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134)화 (135/237)

고통스런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오웬은 밤을 꼬박 지샌 채 아이의 작은 몸을 휘감고 있는 붕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 아비와 어미를 반씩 빼닮았다. 오웬은 레온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웃을 때면 살짝 파이곤 하는 입가의 볼우물, 오똑한 형태로 자리 잡아 가는 아직 어린 콧날을 보며 아서를 떠올리곤 했다. 부상을 당해 누워 있는 모습조차 형의 마지막 날들과 겹쳐 보여 오웬은 자책하며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올 때까지 세게 주먹을 움켜쥐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었다.

궁정의들은 사색에 질렸으나 오웬이 접근을 거부한 탓에 시종장의 눈치만 살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난리법석을 피웠을 일이었으나 어린 황손에게 벌어진 참극과는 비교할 수 없어 시종장 역시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폐하,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오웬은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거친 손길로 마른 수건을 들어 피를 닦아 냈다. 린드가르트 역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으나 곧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제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그날 오후, 잠시 레온의 의식이 돌아왔다. 

“……유모?”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유모를 찾던 아이는 곧 다친 팔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끼고 울음을 터트렸다. 

“레온! 레온! 제 말이 들리십니까?”

애타게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린드가르트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저하! 정신을 차리셨군요! 모든 게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저하를 혼자 계시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유모가 자책하며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레온의 혼란을 우려한 오웬은 시종을 시켜 빠르게 유모를 진정시켰다. 그 사이 레온의 상태를 살핀 태의가 진통제를 먹이자 차츰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태의에게서 상태 보고를 받은 오웬은 레온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레온,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물기 젖은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물어볼 게 있어. 기억나는 대로 대답해 주겠니?”

“네, 숙부님.”

“왜 혼자 지붕에 올라갔었지? 유모가 방에서 기다리고 했을 텐데.”

혼이 날거라 생각했는지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눈물로 흐려지며 입술이 떨렸다. 오웬은 아이의 뺨을 도닥이며 다시 말을 걸었다. 

“혼을 내려는 게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 나는 레온이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면 해.”

오웬이 혼을 내지 않는다 하였지만 아이는 다시 눈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린드가르트가 오웬을 밀어내고 제품으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이제 막 황자께서 정신을 차리셨는데 이리 몰아붙이시다니요! 사정은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늘 그리워했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어미의 품에서 레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님. 숙부님과 얘기하고 싶어요.”

“힘들면 나중에 이야기해도 괜찮단다.”

아니라는 것처럼 아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애정과 가책이 섞인 시선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오웬이 말을 이어갔다. 

“레온이 왜 지붕에 올라가게 된 건지. 그리고 왜 떨어지게 된 건지, 레온의 입으로 들었으면 해. 발이 미끄러워 넘어졌던 거니?”

“그건, 내가 무거워서 떨어진 건데. 어? 마티아는?”

낯선 이름을 입에 올린 레온이 누군가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티아? 그게 누구지? 그 사람이 너를 지붕으로 데려갔어?”

“마티아는 제 친구예요. 어, 말하면 안 되는데!”

낯선 이름을 친구라 칭하던 레온은 곧바로 입을 다시 다물었다. 

“마티아가 누구지? 요즘 같이 어울리는 아이인가? 어느 집 아이인지 아는 대로 말해봐.”

입을 다문 레온 대신 오웬이 유모에게 물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자제분과는 어울리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송하오나 제 소견으로는 전에 폐하께 말씀드렸던 비밀 친구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망설이던 유모가 입을 열었다. 유모의 말을 들은 오웬이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또 그 비밀 친구인가. 그러고 보니 프리아를 위해 대중 극단을 불러왔던 날, 레온이 아는 이를 만났다며 달려가다 넘어졌다는 말을 유모에게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있었던 어느 밤의 일.

‘마티… 아니, 친구랑 나눠 먹을 거예요.’

‘동물 아니야! 천사야!’

‘저하께서 꿈을 꾸셨는지 천사를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비밀이라며 알려 주지 않으려고 하셔서 저도 잠결에야 여쭈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만나러 올 거라며 간식을 모아 두기도 하시고 하염없이 창밖만을 바라보시기도 합니다.’

‘창문으로 천사 친구가 날아온다는 건가?’

‘큰 새를 보고 착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어리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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