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4일차 (8) 전부 다 연기였던 걸까 우린 그냥 그저 그런 영화처럼 살았나
* * *
서로 블록 뽑기를 반복하고 다시 선배의 차례.
한 번 뽑힌 블록은 위에 다시 쌓지 않고 옆에 치워뒀기에 선배는 몇 없는 후보 중에서 빼볼만한 블록을 고르고 있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선배의 풀려 있었던 선배의 눈은 멍하게 탑을 바라보고 있다.
"선배 피곤하시면 항복...?"
"아냐. 할 수 있... 흡.. 있어..."
술에 떡이 되어 혀도 풀리고 손도 떠는 선배가 끝까지 오기를 부리니 어찌 안귀여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까 가만히 뒀지만 역시나 블록의 절반을 채 뽑기 전부터 아슬아슬하다.
"옆으로.. 옆으로 살살... 기술적으로..."
와르르
쿠당탕타당!
선배가 깔끔하게 뽑지 못한 젠가 탑은 선배가 손을 떼어내자 바로 무너져버렸다.
"어머 선배, 실패하셨네요 아쉬워라.
벌칙은 어떻게 하실래요?"
"더는 못마시게써.. 크흡.. 그냥 3개 하께.."
고개를 좌우로 흔드며 겨우 대답하는 선배에게 무작위로 뽑는 척 가장 힘든 벌칙만 뽑아 쥐어준다.
[옷 다 벗고 스트리퍼처럼 춤추기]
[뽑은 사람이 아래로 가도록 69]
[축 당첨! 젠가 무너뜨리고 지금부터 뜨거운 밤♡]
선배가 절대 못할만한 벌칙들로 쥐어주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 귀에 돌아온다.
"흑... 아름아. 나 진짜 더는 못마실 것 같은데 한번만 봐주면 안될까...? 흑..."
"안돼요 선배. 룰은 룰. 마시기 싫으시면 하나씩 해주셔야죠."
져지랑 반팔티를 벗으려던 선배는 도저히 할 자신이 없는지 그대로 굳은 채 허공을 바라본다.
"선배 1분 안에 결정 못하시면 저도 억지로 시킬 수 밖에 없어요. 우리 오늘 기분좋았으니꺼 깔끔하게 끝내죠?"
흰 티를 가슴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린 선배는 떨리는 손으로 새 소주병을 연다.
처음 소주 2병 맥주 2병을 세팅한 후에 4병 더 시킨 소주니 선배가 저것까지 마시면 웬만큼 잘마시는 사람이 아닌 이상 확실히 필름이 끊길만한 양이다.
딸깍
벌컥벌컥
긴장한 선배는 잔에 따를 여유도 없는지 병을 그대로 입에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선배는 이미 벌칙으로 지정한 양보다 많이 마시고 있지만 내가 말려줄 의무는 없어 병나발을 부는 선배를 내버려둔다.
"흡.. 헉... 아.. 아름아.. 이제 된 거지...?"
겨우 한 병을 모두 비운 선배가 고개를 내 쪽으로 한 채 쓰러졌다. 선배가 넘어가지 않게 잡은 채로 비서팀을 불러 자리를 정리하고 선배를 침실로 옮긴다.
...
아까의 말을 마지막으로 선배는 눈을 감은 채 말이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침대에 눕혀뒀다.
나는 그 옆에 누운채로 내일의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디테일한 부분들을 확인했다.
"1번 항목에 a,b,c 모두 확인했고, 2번도 오늘 처리됐고... 3번에 f 부분만 내일 아침에 마무리되면 변수는 거의 없겠네..."
진행 상황이 정리된 자료를 태블릿 PC로 확인한 뒤 머리맡에 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선배를 보니 기분 좋은 꿈을 꾸고있는 듯 웃고 있는 채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히히..."
이곳에 잡아온 선배를 처음 본 날부터 벌써 4일째의 밤이라 생각하니 신기하다.
2년 만에 다시 만나서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고민하더니 금방 떠올려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배가 얼굴이 익숙할만한 여자가 별로 없어서 빨리 떠올린 걸지도.
오들오들 떨면서 아름씨라 하는 선배에게 겁을 주려 일부러 컵을 던지기도 했는데 또 금방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두번째 날에는 내가 주는 음식을 거부하기에 나름의 매운 맛도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최소 요구치보다 선배의 뇌가 위기로 느껴서 활성화된 정도가 높았으니 서로 윈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제는 포기하고 완전히 나만 바라볼 법도 한데 묘하게 반응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 있다. 아마 탈출의 희망을 갖고 있거나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상황에 굴복해야 하니 조금씩 애매한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자고있는 선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만 돌아가려 하는데 선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 좀 더 놀자 헤헤...♥"
"선배 자는 거 아니었어요?"
"에이~ 이 선배가 우리 아름이를 두고 어떻게 먼저 자겠어~"
분명 한계까지 술을 마셔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고 생각했다.
흐트러진 선배의 모습을 좀 더 보고싶었고 취한 선배가 야한 벌칙을 뽑은 내게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뻗어버려 조금 실망했었는데...
조금 전 쓰러진 것 까지는 확실한데 조금 자서 기운이 회복된건지 만취상태의 선배가 나를 계속 잡고있다.
'말하는 투로 봐서 맨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사랑스러워졌네요. 선배...♥'
조금 당황스럽지만 내게 안좋은 상황은 아니니 어울려주기로 한다.
"선배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괜찮은 것 맞아요?"
"아니~ 나 안 취했다니까 그러네~ 우리 더 안마셔? 그럼 그냥 누워있는 것도 좋아 나는~ 아름아~ 옆에 누워줘~"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해맑게 웃으며 내 팔을 잡고 있는 선배.
일어나려다 져지를 의자에 다시 걸어두고 선배 옆에 눕는다.
"자, 옆에 누웠어요. 선배는 뭐하고 싶으신데요?"
"그러게~ 뭐부터 할까~ 나는 그냥 너만 있으면 좋은데~ 우리 꼭 안고 코 자자"
선배는 나를 덥석 안고는 등을 토닥토닥 해준다. 항상 내가 먼저 스킨십이나 애정표현을 했으면 했지 선배가 먼저 이렇게 제안하고 다가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원래 주사가 이렇게 앵기는 스타일인가?
"어머, 왜 이래요 선배."
"에이~ 아름이도 좋으면서~ 아침에도 예쁘게 입고는 자는 척해서 나 놀리고! 예쁘니까 봐주는거야~"
라고 말한 선배는 나를 꼭 안은 채로 내 뺨에 자신의 뺨을 부볐다.
뭐, 선배가 예쁘다고 해주니 기분은 좋네.
"저 예뻐요?"
"그럼~ 내가 본 여자중에 제일 이쁜게 우리 아름인데? 수트 핏도 딱 살아서 귀티가 철철 흐르지. 트레이닝복 입으면 모델 포스 풍기면서 남심 자극하지. 청순한 매력 뿜뿜하는 블라우스는 또 어떻고. 게다가 아침에는 남친 셔츠 입은 컨셉까지 크으~ 나도 나만 보고싶다 이런 아름이~"
내가 선배에게 다가갈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선배 입으로 들으니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거울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봐서 귀랑 볼이 빨갛게 되어있을 것이다.
이건 알코올이 중추신경계와 혈관에 작용하여 흥분작용과 대뇌피질 기능 억제,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게 하는 생리적 현상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게 분명하다.
사실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게 너무 황홀하고 행복하지만, 이런 말 몇 마디에 이렇게 빨개진 얼굴은 부끄러우니까 아마 술의 영향이 확실하다.
아직 자주 마셔본 것도 아니니 응. 그래. 내가 술 초보라서.
뜨거워진 뺨과 귀 때문에 손 부채질을 하며 선배를 바라봤다.
눈이 살짝 풀려있는 선배가 자꾸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서 내가 눈을 피했다.
'혹시 술만 들어가면 저렇게 되는 걸까요 우리 선배는...'
눈을 피한 채로 슬쩍 몸을 돌리려 하자 나를 안고있던 선배가 손을 옮겨 내 가슴을 주물렀다.
"어머, 선배.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왜~ 아까 벌칙인데 내가 못했잖아~ 술로 대신했지만 아름이한테 미안해서 이건 서비스~"
가슴을 주무르다 내가 물어보자 손을 옮겨 뺨을 어루만지면서 답하는 선배.
뺨으로 올라갔던 선배의 손이 뱀처럼 내 목과 어깨를 타고 내려가 다시 가슴을 어루만진다.
윗가슴을 천천히 쓰다듬던 선배는 거칠게 브래지어를 내려 엄지로 밑가슴을 훑고 검지와 중지로 내 유두를 괴롭혔다.
"우리 아름이는 가슴까지 예쁘네~ 선배한테 응큼하다 뭐라하면서 사실은 이렇게 만져주기를 원했잖아 그치~"
"아니, 선배. 갑자기 그러시면.. 흐읏...♥"
"아름이 유두가 약하네~ 핑크색 귀여운 유두는 선배가 안예뻐해줄 수가 없잖아~ 갑자기 솔직하지 못하게 그러면 나쁜 학생이지만! 선배는 아름이가 너무 좋아서 오늘만 봐주는거야~"
술에 취해 늘어지면서도 끈적한 말투의 선배가 가슴을 괴롭히니 몸이 달아올라서 버틸 수가 없었다.
술의 영향인지 선배가 다가와주길 기다렸는데 에상치 못하게 이뤄진 덕분인지는 몰라도 선배가 건드리는 곳마다 자국이 남는 것처럼 쾌감이 찌릿하고 스친다.
"으응.. 선배..♥ 자꾸 유두만.. 흣.. 그렇게 괴롭히면..♥"
"응? 좋잖아 아름아~ 왜 가슴만 가지고는 부족해? 우리 귀여운 변태 아름이한테는~? 그러면 이건 어때~ 발정난 아름이 조금은 해소가 될까?"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평소에는 순한 강아지 같은 선배가 끈적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고 천박한 단어를 뱉으며 목을 조르니 아까의 흥분은 배가 되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보다 굵고 두꺼운 선배의 손이 내 목에 힘을 가하자 뇌에 도달하는 산소가 줄어 의식이 붕 뜨고 짜릿한 쾌감과 선배의 수컷 향기가 뇌를 가득 덮는다.
"아.. 아앙..♥ 으흣.. 으응...허읍..!"
천박한 암캐년처럼 목을 졸린 채로 신음을 흘리며 입을 벌리니 선배의 입이 내 입을 덮는다.
문자 그래도 내 입을 범하듯 들어온 선배의 혀는 내 입안에 얌전히 있는 혀를 강간하듯 거칠고 음란하게 내 혀 앞뒤를 핥으며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머리가 멍해져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힘드니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행복감에 젖은 채로 나는 영원과 같은 시간 동안 신음을 흘리며 애액으로 보지를 적시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후아... 어때? 좀 만족이 되니~"
끈적한 침으로 이어진 실이 내 입술과 선배의 입술은 이은 채 길게 늘어졌다가 끊어진다. 선배의 입술에 묻어있는 그 남은 침이 너무나 달콤할 것 같아 다시 내가 다가가 발정난 개처럼 선배의 입술을 핥는다.
"아름아 그렇게 좋았어~?"
"너무 좋아요 선배... 진짜 태어나서 제일 행복해요...♥"
너무 극한상황에 오래 몰아붙인 채로 알코올이 들어가서 이렇게 된 것인지, 원래 주사가 음란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선배는 내 마음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이렇게 행복한데도 자기는 왜 안봐주냐고 침을 흘리듯 젖어있는 보지는 아직도 뜨겁게 달아올라 애가 탄다.
선배의 팔을 잡고 선배의 손을 가슴과 배꼽을 따라 천천히 내린다.
방 안에 가득 찬 선배의 수컷 냄새와 내가 풍긴 음란한 암컷 냄새때문에 흥분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분위기를 타 선배의 귀를 핥으며 물어본다.
"선배 이렇게 잘 할 수 있으면서 왜 빼는 척 했어요...♥
근데 오늘 왜 이래요? 원래 술취하면 이렇게 섹시해요?"
맨정신에서도 이러면 좋겠지만 선배가 부서진 이후에도 먼저 다가오지 못한다면 술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선배에게 속삭였다.
"사랑하지도 않는 너랑 섹스하기는 싫은데 너한테 토막 안나려면 예쁘다 예쁘다 해줘야지 어쩌겠어~"
방금 선배가 뭐라고 말한 거지.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차갑게 식히는 선배의 말에 선배의 몸에 보지를 비비던 것을 멈추고 다시 묻는다.
"네? 이해가 안되네요. 선배 저 안사랑해요?"
"당연하지~ 여기 잡혀온 이후로 네가 안 좆같았던 적이 없다니까~ 존나 쳐맞고 지지고 물고문에 빠따로 패고. 그래놓고는 첫사랑 하는 소녀처럼 히죽히죽하는 싸패년은 내취향은 영 아니다~ 쏘리~ 아름아~"
술이 확 깨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에 액체 질소를 부은 것처럼 차갑다 못해 얼어붙어 부서질 것 같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럼 방금 저한테 예쁘다 하고 만지고 그런건요?"
"아 왜 이렇게 물어봐~ 네가 존나 이런 거 좋다며~ 씨발 변태년이라 이해하긴 어려운데 맞춰줘야지~ 또 내가 빼면 토막나서 태평양에 던져줄까 하고 지랄하자나 너~"
나도 취기가 올랐고 선배도 술기운이 올라와서 마침 서로의 상태가 딱 맞았던 것이지 그 의도와 감정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선배가 부끄럽고 무서워서 말하지 못했던 내게 품은 사랑와 흥분을 풀어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취해서 떨지 않는 상태로 내 욕구를 맞춰주는 연기가 잘 되었을 뿐이었다.
선배가 아직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오늘은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아양을 떨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의 선배가 좋아서 그런 의심과 의문을 모른 척 했던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다.
까득.
이를 꽉 깨물고 힘을 주어 입술을 물어서 아랫입술에 피가 나는 지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돌았다.
하지만 선배에게 혼자 기대하고 혼자 배신당한 병신같은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씁쓸함에 비하면 달콤할 정도였다.
"선배..."
"응? 왜~?"
만취상태로 본인이 무엇을 한 건지 자각도 없는 상태로 웃고 있는 선배.
"선배는 그럼 원하는 게 뭐에요? 제 눈치 보지 말고요."
"아름아~ 알면서 또 그런다~ 당연히 여기서 탈출하는 거지~ 너도 앞으로 볼 일 없으면 더 좋겠다~ 지긋지긋한 감금생활 빠빠이!"
"그럼 들어드릴게요 그 소원.
선배가 그렇게 원하시면 바로 들어드릴게요."
머리맡의 휴대폰을 들어 비서팀에 메세지를 넣는다. 계획보다 다소 틀어지기는 하겠지만 지금의 내 좆같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서 그정도 수정은 괜찮겠지.
"으흑.. 흐윽.. 흑..."
쾅 쾅 쾅
너무 화가 나 울면서 휴대폰을 꼭 쥔 채로 침실 벽을 두드렸다.
휴대폰은 박살이 나고 깨진 액정 때문에 손에는 피가 엉겨붙어 있지만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고통을 느끼고 앉아있기에는 아까부터 심장에 바늘 수천개를 박아넣은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을 떴는데 흰색 방이나 침실이 아니었다.
어제 술먹고 젠가를 했던 것 같은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주변을 둘러봐도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
"여긴 어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