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미궁탈출 (1)
* * *
[K공대 새내기 새로배움터1일차 프로그램]
미궁 Prelude
...
K공대 새로배움터에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당신은 반별 프로그램이 있다고 안내된 창의학습관 강의실로 가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철컹!
당신이 강의실 중앙에 들어오자 당신이 들어온 강의실 문이 닫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당신을 감싸고 있다.
"...왔..구..나..."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모르겠는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당신은 움찔한다.
"...컴퓨터...안에..."
당신에게 뭔가를 전하려던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는 문장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로 바람새는 소리가 되어 흩어진다.
방금의 목소리가 말해준 내용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당신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강의실 앞 발표용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컴퓨터 전원이 켜지며 모니터에 불빛이 들어왔지만, 암호가 걸려 있다.
모니터 옆에 작게 쓰여진 메모를 발견한 당신은 이 메모가 로그인을 위한 암호를 가르쳐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1번문제]
오오~
엄청 깊이가 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의 시작이었다.
"KP전(K공대 P공대 교류전)에 이런 비슷한 이벤트가 열렸던 것 같은데. 재밌겠네."
사실 나는 이런 문제를 썩 잘푸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퍼즐이나 수수께끼에 관련된 것들을 좋아하기는 한다.
방탈출은 친구가 없어서 못해봤지만.. 크흠...
아름이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타오를듯한 눈빛으로 강의실 앞 스크린을 보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 1반, 이거 문제 답안을 입력해야 넘어가는게 있고, 조건에 맞는 활동을 반에서 해야하는 게 있대. 잠깐만.."
강진은 휴대폰을 확인하며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을 설명해주었다.
"1번같은 경우는 밑에 Action Place 라고 써있는데, 이건 반별 대표 한명이 정답에 해당되는 장소로 오면 되는거래. 뒤에 다른 거 나오면 또 설명해줄게."
아직 문제도 제대로 못읽었지만 내가 나갈 일이 있어보였다.
"아, 정연아 그, 장소에 가면 안내해주는 새프디가 있거나 QR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을거래. 그걸 찍어서 오거나 새프디한테 뭘 받아오면 되는 것 같아."
"네."
"문제 답 알겠거나 어떻게 푸는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앞에 화이트 보드로 가서 설명해주기~"
네~
[1번문제]
qgjdgfjaJa>
`xnsqhsrbeksjc
단 두줄로 이루어진 1번 문제.
시작부터 난해한 문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흐으음..."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문제가 뭘 묻고 있는거지?
문제가 2줄짜리인가? 아니면 암호로 서로 다른 내용 2줄이 적혀있는 건가?
나만 머리가 하얘진건가 싶어서 뒤에 있는 우리반 애들을 슥 둘러보니 전체적으로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1번부터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거야?'
"강진선배.."
"응? 정연아 왜?"
"이거, 프락터들은 답을 알고 있는 거에요?"
혹시 너무 어려워하면 도와주기 위해 프락터들에게만 제공된 힌트 같은게 있을까봐 살짝 찔러본다.
"아니? 우리도 같이 풀어보라던데? 이거 문제 만든 애들 중에 친구가 있긴 한데 안가르쳐주더라. 일정표보면 반별프로그램이라고 되어있는 시간이 꽤 있는데 그게 다 이거라서 좀 걸릴거래"
"아..."
앞에서 웃으면서 우리를 보고있는 강진도, 뒤에서 같이 미간을 찌푸리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지아도 별 수 없나보다.
"강진선배!"
내 뒤에서 어떤 남학생이 손을 들며 강진을 불렀다.
"이거 문제 앞에 나오는 시나리오도 문제랑 관련이 있는거에요?"
"음... 잘 모르겠는데 한번 물어볼게.
...
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너무 문제가 어려우면 시나리오를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라는데?"
흠...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무난한 인트로 인 것 같은데...
"아."
옆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고 있던 아름이가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다.
"아름아, 답을 찾은거야?"
"네 언니. 거의 확실한 것 같은데... 제가 가르쳐드릴테니 언니가 앞에서..."
"강진선배, 아름이가 답 찾았대요!!"
침착하게 내게 문제 풀이를 설명해주려던 아름이의 눈이 커지며 흔들린다.
"아.. 아니..."
"정말? 아름아 나와서 설명해줄래?"
"그.. 그게..."
나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아름이도 그만큼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했던 것 같았기에 이번에는 내가 조금 놀려줄 마음으로 선수를 쳤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닌데 뭘."
급 소심모드가 된 아름이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어 머리를 쓰다듬고 손등으로 아름이 볼을 문질러준다.
"알았어요..."
'고양이귀 후드랑 소심모드 아름이는 너무 잘어울리는 조합인데? 한번씩 놀려먹어야하나...'
아름이는 총총 걷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작은 몸짓으로 화이트 보드로 나갔다.
오오~ 벌써?
야, 1번 벌써 풀었대, 들어바바.
반 아이들도 난해한 문제의 답을 벌써 찾았다는 이야기에 놀라며 강의실 앞을 주목한다.
"그.. 시나리오에 컴퓨터 암호에 대한 메모라는... 그 부분에서 힌트를 얻어서..."
(아름아..! 조금만 크게..!)
강의실 뒤까지 전달되기에는 목소리가 작은 것 같아 옆에서 살짝 속삭인다.
"흠,흠.. 앞에 시나리오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컴퓨터 암호라고 되어있어서. 그럼 키보드 자판으로 뭔가를 입력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에..."
키보드 자판?
문제에 소문자가 많아서 한영을 바꾼건가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다른 건 줄 알았는데...
"제목이 'qgjdgfjaJa>' 잖아요. 이거 자체는 의미를 찾기 어려워서 우리가 보통 쓰는 qwerty로 옮겨서 생각을 해봤는데, 우로 한칸씩 옮겼을 때 말이 되더라고요."
'우로 한칸...?'
우로 한칸이 무슨 뜻이야?
뒤에서도 이해가 잘 안됐는지 질문을 한다.
"어.. 오른쪽으로 한칸, 그러니까 q는 w로, w는 e 로, e는 r 로 옮겨서 읽었어요."
아...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지만 키보드 배열을 전부 외우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자판을 열어봐야 어떻게 푸는지 알것 같다.
"그렇게 옮기면 제목은 '좌로한칸?' 이 돼요. Shift키는 넓어서 왼쪽으로 옮겨도 Shift로."
와... 미친.. 대박인데?
뭐라고 뭐라고? 못들었어.
쿼티 자판에서 옆으로 한칸씩 옮기면 말이 된대.
"제목에 좌로 한칸이란 말은 아마 원래 뜻에서 좌로 한칸씩 옮겨서 써놨다는 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오른쪽으로 한칸 옮겨서 해석한거고요.
같은 방법으로 아래에 써있는 것도 옮기면 '1층정수기앞' 이에요"
설명을 마친 아름이는 화이트 보드 앞에서 얼굴이 약간 분홍빛이 된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서있었다.
'어... `가 1이고 x가 ㅊ이니까...'
설명을 다 들었음에도 자판 위에서 한칸 옮기고 다시 한영을 바꾸는 것은 머리로 쉽게 되지 않았다.
"아름아, 비슷한 문제를 봤었어? 종이랑 폰도 없이 어떻게 푼거야?"
우리 앞에 서있던 강진도 다른 도구 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던 아름이가 바로 풀이와 답을 가져오니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 이런 문제를 본적은 없는데 그냥 자판 위에서 할 수 있는 변환 몇가지를 머릿속에서 해보다보니..."
'아름이가 보통 똑똑한게 아니긴 하구나...'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더욱 직관적으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야 너는 저게 머리로 되냐?
됐으면 수학과 간다고 했지.. 대박이네 진짜...
나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데, 자판에서 어떻게 민다는 거야?
뒤에는 감탄하고 있는 사람이 반, 옆에 앉은 친구한테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이 반정도 돼보였다.
"와..."
"언니."
"어, 응? 왜?"
"다녀오셔야죠."
'아 맞다.'
1번 답이 장소라 정해진 곳에 가서 답을 알아와야 하는 거였는데 잠깐 잊고 있었다.
"금방 다녀올게요~"
강의실을 나서서 정수기를 찾는다.
"1층에 정수기가 어디에 있더라~ 엘리베이터 옆이였나~"
창의학습관에서 강의를 들은지가 꽤 되어서 구조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문제를 풀고있던 강의실이 1층이어서 조금 돌아보다 정수기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있네."
"그러게요. 여기 계시네요."
"에? 엌! 후. 휕!"
내 혼잣말에 대답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인기척을 못느끼고 있다가 바로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며 의미 불명의 소리를 뱉어냈다.
"왜그렇게 놀라시나요 언니."
뒤에서 누가 나왔어도 놀랐을텐데 정하은이 나와서 두배로 놀랐다.
"사람 놀라게 왜 소리를 안내고 다니냐..."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은 없는지 헤실헤실 웃고만 있는 그녀.
"엄청 빨리 푸셨네요. 1번 꽤 어려웠는데, 언니가 푸셨어요? 아름이가? 아니면 1반에 다른 애가 풀었나요?"
"아ㄹ... 아니지, 꺼, 꺼져...!"
아름이가 풀었다고 곧이곧대로 말해주려다 정하은을 조심하라고 아름이가 수도없이 강조했던 것이 떠올라 거리를 둔다.
'백화점이랑 무대에서의 일로 이미 2아웃이야... 조심하자...'
내가 그래도 나름 칼같이 반응하려고 한게 웃긴지 피식한 그녀는 됐다는 듯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저도 가야되니까 나중에 봐요~ 다음에는 조금 다정하게 해주세요. 저도 상처입는다고요~"
그녀를 무시하고 정수기로 가니 옆에 있던 새프디가 카드를 준다.
"몇반이야?"
"1반이요."
"오~ 1반도 1등 노려볼만 하겠는걸? 아직 아까 온 애랑 너희반 둘밖에 못풀었어. 화이팅!"
"네.. 화이팅!"
새프디가 준 카드를 들고 우리 강의실로 돌아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