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58화 (58/96)

〈 58화 〉 새터 1일차 끝

* * *

"아아... 너무 피곤해..."

"고생하셨어요 언니."

우리반이 1등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써버려서 금방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다.

'이 몸은 겉으론 멀쩡한데 술도 약하고 체력도 영...'

병원에서 깨어난 이후로 아름이랑 같이 다니면서 몸을 쓸일이 없었으니 체감하지 못했던 단점...

지금 나는 체력이 너무나 부실했다.

그렇다고 추운 요즘에 운동하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은 이렇게 사는걸로...

"아름아 입에 맞니?"

"네 뭐 그럭저럭? 솔직히 맛있지는 않지만 못먹을 것도 아니라."

학식을 먹으러 갈까 하다가 굳이 아름이랑 그 거리를 걸어서 우리학교 학식따위를 먹여야할까 싶었기에 가까이에 있던 서O웨이에서 때우기로 했다.

"실장님이 이건 봐주시려나...?"

"이정도면 뭐... 샌드위치인데 괜찮죠."

점심때 너무 간곡히 부탁하셔서 앞으로 아름이의 식사가 부실해지지 않게 내가 잘 챙겨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겨버릴 정도였다.

몸의 피로가 일정 정도를 넘어버려서인지 배가 조금 고파오다가 오히려 식욕이 별로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단 늘 먹던 메뉴로 주문은 했지만 당장 땡기지는 않았기에 앞에 둔채로 아름이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감상한다.

가게 앞에서 그냥 프랜차이즈 샌드위치를 먹는데도 한입 먹고 내게 말을 건넬 때마다 반듯하게 접은 냅킨으로 입가를 훔치며 혹시 음식이 묻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그녀는 아까 나랑 같이 컵라면을 익혀먹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아 되게 귀티난다 너..."

"네? 아... 음... 딱히 의식한 건 아닌데... 헤헤..."

약간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아름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휴대폰이나 하기로 했다.

[오늘자 K­공대 레전드]

[새터 1반은 진짜 전설이다...]

학교 에타가 아까 새터 시작할때 있었던 일로 시끌시끌했다.

아무래도 새내기들이 에타를 많이 사용하는 영향도 있었겠지만 HOT 게시글로 올라간 이야기들은 대부분 내 이야기였다.

"아름아 이거 봤어?"

"어떤거요? 어머, 다들 언니 얘기 뿐이네요. 벌써 K­공대 연예인인데요?"

"놀리지마... 이런거 힘들어 하는거 알면서..."

원래의 나였다면 부담스럽고 싫은 감정 뿐이었겠지만 놀리듯 말하는 아름이의 말을 듣고보니 확실히 좋아해주거나 칭찬하는 말도 있어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오늘자 새터 1반 대표 착장 분석]

에붕이들 ㅎㅇ~ 지금 다들 새터 제로투녀(1반 대표) 때문에 핫하던데 입은 옷들에 대해서 찌라시가 많아서 정확히 분석해옴.

'보통은 이렇게까지 개인 특정이 되는 글은 잘 안올라오는데... 이럴 정도인가?'

댓글들을 보면 다 내가 잘 노는 슈퍼리치인 줄 알고 있던데 뭐 내가 나서서 오해를 풀 필요는 없으니까...

에타도 볼만큼 봤겠다 요즘 무슨 일이 핫한가 싶어 실검 순위를 보는데 또 익숙한 이름이 있다.

정하은 대학

K­공대

정하은 K­공대

정하은 고등학교

...

'정하은이 유명인은 유명인이구나.'

정하은의 영향력이 확실히 있는건지 언론들은 K 공대와 정하은에 대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K­공대의 교육방식이 세기의 천재로 주목받던 정하은과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거나 해외 명문대학이 아니라 국내 대학으로 진학한 것에 다른 메세지가 담겨있는지 해석이 엇갈린다라거나.

'이런게 진짜 연예인이지...'

부러움 보다는 놀라움 이라는 감정일까.

사실 아름이도 내 앞에서 이렇게 샌드위치 먹고 있는게 어색할 정도로 다른 세상 사람이지만 정하은은 나도 미디어에서 자꾸 접했으니까 그 체감이 훨씬 컸다.

아름이가 얘기한게 지어낸 소리들은 아닐테니까 확실히 조심해야하긴 하겠지만.

관련 인터넷 기사들을 쭉 내리다가 아까 에타에서 봤던 내 사진이 보여서 클릭해본다.

[도넘은 대학문화, K­공대 새터는 금수저들 유흥파티?]

에타 글을 퍼간 것 같은 기사 내용은 대박이다, 쩔었다 같은 에타 반응과는 다르게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공계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과학기술원에 정하은이 입학하고, 새터에서는 보통의 대학생들은 꿈도 꾸지 못할 명품을 걸친 학생이 보인다는 내용.

술 없는 건전하고 안전한 새터를 지향하는 척 하지만 반별 장기자랑부터 여학생들을 무대 위로 올려보내 야한 춤을 추게하는 저질스러운 대학문화를 2021년의 오늘날에도 행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팩트를 조금씩 비틀어놨네.'

정하은 때문에 취재차 온 언론이 많아서 그랬을까, 어느정도 블러 처리는 되어있었지만 무대 위에 있는 내 사진 다음에 올라온 사진은 나와 아름이가 아름관 계단 앞에 있는 모습을 멀리서 찍은 것 같았다.

불쾌했다.

악의가 대놓고 드러나는, 실제로 현장을 보았다면 100명 중 100명이 내용이 허구임을 알아차리겠지만 제대로 모르는 대중들이 기자가 의도한대로 오해하기 너무나 쉽게 만들어 놓은 글들.

조금 부담되면서도 아름이한테 언니 같았을까 하는 마음에 뿌듯함이 올라오던 것이 싸늘하게 식는다.

"언니 왜그러세요?"

'아, 표정에 티가 났나보네...'

"아니야. 피곤해서 좀 찡그렸는데 괜히 걱정시켰네. 하암~ 다 먹었어? 슬 갈까?"

"네, 다먹었긴 했는데... 진짜 별일 없으신거 맞죠?"

"그럼~ 여기 와서 일 생길게 뭐 있다고."

아름이는 조금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두번 세번 괜찮다고 말하니 넘어가주었다.

그녀와 손을 잡은 채 저녁 이후 프로그램이 있는 강당까지 천천히 걸었다.

"빨리 가요 언니 이러다 늦겠어요, 흥..."

나보다 한걸음씩 앞서가던 아름이는 답답했는지 볼을 부풀린채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말한다.

해가 빨리 져 내려앉은 어둠 탓에 가로등 불빛에 따라 달처럼 모양이 변하는 그녀의 뒷모습.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을 그녀가 원했던게 이런 캠퍼스 생활이라는게,

그리고 그런 이상을 같이 걸어나가고 싶은 사람이 나였다는게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게 느껴져 혼자 감상에 젖어있다보니 자꾸 걸음이 늦어졌나보다.

"미안. 빨리가자."

"동아리 공연이라 앞에서 보고싶단 말이에요."

"알았어, 가자가자."

...

...

"...일어나셔요 언니..."

"...응?"

"공연 끝났어요, 방으로 가죠 언니."

'?'

분명 아름이랑 같이 강당에 들어왔고, 반별이 아니라 자유석이었는데 뒤쪽 자리밖에 없어서 아름이가 화냈던 것까지는 기억이 있다.

첫 공연이 모던 락 밴드였던것 같은데...

"잠이 덜깨셨나요?"

아무래도 쭉 자버린 것 같다.

"으어헝? 어. 으. 끝났어?"

"네. 이제 오늘 일정도 끝이에요."

"깨우지... 미안, 처음부터 자버렸네."

"아뇨. 공연은 다 봤는데 미안하실게 뭐 있어요. 또 너무 곤히 자셔서 제가 안깨운건데요 뭘."

입가에 침자국을 대충 닦고 아름이랑 또 다른 새내기들의 흐름을 따라 기숙사 까지 간다.

"진짜 잠온다..."

"언니 부산 사람은 부산사람인가보네요. 졸린다 안하시고 잠온다 하시는거 보면."

"아.. 그렇게 되나? 근데 졸린다 보다 좀 더 피곤한게 잠온다 같은 느낌인데... 아 모르겠다. 빨리 자고싶어..."

"다왔어요. 계단까지만 화이팅! "

방에 도착해서는 진짜 몸을 던지듯 침대 위에 누웠다.

아름이가 밤에 나랑 해주니 안해주니 벌이니 하던 내용은 생각조차 나지 않고 우선은 이 몰려오는 수면욕이나 채워야겠다.

"안씻고 주무실거에요? 세수랑 양치만 하시죠?"

"으으... 너무 힘든데..."

"어서요..."

아름이한테 반쯤 업히듯 기대서 세면장까지 도착한다.

"선배 아~"

"아~"

양치도 아름이가 시켜주고 세수도 아름이가 씻겨주니 어린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자, 다 씻었으니까 뽀뽀."

"미안 아름아 너무 피곤해..."

내가 피곤해하니 아름이가 나를 눕힌 뒤 내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내일 봐요. 제 꿈 꾸시고요."

"으응... 잘자..."

...

선배는 1분이 채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어제 그렇게 격렬한 밤을 보내고 오늘 신경도 많이 쓰였을테니 피곤할 법도 하다.

"선배, 언니, 선배, 언니, 선배, 언니..."

역시 언니도 좋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건 선배로 부르는 쪽이다.

대신 언니라고 부를 때는 선배와 자매가, 혹은 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어 언니라고 부를 때 마다 기분좋은 간질간질함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다.

"선배랑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이러다 행복해서 죽어버리면 어떡하죠...?"

그럴 리 없어야 되겠지만 혹시 언니가 죽는다면, 혹은 내가 죽는다면 둘이 같이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

정연이 없는 내일에 나 혼자 살아있는 건 내가 죽는 상상을 하는 것보다 더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내일에 그녀 혼자 두는 것도...

진짜 사랑이라면 정연이 행복하게 꿋꿋이 살아가기를 바래야 되겠지만 내가 볼 수 없는 그녀의 미소와 행복이 내가 없는 세계에서 만들어지는게 싫었다.

"참 나쁜년이네요 저..."

정연이 잠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슬쩍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원칙적으로 새터까지는 새내기들한테 일이 생기면 프락터가 책임이 크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나면 꼭 기숙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지아가 강조하기는 했지만, 이건 그것보다 큰 문제였다.

정연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그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지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실전에 강한 편이니까...

시간에 맞춰 기숙사 앞에 도착한 김실장과 같이 정연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건물로 향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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