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57화 (57/96)

〈 57화 〉 미궁탈출 (3)

* * *

음... 여기 자꾸 내 꼴이 어떤가 모습이 어떤가 하는거 보면 무슨 형태에 대해 하는 말인거 같긴 한데 그죠?"

"그치...?"

"처음엔 일정에 대해서 생각했었는데 형태를 나타내려면 우리가 알만한 거여야 되니까 K 공대에 대한 엄청 복잡한 요소난 아닐테고.

오늘 미궁하기 전, 그러니까 밥먹기 전에 했던게 반장 뽑는거랑 캠퍼스 소개밖에 없어서 동선이라고 생각했슴다!"

상당히 일리있다.

장소 하나하나에 너무 집착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새내기들은 확실히 아직 건물별 특징 같은 걸 알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아까 PPT에서 썼던 K 공대 맵에서 이 일기 주인의 동선대로 점을 찍어요.

기숙사에서 시작해서... 정문에서 근로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지금은 파팔라도라고 했으니까 오른쪽 끝으로..."

점만 찍으니까 아직 두드러지게 뭐가 보이지 않는 느낌인데 8자 같기도 하고...

"진규야, 답이 8이니...?"

"음... 아마 '&'인거 같아요. 이게 길을 따라 선을 긋지 말고 조금 부드럽게 직선, 곡선으로 이으면 마지막에 파팔라도에서 끝나는게 &인거 같은데요?"

­오오~!

반 아이들도 진규의 풀이가 이해가 됐는지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 답은... &..."

다음 페이지가 열렸다.

...

...

두번째 문제 이후로도 반이 하나가 되어 생각보다 빠른속도로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문제가 빨리 풀렸다는 건 그만큼 내가 밖에 나가야 했던 일이 많았다는 소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중간에 한번 말고는 다 맞는 장소가 답이었다.

'아까 도서관이 답이라고 했던 거 누구였지... 그거만 아니었어도 훨씬 편했을텐데...'

첫 문제부터 느꼈지만 확실히 정해진 룰을 찾는 문제나 수학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에서는 아름이가 압도적인 속도로 답을 찾아내면서 우리 반이 빠르게 내용을 진행하는 데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계속 나갔다 들어왔다를 하면서 힘들었기 때문에 아름이 옆에 앉아 엎드려 있으니 아름이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준다.

쪽...

"헤헤..."

"언니 오늘 고생 많이 하시니까 작은 상이에요."

"고마워."

아름이한테 길들여지는 느낌이 자꾸 들지만 기분탓이겠지.

"1반~ 벌써 마지막 문제야."

확실히 빨리 풀기는 했나보다. 벌써 마지막 문제라니.

일정표에 할당된 시간으로는 아직 한시간 정도나 남아있었다.

"빨리 풀면 다음 일정 전에는 쉬어도 된다니까 얼른 풀고 화이팅 하자!"

지아선배도 처음엔 그저 잘 노는 언니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날카롭고 지적인 면이 있었다.

시나리오는 대충 봐서 자세한 내용은 못봤지만 대충 처음 강의실에 갇혔다가 암호랑 카드키를 열어서 아무도 몰랐던 지하시설의 존재를 알게되고 따라붙은 추적자들의 추적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다 얻은 보물상자의 마지막 자물쇠 열쇠를 찾는 그런 내용이었다.

'얘들 전문으로 이런걸 만드는 애들이 아니다 보니까 전개가 좀 엉성한 것 같은데...'

사실 어찌되든 별 상관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문제]

8(1)60240

9(2)33400

0 6 (3)

1 5 (4)

(1)+(2)+(3)+(4) = ?

'또 숫자 퍼즐이야?'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15개 정도 되는 미궁 문제들을 풀어오는 동안 내가 해결한 문제는...

아니 사실 나야 새내기들이랑 있어서 그렇지 원래 4학년 나이고, 갑자기 몸도 이렇게 돼서 호르몬이라던가 신경계라던가 뭔가 집중하기 어려운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테고, 새내기때의 설렘을 조금 잃어버렸달까? 본질이 아싸인지라 맞추더라도 앞에 나가서 애들 앞에서 발표할 생각하면 힘든 느낌인데 내가 안풀면 아름이가 그만큼 풀 확률이 높아지니까 고양이귀 후드를 입은 아름이가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걸 듣는게 나도 더 이득이고 왜냐면 아름이는 귀여우니까...

전부 변명이다.

멍청해서 하나도 못풀었다.

설명을 몇번씩 해줘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는 문제도 있었는데 마침 내가 임시반장이라 답이 장소면 나가야 하니까 나가야 돼서 풀이를 다 못듣고 나가는 척도 한두번 했다.

'나는 왜이렇게 빡대가리 인걸까...'

아름이한테 항상 자랑스러운 언니이고 싶은데...

아름이보다 똑똑한건 힘들겠지만 그래도 아름이가 내가 멍청해서 같이다니면 쪽팔린다는 소리는 안나올 정도의 수준은 됐으면 좋겠는데...

'사실 나는 남들 부모 잘만나서 공부만 할 때 여러 악조건에 있었으니까...

애초에 같은 출발선이 아니었잖아...

아름이도 봐줄거야.

이런거 하나 못한다고 아름이가..'

뭔가 잘못됐다.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던 무언가가 또다시 묵직하게 기분나쁜 감정을 목구멍까지 밀어넣고 있었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온다.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돌아가는게 오늘 피곤하긴 한가보다.

어제 술도 마셨고 정하은이랑도 계속 마주치고, 신경이 쓰일 일이 많아서 그런지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

기분나쁜 검은 감정들을 다시 구석으로 밀어넣고 문제나 쳐다보기로 한다.

8 9 0 1은 끝까지 가서 다시 0부터 하는건가...

60240이랑 33400이 있으니 아마 세로로 묶이는 건 아닌 것 같다.

8과 (1) 60240이 관계가 있다고 봐야겠지.

60240...

원가 익숙한 숫자다.

비밀번호, 생년 월일 그런건 아닌데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내가 기시감을 느꼈으니 아름이가 곧 풀어주겠지.

나한테 어디서 봤다 싶은 숫자 조합이라면, 아름이는 분명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름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반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겠지.

잠깐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빠졌지만,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란 것을, 영화 속 천재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빛날 수 있게 옆에서 멍청하게 놀라고 있으면 되는 범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꽤나 쉬운 일이다.

이미 그런 좌절을 장짤을 당하면서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다시금 자각시킬 필요도 없었다.

...

"혹시 알겠는 사람...?"

생각보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도 답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식으로 푸는거다, 저런식으로 접근하면 방향이 보인다 하는 얘기라도 할 법한데 조금 이야기가 나오다 끊기고 또 조금 이야기가 나오다 끊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되게 안풀리네 마지막꺼...'

"강진아 12반도 마지막 문제라는데?"

지아선배가 약간은 초조한 느낌으로 강진선배에게 소근거린다.

직전 문제가 답 제출 후 프락터들과 진행팀이 있는 단톡에 포즈 맞추고 단체사진 올리기였어서 다른 반이 사진을 올리면 우리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12반이면 정하은이 있는 반이네.

엄청 압도적인 차이를 벌려놨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마지막 문제에 가로막힌 사이 따라잡히고 말았다.

"으으... 왤케 모르겠지? 이거 그냥 숫자 전부 인터넷 검색 할까?"

"아냐 지아야.. 반별로 친해지라고 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렇게 해서 할 거 까지는..."

그렇게 안봤는데 엄청 승부욕이 강한 타입인가보다.

처음에는 프락터들이 먼저 문제 직접 검색 같은건 하지말고 하자고 그랬었는데...

"아름아 모르겠어...?"

답답한 표정으로 한참을 찡그리고 있는 아름이가 안쓰러워서 볼을 부비며 옆에 기댄다.

"아씨... 도저히 답이 안보여요... 자릿수? 패턴? 대칭? 어떤 연산으로 저게 만들어지는지 원리를 전혀 모르겠는데..."

아름이가 모를 정도면 내가 쳐다봐도 별 소용이 없을 거 같긴 한데.

새프디들이 문제를 만들었을텐데 아름이조차, 그리고 이 반의 누구도 제대로 원리를 파훼하지 못하는 수학 퍼즐을 갖다놨을까?

다시 문제를 쳐다본다.

[마지막 문제]

8(1)60240

9(2)33400

0 6 (3)

1 5 (4)

(1)+(2)+(3)+(4) = ?

60240...

저 숫자가 유독 눈에 밟힌다.

6= 0+2+4+0?

아니야 너무 억지스러워...

8은 뭘까 곱일까? 근데 그렇게 하기에는 33400은 9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수다.

60240...

그 절반은 30120, 다시 절반은 15060, 그 절반은 7530...

어?

7530도 뭔가 자주 본 적 있는 숫자다.

7530, 60240, 3번 2배, 8배...

"아!"

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소리쳤는데

온 반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정연아...? 어디 찧었니? 다쳤어?"

앞에 서있던 강진선배가 놀란눈을 했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뇨.. 그 답을 찾은 거 같은데, 아 정확히는 답은 아니고 풀이? 근데 맞는 거 같아서..."

부끄럽다.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처음에는 놀랐다가 내가 횡설수설하며 답을 찾았다고 하니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서 쪽팔림이 올라온다.

"풀어볼게요...?"

'하필 마지막 문제가 이런거였네...

아름이가 절대 모를만 하지.'

"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이게 정산표? 장부? 그런 느낌으로 보면 돼요.

방금 떠오른건데, 60240이 자꾸 눈에 밟혀서 8로 나눠봤는데 7530이더라고요?

근데 7530도 익숙한 숫자라서 보니까 18년도 최저시급이에요.

검색해보니까, 아. 이것도 룰 위반인가? 근데 맵 검색정도도 됐으니까 이것도 키워드를 연도펼 최저임금으로 검색한건 봐줄 것 같은데...

아무튼, 19년도 최저시급은 8350원, 그래서 33400은 최저시급으로 4시간 일해야해요.

그래서 (1)은 8, (2) 는 4.

이렇게 하면 0 1 옆에도 쉬운데 18 19년 다음에 20 21년도 일테니까, 20년도 최저시급으로 6시간을 일하면 51540, 21년도 최저시급으로 5시간을 일하면 43600이에요.

전부 더하면 95152.

맞는거 같지 않아요...?"

­와...

­저게 어떻게 보였대?

­최저시급을 떠올리는 거 자체가 대박인데?

[미궁탈출 엔딩 영상]

­갓정연! 갓정연! 갓정연!

­역시 반장~ 믿고있었다구~!

­와~!!!!!

­미쳐따도라따 미쳐따도라따!

다들 엄청 놀라는 눈치로 쑥덕거리다가 강진이 최종 답을 입력하고 엔딩 영상이 나오기 시작하자 모두들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 막 대학 온 애기들아 니들은 모르겠지만 이 형은 이세계에서 이미 장짤을 한번 메꿔 봤단다...'

뭔가 씁쓸하면서 흐뭇해지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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