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52화 (52/96)

〈 52화 〉 첫 싸움 (2)

* * *

"네, 알았어요..."

아름이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반의 여학생 무리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너무 심하게 말했나?

그냥 내가 미안하다고 할걸...'

차라리 아름이가 나를 혼내거나 더 당당하게 내 잘못이라고 이야기해줬으면 마음이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텐데.

내가 그녀에게 이런식으로 답할 줄 모르긴 몰랐나보다.

내 말을 들은 후 눈치가 없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축 처진 텐션의 그녀.

"으으..."

괜히 답답한 마음에 재킷을 펄럭이며 속에 바람을 넣는다.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이 가슴 속에서 반쯤 응어리진 기분 때문에 열이 나는 것만 같다.

툭.

재킷이 펄럭이다가 작은 검은색 물체가 떨어져나왔다.

'이게 뭐지?'

손가락 한마디정도의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무언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것 같은 외부는 매끈하게 닫혀있었다.

기계 부품? 악세사리?

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한쪽 면이 살짝 끈적이는 것 같아서 그냥 버리기로 한다.

'어쩌다 저런게 붙었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름이와 다른 동기들은 꽤 멀어지고 있었다.

...

...

"후우... 후우...

원래도 운동부족인데 이 몸은 더 최악이네 후우..."

꽤 멀어졌다고 해도 뛰어서 못잡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프락터와 다른 여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갔고 기숙사에 올라가는 계단 앞, 아름이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 계단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아름이의 옆모습은 패션 화보에 담겨도 될 정도로 귀여우면서도 그윽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듯한...

'조금 슬퍼보인다...'

"오셨어요?"

"어, 응..."

심하게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툼이라면 다툼일 언쟁을 하고 난 이후여서일까,

아름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나 기다려준거야?"

뻔한 질문이지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실없이 물어본다.

"당연히 언니를 기다린 것도 있고, 생각할 것도.

언니는 원래 캠퍼스에 계속 계셨었잖아요. 여기서 생각나시는거 없으신가요?"

'여기서' 라니

애초에 원래 남자였던 나는 여학생들이 쓰는 기숙사인 아름관과는 연이 전혀 없었다.

1학년 남학생들이 쓰는 소망관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기는 한데...

역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우리 학과 건물이 서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새내기 1년이 끝난 이후에는 아예 여기보다 남쪽에 위치한 기숙사를 쓰기도 했고.

"미안, 잘 모르겠네."

"아니에요. 그냥 한 소리였어요."

아름이는 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한 나는 굳이 억지로 단어를 쥐어짜내지 않고 그냥 그녀 옆에 서서 슬며시 손깍지를 낀다.

...

그렇게 아름이랑 새롭게 배정받은 방에 입사를 완료했다.

아름관 417호.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1층이 더 편하겠지만, 1층은 기숙사 옆을 지나는 사람들한테 방 안이 보일 수 있다는 기분에 괜히 찜찜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2 3 4층은 사실 엄청 차이가 있지도 않고.

4층 끝쪽 방부터 새내기들이 반별로 들어가는 형태.

방의 옷장과 책상 위에는 이미 아름이가 김실장님이나 다른 직원분들을 시켜서 옮겨놓은 것 같은 옷과 짐들이 있었다.

"어디보자~ 좀 편하게 입을 옷이~"

여전히 분위기는 살짝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았기에 괜히 소리를 내며 옷을 찾는다.

"아O다스 츄리닝을 입어볼까요~'

사실 지금 옷이 그렇게 엄청 불편한 건 아니지만 아까 주목을 받아서 그런지 이 수트를 그대로 입고 반별 프로그램을 하러가기에는 심히 부담스러웠다.

재킷이랑 바지를 벗어서 잘 걸어두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시계는 어떻게 하지...?'

아까는 무난하고 수수하게 보였었는데 가격을 듣고나니까 디테일한 명품처럼 보인다.

그래도 아름이가 처음으로 커플템이라고 선물해준건데 왠만하면 차고다니고 싶다.

'아름이처럼 소매 안쪽에 올려서 차면 별로 눈에 안띄겠다.'

손목부분이 많이 넉넉한 아름이의 후드티랑은 다르게 트레이닝복 소매 부분은 조금 타이트해서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지만 이정도면 괜찮다.

"가시죠 선배."

"어.."

휴대폰을 보니 슬 준비됐으면 1층에서 모이자는 프락터의 톡이 와있었다.

...

1층으로 내려가 아름이와 반 친구들과 함께 반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창의학습관으로 간다.

"여기 면접때문에 왔던 친구들도 있겠네?

새내기때 듣는 기초필수 과목 중에는 창의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강의가 많아.

실험과목은 또 자연과학동이나 학과별 건물에서 하기도 하는데, 아마 대부분은 이쪽.

자주 오갈 길이 될거야."

여자 프락터인 김지아는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내가 원래 18이니 나보다 후배긴 하지만, 지금은 선배라고 해야지 뭐.

그나저나 옆에서 말 없이 같이 걷고 있는 아름이가 신경쓰인다.

아름이가 아까처럼 내게 더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풀린 것도 아닌 것이,

평소같았으면 옷을 갈아입거나 할 때 괜히 나를 껴안거나 어루만지거나 냄새를 맡는다고 그랬을텐데...

방금의 아름이는 그냥 옆에서 얌전히 기다리다가 공지를 보고 나가자는 이야기만 했다.

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런 아름이가 좋은...

'아니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아름이가 나와 밤에 섹스를 하지 않는 걸 내게 주는 벌로 생각하고 하겠다고 했다.

몸이 이렇게 되기 직전부터 지금까지 아름이랑 몇번이나 뜨겁게 사랑을 나눴긴 했지만, 대부분은 아름이가 나를 원한 것이다.

아름이가 반 농담조로 사실 자기 첫키스는 내가 아니라 내가 잠든 사이에 목 깊은곳까지 빨았던 내 자지라고 했던 이야기도 그렇고.

어차피 결국엔 내가 아름이를 원하겠지만 그 기다림이 너무나 힘들다며 자신에게 육체적 사랑이라도 꾸며내면 돈을 주겠다고도 했었다.

원래 아다였던 시간이 길어서 처음에 되게 민감하고 자극적으로 느꼈긴 하지만...

나는 늘 별로고 부끄러워하는데도 수시로 나를 만지려 드는 쪽은 아름이니까, 나보다는 그녀가 훨씬 참기 힘들 것이다.

'나는 아름이가 억지로 안하면 오히려 좋지 뭐.'

그녀가 정말로 나를 미워한다면 그건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세상이 무너져내릴것만 같은 기분이겠지만, 우리 둘다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음을 잘 안다.

그렇기에 이 미묘한 거리감이 남아있기도 한거지만.

저번에 아름이한테 무릎꿇고 몸 구석구석을 핥았던건 일종의 사고, 그래 사고다.

아름이가 내 아랫배를 꾹꾹 누르면서 보지 주변만 만지고 자꾸 애태우니까,

아름이가 내 클리토리스를 집는다거나 보지 위를 쓰다듬기만 하고 자꾸 절정에 이르지는 못하는 애매한 기분좋음을 유지시켰으니까,

그리고 사실 곱씹어보니 내가 너무 못참겠어서라기보다는 정하은때문에 속상해하던 아름이를 달래주려는 의도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아름이가 그런 걸 좋아하니까 어느정도 맞춰준 면이 없진 않달까?

주인님이니, 발정난 암캐니 하면서 아름이 몸을 핥으며 올라갔다가 처녀를 따먹어 달라고 속삭이긴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를 위한 이벤트적인 요소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러니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은 제외하고 본다면 아름이가 나를 원하는 쪽이지, 내가 아름이랑 못한다고 해서 안달나거나 답답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맞춰준거지. 암캐니, 노예니 하는 말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아름이가 매도한다고 그런걸로 흥분하는 사람도 아니니까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반 친구들을 따라걸으니 어느새 창의학습관 앞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네 여기.'

1층의 101호 강의실로 안내를 받고 다같이 들어간다.

남학생들은 준비 시간이 별로 안걸렸는지 이미 도착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 와썹~"

남자 프락터는 강의실 앞에 PPT를 준비하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이름이 김강진이었나?

약간 오타쿠 느낌도 있는 전형적인 공대 너드 스타일인것 같은데 사람은 되게 좋아보였다.

원래 나랑 좀 비슷한 느낌을 느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강의실 중간쪽에 아름이가 먼저 가서 앉길래 나도 빨리 따라가 그 옆에 앉는다.

강의실 자리가 70석은 넘어보이는데 우리는 25명이니 간격을 넓게 앉을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내 앞 뒤 옆으로 다른 여학생들도 따라 앉았다.

'왜이리 붙어 앉으려고 하는거야 얘들은'

나 때문에 그럴리는 없고 그냥 과고때도 봤던 여학생들 특징인가 싶어 그냥 있는다.

내 오른쪽에 아름이 외에도 앞 뒤 왼쪽, 대각선에도 다른 여학생들로 둘러쌓이게 된 상황.

"안녕? 정연이지?"

왼쪽에 앉은 학생이 내게 말을 건다.

아까 무대 위에서 봤던 다른 반 대표들처럼 약간 인싸끼가 묻어나오는 그런 사람.

"어, 안녕...?"

"나는 예림이야, 박예림. 정연이 너 완전..."

그녀는 나를 몇번 본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하여 이런저런 말을 건네왔다.

나에 대한 칭찬과 긍정적인 어조로 대부분 채우면서도 너무 티나지는 않는, 대화하면 기분좋다고 느낄법한 화법.

또 살짝 인싸가 된 듯한 기분에 어깨가 으쓱하다가도 아름이랑 깔끔하게 화해를 못한게 계속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찌른다.

"자, 1반. 이제 1년동안 같이 지낼 새터반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거니까, 점심 전에는 반별로 조금 친해지는 시간이고 오후부터 정해진 프로그램을 할거야.

아까 다들 한번씩은 이야기했겠지만, 나부터 다시 소개할게.

새터 1반 남자 프락터를 맡게된 김강진이고, 19학번에 학과는 물리학과.

동아리는 마술동아리랑 E스포츠 동아리를 하고 있어. 고등학교는 부산과학고. 취미는 음... 게임...?

이정도면 됐겠다.

지아도 할래?"

"나는 여기 있다가 돌아서 내 차례되면 할래!"

내 대각선 앞에 앉아있던 여자프락터는 프락터보다는 진짜 언니같은 느낌인데, 그녀 나름대로 빨리 친해지려는 노력의 형태일까.

지아선배가 새내기들이랑 같은 순서로 하기로 해서 제일 왼쪽 앞에 앉은 사람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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