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5일차 (2) If i die tomorrow, it'd be a holiday
* * *
씨발 모르겠다. 내 이름 맞고 내 나이 맞고 내 생일 맞는데 왜 화내시는거지.
"저 이정훈 맞는데요..."
"그게 말이 안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에요.
얼굴이 되게 닮긴 했네.
지금 되게 신사적으로 대하고 싶은데 자꾸 그러시면 저희도 감정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푸근한 인상의 형사님은 내 말을 듣더니 화를 겨우겨우 참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말씀하셨다.
"저 진짜 22살 이정훈 맞는데요."
"이 분 진짜 안될 분이시네.
그럼 학교는 K 공대 겠네요?"
"네, 맞아요 K공대 18학번..."
딱!
형사님께서는 내 머리에 따끔하게 꿀밤을 한방 쥐어박으셨다. 길거리에서 맞은 것도 아니고 경찰서에서 머리를 맞은 이 상황이 계속 이해불가능의 영역에 있어서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경찰이 사람 때려도..."
"신고하세요.
폭력 경찰이라고 신고 해 이 쓰레기야!
나도 둘째 딸내미가 작년에 대학 들어갔는데, 지금 형사가 아니라 그만한 자식 둔 부모된 심정으로 너무 좆같고 열불이 나서 못참겠다.
신고 해봐 이 개새끼야."
나는 지금 왜 형사님한테 욕을 먹고 있는건가.
'하 씨발 오늘 진짜 되는 일 없네.
이 형사님은 왜 갑자기 급발진?'
"사람이 농담처럼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아닌 게 있어. 그게 보통 말하는 선이라는 거고.
그쪽이랑 나랑 사석에서 농담으로 했어도 주먹이 날아갈 판에, 경찰서에 잡혀와서 취조하고 있는데 그따위 말을 뱉어?
너가 사람새끼면 그러면 안 되는거야."
"아니 제가 이정훈 맞다니까요. 폰이 없어서 증명을 못하겠네. 민증 만들때 찍었을 테니 나중에 대조하게 제 지문이라도 따가요.
어...?"
뭐지. 뭔가 잘못 되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는 내 손을 보니 지문부분이 뭉개져있었다.
정확하게는 얇은 상처들이 손가락을 여러 번 긁은 느낌으로 흉터가 물감을 덧바른 것처럼 손 끝에 얽혀있었다.
'헉 뭐야 이게, 왜 지문이... 씨발 아니 뭐지?'
이건 어제 필름이 끊긴 사이에 할 수 있을 만한 짓이 아니었다.
얇은 상처라도 이렇게 여러 번 아문 흔적이 남으려면 첫 상처가 최소 이틀 이상 된 상처 같다.
"끝까지 우길꺼야? 그래 지문이나 따놓자.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갈 줄 알아 넌."
"아 아뇨아뇨 죄송합니다 그게.. 지문이.. 아니..."
원래 나는 내 휴대폰 잠금해제도 지문으로 했으니 그 시설에 잡혀들어가기 전까지는 멀쩡했을텐데 언제 내 손을 난도질해놓은건지 모르겠다.
어지러워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둘째 날 밤에 아름이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실 방금 쓴 장치 기능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선배가 영 설명을 들을 상태가 아니네요.]
머리가 찌릿하고 아파온다. 내가 잘 때 뭔가를 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첫 날은 그때였던 것 같다.
손톱 아래에 바늘이 깊숙이 들어갔다 나간 고통이 며칠이나 지속되어 그것 때문에 손 끝이 그렇게 시큰시큰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손가락 반대쪽 부분도 그 장치가 어떻게 상처를 입혔나보다.
씻을 때를 제외하면 붕대를 감고 있는 시간이 많았고 붕대를 푼 이후에는 원래도 내 손 지문 부분을 볼 일이 없어서 손톱 안에 피가 고인 것만 신경썼지, 지문이 뭉개져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새끼 봐라? 너 뭐야? 조폭이야?
어허 참. 이새끼 지문을 뭉개놨네?
너 뭐 불법체류잔데 사람 쑤시고 다니냐?"
형사님 표정이 심각해진다.
해외에서 입국한 뒤에 한국에서 잡혀서 다시 송환되면 본국에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범죄자들.
그들이 신원 조회를 막기 위해 손 끝을 칼로 자르거나 불, 사포 등을 이용해 지문을 상처입혀 없애버리는 범죄자들이 있다고 인터넷에서 봤다.
근데 내가 지금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의심받으니 뭔가 매우 좆된 것 같다.
한참 욕을 먹고 있는 그때, 아까 정 형사라고 했던 형사님이 방을 들어온다.
"팀장님!"
"응? 왜, 정 형사. 너 와서 이새끼봐라. 이 씨발놈 때문에 아침부터 열내네."
"H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환자 하나가 아침에 나간게 맞답니다.
부분적인 기억상실이랑 심한 망상장애 환자라고 하는데, 저희가 구속복에 쓰여져 있는 거 보고 연락했다고 하니까 마침 찾으러 나온 병원 직원들이 이 근처라고 곧 온답니다."
"뭐? 망상장애? 아... 그래서 그랬구만...
뉴스 보고 사진이랑 닮아서 착각하셨을 수도 있겠네.
아이고... 손도 그럼 자해라도 한건가...
그래 정 형사. 수고했어, 하던 일 마저하게."
푸근한 인상의 형사님은 화가 조금 가라앉는지 내게 욕하던 것을 멈추고 정수기에서 찬물을 몇 잔씩이나 들이키셨다.
'망상장애..? 내가..?'
다시 자리에 돌아오신 형사님.
"욕해서 미안해요. 그, 정훈씨는 아니실테니 그냥 젊은 양반이라고 할게."
"아 예. 근데 저 망상장애 아니고 정훈 맞는데..."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 아프면 그럴 수 있어.
내가 그쪽 복장도 그렇고 이해를 했어야 되는데, 나도 사람이라서 요즘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그랬어.
나중에 상태가 좀 나아지거나 치료 끝나면 연락해요. 내가 그때 다시 사과하고 밥이라도 한 끼 사줄게.
젊은 나이에 그쪽도 고생이 많을 것 같은데 내가 욕부터 해버렸네. 진짜 미안해요."
"아닙니다. 예."
조금 전까지는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시다가 사과를 하시는 형사님.
내게 물을 한 잔 건네시고는 직원들 올 때까지 잠깐 앉아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또각 또각
복도에서 구두소리가 들린다.
형사님들은 다 운동화를 신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럼 저 소리가 그 병원 직원인가.
경찰서에 와서 생각한 대로 전혀 해결이 안됐는데 이대로 병원에 끌려가면 또 고문당하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멍하게 아까 보고있던 뉴스나 보기로 한다.
"네, 오늘 전해드릴 마지막 소식입니다.
대전의..."
"응? 뭐? 씨발? 뭐? 오늘 뭔데?"
마지막 뉴스를 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한 사실확인이 필요해보였지만 재수없게도 마침 가운을 입은 직원 한 명과 덩치가 좋은 경비직원으로 보이는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좆됐네. 이대로면 게임 오버인데."
꼼짝없이 병원에 끌려가게 생긴 나.
끌려가기 전에 뭐라도 할 수 있을 까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다 옆쪽에 창문이 보인다.
큰 창과 아래의 작은 창으로 이루어진 창문. 여기가 2층 이었으니 큰 창으로 뛰어내리면 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 입구 좌우에 작은 나무도 있었고 그 앞에 순찰차도 주차되어 있었으니 엥간하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빨리 오셨네요. H 병원 직원분들 맞으시죠?"
형사님이 일어나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지금, 지금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과정을 일일이 생각할 여유는 사치였던 나.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나는 큰 창문을 뛰어넘어 공중에 떠 있었다.
휙!
털썩
쾅!
내 몸은 나무에 살짝 걸리는가 싶더니 속도가 아주 살짝 줄어든 채로 경찰차의 차 지붕에 발부터 내리 꽂혔다.
콰직!, 삐용 삐용 삐용~
차량 경보기가 방금의 충격 때문인지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고 있다.
"저기요~ 이봐요~! 안다쳤어요? 젊은 양반! 괜히 도망치시면 죄가 늘어요~!
아이고, 저거 차가 완전히 망가졌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아까 그 푸근한 인상의 형사님이 놀란 눈으로 내게 소리치고 있었다.
저 분께는 죄송하지만 여기서 잡혀서 다시 육딜도가 될 수는 없지.
잡혀가더라도 알고 잡혀가야 할 것도 생겼고.
차 지붕에서 몸을 옆으로 데굴데굴 굴려 땅까지 내려온다.
머리나 팔부터 떨어지지 않아서 어디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온 몸의 충격을 다리로 받아내서 그런지 발목과 무릎이 아려오긴 하지만 멈춰서 다리나 주무르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큰 길을 향해 뛰었다.
...
'헉, 헉, 헉,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무작정 뛰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도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무임승차를 해야 하는데, 이 튀는 옷을 입은 채로 무임승차를 시도하면 너무 높은 확률로 다시 잡혀갈 것 같다.
'방금 뉴스 내가 잘못본 건 아니겠지? 아니 잘못본 게 맞아야 할텐데...'
소심한 방구석 히키코모리인 나를 경찰서 2층에서 뛰어내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그만큼 쇼킹했던 뉴스였다.
내 눈이 제대로 TV에서 송출되는 빛을 시신경에 전달한 것이라면, 내 귀가 제대로 공기의 진동을 뇌에 전한게 맞다면, 마지막 뉴스는 다음과 같았다.
[K 공대 자살 대학생 ? 이정훈 군 오늘 아침 발인]
내가 술이 덜 깨서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저 헤드라인이었다.
이어지는 문장에 투신이니 성적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 헤드라인에 벌써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최소한 내가 갇혀있는 동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기 전에는 잡혀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을 던졌다.
아까 뭔가 잘못된 건지 뛰다보니 발목은 부어오르고 무릎이 끊어질 것 같다.
팔도 금이 가있다고 너무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뛸 때마다 찌릿찌릿하다.
큰 길을 따라 무작정 도망쳤는데 어떻게 해야 사건에 대해 알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골목 안쪽 허름한 간판의 PC방이 눈에 들어온다.
'PC방에서 검색이라도 해보자 일단.'
지하에 있는 낡은 PC방에 들어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60대로 보이는 사장님께서 나를 잠깐 보셨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신다.
밤샘 게임을 한 것 같은 아저씨 한 두 분 말고는 전부 비어있는 넓지만 한적한 PC방.
내게는 딱 좋은 조건이다.
본인인증을 할 수단이 없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래된 PC방이라서 그런지 비회원 카드가 카운터에 놓여있었다.
카드를 하나 챙겨서 구석자리로 가 PC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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