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20화 (20/96)

〈 20화 〉 4일차 (6) ­ 빨간 맛, 궁금해 honey

* * *

"선배, 빨리 나오셨네요."

아까의 우울한 표정과는 다르게 다시 낮처럼 산뜻해진 아름이.

다행히 기분이 괜찮아보인다.

둥근 테이블에 수저통이랑 식당에 많이 있는 벨이 있었다.

'쓸데없이 디테일하네.'

보통 마주보고 앉는데 의자가 아름이 옆쪽에 있어서 들어옮기려 하니 아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기 앉을까?"

괜히 눈치 없이 물어본건지 아름이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기에 그 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옆에 앉은 것은 아니지만 맞은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3명이나 4명이 이 테이블에 앉는다면 벌어질 각도로 아름이 옆쪽에 앉아 나도 그녀를 바라본다.

같은 브랜드의 검은색 트레이닝복. 내가 입으니 동네 백수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름이는 모델같은 느낌이 난다. 안에 반팔티가 흰색인 것 까지 똑같이 준비했나보다.

"선배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산책 핑계로 나와서 술마시는 커플같지않아요?"

오늘의 코디 의도를 설명해주신 그녀.

그녀의 기분을 어떻게 맞출까 하다가 아름이는 가식과 위선을 특히 싫어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나는 백수같은데 아름이 너한테는 너무 잘어울려서 커플이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네..."

라 말하고 멋쩍게 웃으니 아름이가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내게 말한다.

"아니에요, 선배는 충분히 멋져요. 아마 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앗... 이런 선배는 저만 보고 싶은데...♥

어쨋든 객관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선배는."

응원을 받으려는 멘트는 아니었는데 뭐 됐다.

철컥 끼익

철문이 열리더니 저번에 조리복을 입고 들어왔던 것 같은 남성이 이번에는 식당용 앞치마같은 것을 매고 음식용 카트를 밀고 들어온다.

나무 받침과 오븐 트레이같이 생긴 검은 철판 위에 통으로 있는 닭, 채소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고있다.

앞접시와 몇 가지 기본 반찬들을 세팅해주고 검은 뚝배기 하나와 아까 그 닭요리를 테이블에 올린다.

"주문하신 요리 올려드리겠습니다 아가씨.

계란찜이랑 닭 요리를 원하셨다고 해서 프랑스 가정식 스타일로 코코트 에그와 뿔레 호띠를 준비해봤습니다.

방사로 키운 토종닭을 파슬리, 타임, 오레가노 등의 허브와 알라에아 레드솔트로 재워뒀다가 에쉬레 버터를 발라주며 구웠습니다.

평소에 겉면이 바삭한 식감을 즐기셨기에 표준 레시피보다 같은 익힘 정도에 조리시간은 늘려 겉부분 수분감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닭 기름과 육즙이 스며들게 채소를 같이 구워 준비해봤습니다.

테이블 솔트로 준비된 블루솔트랑 드시거나 저희가 준비한 소스랑 같이 드시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코코트 에그는 기본적인 레시피에 포인트로 도화새우를 썰어서 넉넉히 넣어봤습니다. 적당히 익혀 탱글한 식감이 계란이랑같이 드실 때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소주랑 한국 병맥주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셔서 준비했습니다만, 식전주로 영빈티지 샴페인이나 식후에 포트와인도 괜찮으시면 좋은 페어링으로 추천드립니다.

혹시 추가로 필요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을 마친 뒤 카트 아래에서 소주와 맥주를 두병씩 꺼내어 테이블에 두고 다시 카트를 끌며 돌아갔다.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같은, 아니 아마 아름이의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최소 그 정도 급의 요리사가 맞겠지. 그런 사람이 빨간색 식당용 앞치마를 두른 채 실내포차 테이블 앞에서 격식있게 요리를 설명하는 모습이 상당한 위화감을 주어 웃음이 새어나온다.

내 눈에는 계란찜이랑 닭 오븐구이가 보이는데 이것에 대한 설명이 저렇게 길고 어려운 단어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몰랐다.

약간 당황스러워 크게 떠진 눈으로 아름이를 바라보니 아름이도 피식 웃는다.

"앞치마는 괜히 시켰네요. 웃음참는 선배를 보니까 제가 더 웃겼어요.."

아름이가 생각해도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조합이었다보다.

"평소에 여기서 요리해주시는 셰프님이신데, 프렌치 다이닝을 오래하셔서 선배가 생각한 맛이랑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실력은 확실하신 분이라 괜찮을 거에요."

뭐 애초에 맛을 걱정해서 아름이를 바라본 건 아니니까.

여기 잡혀온 이후로 인생 음식이라고 할 법한 걸 꽤나 먹었다.

첫키스를 뺏긴 음식이었던 문어도 그 이후로 한 번 나왔었는데 엄청난 식감이었고, 간단하게 먹자고 해서 나왔던 샌드위치조차도 내가 아는 그 음식이 맞나싶을 정도로 조화로운 음식이었다.

아름이가 수저를 세팅하길래 나는 술잔을 둘 앞에 두고 소주를 따른다.

그녀의 잔에 소주를 채우고 내 앞에 잔에도 따른다.

"아니, 선배는 제가 따라드리려고 했는데, 왜 혼자 따라요 선배!

자작하면 애인 안생긴다는데 그럼 안되잖아요..."

몇방울 따르던 병을 뺏어가는 아름이.

하도 혼술이 습관이 되어 별 생각 없이 한건데 아름이는 별로였나보다.

"미안, 평소에 항상 혼자 마셔서..."

"오늘은 자작 금지, 또 마실 때는 항상 저랑 짠 해주기. 룰이에요."

아름이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뿔레 호띠? 쁠레 후띠? 아무튼 이 닭구이 역시나 굉장했다.

굽O치킨에서 10만원짜리 메뉴가 나오면 이런 맛일까.

겉바속촉에 고기가 담백하면서도 짭짤하고 고소한 육즙을 머금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기도 하고 최근에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소주가 달다. 인생이 쓰면 그만큼 소주가 달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많이 쓰긴 했지.

한잔 두잔 마시다보니 약간 알딸딸하다. 중간에 소맥도 한 번 말고 아름이는 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닭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아름이가 새로운 걸 제안한다.

"선배, 술 좀 들어간 거 같은데 이제 게임해요!"

"응? 게임? 술게임은 잘 모르는데... 둘이서 하는 게 있나?"

"아뇨 술게임 말고 제가 준비해왔어요. 이거요."

볼이 약간 분홍 톤이 된 채 해맑게 웃는 아름이가 테이블 아래에서 박스를 하나 꺼낸다.

빨간색 길쭉한 직육면체, 테트리스 1자 블록같이 생겼다.

"짜잔~"

아름이가 박스를 돌려 앞을 보여주니 설명과 제품 이름이 써있다.

[♥러브젠가♥]

{수위조절 실패! 야한 커플을 위한 응큼하고 빨간 맛!}

처음 보는 물건이다. 젠가면 젠가지 러브젠가는 무엇인가.

'존나 빨간 물건 같은데 젤과 러브젤의 차이 정도 되려나'

아름이는 설레는 표정으로 음식이 없는 테이블 반대편에 젠가 내용물을 꺼내 쌓는다.

나도 의자를 살짝 옮겨 아름이 옆으로 가 같이 젠가를 쌓는다.

생긴건 그냥 젠가랑 똑같은데 나무 피스마다 작은 글씨가 써있다.

그 중 하나를 쌓기 전에 읽어본다.

[뽑은 사람이 바지내리면 상대가 1분동안 빨아주기]

'헉 씨발 뭐야 이게'

술이 확 깬다. 내가 취해서 잘못읽었나싶어 옆에 다른 블록도 확인한다.

[축 당첨! 젠가 무너뜨리고 지금부터 뜨거운 밤♥]

어지럽다. 취기가 조금 올라와서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데 이걸 억지로 하는 것과 안했을 때 아름이의 반응을 비교하여 주판을 튕긴다.

"완전 재밌겠죠 선배...♥"

오늘 하루 중 가장 신나보이는 아름이.

저 러브젠가만 해도 충분히 머리아픈데 책상 아래에서 007 가방같은 하드케이스를 하나 더 꺼낸다.

"이건 선배를 솔직하게 만들어줄 마법도구에요."

넙적한 장치에 손을 올려놓는 부분으로 보이는 것이 2개 있다.

'예능에서 보던 거짓말 탐지기같이 생겼네.'

예능에서 쓰는 거짓말 탐지기 두개를 붙이고 뭔가 조금 더 고급 기술과 부품을 쓴것처럼 생긴 장비를 꺼낸 아름이가 나한테 설명해주었다.

"이거 거짓말탐지긴데요 인터넷에서 파는 장난감 같은 그거 말고 진짜 맥박, 혈압, 땀이랑 전류량을 재서 가려주는 거에요. 전기충격도 조금 더 강하고요."

여기와서 정말 많이 듣고 떠올리는 단어다 전기충격. 아름이는 우리 학교에 온다면 전자과를 가려고 그러나 왜그렇게 나를 전기로 지지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둘의 테이블 바깥쪽 손을 기계에 올리고 손 끝을 홈에 밀어넣는다.

뭔가를 인식한듯한 기계가 초록색 불이 들어온다.

"아까 몇 개는 보신 것 같은데 젠가 안에 행동을 시키는 것도 있고 질문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최대한 정직하게 해주세요. 둘 중에 한 명이라도 거짓말이라고 나오면 둘 다 아프게 세팅해놨어요."

아름이는 나랑 노는 이 상황을 즐기기에 굳이 거짓말하지 않겠지만 너무 긴장하거나 해서 거짓이라고 나오면 둘 다 고통을 받는 구조. 괜히 아름이를 기분나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쓰여진 대로 못하겠으면 소주 한잔 마시기! 알겠죠?"

어지러운 밤이 될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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