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봐. 무서워하잖아.”
기르가 나빠. 프리아는 들개의 역성을 들며 원망하는 눈빛으로 기르를 올려다 보았다.
무서워하다니요. 저 녀석이 말입니까? 저에게는 널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하는 눈빛으로 보입니다만.
“프리아 님이 감당하시기에는 벅찬 녀석입니다. 개를 꼭 키우시길 원한다면 제가 순한 새끼를 한 마리를 얻어다 드리지요.”
“다른 강아지는 싫어! 얘가 좋단 말이야.”
하룻밤 사이 들개에게 정이 듬뿍 든 프리아가 상기된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었다.
‘왜 애를 울려? 당신이 그러고도 어른이야?’
한층 사나워진 들개가 기르를 향해 소리 내어 짖었다. 쉽게 길들여질 녀석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눈물은 가슴 아팠으나 운다고 봐줄 수는 없었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광견병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그게 뭔데?”
콧물을 훌쩍이며 프리아가 반문했다.
‘뭐라고? 감히 날 미친개 취급하는 건가?’
마치 기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들개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기르는 들개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병균을 가진 야생동물에 의해 전염되는 뇌척수염입니다. 여우, 너구리, 박쥐, 족제비, 드물게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발견되지요. 발병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었을 때 전파됩니다. 이 병에 걸리면 물을 무서워하게 되기에 공수병이라고도 합니다.”
“얘는 물 안 무서워해. 아까 물을 줬는데 남기지 않고 다 마셨어.”
프리아가 마시던 컵에 그대로 혀를 내밀어 목을 축였던 오웬이 움찔 몸을 굳혔다. 기분 나쁘긴 했지만 기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자신이 몸을 빌리고 있는 동안에는 제어할 수 있으나 떠난 후에는 어찌할 것인가. 들개는 야생 본능이 강한 짐승이었다. 프리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아직 발병하지 않았으니까요. 발견했던 곳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데려다 놓겠습니다.”
“안 돼! 싫어! 아직 다친 곳도 다 낫지 않았단 말이야!”
프리아의 통곡이 이어졌다. 그 후로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울면서 식사조차 거부하는 통에 엄격한 기르도 이번에는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이렇게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면 안 됩니다. 봐 드리는 건 이번 한 번뿐입니다.”
하도 울어 퉁퉁 부은 아이의 눈두덩이에 얼음을 감싼 주머니를 갖다 대며 기르가 한숨을 쉬었다. 지금껏 이렇게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고집이 그렇게까지 셀 줄은 몰랐는데. 당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쩐지 기죽은 표정을 한 들개가 방구석에서 기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프리아 뿐만 아니라 들개까지 먹이를 먹지 않더란 말을 하녀에게 전해 들었다. 하녀는 들개가 도련님을 염려한 것이 아니냐며 영특하다 감탄을 표했다.
‘조그만 게 왜 이렇게 쇠심줄이야. 겨우 하루 본 개가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밥을 먹지 않겠다는 거지?’
프리아의 단식투쟁은 오웬을 위한 것이었으나 정작 그는 기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프리아의 소년 시절을 지켜볼 수 있어 행복했으나 한참 성장기인 아이가 종일 식사를 거르는 모습을 보니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프리아를 굶겨 며칠의 행복을 보장받느니 자신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백번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안 고파? 저 빵 진짜 맛있어 보인다. 어서 먹자.’
오웬이 옷을 잡아끌며 식탁으로 안내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강아지야, 너 먼저 먹어. 나는 배 안 고파.’
개가 되어 청각이 예민해진 오웬의 귀에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프리아는 평소 좋아하던 요리마저 먹지 않고 외면했다.
‘이봐! 이러다 애 잡겠어! 거기 아무도 없냐고!’
오웬이 밖을 향해 짖어대자 기르가 찾아와 문을 열었다.
“뭐라도 드셔야지요.”
분명 배고플 것이 뻔한데 작은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눈치가 빤한 파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기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루 정도 굶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역시 신경이 쓰여 연구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며칠 동안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 판단되면 허락해드리지요.”
떼쓰면 들어준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르의 평소 교육 지론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며칠 동안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 판단되면 허락해드리지요.”
“강아지야! 키워도 된대!”
들개가 문제를 일으킬 리 없다 확신한 프리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유예 기간일 뿐입니다. 그동안 프리아 님께서 잘 돌봐주셔야 합니다.”
“내가 다 할게! 먹이도 주고 털도 빗겨주고 목욕도 시켜줄 거야.”
프리아는 동생을 갖게 된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이제야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대화를 나눌 수는 없어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아의 나이 열 살. 일반적인 귀족 소년이었다면 혈통 좋은 사냥개를 새끼 때부터 길들여 사냥의 도구로 쓰는 법을 배우게 될 시기였다.
귀족과 농노의 사냥은 다르다. 주린 배를 채울 고기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털가죽을 얻기 위해 농민은 덫을 놓았다. 그러나 귀족은 살육의 즐거움과 약간의 미식을 누리기 위해, 외투를 장식할 모피를 얻기 위해 활을 잡았다.
기르 역시 황자로 태어나 궁 안에서 자라며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이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생생한 삶을 여러 나라를 떠돌며 체험하게 되었다. 프리아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후자이지 전자가 아니었다.
“상처에 물이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서 씻겨야 합니다. 하녀의 도움을 받으세요.”
기르는 엉성하게 묶여 있던 붕대를 풀어 다시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한결 얌전해진 들개에게선 위협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알았어!”
신난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아지야, 내가 씻겨줄게. 들개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기르가 제동을 걸었다.
“언제까지 강아지라 부르실 겁니까? 다 자란 녀석인데요.”
“아기니까 괜찮지 않아?”
그 칭호는 싫어하는 것 같군. 어쩐지 들개의 속마음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기르는 입술을 끌어올렸다.
“이름을 붙여주시죠.”
“이름?”
“짐승을 길들이려면 우선 이름부터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럼 리카온! 리카온으로 할래.”
망설임 없이 나온 프리아의 대답을 들은 오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카온. 신화에서 따온 이름인가.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밤이 되자 프리아가 침대로 가져온 한 권의 책에서 그 연유가 드러났다. 프리아는 흠흠 소리를 내어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책을 읽어줄게.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 모험담이야.”
프리아는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리카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결한 기사가 왕의 부름을 받아 용을 무찌르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였다.
“난 커서 기사가 될 거야.”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는 것처럼 오웬의 귀에 대고 프리아가 속삭였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니, 넌 황후가 된다. 넌 자라서 황제의 반려가 될 거야.’
프리아는 짐작도 하지 못할 미래를 예언하며 들개가 아이의 얼굴을 핥았다.
“그리고 너는 기사의 용맹한 ……개가 되는 거야.”
좋은 말을 하는 건데 왜 어감이 이상하게 들릴까. 고개를 갸우뚱한 프리아가 들개의 등을 쓰다듬었다.
“기사가 되려면 먼저 시동이 되고 그 후에 시종을 거쳐야 해. 에반은 벌써 시종이 되었는데 나중에 기사가 되면 날 데리고 전쟁에 나가준다고 했어.”
‘너를 밀었던 그놈 말인가? 그런 놈이 기사가 된다니 코웃음을 칠 일이군. 전장에서도 그놈의 얼굴은 보지 못했는데?’
이 무렵 에반은 시종 생활을 때려치우고 대공저로 돌아와 형들의 근심거리가 되었으나 프리아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일은 함께 목욕하자. 내가 씻겨줄…….”
프리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오웬은 새벽이 올 때까지 아이의 잠든 얼굴을 지켜보았다.
프리아의 머리카락은 이제 세 가닥밖에 남지 않았다. 그만큼 파수꾼이 지키고 있는 영지에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장 험난한 길이 남았어. 오늘 밤은 푹 쉬도록 해.”
힘을 비축해둬야 한다며 안톤은 평소보다 일찍 동굴로 오웬을 안내했다. 달이 지기를 기다리며 오웬은 프리아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있었다.
“며칠은 더 가야 하는데 남겨두지 그래? 힘든 날 보러 가는 게 나을 거야.”
흙길을 걸어오느라 지저분해진 털을 혀로 핥아 깨끗이 하며 안톤이 말을 걸었다.
“들개를 곁에 두는 건 위험해. 가서 산으로 돌려보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