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기분좋은 밤 술기운이 올라 (3)
* * *
은색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배한테 아직 이런 플레이는 무리였을까요.'
선배에게 괜히 부담을 준건가 싶어 약간은 분위기를 깨겠지만 없던 일로 하려고 입을 떼자 선배가 먼저 내게 말한다.
"아름아... 네가 너무 귀엽고 야하고 사랑스러워서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저도요 선배."
선배가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선배에게 귀여움받고 있다는, 선배가 지금 흥분돼서 못참겠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다정하지만 안달나있는 손길.
무릎을 꿇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선배가 목걸이를 채우기 쉽도록 목을 빼고 눈을 감는다.
철컥
고양이귀 머리띠가 내 머리에, 그리고 고양이귀와 같은 검은색 가죽목걸이가 내 목에 채워진다.
"흐으~ 너무 예쁘다."
선배가 만족한 것 같아 기쁜마음으로 선배에게 미소지어준다.
"아름아, 목걸이에 뭐라고 써있는거야?"
아.
원래 선배에게 채우려고 준비한 목걸이라 선배를 위해 준비했던 문구가 적혀있었을텐데.
선배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내 턱을 잡았다.
"으으..."
"아름아 뭐라고 써있는지 말해주라. 알잖아?"
내 앞에 앉아 목걸이 앞 은색 플레이트에 쓰여진 각인이 충분히 보일 거리일텐데도 굳이 내 입으로 듣고싶어하는 선배.
'선배한테 짖궂게 굴었던게 되돌아오네요...'
"...예요."
휙!
"켁켁...!"
선배는 내 목걸이에 연결된 목줄을 강하게 당기며 다시 다그친다.
"아름아. 또박또박 말해줘.
작게 말하면 잘 안들리잖아."
"...발정난 암고양이 노예라고 썼어요오...♥"
누가 보고 있었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상황이었겠지만, 내게 다그치는 선배에게 수치스러운 대사를 뱉는 게 기분이 꽤 괜찮았다.
'아아... 말해버렸어요... 어떡하죠...?'
다시 만족스럽게 웃어주는 선배.
저 미소만 계속 볼 수 있다면 다른 일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 아름이, 발정난 암고양이야?"
"...네에...♥"
"근데 왜 자꾸 사람말을 할까? 고양이는 야옹하고 우는게 상식 아니야?"
"그..."
"습..!"
내 입술을 엄지로 꾹 닫고 문지르는 선배.
"야, 야옹..."
"옳지. 이제 침대로 가자."
선배가 목줄을 잡고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네 발로 앞장서서 침대를 향해 기었다.
"안시켜도 네발로 잘 걷네. 착하다 우리 아름이."
"야옹..♥"
선배는 진짜 애완동물을 칭찬하듯 엉덩이를 쓰다듬어주었다.
...
선배는 침대 아래쪽에 걸터앉은 후 네 발로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내 목줄을 당겨 자신의 앞으로 끌었다.
"이리와."
선배 앞에 네 발로 엎드려 선배를 올려다본다.
선배가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벌려 혀를 U자로 만든다.
서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한 나는 선배의 아래에서 입을 벌린다.
끈적한 선배의 타액이 선홍빛의 혀를 타고 내려와
내 입속으로 들어온다.
아까 맡았던 선배의 향기보다는 짙은 와인의 향이 줄어들었지만, 흐르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혀를 내밀어 웃는 선배의 액체를 입으로 받는 것은 지금 선배와 나의 위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아름아 좋아?"
내게 묻는 선배에게 또 고양이 울음을 흉내내는 것 대신 선배의 다리에 볼을 부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게 복종하는 선배가 이런 기분이셨군요...♥'
선배는 또 직접 명령하지 않고 나를 살짝 밀어낸 후 발을 내밀 뿐.
내게 선배가 했던 행동을 자신도 받아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술기운에 하는 복수인지는 몰라도 그런 유치한점도 썩 마음에 들어 기쁜 마음으로 선배의 발에 혀를 갖다댄다.
핥짝 핥짝
매끈하고 선배의 발, 늘씬한 선배같이 가지런히 모여있는 선배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핥는다.
"아름아 좀 더 열심히 해봐, 영 서툴잖아."
실실 웃으며 발을 이리저리 흔드는 선배.
앞으로도 한번씩 술을 먹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선배의 발을 핥다가 이와 선배의 발가락이 스쳤다.
"어머, 아름아."
"야, 야옹...?"
"발 하나 빠는 것도 못하니 우리 아름이는?"
"야옹..."
"그대로 머리 바닥에 붙이렴."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이실까요 선배는...'
그래도 일단 맞춰주기로 하며 이마를 선배 앞의 바닥에 붙인다.
꾸욱
내 뒤통수를 지긋이 누르는 선배의 발.
아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내 머리를 누르는 선배의 발에 고개를 살짝 돌리니 그대로 귀 옆을 꾹꾹 밟는다.
"아름아~ 움직이지 말고~ 자기 입으로 노예라면서 발 하나 제대로 못빠는게 말이나 되니?"
"..."
풋풋하고 소심한 선배는 어디가고 이렇게 야한 여왕님이 나오셨는지.
'목소리 톤같은 걸 보면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거 같은데 신기하네요.'
선배는 내가 목이 졸려 답답함을 느낄만큼 강하게 목줄을 당기며 내게 명령한다.
"이제 사람 말 해도 되니까 이 상태로 사과하렴.
어떤걸 잘못했는지도 너가 네 입으로 직접 말해주고.
네가 얼마나 한심한 변태년인지도 말이야."
"녜헤...♥"
솔직히 너무 흥분된다.
소심하고 찌질해서 싫은소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선배가.
뒤틀린 애정결핍이 괴로워서 내게 제발 사랑해달라던 선배가.
여자가 된 뒤 점점 소녀같이 여리고 달콤한 말만을 뱉던 선배가 지금은 가학적인 여왕이 되어 나를 짓밟는다.
늘 내게 순종적인 강아지같던 선배가 오히려 나를 암고양이, 노예라 부르며 다그친다.
'이런 선배... 저만 볼 수 있는 거겠죠?
누구도 모르는 선배의 다른 모습...
평소보다 더 야하고 더 거칠고 더 가학적인...
저만을 위한 여왕님인 선배...
너무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요...'
아랫배가 지잉하고 울린다.
선배에게 자지가 아직 남아있었다면 자궁입구까지 깊게 박히며 선배의 아기씨로 임신할만큼 사랑받았을 텐데.
단 하나 아쉬운 점에 애달파서 뻐끔거리는 보지를 내 손가락으로 대신 달래며 선배가 시킨 사과를 말로 엮어낸다.
찔꺽 찔꺽
"헤으읏.. 죄송해여...
발정난 암고양이 노예면서 흐응... 선배앞에서 도도한 척 연기했어여...
선배한테 밟히고 싶고 선배한테 강간당하고 싶은 변태년이면서...♥
으읏... 어제 선배한테 암캐라고 그랬어여..."
선배에게 수치스러운 말들로 나 스스로를 낮추면서 손가락은 점점 빨라진다.
찔꺽 찔꺽 찔꺽 찔꺽
"하으읏..! 선, 선배한테 시키려고 흑...
고양이 귀라앙.. 목걸이 준비시켜놓고... 선배가 키스하니까 흥분돼서어...
채워달라고 보지 적시면서 제가 바쳤서여... 흐읏..!"
"아름아, 사과만 해야지 사과하면서 자위하면 어떡하니.
그리고 선배 아니고 주인님."
"그치마안~ 선배, 아니 주인님 이런 모습...
져한테만 보여주신다고 생각하니까아..
너무 흥분돼서... 너무너무 흥분돼서... 으윽."
선배는 자위하며 신음과 다를바 없는 사과를 뱉어내던 내 말을 목줄을 당김으로써 멈췄다.
몸을 일으켜 가장 흥분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는 자위도 못하게 막는 선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려고 했는데 선배의 다음 말이 그럴 마음을 싹 지워버렸다.
"오늘은 내가 기분좋게 해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혼자 가버리려 하면 어떡해.
주인님이 아름이 따먹어 줄게 빨리 이리와."
내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볼 줄 알았다는 것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올라간 선배.
두 손을 주먹쥐고 가슴앞에 모아 그녀의 고양이가 된 나는 기쁜마음으로 선배에게 안긴다.
"선배랑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
...
"아... 존나 피곤해."
오늘 새터가 있다고 아름이가 아침 6시부터 나를 깨웠다.
정신도 제대로 못차린 채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검은 세단에 몸을 던지듯 탄다.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이고, 온몸은 피곤하고... 에휴..."
어제 기억이 흐릿하다.
아름이에게 잡힌 이후로 술먹고 필름 끊기는 일이 잦은 듯 한데 오늘도 깔끔하게 아름이가 와인을 따라줄 때 쯤 이후로 기억이 새하얗다.
"후후..."
아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일어났을 때부터 싱글벙글 모드고...
"뭐 좋은 일 있니 아름아?"
"아니에요. 선배 많이 피곤하시죠?"
"어, 응.. 글치..."
"푸흐흐..."
"뭐, 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헤헤..."
아름이는 대전에 도착하는 내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