄악감까지 느꼈다.
“니카, 키스해 줘요.”
유신은 당연한 권리인 양 다시 키스를 졸랐다. 여전히 이어진 채, 닉이 그를 천천히 천장을 보도록 바로 눕혔다. 바로 유신이 원하던 것이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 겹쳐지는 숨결은 뜨거웠다. 닉의 강렬하고 달콤한 페로몬이 홍수처럼 유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유신은 제 안에서 닉이 다시 커지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그의 두 번째 사정은 첫 번째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될 것도 알았다.
***
그 알파와 오메가가 언제 침실로 옮겼는지는 명확지 않다.
두 번째 사정이 끝나고 세 번째 사정 전이었나, 세 번째 사정이 끝나고 네 번째 사정 전이었나? 애초에 지금이 몇 번째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오늘이 며칠인지조차 불분명했다.
어느 순간 욕망이 이성을 지배하고, 둘 사이에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끌어안은 상대의 단단한 팔과 뜨거운 체온뿐이었다.
“으응.”
닉의 아래에서 유신이 신음했다. 그의 허리 밑에는 받쳐진 쿠션이 둘의 결합을 돕고 있었다. 유신의 안으로 닉이 거칠게 성기를 박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유신은 자궁 입구가 완전히 열린 상태였다. 푸욱, 굵은 성기가 제 안을 드나들 때마다 짙은 쾌감에 발가락 끝까지 떨려 왔다.
닉의 성기가 움직일 때마다 둘 사이 이어진 틈에서 정액과 애액이 뒤섞인 거품이 일었다. 좁은 유신의 구멍은 지나친 자극에 발갛게 부었고, 드나드는 커다란 성기에 맞춰 한계까지 주름이 펴져 있었다. 어차피 한창 히트 중인 오메가에게는 쾌감뿐이었다.
유신의 마른 아랫배는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사정으로 정액으로 가득 차 미묘하게 둥글어진 채였다. 닉의 성기가 드나들 때마다 그 움직임을 따라 그 배는 작게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닉도 이미 여러 번, 유신은 횟수조차 세지 못할 만큼 사정한 채였다. 닉보다 많이 한 것만은 확실했다.
유신의 발갛게 부은 성기는 이제 제대로 정액을 짜지도 못했다. 히트가 아니었다면, 과도한 사정으로 아플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발정기가 아니면 이렇게 뒤엉킬 일도 없었다.
애초에 알파도 오메가도 둘 다 눈이 풀려 있었다. 서로의 페로몬에 완전히 젖은 채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니카, 아, 니카. 나한테 박아 줘요.”
유신이 울먹이며 닉에게 매달렸다. 쾌락에 한껏 달떠 제 위의 알파를 향해 달콤하게 졸랐다.
“내 안에 해요, 니카. 나한테 아기를 줘요.”
“내 귀여운 유신.”
닉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유신의 상체를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새삼스레 침대 위에서 뒤엉켰다.
어차피 시트는 이미 정액과 체액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시트를 갈아야 할 시기는 진작에 지났지만, 둘 중 누구도 그 사실을 깨닫지조차 못했다. 아니, 알았어도 어차피 지금 그들에게는 상관없었을 터였다.
닉은 유신과 이마를 맞대었다.
안에 별을 박은 듯한 크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가 깜빡깜빡 눈꺼풀을 움직이며 닉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눈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원해요. 내게 아기를 줘요.”
거칠게 헐떡이며 유신이 무아지경으로 속삭였다. 마주 보는 두 사람 중 누구도 모를 리 없었고, 어차피 둘이 원하는 것은 같았다.
“우리 아기야.”
닉이 정중하게 정정했다. 유신이 닉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자, 닉은 그런 유신에 입 맞추었다.
두 사람의 혀가 뒤엉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닉이 유신의 안으로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더 깊이, 한계까지 유신의 안으로 파고들겠다는 기세였다. 동시에 닉이 다시 사정했다.
분명 자궁 안까지 침범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많은 양의 정액이 아까부터 유신의 안에 있었지만, 이젠 거의 터질 듯이 아랫배를 채웠다.
“하윽.”
아픔과 쾌락이 뒤엉킨 채 유신은 그저 허덕였다. 닉의 성기가 유신의 안에서 끝이 부푼 채 갈고리처럼 내벽에 박히고 있었다. 알파의 노팅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번 둘의 발정기 중 처음이었다.
“유신.”
“아아, 니카.”
노팅은 짧으면 10분, 길면 30분씩 지속된다. 알파로서의 능력이 우수할수록 길어지기 마련이니, 아마도 30분 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넘어갈지도 몰랐다.
사실 알파인 닉에게조차 쉬운 행위는 아니었다. 상대에게 느껴질 신체적인 부담은 더더욱 컸다. 발정기의 오메가가 아니면 쉽게 견디기 힘든 행위였다.
하지만 이미 페로몬에 절여진 알파와 오메가의 뇌는 이런 강제적인 압박조차 최고의 쾌감으로 느꼈다. 그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상대방과 좀 더 깊이 이어지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배 속을 채우는 정액에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유신의 아랫배가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끌어안은 닉의 목덜미에 달콤한 숨을 내뱉으며, 유신은 자신이 임신한다면 아마 지금일 거라고 확신했다.
***
유신은 닉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성기에 꿰뚫린 채 허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하, 읏.”
달콤한 신음이 쉴 새 없이 유신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조금 쉰 목소리는 왠지 다른 사람 같고 현실감이 없었다.
“으응, 좋아.”
엉덩이가 아래위로 움직일 때마다 이어진 틈 사이로 젖은 소리가 울렸다. 벌써 몇 번이고 안에 쏟아 부어진 정액이 애액과 같이 안쪽에서 뒤섞였다. 좁은 틈새에서 음란한 거품이 배어 나와 닉의 아랫배까지 적셨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유신은 오히려 더 열렬히 허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저 뇌가 본능에 절여진 듯 쾌감만을 추구했다.
아무리 발정기라도 며칠 내내 계속 이성이 나가 있지는 않는다. 초반의 격렬한 파도가 지나고 나면,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밀려오는 물결처럼 끊기지 않고 어떤 의미로 오히려 더 안달 나게 했다.
“좋아, 여기, 좀 더.”
배 속에서 닉의 성기가 느끼는 부분에 문질러져 유신의 한숨이 깊어졌다. 체중으로 내리누르며 자극을 더하려고 애쓴다. 허리 짓은 아직 서툴렀지만, 순수하게 쾌감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저 음란했다.
“하아, 유신.”
제 아래서 닉의 페로몬이 짙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의 숨이 한결 거칠어지고, 배 속을 채우는 그의 성기가 더 커졌다.
“흐읏!”
그것만으로도 유신은 혼자 살짝 가 버렸다. 지나친 쾌감에 아주 잠깐 의식이 끊겼다.
동시에 몸이 크게 아래위로 뒤집혔다. 다음 순간 그는 침대 시트에 등을 댄 채, 닉의 아래에 깔려 있었다.
예술 작품 같은 얼굴이 코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땀에 엉긴 앞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기며, 백만 불짜리 미소가 떠오른 얇은 입술이 섹시했다. 유신은 흥분으로 새삼 내벽까지 떨리는 듯했다. 물론 닉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귀엽게 혼자 느끼는 음란한 네 모습도 눈에 즐겁지만 말야.”
“아흑.”
“내 취향은 이쪽이라.”
닉은 유신의 허벅지를 크게 벌리게 해서는 옆으로 박아 넣었다. 말랑한 이미지와 다르게 근육이 잘 잡힌 탄탄한 허벅지를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거칠게 눌러 온다. 이어진 안쪽에서 각도가 바뀌며 다른 방향으로 찔러 오는 자극에 유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거, 이상해.”
하지만 곧 쾌감에 녹아 흐물흐물해졌다.
“응, 더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닉의 허리 놀림이 좀 더 거세졌다. 음란한 젖은 소리와 더운 숨결이 두 사람 사이에서 뒤섞였다.
둘 다 의식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초반에 비해 가라앉았다 해도 어차피 상대적이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식으로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을 끊지 않았다. 본능에 충실하게 서로를 원하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미 몇 번을 절정에 닿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이제 와서 횟수 따위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았다.
“유신, 졸지 마.”
“괜찮아요. 계속해, 하아.”
“난 깨어 있는 너랑 하고 싶어.”
“안 자요, 응…….”
누적된 피로에 하다 말고 살짝 졸기도 했다. 그럼에도 떨어지기 싫어 끌어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간간이 닉이 유신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아니면 키스를 하며 서로 물을 나눌 때도 있었다. 초콜릿 바나 포도당 사탕 따위를 나눠 먹기도 했다. 그것은 식사라기보다, 에너지를 보충해 계속 섹스하기 위한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키스에서 초콜릿 맛이 나요.”
“방금 먹었으니까. 싫어?”
“아니, 좋아.”
제 위에서 한창 허리를 흔드는 닉의 등에 팔을 두르며 유신이 나른하게 고개를 젖혔다.
“좋아요, 아.”
머릿속이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웠지만, 몸은 착실히 쾌감을 탐했다. 너무 느껴 저도 모르게 유신이 닉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흥분한 닉이 유신의 쇄골을 얕게 물었다.
“예뻐, 유신.”
“응, 응.”
오메가에다 히트 중이기까지 한 유신의 내벽은 아무리 과격한 행위에도 상처는커녕 쉽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닉은 마치 그런 유신의 안쪽을 제 모양으로 길을 들이고 싶다는 듯 열심히 박아 댔다.
“네 안에 있는 건 나뿐이야.”
아무리 행위 중이라지만, 닉은 자신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정작 유신은 흥분해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닉에게 매달려 올 뿐이다.
“니카, 니카.”
싱그러운 레몬 향이 옅게 깔린 아래, 달착지근한 꽃향기가 닉의 온몸을 흠뻑 적시는 듯했다. 물론 유신의 페로몬이었다.
“너와 이런 걸 하는 것도 나뿐이고, 그렇지?”
“응. 그러니까, 어서.”
유신이 허리를 내밀며 제 안을 탐하는 알파를 재촉했다.
닉은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을 위해 유신의 허벅지를 좀 더 눌러 벌렸다. 밖에다 사정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
눈을 떴을 때 창밖은 훤했다. 낮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시간대까지는 애매했다. 애초에 며칠이나 지났는지부터 불분명했다.
“마셔.”
뜯어진 생수병의 입구가 입술 앞에 대어졌다. 반사적으로 꿀꺽 삼키고서야, 유신은 자신이 목이 말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병을 거의 다 마신 뒤였다.
그는 젖은 입가는 닦을 생각도 없이 다시 침대로 늘어졌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나른함이었다.
반대로 머릿속은 맑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욕구가 완전히 충족된 듯한 상쾌함이 있었다.
“괜찮아?”
닉이 몸을 숙이며 물어 왔다. 금발이 헝클어진 채 이마 뒤로 넘겨져 있었는데, 유신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모습일 때도 그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갑자기 유신은 지금 자신이 닉에게 어떻게 보일지 갑자기 민망해졌다.
“안 괜찮아요.”
이어진 대답은 반쯤 신음이었다. 그 와중에 목소리가 한껏 잠긴 것이 유신을 더욱 부끄럽게 했다. 애초에 목이 쉰 이유도 섹스를 너무 많이 해서였다.
그는 부족하나마 머리라도 손으로 단정히 정리해 보려 했다. 앞머리가 뒤로 넘겨지자, 반듯한 이마와 예쁜 눈썹이 드러나며 평소보다 인상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안경은 여전히 끼지 않은 채였다.
동양적인 얼굴이었지만, 인상적일 정도로 큰 눈에 오뚝한 코와 도톰한 입술이 오밀조밀하면서도 입체적이었다.
아직 여운이 남은 그 눈가는 붉고, 나른하게 내리깐 긴 속눈썹이 눈동자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서양인처럼 그 자체가 짙은 속눈썹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세공해 새긴 듯한 얇고 섬세한 속눈썹이었다.
못나 보일까 하는 본인의 걱정과 반대로, 그 얼굴이 옆에 있는 상대방을 새삼 홀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중이었다.
“먹을래?”
“고마워요.”
닉이 그런 제 동요를 무마하듯 어색하게 단백질 바를 건넸다. 유신은 그제야 자신이 목이 마른 것뿐만이 아니라, 허기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포장을 벗기고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뭔가 아직 감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히트 중에도 중간중간 비슷한 걸 먹고 비슷하게 물을 마셨던 기억이 있기는 했다.
오메가가 히트를 겪다가 탈진해 병원에 실려 간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었다. 닉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그런 꼴을 당했어도 놀랍지 않았다.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고 반성하며, 유신은 과자의 마지막 조각을 먹어 치웠다. 방금 마신 물에 약간의 당분이 더해지자, 조금이지만 기력이 돌아왔다. 목이 칼칼한 건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며칠이나 지난 거죠?”
“지금은 일요일 오전이야. 정확히는 아침에 가깝지.”
“일요일이면 26일이겠군요.”
목, 금, 토 사흘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까지.
정확히는 수요일 밤부터 시작해, 어제 토요일 밤인가 오늘 일요일 새벽에야 끝났으니, 날짜로는 사흘보다 더 길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세세하게는 자신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신은 처음 느껴 보는 ‘진짜’ 히트의 무시무시함에 살짝 질렸다. 아마 처음에다 상성이 잘 맞는 알파가 곁에 있다 보니 더 강렬해졌을 확률도 높았다. 공교롭게도 닉 또한 러트였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다.
드문드문 히트 중에 닉과 했던 행위가 유신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고 부분 부분 잘린 장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자신이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아니, 그런 것까지.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닉을 상대로. 아니, 어쩌면 상대가 그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신은 아닌 척 꾸물꾸물 시트로 몸을 묻었다. 지금 그의 몸은 각종 흔적으로 얼룩덜룩했다.
이런저런 체액의 흔적은 그렇다 치고, 몸 여기저기 키스 마크에다 깨물린 자국이 가득했다. 목덜미와 가슴은 원래 살갗이 거의 남지 않은 지경이었고, 특히 허벅지 안쪽은 얼마나 빨아 댔는지 죄다 노란색 보라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 닉이 한 짓이었다.
반대로 돌아선 닉의 등이 손자국으로 엉망진창인 것은 아마도 자신의 탓일 터였다. 감히 저 멋진 피부에 자국을 만들다니, 그 부분은 참으로 잘못했다고 유신은 마음속 깊이 반성했다.
사실 시트 역시 이런저런 흔적으로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지금처럼 시트로 몸을 가리는 것조차 불가능해져 버린다.
그러고 보면 히트를 준비하던 때,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방수 비닐을 두 겹 이상 깔라는 후기를 보고 어이없어했더랬다. 겪고 보니 그야말로 꿀팁이건만!
마침 닉이 유신의 옆으로 누웠다. 이제야 유신은 닉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아래 꽉 조여진 엉덩이는 참 보기가 좋았지만.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성기는 비정상적일 정도까진 아니라도 유신의 평소와 비교하면 확실히 컸다.
발기하면 훨씬 커지는 것도 맞았지만, 원래도 저 정도는 되니까 거기까지 커지는 거로구나. 그는 이제 알겠다고 납득했다가, 그런 생각을 쓸데없이 골똘하게 한 자신이 살짝 창피해졌다.
“왜? 새삼 잘생겼지?”
“그런 말 안 해도 당신은 항상 멋있어요, 니카.”
저도 모르게 다시 닉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었나 보다. 자신을 향하는 달콤한 미소에 유신은 아무 생각 없이 흐물흐물하게 녹았다.
그 웃는 얼굴은, 평소 귀찮다는 듯 입만 웃는 닉을 아는 관계자들이 본다면 다들 깜짝 놀랄 만한 솔직한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신은 그 사실을 몰랐는데, 이미 그에게는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우리가 요 며칠간 계속 섹스했나요?”
실감도 나지 않고 그저 부끄러워, 유신은 괜히 몸을 꼬무락거렸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닉이 좀 더 유신에게 몸을 기대 왔다.
“발정기란 원래 그런 거야. 난 좋았는데, 유신은 별로였어?”
“조, 좋았어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기억이 잘 안 나? 그럼 기억을 다시 떠올려 줘야겠는걸.”
닉이 분명 일부러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신은 귀까지 온통 새빨개져 버렸다.
“히, 히트는 이미 끝났다구요!”
“하하, 그렇지. 맞아. 우리는 일단 휴식을 취해야 해. 씻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닉의 손이 조심스레 유신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유신의 표정이 다시 나른해졌다. 제대로 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몸이 닉의 체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유신은 이 며칠간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시트 안에서 양팔로 제 아랫배를 끌어안았다.
“아기, 생겼겠죠?”
“응?”
방금 전과 조금 다른 의미로 유신의 뺨이 붉어졌다.
“그렇게까지 안에다 했으니까. 노, 노팅도 몇 번이나 하고. 분명히 임신했을 거야. 그죠?”
그 추측은 딱히 틀릴 이유도 없었다. 오메가의 가임기에 알파가 노팅을 하게 되면 90% 이상의 확률로 임신이었다.
애초에 발정기 외에 임신 확률이 거의 없는 오메가와 달리, 알파는 러트가 아니더라도 오메가를 임신시킬 수 있었다. 러트가 되면 높아지는 성욕만큼 확률이 높아지는 정도의 문제다.
계획한 관계가 아니라면, 반드시 긴급으로 사후 피임약을 먹어야 했다. 알파와 오메가 양쪽 다 억제제를 챙겨 먹는 것이 일상인 요즘에는 거의 없는 일이지만.
“유신, 난 아기가 안 생겼어도 상관없어. 아니, 차라리 좋아. 너의 다음번 히트도 함께 이렇게 보낼 수 있잖아.”
“그런 농담 재미없어요.”
이어진 닉의 대답이 예상과 달리 묘하게 미적지근하다는 사실이 유신은 오히려 거슬렸다.
문득 히트 중인 제 앞에 ‘마침’ 러트 상태인 닉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느꼈다. 우연히 그렇게 겹치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가?
“니카?!”
그때 갑자기 닉이 자신을 시트째 번쩍 안아 올려, 유신은 놀랐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을 공주님처럼 옆으로 안은 것이다.
말랐다 해도 180에 가까운 성인 남자다. 키가 있는 만큼 마냥 가벼울 수는 없었다. 갑작스런 무게 중심의 변화에 유신은 반사적으로 닉의 목을 끌어안았다.
시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의 손이 제 벗은 허벅지를 받치고 있는 것도 괜히 부끄러웠다. 지금은 어떻게든 시트를 끌어 올려 가리고 있었지만, 조금만 흘러내려도 자국으로 엉망인 목덜미가 드러나 버리는 것 또한.
정작 유신을 안고 있는 닉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서민적인 감각으로는 같은 집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긴 복도를 지나, 닉이 향한 곳은 거실이었다. 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유신의 뺨에 키스했다.
“보여 주기로 했잖아.”
그리고 유신은 닉이 자신을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깨달았다.
“아, 트리!”
거실 한쪽에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여기 거실은 2층까지 트여 있는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반짝이는 흰색 가루가 트리 전체에 눈처럼 뿌려져 있고, 장식은 붉은색과 금색으로 통일되어 화려하면서도 조화로웠다.
유신이 조금 부끄러웠던 점은 분명 며칠 전에 여기 소파에서 섹스를 했는데도, 저 트리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페로몬에 취한 채 닉에게만 주의를 집중한다고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았나 보다.
“리모컨으로 불도 켜져.”
“예쁘다.”
불이 켜지자 한층 화려해진 트리를 보는 유신의 눈도 함께 반짝거렸다. 그는 트리의 장식들도 하나하나 살폈다.
색은 통일되어 있었지만, 그 형태와 종류가 무척 다양해서 감탄이 나왔다. 표면에 그림이 그려진 작은 공이 제일 많았고, 지팡이 사탕 모형이나 눈 결정 모형도 눈길을 끌었다.
그중 유신이 제일 감탄한 것은 작은 천사 모양의 정교한 장식으로, 금발 머리에 옷에도 금박 무늬가 있고, 붉은 리본이 가슴에 둘려 있었다. 거기다 안쪽에 전구가 들어서 반짝반짝 빛도 났다.
“귀여워라. 당신이 이런 취향인 줄은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지.”
닉은 살짝 딴청을 피웠다.
이 트리는 죄다 아이잭과 올가가 알아서 설치한 것으로, 닉의 의견이 들어간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굳이 한 게 있다면 청구서에 사인 정도? (물론 어떤 의미로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다.)
하지만 유신이 기뻐해 준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닉은 뻔뻔하게 제 덕인 양 잘난 척을 했다.
따지고 보면 갑자기 유신을 트리 앞으로 데려온 이유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히트 중에 그렇게 열렬히 자신을 원하더니, 히트가 끝나자마자 묘하게 거리를 두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닉은 그저 유신과 사이좋게 끌어안고 있고 싶을 뿐이었다. 같이 있으면 그저 좋아서, 다른 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자신의 맹목적인 태도가 반대로 상대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아, 어떡하지.”
트리를 향해 눈을 빛내던 유신이 갑자기 다시 풀이 죽었다. 겨우 그가 기분이 좋아진 듯해 흡족해하던 닉은 다시 어쩔 줄을 몰랐다.
닉은 일단 유신을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는 여전히 시트로 제 몸을 꽁꽁 싸맨 채 거기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억지로 끌어내는 대신, 시트 바깥에 빼꼼 나온 손가락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자신을 향할 때면 유신의 눈가가 반사적으로 느슨해지는 것이 좋았다. 그가 저를 향한 호의를 어쩌지 못하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지, 유신?”
“니카, 어떡하죠? 밀리가.”
하지만 유신이 속삭인 것은 전혀 생각도 못 한 이름이었다. 그와 함께 사는 귀여운 베타를 떠올리며, 닉은 태연한 척 표정 관리를 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왜?”
“우리 집 트리는 밀리가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저 멋진 트리를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생각나서.”
“맞아, 그랬지.”
유신은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못했다.
“밀리한테 제대로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요. 사흘이나 지났는데, 분명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 넌 기억 못 할 테지만, 내가 널 데려오면서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으니까.”
“정말요?”
“물론이고말고.”
하지만 여유로운 닉의 대답에 유신은 오히려 미심쩍다는 시선을 되돌렸다.
닉의 성향을 아는 만큼, 제대로 된 설명을 했을 거라는 믿음이 없어서였다. 어떻게 보면 정확한 의문이었다.
“니카,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이상하지만요. 어떻게 내 히트가 시작할 때 딱 맞춰서, 러트 직전의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던 거죠? 애초에 히트 시작 시기도 예정과는 반나절이나 차이가 났는데.”
닉은 당연하다는 듯 유신의 옆으로 앉아, 그의 손가락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느껴졌으니까?”
“느낌?”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정말로 네가 히트를 시작하는 것을 느꼈어. 일부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에 유신은 순간 그런가 하고 휩쓸렸다. 마침 닉이 슬그머니 체중을 기대 와, 가깝게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반사적으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아직 몸에는 히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만큼 우리가 특별하다는 거야.”
기억하자. 시트라도 두르고 있는 유신과 달리, 닉은 여전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유신이 동요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히트가 이렇게까지 길어진 건 예상외긴 하죠. 당신이 러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오래가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한 듯 닿아 오는 닉에게서 슬그머니 몸을 뒤로 빼며, 유신은 최대한 차분한 척 대꾸했다. 하지만 흥분으로 허벅지가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
“왜, 싫었어? 난 너무 좋았는데.”
“나도 좋았어요, 니카.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밀리한테 제대로 연락도 못 하고 나온 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네 핸드폰을 가져왔으니, 좀 있다 확인해 보면 어때?”
“고마워요. 여하튼 그 사흘 사이에 크리스마스도 다 지나가 버렸고 말이죠.”
이상한 일이었다. 히트는 이제 끝났을 텐데, 유신은 닉과 이렇게 나란히 있으려니 이상하게 안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끌어안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뭐 특별한 일정이라도 있었어?”
“그런 건 아니라도, 기분 문제랄까요. 물론 내가 자란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그냥 케이크 먹는 휴일이긴 한데요. 그래도 아예 없던 것처럼 사라지니까 뭔가 이상해서.”
유신의 이야기에, 닉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갑자기 눈을 빛냈다.
“아니야, 유신. 아직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았어!”
“네? 하지만 오늘이 26일이라고.”
“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일 이유는 없지.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라고! 12월 25일에서 13일 후인 1월 7일이 크리스마스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이다.
“러시아 기준으로는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요, 니카?”
“그 사이에 1월 1일 내 생일도 있어.”
닉이 유신의 허리에 팔을 감아 왔다.
“맞다, 그랬죠? 미리 생일 축하해요.”
“안 돼. 벌써 축하하면. 러시아에서는 생일을 앞서서 축하하지 않으니까.”
“재밌는 걸 알려 줄까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생일보다 늦게 축하해서는 안 돼요. 생일 파티를 미리 앞당겨 하는 경우는 있어도, 지나서는 하지 않죠.”
유신의 양손은 이미 자신을 껴안은 닉의 팔 위에 가볍게 겹쳐진 채였다. 닉이 당연하다는 듯 유신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거 흥미롭군. 그럼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어.”
“무슨 결론이요?”
“일찍 축하한다면 한국식이고, 늦게 축하하면 러시아식이라고. 다시 말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게 뭐예요.”
유신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그저 자연스럽게 목덜미를 파고드는 닉의 입술이 간지러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닉은 그대로 더 집요하게 유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맞다. 좀 있다 트리 사진을 찍어야겠어.”
“그건 또 갑자기 왜요?”
“네가 지난번에 SNS에 올려 달라고 했었잖아. 좀 늦어 버렸지만.”
한 박자 늦게 유신이 뺨을 붉혔다.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군요! 하지만 크리스마스도 이미 지났고, 정말 많이 늦긴 했어요. 아, 러시아식 크리스마스 주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사진 밑에 설명을 덧붙이면 어때요?”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팬들도 분명 다들 재미있어할 거예요.”
“그, 팬이라는 건 너도 포함인가?”
“물론이죠.”
유신의 그 대답에, 왜인지 이미 끌어안고 있던 닉의 팔에 좀 더 힘이 들어왔다. 둘은 이미 소파 등받이 위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는 중이었다.
“역시 우리가 만나기 전에 네 올해 생일이 지나가 버린 게 너무 아쉬워, 유신.”
“난 괜찮은데.”
“아냐,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큰 상관이 있어! 내년 생일은 꼭 크게 성대한 파티를 하자.”
“네, 내년에요.”
그즈음이면 이미 아기가 태어난 뒤일 거란 말을 유신은 입 안으로 삼켰다. 아마 닉도 깊이 생각하고 하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 여기서 지적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다.
다시 닉의 아래에 깔린 채 소파 위로 누워 있으려니, 고개 위에서 반짝이는 트리가 눈에 너무도 잘 들어왔다. 어떻게 히트 중에는 저걸 전혀 몰랐는지 불가사의할 지경이었다.
“유신.”
닉이 억지로 유신의 고개를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 자신만을 향하는 아름답고 선명한 청록색의 눈동자에, 유신은 몸이 떨렸다.
“니카, 난.”
둘 사이의 공기가 한결 끈적해져 있었다. 유신은 히트도 아닌데 왜 자신이 이런 욕망에 휩쓸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수줍고, 부끄럽지만, 어쨌든 자신은 그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입술이 맞닿고, 둘 사이의 호흡도 가빠졌다. 유신은 자신들이 이미 섹스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히트 때와는 달랐다. 사흘 내내 침대 매트리스가 망가질 정도로 울컥울컥 애액을 흘리던 유신의 엉덩이부터가, 베타처럼 완전히 마른 것은 아니라도 확실히 훨씬 덜 젖었다.
다른 것은 몸뿐이 아니었다. 분명 지난 사흘간 셀 수도 없이 반복한 행위인데도, 유신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몇 번이나 섹스를 해 놓고도, 닉이 제게서 시트를 벗겨 맨몸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너무 창피했다.
“아, 니카. 잠시만요.”
“어젯밤에만 해도 내 앞에서 온갖 자세를 다 해 놓고 갑자기 왜 그래?”
“그치만.”
“괜찮아. 괜찮아.”
그런 유신의 반응에 닉은 당연히 더 신이 나서는, 거침없이 유신에게서 시트를 빼앗았다.
하지만 시트가 완전히 벗겨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닉이 그대로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깨닫고 유신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닉은 지금 유신의 오른쪽 다리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허벅지 전체를 가로지르는 깊은 흉터였다. 굉장히 눈에 띄었을 텐데, 닉은 마치 러트 내내 그 존재도 깨닫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자신은 저 커다란 트리도 몰랐는데, 흉터를 못 알아본 정도는 딱히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흉하죠? 보지 말아요.”
유신은 손바닥을 펴 어떻게든 그 흔적을 가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아온 닉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지 않아. 이 또한 네 몸의 일부니까.”
“그리 보기 좋지 않은 건 나도 알아요.”
“나에게는 이 흔적도 충분히 사랑스러워. 그저 이제는 아프지 않은지 그것만이 걱정이야.”
닉은 일부러 흉터를 가리는 유신의 손을 떼어 내게 하고는, 보란 듯이 그 위를 직접 쓰다듬었다. 예상외의 다정한 반응이 유신을 더 어쩔 줄 모르게 했다.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응.”
“다행이야.”
닉의 손이 당연하다는 듯 유신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졌다. 어느새 슬슬 일어서는 성기를 붙잡혀, 유신은 뺨을 붉혔다.
히트가 끝나서? 그 덕분에 이성이 돌아와서?
아니었다. 유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닉을 밀어 낼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살피듯 바라보는 유신을 향해 닉이 마주 웃었다. 사심 없이 들떠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은 어딘가 태평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게 좋을지도 몰랐다. 실은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하아, 윽.”
히트 중과 비교해 확실히 덜 유연하고 덜 젖어 있는 유신의 엉덩이는, 닉의 커다란 성기를 버겁게 물었다.
“유신, 괜찮아?”
“응, 좀 더 세게.”
하지만 유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닉도 히트 때와 차이를 느끼고 있을 텐데도, 전혀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흥분되었다. 배 속을 가득히 채우는 그의 굵은 성기가, 제 말에 좀 더 단단해지는 것이 버거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