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17화 (17/96)

〈 17화 〉 4일차 (3) ­ 선배의 맘 선배의 밤 선배의 봄 모든 게 날 미치게 해

* * *

...

사랑스럽다.

이보다 지금의 감정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눈앞의 선배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선배 우리 사진 한장 찍어요."

"어? 어, 응."

찰칵!

폰을 꺼내 나와 선배가 나오도록 셀카를 찍는다.

선배가 자고 있을때나 고문당할 때, 내가 없는 시간에 혼자 있을 때 모두 벽 안에 설치해둔 감시카메라로 찍거나 영상으로 남겨뒀지만, 깨어있는 선배와 같이 나온 사진은 첫날 찍은 이후로 두번째다.

"처음은 다빈치코드 어때요? 굳은 머리도 풀겸."

"다빈치코드 좋지. 캠프에서는 4인씩 했었던가?"

"네 오늘은 우리 둘 뿐이긴 한데, 룰은 거의 같으니까."

김실장이 카트에서 박스를 하나 꺼내 내용물을 테이블에 꺼내둔다.

흰색 타일과 검은색 타일이 뒤집어진 채로 둘 사이에 섞여있다.

"선배"

"응?"

"선배가 먼저 3번 지면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드릴게요.

3번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드리고요. 어때요?"

사실상 선배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웃으며 섞인 타일에서 4개를 앞으로 가져온다.

다빈치코드. 기본적인 카드 카운팅과 운이 섞인 게임이다.

0부터 11 그리고 조커가 있는 흑백 타일 중 처음 가져온 타일 4개를 오름차순으로 배열한다.

선을 잡은 플레이어부터 앞에 남아있는 타일 중 하나를 가져와 배치하고 상대의 타일을 예측해서 맞추면 상대의 그 타일을, 틀리면 가져온 자신의 타일을 오픈한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타일이 먼저 오픈된 쪽이 지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제가 먼저 할게요."

대답이 없는 선배.

아마 '짜릿한 경험'이라는 단어에서 또 어제의 고통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은 별로 선배를 아프게 하고픈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는 선배를 보고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괜히 겁을 줘봤다.

"제일 왼쪽에 4에요?"

"아, 아니야."

"그럼 제 타일 오픈할게요."

서로 턴을 주고 받다보니 서로 타일이 2개씩 남았다. 둘 사이에 있는 타일은 아직 꽤 있지만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나 몇 턴 안에 승부가 날 것이다.

'벌칙을 정한 이후로 계속 떨고 계시네요 선배. 귀여워라.'

3패는 짜릿한 경험.

선배에게 그 말을 한 이후로 그가 계속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선배는 나름 아닌 척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묘하게 계속 떨리는 어깨와 목소리는 그렇게 쉽게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놀려주고 싶어 모르는 척 물어본다.

"선배 왜 자꾸 떠시나요? 추우신가요?"

"어? 아, 아냐, 떨기는 무슨..."

왜 자신이 티가 많이 나는 스타일이란 걸 모를까.

그런 면이 재밌는 사람이긴 하지만.

대충 나올 숫자가 다 나와서 이길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마지막 타일을 틀리게 말해서 한끗차이로 져준다.

"후... 다행이다. 오,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네 그렇지?"

"네 재밌네요."

내가 재밌어 하는 게 이 게임이 아니라 여기에 집중하는 선배를 보는 것이란걸 선배는 모르겠지만 내가 웃고 있으니 살짝 안심하는 그의 기분을 굳이 망치진 않는다.

그렇게 2대2 후 마지막 게임에서 또 한끗차이로 져준다.

마지막 게임은 내가 너무 유리한 상황으로 시작해서 약간 티가 났을 법도 한데 안도감에 힘이 풀린 선배에게 그걸 눈치챌 만큼의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나보다.

"아~ 아쉽네요. 선배가 짜릿한 경험을 하시길 원했는데."

"하하... 와 아름아 너 잘하더라, 역시 똑똑해서 그런가?"

"이긴 뒤에 굳이 칭찬은 안하셔도 괜찮아요. 그보다 소원은 뭐가 좋으세요?"

한참을 고민하던 선배는 '오늘은 아픈 벌칙 금지'도 소원으로 괜찮냐고 내게 물었다.

물론 들어줄 수 있다고 말하자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 어쩜 저리 다 드러날까..."

"응? 아름아? 뭐라고 했어?"

"아니에요. 고생하셨다고요."

게임 한두 가지를 더하다 점심을 대충 먹고 오후에는 포커를 쳤다.

중간중간에 김실장이나 김팀장도 함께.

둘 중에 먼저 4번 칩을 모두 잃는 쪽이 상대방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또 살짝 굳어있는 상태로 자신의 패를 확인하는 선배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

4일간 선배를 보면서 선배가 나를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잘 살던 선배를 갑자기 잡아다가 여기에 묶어놨으니까.

그게 또 그리 싫지는 않아서 무서워하는 대로 내 말을 잘 듣도록 겁을 좀 줬다.

겁주고 달래주고 그러니까 또 의외로 주제를 모르게 되기도 했지만...

확실히 선배가 내가 준 음식을 안 먹었을 때 감정적으로 그를 대했다.

'바로 꼬리내린 강아지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튕기는 맛이 있어서 선배가 좋긴 하네.'

원래는 조금 더 분위기를 잡고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공포로 못 움직이는 선배의 첫키스를 뺏는건 무척 황홀했다.

튕기고 반항하긴 했지만 결국 조금만 겁을 주면 자기보다 작고 약한 여자가 입에 혀를 밀어넣는데도 아무 반항 못하는 선배.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아예 반항을 안 했을 것이고, 더 멍청했다면 끝까지 내게 짖었을텐데 선배는 딱 내가 좋아할 만큼만 똑똑하고 멍청했다.

그런 선배가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선배의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뒤섞이지만 결국 그 감정의 끝은 나를 향해있었으면 좋겠다.

나한테 미안해하는 선배.

나한테 겁먹은 선배.

나를 증오하는 선배.

나한테 복수하는 선배.

내 표정에 안심하는 선배.

나한테 흥분하는 선배...♥

나한테 화나있으면서, 나한테 복수하고 싶으면서, 내게 벗어나고 싶으면서 아닌 척 연기하는 선배를 보고있으면 콩닥콩닥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서 어제는 교수님께 부탁드려 선배가 그런 감정을 풀어낼 수 있을 기회를 줬다.

선배의 뜨겁게 타오르는 증오가 오롯이 나를 향해있었던 그 짜릿함은 오직 나만이 알 것이다.

선배가 내 윗옷을 뜯었을 때, 예상보다 선배가 더 내게 복수하고 싶어한 것 같아 기대했다.

좆같은 년, 씨발년, 걸레년. 내게 천박하고 원초적인 욕설을 뱉으며 나를 덮쳐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선배를 상상했었지만, 멈칫하는 선배의 눈동자에서 그럴 사람이 못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아 선배는 내게 욕하고 때리긴 해도 나를 강간할 수 있는 사람은 안되는구나.' 하고.

그래도 내가 매도하니 울면서 목을 조른 선배는 대만족이었기에 봐주기로 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선배를 보면 두근대는 이 감정을 참기가 힘들어 슬슬 정말 선배가 나밖에 몰랐으면 좋겠다.

마음이 부서지고 꿈이 부서지고 세상이 부서져서 내게 안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선배.

죽은 눈으로 먼저 내게 복종을 맹세하는 선배.

심장이, 마음이 다쳐버려서 자신이 나한테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선배.

선배를 바닥 없는 좌절과 공포, 절망의 나락에 떨어트려 나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싶다.

그 순간이 오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처음을 나누게 되겠지.

그런 선배를 상상하니 너무나 흥분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밤에 잠들어 있는 선배의 그쪽은 솔직한데 낮의 선배가 나를 사랑하는 척 하는 게 너무 어색한 연기 같아서 좀 고민했다.

혹시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거나, 내가 너무 취향이 아니라거나 하는 쪽으로.

하지만 오늘 아침에 보니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다 들켰는데 아닌 척 하는 선배의 귀여운 반응은 덤이었고. 오늘은 상당히 좋은 시작이었네.

한참을 딴생각을 하면서 베팅을 하다 보니 선배와 나 모두 마지막 칩에 마지막 베팅이었다.

...

오늘은 계속 아름이 기분이 좋아보인다.

'나한테 슈트를 입혀서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침부터 여러 게임을 하는 내내 내 얼굴을 보는 시간이 자신의 패를 확인하는 시간보다 길었다.

'씨발 이쪽은 거의 목숨빵이라고. 일단 아픈거는 제외했으니 좀 낫긴 하겠지.'

처음에 좀 앞질러가나 했다가 김실장이랑 또 다른 검은 정장의 남성까지 낀 채로 4인 홀덤에서 2번이나 칩을 전부 잃었다.

짜고 치는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애초에 게임 없이 대놓고 나를 때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있었다.

마지막 포커는 세븐카드 스터드로 했다. 첫 네장에 하트가 4개 들어와 플러시 각이라 생각해 끝까지 왔다. 그리고 마지막 히든카드...

'오 떴다. 플러시!!'

내 차례가 오면 남은 칩을 전부 걸려했는데 체크를 한 김실장 다음의 아름이가 올인을 한다.

"올인이에요."

서로 판돈이 엄청 많이 남은 건 아니지만 저쪽도 올인이라니. 오픈 카드 중에 페어나 트리플은 없으니 A, K, 10 이 포함된 스트레이트를 뻥카로 치거나 진짜 떠도 스트레이트까지일 것이다.

'이쪽은 플러시라고. 이렇게 또 살아나간다 크으~'

"나도 그럼 올인."

올인을 올인으로 받고 히든까지 합쳐서 족보를 만들었다.

승리를 확신하고 서로의 패를 공개한다.

"어...어...!"

아름이의 미공개 패와 히든에서 A 2장과 10이 나왔다. 즉, 풀하우스다.

내 플러시 조합에도 A K 10이 있어서 A 3장이 포함된 풀하우스가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못했는데. 이게 확률적으로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서로의 패가 확인되자 김실장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아름이가 내게 다가온다.

"제가 이겼네요 선배, 저 소원 써도 되죠?"

'어, 어, 어...."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