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33화 (33/96)

〈 33화 〉 나랑 같이 쇼핑 가자 용돈 갖고 와 (1)

* * *

"선배, 아침이에요."

"으으음~..."

"슬슬 일어나셔요."

"흐아암~"

날 깨우는 아름이의 목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

어제 깨어났을 때처럼 시야가 흐릿하다.

잠이 덜 깨 아직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 내 시야에 나를 향해 방긋 웃는 아름이가 가득찼다.

"아름아 지금 몇시니?"

"열 시 조금 안됐어요. 아침 먹으면서 오늘 뭐할지 이야기해요 선배."

"으응..."

쭉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시야에 부스스해진 앞머리가 자꾸 걸려 대충 옆으로 넘겨 정리하고 아름이를 따라나간다.

집 부엌에는 셔츠 위에 분홍색 앞치마를 맨 채 찌개 간을 맞추고 있는 김실장이 있었다.

이 안어울리는 장면에 잠깐 멍하게 있었지만,

"일어나셨습니까 정연님, 아침식사 하시지요."

"아, 네..."

이전에 시설에 잡혀갔을 때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름이가 식탁에 앉길래 나도 맞은 편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아침치고는 꽤나 거창했다.

갈비찜, 잡채, 미역국,생선구이, 호박전에 삼색나물까지.

김실장은 보글보글 끓고있는 찌개까지 식탁 가운데에 올려준 뒤에야 앞치마를 벗고 다시 정장 자켓을 걸쳐 우리 옆에 섰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어 아름이를 바라봤지만 계속 미소만 짓고 있어 벙 쪄있는 내게 다시 김실장이 먼저 말을 건넨다.

"아가씨께서 생일상 느낌으로 차려달라고 하셔서 최대한 노력해봤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있었던 일은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시킨 일에 일체 의문을 갖지 않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또 같은 상황에 놓여도 저는 그렇게 행동하겠지만...

아가씨께서 정연님께 사과하신 것과는 별개로 저 역시 개인적으로 사과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립니다."

기분이 묘하다.

분명 내 생에 다시 겪기 힘들 고통을 준 사람인데...

그런 일을 지시한 아름이를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김실장만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것대로 앞뒤가 안맞기도 하고.

이성과 감성의 괴리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어렵게 만든다.

'과거의 나랑 같이 지난 일은 묻어두고 가기로 했으니 용서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앞으로 아름이랑 살아갈거면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마음의 정리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말해본다.

"알겠어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하곘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진실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솔직히 감정적으로 완벽히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아름이를 좋아하니까,

아름이랑 같이 용서해드릴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는 고개를 숙여 나와 아름이에게 인사한 뒤 현관문을 나섰다.

다시 식탁 위의 음식들과 아름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름이 너 생일...?"

"아뇨.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4월보다 뒤라고."

"아... 그렇지..."

'그럼 뭐지? 왜?'

"선배가 어제 깨어나셨으니까...

또 제 언니가 되셨으니까.

우리끼리 생일 느낌 내보려고요.

선배는 별로신가요?"

"아니아니, 나야 좋지. 고마워."

"수치는 정상이긴 했는데, 그래도 오래 누워계셨으니까 너무 많이 드시진 마셔요. "

"응. 명심할게."

이런 생일상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릴 때 친척들이 이정도로 챙겨준 적도 없고, 대학 와서 생일은 새내기때 동기들이랑 술을 진탕 퍼마시거나 딱히 부를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간단히 밥먹고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성 가득한 생일상이라니.

'차린 건 김실장님이긴 하지만...'

나처럼 막 잠에서 깬 건 아닌 것 같지만 아직 차려입지는 않은 수수한 아름이가 맞은편에 앉아있으니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셔요 선배."

...

"와 너무 배부르다..."

처음엔 엄청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새로운 몸의 용량 자체가 작은지

수술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원래 먹는 양의 3분의 1정도 먹으니

배가 너무 불렀다.

"맛있는데 많이 못먹어서 아쉽다..."

"선배가 원하면 다음에 또 먹어요 헤헤..

아직 컨디션 안좋으실텐데 무리하지 마시고요."

"응."

허겁지겁 먹느라 아름이를 제대로 신경도 못썼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오늘은 계속 싱글벙글 모드다.

"아름아."

"네, 선배."

"오늘은 뭐가 그렇게 기분좋은거야?"

"그냥 선배를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 나도.. 너가 웃고만 있어도 좋네."

"고마워요. 맞다. 오늘 뭐할 지 얘기를 안했네요."

그러고보니 아침먹으면서 오늘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랬는데 나도 그새 까먹고 있었다.

"우리 오늘 뭐해?"

"선배 옷 사러 갈거에요 히히..."

"옷...?"

"네, 대전에 S 백화점이 이번에 생기면서 명품관에 힘 좀 썼다길래, 선배 옷 좀 사러 가려고요. 이제는 여자 옷을 사야할테니까..."

"아, 그렇지.."

여자 옷을 입은 나라...

요즘은 중성적인 패션도 많긴 하지만

역시 잘 안그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 근데 나 지금 어떻게 생겼지?'

어제 저녁에 깨어난 뒤로 아직 거울을 본 적이 없어 여자가 된 나를 떠올릴 때 얼굴 부분만 까맣게 비어있다.

'남자였을 때의 원판에 성형한 느낌이면 너무 별로일 것 같은데...'

바로 욕실로 가보려다 아름이에게 먼저 물어보기로 한다.

"아름아."

"네."

"지금 나 어떻게 생겼어?

깨어난 뒤로 본 적이 없어서..."

"어머, 진짜 그렇네요.

너무 자연스럽게 계셔서 그럴거라 생각도 못했어요 하핫..."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는 아름이. 이 쪽은 심각한데 아름이한테는 웃긴 이야긴가보다.

'너무해 아름이...'

"아름아, 웃지만 말고,

그래서 지금 나 어때?"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깊게 고민하는 아름이.

"흐음~"

어떻다 말을 해주면 마음의 준비나 기대라도 할 텐데 자꾸 고민만 하고 있으니 괜히 걱정만 불어난다.

"아름아, 말을 해주라~"

"착하게 생겼어요. 선배."

"착하게...?"

"네, 착해보이네요."

아름이의 입꼬리가 자꾸 씰룩씰룩거리는데 나를 놀리는 게 재밌어서 그런 걸까 쉴드를 쳐주려다 뭔가 웃긴 상상이 떠올라서 저런걸까.

"그거 남자들이 매력없는 여자 쉴드치는 표현 아니야...?"

"어머, 그런 줄 몰랐네요. 히히."

"모르기는..."

턱을 괸 채 걱정하고 있는 나를 구경하는 아름이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직접 보시게요?"

"응, 너 제대로 말 안해줄거잖아."

"아니~ 선배, 제대로 표현할 말이 없는데 어떡해요~"

"웃음기나 지우고 말하세요 아름씨."

욕실로 가려하니 아름이가 꼭 교무실에 불려가는 친구를 따라가며 놀리듯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혼자 보시면 충격일 수도 있으니까 같이 봐드릴게요."

"너무 고맙네 아.름.아."

욕실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으니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너무 못생겼으면 어떡하지. 앞으로 계속 여자로 살아야 할텐데."

이 문만 열면 바로 한쪽 벽 위쪽 절반이 전부 거울인 세면대가 나와서 바로 바뀐 나를 마주하게 될텐데, 영 용기가 나질 않는다.

"후우..."

"선배 왜 안들어가셔요."

"볼거야."

결국 마주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진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꼭 잡고 밝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틈새를 조금씩 벌린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와..."

"선배!"

"......"

"선배, 어때요?"

"와... 아름아, 이게 진짜 나라고?"

걱정했던 게 바보같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 거울 속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문을 열고 나왔다.

사실 거울이 아니라 특수유리인데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울 속 여자는 너무 예뻤다.

아름이가 누가봐도 귀엽고 악동끼가 있는 연예인 상에 정색하면 분위기가 변하고 소름돋게 만드는, 누가봐도 평범과는 거리가 있는 아우라와 귀티를 가진 미인이라면 거울 속에 있는 여성은 훨씬 주변에 있을 법한 스타일이었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인기많은 청순한 스타일에 친근한 옆집 누나 같은 느낌도 조금 있다.

머리가 많이 부스스하긴 하지만 해맑은 인상에 순수한 웃음을 짓고있는 저 사람이 나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아름이가 기분나쁠 때 주변 공기가 확 변하듯이 나도 정색하고 머리도 짧게 치거나 하면 좀 보이쉬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긴 머리가 어깨위를 살짝 덮고 있어서 그런가 착한 여대생같이 생겼다.

"예쁘죠? 사실 어떤 모습이던 선배를 사랑하지만...

선배 베이스로 모델링 했을 때 기본골격부터 되게 미형으로 잘나와서요.

아, 제 형질도 들어갔으니까 여자로 태어난 선배에 제가 한방울 섞이면 이렇게 되었겠네요."

"왜 예쁘다 안해줬어 아름아!

몸은 여잔데 얼굴은 원래 내 얼굴에 티나게 성형한 느낌일까봐 얼마나 걱정했다구..."

"선배가 직접 보고 판단해야죠.

선배 반응이 궁금했던게 크긴 한데..♥"

"너무해 아름이."

"대신 토닥토닥 해드릴게요."

"흥, 이런걸로 풀기엔 문제가 너무 큰..."

"아이구, 우리 선배 걱정 많이 했어요?

다 괜찮아요, 착하다. 착하다."

아이를 달래듯 날 안은 채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는 머리를 쓰다듬는 아름이.

서운함이 몰려오다가도 아름이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니 싹 씻겨내려간다.

"욕실까지 왔으니까 나갈 준비 하셔요."

"응, 얼른 준비하자. 기대되네."

"갈아입을 옷은 침실 옷장에서 고르시면..."

쪽.

서랍에서 큰 수건을 꺼내주고 나가며 설명하려는 아름이를 끌어안고 입술을 포갠다.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씻겨주라 아름아 헤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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