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42화 (42/96)

〈 42화 〉 새터 전날은 부산행 (2)

* * *

아름이는 거실 옆 욕실을 쓰려나보다.

'아름이랑 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오늘은 쪼끔은 진지한 날이니까...'

여자가 된 뒤 아름이한테 배운대로 꼼꼼히 씻는다.

원래는 비누 하나로도 전신을 커버했는데 제대로 씻으려니까 참 귀찮단 말이지.

다른 것 보다도 이 긴 머리를 구석구석 샴푸도 하고 헹군 뒤 린스도 하는 것이 너무 귀찮다.

"헤어 에센스는 오늘은 패스..."

머리를 윤기있게 한다던가 그런 용도였던 것 같은데 뭐 하루쯤 안해도 되겠지.

따뜻한 물에 몸을 씻으니 복잡했던 생각이 함께 씻겨내려가는 느낌이다.

다만 그렇게 하염없이 물을 맞고 있으니 문득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을 것 같아 급하게 몸을 닦으며 욕실을 나섰다.

"아름아, 많이 기다렸어?"

욕실 문을 열고 나가자 욕실 앞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아름이.

아름이는 평소와 다르게 A라인 스커트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머야 왜그렇게 소녀같아 우리 아름이~"

"평소엔 슈트를 입지만...

오늘은 선배 여자친구로 인사드려야 되니까.

가끔 이런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아름이는 약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내 몸에 아직 물기가 있어서 괜히 아름이의 머리를 망칠까봐 그만둔다.

"엇 선배 방금 쓰담쓰담 하려다 마신거죠!

역시 안어울리는건가요...?"

귀가 분홍빛을 넘어 빨갛게 달아오른 아름이.

'소녀소녀한 아름이도 귀엽다.'

아름이 턱을 살짝 잡고 내 몸을 숙여 볼에 입술을 살짝 갖다댄다.

"아냐 귀여운데 몸에 물기가 있어서.

나도 금방 준비하고 올게 기다려주라."

"... 네...♥"

어제는 자기가 주인님이니, 나는 암캐니 했지만 가끔 보면 저렇게 귀여운 모습도 있단 말이지.

이 몸이 되기 전 내 감정을 헷갈렸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분명 미워해야할, 원망해야할 대상인데

무서운 모습과 대비되게 가끔 보여줬던 아름이의 순수하고 귀여운 매력때문에 자꾸 이성과 감성이 서로 혼란스러워 하는 그런 느낌.

옷방에 들어서니 아름이랑 백화점에서 사온 옷이 그래도 꽤 된다.

기본적인 진이나 스커트들도 채워져 있지만, 그래도 아름이랑 같이가서 사왔던 옷들 중에 골라본다.

"역시 아름이랑 가면 처음은 이 옷으로..."

그렇게 자주 입어본 옷은 아니지만 속옷도 갈아입고 새로 산 옷을 입는다.

백화점에서 입어봤을 때처럼 고급스러운 조명이 있지는 않아서 조금은 수수해보이지만 이정도면 괜찮아 보인다.

"슬 가볼까..."

옷방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니 소파에 앉아있는 아름이가 나를 반긴다.

'안방에서 기다리기 심심했나보네.'

총총대며 걸어와 내 품에 안기는 아름이.

"선배한테 딱 어울리네요 좋아요...♥"

가슴에 그렇게 얼굴을 부비면 조금 부끄럽지만...

아름이니까.

오늘은 평소의 아름이를 흉내내듯 나도 정장 바지랑 자켓을 골랐다.

안쪽에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입으려다 그건 아직 조금 어색해서 흰색 티셔츠로.

검은색 슈트 안에 흰색 티셔츠.

아름이랑은 다르게 살짝 편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이가 좋아해줘서 다행이다.

"평소에 아름이 너가 예쁘게 하고 다녀서 따라해봤는데 괜찮아?"

"최고에요. 역시 어제 입어본 옷 전부 사오길 잘했어요.

이 모습을 못봤으면 억울해서 울었을 거예요."

"헤헤.. 칭찬 고마워..."

검은 A라인 스커트 드레스와 검은 정장.

누구는 칙칙하다고 뭐라 할 수도 있을 코디지만,

아름이가 블랙을 좋아하니까.

나한테는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시크하고 도도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아름이에겐 검은 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름이는 뭘 입던 예쁠 것 같기는 해...'

그런 그녀를 서툴게 따라한 것 같아서 나도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좋다.

아름이와 주차장으로 가니 전에 봤던 검은색 세단 앞에 김실장님이 계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정연님."

"안녕하세요오.."

"갑자기 일정 바꿔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럼 오늘도 잘부탁해요."

아름이랑 같이 뒷자석에 앉으니 뭔가 기분이 새롭다.

병원에서 여기로 올 때 거의 실려오듯 왔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아름이랑 같이 부산을 가게 되다니.

"내일 신입생 OT랑 새터였지 아름아?"

"네 오전 9시였을 거에요."

떨린다.

이미 3년이나 다녔던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는 부분은 사실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말은 주변에 거창하게 하고 다녔지만 그냥 관성적으로 다니고 있기도 했고 또 대학원을 갔을거라고 생각하면 학부를 다시하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이 캠퍼스에 썼을테니까.

아름이가 원하는 행복한 생활을 괜히 눈치없고 아싸티가 나는 내가 방해할까봐 걱정된다.

그녀에게 받은 만큼 나도 잘해줘야되는데..

'우선 오늘 할 일에 집중하자.'

해결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는 걱정은 그저 자신을 좀먹는 것일 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가라앉는 기분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실장님, 혹시 얼마나 걸릴까요?"

"음... 넉넉하게 3시간 반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자동차로 3시간이 넘는 거리.

대학 진학 이후 계속 대전에 있었기에 기차로도 꽤 걸린다는 핑계로 거의 부산에 내려가지 않았다.

명절에도 공부할 게 많다고 이야기하면 친척 중에 별로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름이랑 같이 부모님 묘에 가게 되다니.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해봤던가.

여러 생각이 얽히니 가슴이 간질간질한,

형용키 어려운 몽실몽실한 기분이다.

"아름아, 너는 기분이 어때?"

"어떤 거에 대해서요?"

"어... 내일 OT라던가...

오늘 부산 가는거라던가...

어제 일이라던가...

뭐 아무거나 말이야.

생각한 거랑 다르면 어떡하지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도 되고."

"음... 그러게요.

생각해볼만한 일이 많긴 하네요.

근데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계획 자체는 꼼꼼히 짜둬도

막상 기분이 아니면 갈아엎는 스타일이라

앞으로 생길 일이 크게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네요.

오히려 기분좋은 설렘?"

"그렇구나...

나는 항상 걱정이 많은데

아름이 너랑 너무 비교되는 것 같아.

괜히 기운빠지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

미안해..."

"저도 선배 관련해서는 얼마나 걱정하고 고민했는지 몰라요.

선배 깨어났던 날에 계속 울어서 선배가 안아줬던 거 기억하시잖아요.

그래도 선배만 제 편이면 이제 다른 일은 어찌되든 상관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응..."

"아 걱정되는게 하나 있긴 하네요."

"뭐가...?"

아름이가 걱정할만한 게 있다니.

나랑 관련된 건가?

"정하은 그 썅년이 또 선배한테 꼬리칠까봐 걱정이에요.

선배는 성격이 은근 둥글둥글해서 그년이 선배 앞에서 헤실헤실 웃으면 쉽게 내치지도 못할거고..."

"에이 나는 아름이 너밖에 없는걸?"

"선배가 그 차팔이년 실체를 몰라서 그러시는 거에요.

걔가 얼마나 또라이같은년인데요!"

정하은.

이상하게도 정하은이 아름이를 살살 놀리는 느낌이라면, 아름이는 그녀를 혐오하는 느낌이 강했다.

마치 동생을 괴롭히는 언니와 짜증내는 동생처럼...

"아름아 정하은만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있어?"

"이유요? 셀 수 없이 많죠.

하지만 무엇보다 그년이 먼저 저를 싫어해요.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저를 엄청엄청 미워하나봐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너를 그냥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는데."

아름이가 조금 차갑기는 해도 이유없이 누군가의 원한을 사는 일을 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절대 아닌데...

"짐작가는 이유도 없고?"

"예전에 저한테 친구가 되어달라고 그랬었는데,

저처럼 그때 그년도 텅 비어있는 것 같아서 됐다고 그랬던 일이 있긴 했어요..."

"흠..."

"아무튼 그 이후로 사람 스타일이 좀 바뀌고 고등학교때도 학교에 제 배경에 대해서 퍼지게 한 것도 걔였어요.

꼭 그거 아니더라도 그년 마약 하는거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자기 머무는 호텔이나 사옥에 연예인들, 모델, 비서들 불러놓고 약에 취해서 섹스하고.

그러다 몇명 죽은 것도 나름 힘 좀 쓰는지 잘 덮더라고요.

저를 미워하는 년이니까 선배가 저랑 관계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코지할지 몰라요.

왠만하면 제가 선배 곁에 늘 있겠지만...

그 년 근처에는 절대 가지마셔요.

진짜로 약속...!"

"어, 응..."

평소의 아름이랑 다르게 다다다 쏘아붙이듯 설명하는 그녀.

그정도로 그녀가 신경쓰인다는 거겠지.

'정하은은 왜 아름이를 싫어하는 걸까...'

미디어에서는 재벌 4세답지 않게 털털하고 수수한 매력도 있고 겸손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었는데 약물 중독에 아름이를 증오하는 사람이라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죄송해요.

오늘 일에만 집중할게요."

"아냐아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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