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5일차 (3) 너에게 마지막으로 물을래 나의 존재를
* * *
무슨 PC방이 컴퓨터 켜는데에 10초 이상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덕에 잠깐 또 혼자 생각한다.
아까 형사님이 엄청 화내시던데 그게 '제가 사실 죽은 이정훈씨입니다' 라고 농담하는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건가?
후우.
아까 경찰서에 잡혀간 이후로 두통이 점점 심해졌었는데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띠리링~
드디어 컴퓨터가 켜졌다. 더럽게 오래걸리네 쓰벌.
비회원 카드에 적혀있는 번호를 입력하니 후불 요금제로 로그인이 되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서 검색 포털에 아까 본 뉴스 헤드라인을 검색한다.
[K 공대 학생 자살 정훈]
나, 아니 나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살 기사를 검색하니 기분이 심히 더럽다.
그래도 진실은 알고 좆같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날짜 별로 기사를 확인한다.
[K 공대 기숙사에서 학부 재학생 투신]
제일 처음 나온 기사. 날짜를 보니 화요일 자정 근처다.
내가 고문을 당한 날 밤에 벌써 밖에서 공대생 이정훈씨는 기숙사에서 투신을 했단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야 아니야..."
수요일, 목요일 기사와 다른 인터넷 사이트 정보를 더 찾아본다.
[K 공대 성적비관 자살, 이정훈씨는 누구인가?]
[뽑을 때는 모두 천재, 재학 중에는 학점이 높아야 등록금 면제]
[? 이정훈 군 주변인이 말하는 그]
[젊고 안타까운 인재. 정훈 군을 그리며...]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일이 커져있었다. 그것도 엄청 미친 스케일로.
기사에서 말하는 나는 지지난 학기에 장짤(장학금이 잘림)을 당해서 우울감과 패배감 속에 힘들게 살았다고 유서에 밝혔단다.
적성에 맞지않는 공부를 병행하며 지난 반년 동안 과외, 교내 근로 등으로 빠듯하게 등록금을 채워 넣는 생활이 너무 힘들고 갑갑해서 겨울학기 내내 폐인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화요일. 휴대폰과 노트북에 유서를 남기고 교내 학과 사무실과 언론사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와 이 시스템과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낸 뒤, 기숙사 옥상 문을 따고 올라가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살면서 처음 겪는, 영화나 만화에서도 비슷한 일을 본 적도 없는 상황에 기분이 이상하다.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뇌가 과부하가 온 것인지 잠깐 먹먹해져 화나거나 슬프거나 한 감정이 별로 격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인터뷰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친구 A씨라고 나왔다.
같은 과였나? 스쳐서는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확실히 처음인 사람이었다. 내 대학생활 3년을 통틀어서 제대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대충 같은 과라고 인터뷰하러 나오는 저 학생도 문제 아닌가?
인터뷰 내용은 식상했다. 내가 내성적이라서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학점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웃음이 참 밝은 친구였는데 이렇게 떠나서 너무 슬프고 보고싶다. 개소리다.
좆같아서 차마 영상을 끝까지 못 보고 다른 기사를 본다.
[OO구 OO의원, K 공대 자살에 대해 '우수한 학생들을 강제로 상대평가와 벌칙이 있는 우리에 가둬둔 꼴'이라며 대학의 행정 장학 시스템과 총장에 대해 비판.]
[거듭되는 의원과 시민 단체들의 사퇴요구에 K 공대 총장, 오늘 오후 사퇴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 예고.]
[정훈 군 외삼촌 김 씨. '젊은 공학도를 잃게 만든 이 시스템과 사회를 용서하지 못할 것.']
"뭔가 잘못된 거겠지..."
내가 자살을 한 것이, 아 나는 자살을 안했으니 이 가상의 이정훈씨가 자살을 한 것이 그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이 사건에 대한 의견, 심리학 교수가 본 이렇게까지 상황이 진행된 원인 등등.
뉴스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한창 이 문제로 싸우고 있었다.
념요청) 이게 시스템 문제라는 게 개소리인 이유
이번 K 공대 자살 사건으로 확실해진 점 5가지.jpg
팩트) K 공대 평균 VS 이 모씨 성적 비교
그냥 개인의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이지 이게 왜 시스템 비판론까지 가냐 하는 이야기도 있고, 내 성적이 K 공대 전체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 지 찾아온 글도 있고 원래도 문제가 많은시스템인데 다들 쉬쉬해서 넘어간 것이라는 글도 있었다.
쾅!
"아 씨발 애초에 학점 스트레스나 성적 비관도 아니고, 더 중요한 건 자살도 안했다니까!!"
황당한 지금의 상황에 처음에는 별 생각이 안들었는데 이런 글을 자꾸 보다보니 화가 올라온다.
왜 나야.
씨발 전 세계에 70억, 우리나라에 5000만이 사는데 왜 나만 갑자기 가짜 자살을 당해야 되는거냐고.
내가 이정훈이라는데 경찰은 그걸 왜 안믿어?
내 세금 받아 쳐먹으면서 살아가는 놈들이.
내게 연락이 온 것이 있을까 싶어 자주쓰는 메일 계정과 SNS에 로그인하려 했는데 모든 계정이 개인정보 업데이트나 본인인증 기한 만료 등으로 내게 본인인증을 요구했다.
신용카드랑 휴대폰은 애초에 나한테 없으니 사용할 수 없었고 아이핀 또한 유효하지 않은 번호라고 인증을 거부당했다.
아마 사망처리가 되면서 사망자 개인정보 도용을 막기위해 아이핀 같은 게 막혔나보다. 내 계정들을 막은 건 한아름 그 씨발년이 탈출한 나한테 좆같음을 선물하기 위해 탈퇴가 아닌 신규 인증 필요 상태로 둔 것이 분명하다.
"으아아!!!! 씨발! 씨발!"
쾅! 쾅! 쾅!
"거기 젊은 양반, 조용히 좀 합시다!"
"... 죄송합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답답함에 키보드와 책상을 내려쳤다.
게임하시던 아저씨들께서 한마디 하셨지만 다행히 구석진 자리라서 그런지 아직은 주인아저씨는 뭐라하지 않으셨다.
"나한테 왜이러는건데...!"
머리끝까지 뜨거워진 후에 머리가 잘 안돌아간다.
지금 분노를 표출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근데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번만 없던 일로 해주면 존나 착하게 살 수 있는데...
이거 한 번만 물러주면 아름이 밑에서 발정난 숫캐처럼 할 수 있는데...
경찰들도 제대로 설명하면 알아듣지 않을까...?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나?"
술냄새야 좀 지나면 없어질 것이고 내 얼굴이 그대론데 지문 좀 없어졌다고 내가 이정훈인걸 안믿을까...?
내 자살이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여러 사이트에서 기사나 정리글을 읽었다.
유서와 투신 이후 주변 학생의 신고 때문에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지문과 가지고 있던 휴대폰, CCTV에 드러난 동선등을 통해 사망자가 이정훈씨 본인임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정훈 군의 몫까지 굳세게 살아가겠다는 외삼촌 김씨]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외삼촌이 찍힌 사진이 되게 많이 나온다.
내가 아직 어릴 때 동생,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자기 아들이다 생각하고 키웠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단다.
"아이구야 우리 삼촌, 연기력이 장난 아니시네"
지랄.
아주 고농도의 지랄이었다.
삼촌 말로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는 아이였고 힘든 부분을 집에 얘기를 잘 안해서 내가 장학금을 못받았는지, 그것 때문에 과외랑 근로를 뛰어야 했는지 하는 부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장짤이라고 말하니까 바로 끊었잖아 외삼촌이라는 개새끼가..."
사람의 가죽을 쓰고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좋다는 건 확실하다.
우리나라에서 내 홍채 정보나 DNA를 갖고 있지 않으니 나를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생체 정보는 민증만들때 등록하는 지문인데 그게 나한테는 없다.
게다가 단순히 닮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이정훈 본인이라는 걸 증명해줄 주변 지인이 없으니 가족이 같이 싸워줘야 할텐데 외삼촌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3일 만에 내 자살 때문에 이정훈 법이 생기니 마니 하는 상황이고,
아들같은 조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형편의 가족과 내 사촌동생을 위로한답시고 역대급 규모의 모금액이 모여서 오늘 발인하는 날 전달되었단다.
증거가 될 시체는 이미 가루가 돼서 선산에 뿌려졌고.
내가 아는 외삼촌은 절대 내가 살아돌아온다고 나를 위해 같이 싸워줄 사람이 아니었다.
"외통수네... 방법이 안보인다 어카냐."
내가 갖고 있는 기록이라도 뭐가 있을까 해서 계속해서 여러 사이트들의 로그인을 시도했는데 다 막혔다가 에타는 접속이 된다.
처음에 학교 메일로 인증을 하면 이후 본인인증이 필요없어서 상대적으로 널널한건가?
내가 무언갈 했다는 걸 증명할만한 자료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학교 학생들이 얘기하는 커뮤니티인 만큼 좀 다른 스탠스가 있을 것 같아 들어가본다.
〈 25화 〉 5일차 (3) 너에게 마지막으로 물을래 나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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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PC방이 컴퓨터 켜는데에 10초 이상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덕에 잠깐 또 혼자 생각한다.
아까 형사님이 엄청 화내시던데 그게 '제가 사실 죽은 이정훈씨입니다' 라고 농담하는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건가?
후우.
아까 경찰서에 잡혀간 이후로 두통이 점점 심해졌었는데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띠리링~
드디어 컴퓨터가 켜졌다. 더럽게 오래걸리네 쓰벌.
비회원 카드에 적혀있는 번호를 입력하니 후불 요금제로 로그인이 되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서 검색 포털에 아까 본 뉴스 헤드라인을 검색한다.
[K 공대 학생 자살 정훈]
나, 아니 나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살 기사를 검색하니 기분이 심히 더럽다.
그래도 진실은 알고 좆같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날짜 별로 기사를 확인한다.
[K 공대 기숙사에서 학부 재학생 투신]
제일 처음 나온 기사. 날짜를 보니 화요일 자정 근처다.
내가 고문을 당한 날 밤에 벌써 밖에서 공대생 이정훈씨는 기숙사에서 투신을 했단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야 아니야..."
수요일, 목요일 기사와 다른 인터넷 사이트 정보를 더 찾아본다.
[K 공대 성적비관 자살, 이정훈씨는 누구인가?]
[뽑을 때는 모두 천재, 재학 중에는 학점이 높아야 등록금 면제]
[? 이정훈 군 주변인이 말하는 그]
[젊고 안타까운 인재. 정훈 군을 그리며...]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일이 커져있었다. 그것도 엄청 미친 스케일로.
기사에서 말하는 나는 지지난 학기에 장짤(장학금이 잘림)을 당해서 우울감과 패배감 속에 힘들게 살았다고 유서에 밝혔단다.
적성에 맞지않는 공부를 병행하며 지난 반년 동안 과외, 교내 근로 등으로 빠듯하게 등록금을 채워 넣는 생활이 너무 힘들고 갑갑해서 겨울학기 내내 폐인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화요일. 휴대폰과 노트북에 유서를 남기고 교내 학과 사무실과 언론사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와 이 시스템과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낸 뒤, 기숙사 옥상 문을 따고 올라가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살면서 처음 겪는, 영화나 만화에서도 비슷한 일을 본 적도 없는 상황에 기분이 이상하다.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뇌가 과부하가 온 것인지 잠깐 먹먹해져 화나거나 슬프거나 한 감정이 별로 격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인터뷰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친구 A씨라고 나왔다.
같은 과였나? 스쳐서는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확실히 처음인 사람이었다. 내 대학생활 3년을 통틀어서 제대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대충 같은 과라고 인터뷰하러 나오는 저 학생도 문제 아닌가?
인터뷰 내용은 식상했다. 내가 내성적이라서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학점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웃음이 참 밝은 친구였는데 이렇게 떠나서 너무 슬프고 보고싶다. 개소리다.
좆같아서 차마 영상을 끝까지 못 보고 다른 기사를 본다.
[OO구 OO의원, K 공대 자살에 대해 '우수한 학생들을 강제로 상대평가와 벌칙이 있는 우리에 가둬둔 꼴'이라며 대학의 행정 장학 시스템과 총장에 대해 비판.]
[거듭되는 의원과 시민 단체들의 사퇴요구에 K 공대 총장, 오늘 오후 사퇴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 예고.]
[정훈 군 외삼촌 김 씨. '젊은 공학도를 잃게 만든 이 시스템과 사회를 용서하지 못할 것.']
"뭔가 잘못된 거겠지..."
내가 자살을 한 것이, 아 나는 자살을 안했으니 이 가상의 이정훈씨가 자살을 한 것이 그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이 사건에 대한 의견, 심리학 교수가 본 이렇게까지 상황이 진행된 원인 등등.
뉴스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한창 이 문제로 싸우고 있었다.
념요청) 이게 시스템 문제라는 게 개소리인 이유
이번 K 공대 자살 사건으로 확실해진 점 5가지.jpg
팩트) K 공대 평균 VS 이 모씨 성적 비교
그냥 개인의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이지 이게 왜 시스템 비판론까지 가냐 하는 이야기도 있고, 내 성적이 K 공대 전체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 지 찾아온 글도 있고 원래도 문제가 많은시스템인데 다들 쉬쉬해서 넘어간 것이라는 글도 있었다.
쾅!
"아 씨발 애초에 학점 스트레스나 성적 비관도 아니고, 더 중요한 건 자살도 안했다니까!!"
황당한 지금의 상황에 처음에는 별 생각이 안들었는데 이런 글을 자꾸 보다보니 화가 올라온다.
왜 나야.
씨발 전 세계에 70억, 우리나라에 5000만이 사는데 왜 나만 갑자기 가짜 자살을 당해야 되는거냐고.
내가 이정훈이라는데 경찰은 그걸 왜 안믿어?
내 세금 받아 쳐먹으면서 살아가는 놈들이.
내게 연락이 온 것이 있을까 싶어 자주쓰는 메일 계정과 SNS에 로그인하려 했는데 모든 계정이 개인정보 업데이트나 본인인증 기한 만료 등으로 내게 본인인증을 요구했다.
신용카드랑 휴대폰은 애초에 나한테 없으니 사용할 수 없었고 아이핀 또한 유효하지 않은 번호라고 인증을 거부당했다.
아마 사망처리가 되면서 사망자 개인정보 도용을 막기위해 아이핀 같은 게 막혔나보다. 내 계정들을 막은 건 한아름 그 씨발년이 탈출한 나한테 좆같음을 선물하기 위해 탈퇴가 아닌 신규 인증 필요 상태로 둔 것이 분명하다.
"으아아!!!! 씨발! 씨발!"
쾅! 쾅! 쾅!
"거기 젊은 양반, 조용히 좀 합시다!"
"... 죄송합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답답함에 키보드와 책상을 내려쳤다.
게임하시던 아저씨들께서 한마디 하셨지만 다행히 구석진 자리라서 그런지 아직은 주인아저씨는 뭐라하지 않으셨다.
"나한테 왜이러는건데...!"
머리끝까지 뜨거워진 후에 머리가 잘 안돌아간다.
지금 분노를 표출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근데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번만 없던 일로 해주면 존나 착하게 살 수 있는데...
이거 한 번만 물러주면 아름이 밑에서 발정난 숫캐처럼 할 수 있는데...
경찰들도 제대로 설명하면 알아듣지 않을까...?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나?"
술냄새야 좀 지나면 없어질 것이고 내 얼굴이 그대론데 지문 좀 없어졌다고 내가 이정훈인걸 안믿을까...?
내 자살이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여러 사이트에서 기사나 정리글을 읽었다.
유서와 투신 이후 주변 학생의 신고 때문에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지문과 가지고 있던 휴대폰, CCTV에 드러난 동선등을 통해 사망자가 이정훈씨 본인임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정훈 군의 몫까지 굳세게 살아가겠다는 외삼촌 김씨]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외삼촌이 찍힌 사진이 되게 많이 나온다.
내가 아직 어릴 때 동생,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자기 아들이다 생각하고 키웠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단다.
"아이구야 우리 삼촌, 연기력이 장난 아니시네"
지랄.
아주 고농도의 지랄이었다.
삼촌 말로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는 아이였고 힘든 부분을 집에 얘기를 잘 안해서 내가 장학금을 못받았는지, 그것 때문에 과외랑 근로를 뛰어야 했는지 하는 부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장짤이라고 말하니까 바로 끊었잖아 외삼촌이라는 개새끼가..."
사람의 가죽을 쓰고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좋다는 건 확실하다.
우리나라에서 내 홍채 정보나 DNA를 갖고 있지 않으니 나를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생체 정보는 민증만들때 등록하는 지문인데 그게 나한테는 없다.
게다가 단순히 닮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이정훈 본인이라는 걸 증명해줄 주변 지인이 없으니 가족이 같이 싸워줘야 할텐데 외삼촌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3일 만에 내 자살 때문에 이정훈 법이 생기니 마니 하는 상황이고,
아들같은 조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형편의 가족과 내 사촌동생을 위로한답시고 역대급 규모의 모금액이 모여서 오늘 발인하는 날 전달되었단다.
증거가 될 시체는 이미 가루가 돼서 선산에 뿌려졌고.
내가 아는 외삼촌은 절대 내가 살아돌아온다고 나를 위해 같이 싸워줄 사람이 아니었다.
"외통수네... 방법이 안보인다 어카냐."
내가 갖고 있는 기록이라도 뭐가 있을까 해서 계속해서 여러 사이트들의 로그인을 시도했는데 다 막혔다가 에타는 접속이 된다.
처음에 학교 메일로 인증을 하면 이후 본인인증이 필요없어서 상대적으로 널널한건가?
내가 무언갈 했다는 걸 증명할만한 자료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학교 학생들이 얘기하는 커뮤니티인 만큼 좀 다른 스탠스가 있을 것 같아 들어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