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새터, 시작~~~~하겠습니다~! (1)
* * *
나는 새로 만든 휴대폰을 확인한다.
같은 번호로 개통 자체는 진작에 되어있었던데 아름이가 지금 내가 쓰는 신분을 쓸 때를 위해서 준비해놨던 걸까.
어제 기억을 잃을 때 쯔음부터 생긴 걸로 보이는 단톡방 두개.
[새터 1반 단톡방]
[새터 1반 공지톡]
새터반... 아 오늘 새터니까 어제부터 만들었나보네.
K공대는 한 학년에 800명 정도 되는 정원을 학과 구분 없이 뽑는 특이한 전형을 가지고 있었다.
엄밀히 법적으로는 대학이 아니라 과학기술원인가 그래서 이게 가능했다나.
아무튼, 학과별 정원대로 딱딱 나눠지는게 아니기에 대학에 갓 진입한 새내기들이 친한 친구를 만들거나 학교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이는 과 동기, 학과 선배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대체해주기 위해 생긴 개념이 새터반이다.
새터부터 시작해서 1학년때 들어야 되는 즐거운 대학생활/신나는 대학생활이라는 이름의 특수 과목들과 여러 행사들을 함께하고 MT, 회식도 함께하는 1년짜리 반.
아마 3학년 이상의 선배를 남자 한명 여자 한명을 프락터라고 붙여줬던것도 같은데...
벌써 9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다.
'어, 오늘 일정이 9시부터 시작 아닌가? 이제 대전에 들어왔는데?'
"아름아..?"
"..."
"아름아...?"
"아, 네 선배. 죄송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아냐, 근데 우리 9시부터 새턴데 늦은거 아니야?"
"괜찮아요. 9시부터 10시는 오리엔테이션이랑 관계자분들 나와서 말씀하시는 거라는데 필수는 아니라서 아마 다른 애들도 많이 안올거에요."
"아..."
"10시까지 도착할테니 괜찮아요."
"응..."
다시 학교를 다닌다니.
아름이랑 함께라면 뭐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기한 기분이다.
'1학년부터 다시라니... 뭐 아싸인건 그대로려나.'
남자로 3년을 다니고 여자가 되어 다시 같은 학교에 들어간다니. 누구한테도 말 못할 마법같은 일이다.
자꾸 바뀌기 전과 후의 나를 구분해서 생각하려하니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하나로 퉁쳐서 대충 살기로 한다.
'이래저래 따져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전부 나니까.'
새내기때 어땠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술은 좋아했지만 사람 많은 자리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아서.
원래도 좀 음침한 히키코모리 스타일인데 새내기때부터 방에 틀어박히다보니 금방 정석적인 아싸테크를 타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이도 눈에 막 띄지는 않아야겠다.
적당히 아름이랑 즐겁게 다니면 되겠지.'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벌써 새터 첫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대강당 앞이었다.
9시 40분이라 여유는 좀 있는데 지금 들어가는 사람들이 좀 보이는 걸 보니 아름이 말대로 앞의 딱딱한 오리엔테이션을 굳이 안듣고 싶은 학생들이 많았나보다.
"선배."
"응."
"저 옷좀 갈아입고 올게요 여기 계셔요."
"응, 다녀와."
"네, 금방 올게요. 히히.."
아름이는 쇼핑백을 하나 들고 건물로 들어갔다.
스커트를 입은 아름이도 좋지만 역시 좀 어색한건가.
그래도 좀 소녀스러워서 좋았는데.
...
"선배~"
잠시 뒤 옷을 바꿔입은 아름이가 건물에서 걸어나왔다.
검은색 고양이귀가 모자에 달려있는 후드티에 슬림하게 딱 달라붙는 청바지.
'고양이귀 아름이...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 기분탓이겠지?'
"어때요, 괜찮아요?"
선배가 가까이 와서 내게 안기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아름이의 목에 있는 검은색 쵸커가 새하얀 아름이의 목과 대비되게 포인트를 주어 더 귀엽게 만든다.
'아아아아... 이거 심장에 너무 안좋아.'
"귀, 귀여워 아름아... 너무너무너무..."
아름이는 어떻게 이렇게 항상 매력적일까.
가끔 무섭게 섹시하고 홀릴듯 예쁜 모습만 해도 푹 빠질 것만 같은데
이렇게 귀여운 모습까지 있으면 흑...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나를 올려다보다니 폭력적이야...
"다행이네요. 선배가 고양이귀 있는 저를 좋아할 것 같았어요."
"응? 왜? 뭔가 본 것 같기도 하고... 흐음..."
"아니에요, 그냥. 네, 그냥요."
어찌되든 상관없지 뭐.
"선배... 오면서 생각했던 게 있는데요."
"오면서...? 어 그래."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동안 아름이도 생각했던 내용이 있나보다.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누가 선배한테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냐 그러면 저희 재단에서 하는 해외 한인학교에 있다 왔다 하시면 될거예요.
알아보니까 그쪽학교 졸업생 중에 저희가 만날만한 사람은 없을거 같아요.
폰이랑 계좌, 민증 다 됐고,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는게 조금 달라보이긴 하는데..."
'보통 대학교 막 들어온 여자애들이면 그런 쪽에 관심 많긴 하겠네.'
"공부하는 겜순이였어서 잘 모르는걸로 하면 될거 같아요.
사실 선배 원판이 너무 좋아서 굳이 가리고 싶지는 않은 것두 있구.."
"응."
"그리고... 제일 중요한게 하나 있는데..."
"거의 다 말해준 거 같은데 제일 중요한거?"
"네, 선배가 제 친척언니라고 해놨는데 2인칭이 계속 선배면 저번에 정하은 그 썅년처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니까..."
"응. 그래서?"
아름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름이는 침대 위에서도 대담하고 여러 행동에 거침이 없는데 꼭 연인같은 부분이나 소녀같은 부분에 부끄러워했었다.
'고양이귀 후드티 모자 눌러쓰고 부끄러워하는 아름이 너무 귀엽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더 귀여운걸 아름이는 알까?'
잠깐 아름이를 감상하고 있으니까 다시 입을 여는 그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부터 언니라고 부를게요...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정연언니...♥"
"크윽...!"
아까부터 욱신대던 심장이 너무 아파!
"아름아... 너 일부러 그러는거니?"
"네?! 어떤 부분 말씀하시는건가요 선, 아니 언니."
"아아... 모르는 부분까지 완벽해..."
부끄러워하는 아름이를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는다.
"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 우리 아름이...♥"
그나저나 검은 쵸커랑 고양이귀...
익숙한 귀여움인데 도대체 뭘까... 그냥 넘길랬는데 귀여우니까 자꾸 신경쓰인다.
"우웅... 선배 왜이렇게 적극적이게 되신건가요..."
"어 그러게. 아름이 너 덕분에 부산 다녀와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서 그런가. 좀 가벼워진 기분이야."
"그건 잘된 일이지만... 너무 그렇게 쓰다듬고 하시면 부끄럽단 말이에요..."
"그런 모습까지 귀여워서 쓰다듬고 싶은건데 어떡해..."
"아 이거 선물이에요."
아름이는 검은색 케이스를 내게 건넨다.
"이건 뭐야?"
"입학식은 다음주지만 입학 기념 선물? 커플템이기도 하고요."
아름이 말을 들으며 케이스를 열어보니 시계가 2개 들어있었다.
상대적으로 조금 큰 쪽이 내꺼겠지.
보석도 안박혀있고 금색의 반짝반짝한 디자인도 아닌, 약간은 수수하게 느껴지는 시계.
1자모양의 볼트 8개가 시계바깥쪽에 들어가있는 모양이었다.
"맨날 받기만 하네, 이거도 되게 비싼거 아니야?"
"언니가 돈 벌 방법이 없게 만든게 저잖아요. 그만큼은 해드려야죠. 그리고 별로 안비싼거에요. 대학생이니까.
디자인도 깔끔하지 않아요? 편하게 차셔요"
"어, 응. 너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고마워 잘 쓸게."
쪽
아름이랑 같은 디자인의 시계를 왼손에 차고 아름이 볼에 뽀뽀를 한다.
"그래도 나도 뭔가를 해주게 해줘 너무 미안해..."
"언니는 행복하게만 계셔주셔요. 이제 들어가요."
"어, 응.. 그래도, 앗. 잘못하면 늦겠다."
아름이랑 같이 대강당으로 들어간다.
좌석표를 보니 1반은 1층 왼쪽 제일 앞이었다.
후드티 모자를 다시 벗은 아름이랑 같이 손을 잡고 강당을 가로질러 들어가는데 어느정도 들어간 이후로 뭔가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뭐지 왜이렇게 다들 보는 것 같은 기분이지.'
"...아름아, 다들 우리 쳐다보는 거 같지 않아?"
"언니가 너무 예쁘셔서 그래요."
"예쁜 여자 보는 것 같은 그런 시선이랑은 뭔가 다른데,"
다들 쳐다보는 눈빛에 신기함? 놀라움? 그런 감정이 비쳐보였다. 여학생들이 많이 보고 있는 것도 같고.
"...아름아 새터에 정장은 너무 딱딱했나?"
"안에 셔츠도 아니고 그정도는 입을만한 것 같은데요. 신발도 하이힐도 아니고."
"그렇지...?"
슬쩍 둘러보니까 셔츠입은 남학생들도 있고 아직 2월이라서 그런지 자켓도 좀 보이는데 뭐가 문제일까.
내가 저런 눈빛으로 볼만큼 예쁘지는 않았는데 흐음.
아름이랑 같이 제일 앞 우리반 쪽에 앉는다.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프락터 목걸이를 맨 남자.
"안녕, 새터 1반이니? 이름이?"
"안녕하세요. 한정연, 한아름이에요."
"한... 정연.. 아름.. 여깄다."
[새터 1반 한아름]
[새터 1반 한정연]
"여자 프락터는 잠시 어디 갔는데 곧 올거야. 나는 1반 남자 프락터 김강진이고, 뭐 나중에 얘기할 일이 더 있을테니 새터 시작하는거 잠깐 기다리고 있으면 돼."
"네."
안경낀 평범한 공대너드같이 생긴 프락터는 그렇게 소개를 마치고 다른 학생에게 또 안내를 하러 갔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수근거리는 목소리들
"...야, 저거 진짜일까? 지난달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레알 개똑같이 생겼음."
".. 에이 설마, 진짜면 저게 자켓만 거의 1000만원 돈인데 말이 되냐?"
".. 존나 금수저면 가능하지. 강남건물주 아님?"
".. 그래도 새터부터 티낼까 그걸? 와 근데 진짜면 대박이긴 하겠다."
뒤쪽에 있는 여학생들이 쉴 새 없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저거 설마 내 이야기 하는건가? 확실히 비싼 옷이긴 헀는데... 1000만원은 아니었지 않나.'
"아름아."
"네 서, 언니."
"나 지금 입고 있는거 너랑 같이가서 산거지?"
"그거요? 아닌거 같은데요. 제가 따로 더 사와서 채워둔거 같은데. 한국 매장에는 안깔리는 거라서 따로 몇벌 더 구해왔어요."
어쩐지 입어볼 때 매장에서 본거랑 뭔가 다르다 했는데 그냥 다른 옷이었다니. 원래 사온 옷도 상당히 고가의 옷이었는데 지금 입은건 명품 하울하는 유튜버들이 따로 소개할정도의 고가 라인인가보다.
졸지에 금수저 코스프레를 하면서 들어오게 된 나.
"저기..."
어지러워하고 있는데 이번엔 내 왼쪽 옆자리에서 자기들끼리 한참을 이야기하던 남학생들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건다.
말끔한 인상이 어딘가 귀티가 났다.
"그.. 이런 말 하면 실례인 줄은 알지만..."
"어, 응.."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그거 시계 진짜야...?"
"어...? 응, 아마? 근데 애초에 얼마 안하는 거라서 이런것도 짭이 있나?"
내 얘기를 들은 그는 다시 왼쪽의 자기 무리들과 쑥덕거린다.
'특이한 놈이네 뭐때문에 저러는거지.'
저쪽에서 이야기하는 남학생들이 목소리가 커진다.
"야, ㅅㅂ 그걸 믿냐? 무조건 허세지."
"아니 근데 진짜 자연스러운 눈빛이었다니까."
"아 또 진규 사랑에 빠졌네. 김치남 새키."
뭔가 아까 대화랑 비슷한 흐름인데.
"아름아..."
"네 언니 이번에는 왜요?"
"이거 시계... 싼거 아니지?"
"얼마 안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커플로 2개나 샀죠."
"얼만데 그래서?"
"한 6000정도 하나? 원래 오O마 피게 잘 안사는데 언니가 화려한건 싫어하실 거 같아서 사본거라."
"6000? 그러면 이게 하나에 3000만원이야?"
"아, 개당가격이에요. 언니가 차고있는 게 6000정도일걸요. 신경쓰지 마셔요. 언니 잡아가려고 건물도 하나 사는데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태연하게 작은 과자 한봉지 사온 것처럼 말하는 아름이.
아름이랑 이야기하다보면 가끔 사는 세계가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는데 오늘도 그런...
'어, 근데 뭔가 부자연스러운데, 본인은 또 옷을 갈아입었고. 손목까지 덮는 후드라서 시계도 안보이고.'
"아름아."
"네 언니."
"너 일부러 나 골탕먹이려고 이렇게 보낸거지."
"에이, 제가 왜그러겠어요 헤헤..."
확실히 동기가 부족한데 그냥 재미로?
머리가 아파온다. 5분뒤면 새터가 시작하건만,
졸지에 돈으로 떡칠한 패션으로 런웨이를 한번 걸은 느낌이라 주변의 시선이 아까 이유를 몰랐던 때보다 10배는 부담스러워졌다.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