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132)화 (133/237)

순식간에 아이의 모습이 프리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레온이 중심을 잃었던 곳으로 달려와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붕 표면에 반사된 겨울 해가 눈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를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울음을 터트린 아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서워….”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레온의 발그레한 뺨을 바람이 날카롭게 할퀴었다. 처음엔 지붕 표면에 쓸린 손바닥이 아프고 따가워서 울었으나 무심코 내려다본 아래가 까마득한 높이인 것을 실감한 후엔 무섭고 두려워서 더욱 소리 높여 울었다.

“유모….”

방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 했던 유모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사방이 낯설고 춥고 무서웠다. 몸을 움직였다간 조금 전처럼 또 미끄러져 버릴 것 같아 레온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신을 부르는 상냥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레온, 내 목소리 들리니?”

“마티아?”

마티아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놀라 그만 마티아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인 마티아를 구하러 올라왔던 건데 높은 곳이 무섭다고 바로 후회하다니, 용감한 기사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레온은 숙였던 고개를 위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마티아, 아직 나쁜 놈들에게 잡혀가지 않은 거지?

“레온, 더 크게 대답해 줄래? 여기선 네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래. 레온이 크게 소리쳐 주면 내가 목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찾아갈게.”

천만다행으로 아직 지붕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프리아는 어린 레온이 동요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을 붙이며 자신도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숙였다.

“마티아! 나쁜 놈들 거기 없어?”

나쁜 놈들이라니 누굴 말하는 걸까. 선입견이 형성된 어른과 상상력이 발달한 아이. 눈높이를 맞춰 세상을 보려고 해도 보이는 풍경은 같지 않다. 그리고 레온은 이제 겨우 다섯 살. 자신을 천사 마티아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순진한 어린 아이였다.

“나쁜 놈들이 네 친구를 잡아갔어!”

“레온, 어떤 사람들인지 기억하니?”

“음…, 나쁜 놈들이야! 몸이 엄청 크고 수염이 났어! 천사가 싫다고, 아프다고 그랬는데 그놈들이 막 끌고 갔어!”

“그렇구나, 레온이 보고 무척 놀랐겠어. 무섭지 않았어?”

“응, 아니! 안 무서웠어! 마티아, 그놈들이 또 오면 내가 혼내 줄게!”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내딛으면 그대로 추락이었다. 프리아는 등을 지붕 표면에 바짝 붙인 채 천천히 아래쪽으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붕 곳곳에 튀어나온 굴뚝이 보인다. 불쑥 튀어나온 다락방 창문도 보였다. 처마 끝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천사의 상반신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것을 오웬의 다락방 위에서 보았던 생각이 났다. 그곳은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도 짧아 쉽게 위로 오를 수 있었다. 프리아가 밤을 틈타 찾아갔던 레온의 지붕 위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어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프리아가 내려다보고 있는 곳은 경사는 물론이거니와 길이도 한참을 내려가야 할 만큼 까마득했다.

“레온은 용감하구나. 그래도 혼자서 이렇게 위험한 곳까지 올라오면 안 돼.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래?”

“…그치만. 나는 마티아를 구해 주려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아져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그대로 천사 분장을 한 연극단원을 보고 오해해 자신을 구해 주려 숨어 있었다 생각하니 천진난만한 선의에 가슴이 찡해졌다.

“알고 있어. 날 도와주려고 그런 거지?”

“…응. 마티아 화났어?”

“화나지 않았어. 도와줘서 고마워. 레온, 주변에 뭐가 보이니? 살펴보고 말해 줄래?”

“알았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지붕뿐이다. 가속도가 붙어 멈추지 못하고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갔던 레온의 몸은 갑자기 튀어나온 굴뚝과 충돌했었다. 부딪친 몸은 고통을 호소했으나 덕분에 더 이상의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굴뚝 기둥 밖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아이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무서워. 잠시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마티아, 여기 엄청 높아.”

“괜찮아. 내가 금방 내려가서 구해 줄게. 아래쪽은 쳐다보지 말고 위만 보고 있어.”

보지 말라 했으나 저도 모르게 힐끔힐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시선은 어쩔 수 없다. 흑, 하고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걱정하지 마, 레온. 금방 갈게. 무서우면 눈 꼭 감고 있어. 괜찮을 거야. 나 믿지?”

프리아가 시키는 대로 눈을 꼭 감은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는 거야. 몇까지 셀 수 있는지 내려가면 나에게 알려 줘, 알았지?”

힘차게 고개를 흔들며 레온은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괜찮아, 마티아가 구해 줄 거야.

이미 날씨는 개었지만 새벽에 내렸던 빗물이 고여 증발되지 못하고 곳곳에 남아 있었다. 프리아는 신중을 기하며 느린 속도로 경사를 내려갔다.

출발했던 곳으로 아이를 업고 되돌아올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프리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혼자라면 어찌어찌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등 뒤에 매달린 아이가 힘이 빠져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우선 레온을 찾아 안심시키며 구조할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마티아? 아직 멀었어?”

소리가 가까워졌다. 어디에 있는 걸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프리아의 눈에 툭 튀어나온 굴뚝 하나가 보였다.

“레온, 내 목소리 들리면 손을 흔들어 볼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온 작은 팔 하나가 손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어. 안심한 프리아가 크게 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갑자기 찾아온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조이고 손발 끝이 떨려 왔다. 발작의 전조였다.

‘제발….’

이제 겨우 레온이 있는 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 프리아는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마티아?”

아직 시야는 멀쩡하고 레온이 부르는 목소리도 제대로 들려오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잃은 순 없었다. 아이를 만나 안심시키고 구조될 때까지 어른인 자신이 지켜 줘야 했다.

미끄러질까 걱정돼 신발은 위에 벗어 두고 맨발로 내려왔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된다. 프리아의 발에 밟힌 낡은 지붕이 불평하듯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드디어, 프리아의 눈앞에 몸을 웅크린 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아이의 몸을 굴뚝이 완벽히 숨겨 주었기에 위쪽에서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레온!”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레온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마티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레온이 굴뚝 밖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기다리던 이가 드디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공포도 잊어버리고 그저 기쁨에 찬 아이가 웅크렸던 자리에서 일어나 굴뚝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마티아! 나 있잖아! 마티아한테 물어볼 거 있었어! 내가 숙부님의 아이가 될 거래. 이제 숙부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주신대! 근데 그러면 아버지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 응? 아버지께서 싫다고 하시면 숙부님의 아이가 되지 않을래. 근데 그러면 또 숙부님이 섭섭해하시면 어떻게 하지?”

레온이 손을 흔들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끊겼다 이어지는 단어들이 웅웅거리며 프리아의 귓속으로 어지럽게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레온이 서 있었다.

힘겹게 뻗어 나간 프리아의 손이 아이의 어깨에 닿았다. 그대로 품에 안아 든 순간 익숙한 이명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프리아는 아이와 하나로 엉킨 채 비탈진 표면을 굴러가기 시작했다.

“…티아! 마티…! 마티아!”

끊기던 음성이 하나로 합쳐지며 정신이 들었다. 작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아이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레온.”

“내가… 흑, 너무 무거워서, 마티아가 넘어졌어.”

아이는 추락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있었다. 커다란 눈동자 가득 맺힌 눈물이 쉴 새 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에 프리아의 가슴이 아파왔다.

“아니야, 레온. 너는 잘못 없어. 내가 부주의한 탓에 레온까지 함께 넘어진 거야. 미안해.”

이 작은 아이가 홀로 지붕으로 올라오게 된 것도, 얌전히 몸을 숨기고 있던 굴뚝에서 걸어 나와 다시 떨어지게 된 것도 모두 프리아의 탓이었다. 다행히 레온의 몸에는 큰 외상이 없어 보였다. 떨어지며 여기저기 부딪친 몸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킨 프리아가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뿔싸.

눈앞이 허공이다. 몇 뼘만 몸을 움직이면 아래는 그대로 허공이었다. 어느새 처마 끝까지 굴러떨어져 낮은 난간처럼 튀어나온 마감 장식에 몸을 기대고 있던 것이다.

삐이익

창공을 나는 커다란 새가 지붕을 선회하며 소리 높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수리다. 호기심 많은 아이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마티아, 저기 독수리가 있어! 독수리야, 안녕?”

신기해하며 손을 흔드는 레온과는 달리 프리아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었다. 발톱 힘이 강한 독수리가 양이나 염소를 움켜쥐고 하늘 높이 데려간 후, 떨어뜨려 먹이감으로 삼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던 것이다. 짐승뿐 아니라 몸집이 작은 아이도 종종 목표물이 되곤 했기에 기르는 언제나 산과 들로 나갈 때면 프리아가 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엄히 주의를 주었다.

독수리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레온을 가려야 한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다간 아래로 떨어져 버릴 위험이 있었다. 어찌하면 좋을지.

프리아가 초조한 얼굴로 고민하던 순간, 갑자기 뚝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레온의 몸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된 장식 난간이 두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레온!”

급히 뻗어 나간 프리아의 손이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레온은 놀라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허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마티아, 날개… 날개 보여 주면 안 돼?”

날개가 있으니 꺼내어 함께 날아가면 안 되는 걸까? 그럼 떨어지지도 않을 텐데. 레온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 맞다. 마티아 날개는 부끄럼쟁이라고 했지. 까먹고 있었어.”

‘날개는 보여 줄 수가 없어. 부끄럼쟁이라서 사람의 눈에 띄면 몸에서 떨어져 나와 흩어져 버리거든. 그럼 하늘로 돌아갈 수가 없잖아.’

무심코 한 장난이 이렇게 아프게 돌아올 줄 몰랐다. 눈물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손을 들어 닦을 수도 없어서 프리아는 고개를 흔들며 떨리는 입술을 다시 열었다.

“레온, 미안해. 나는….”

천사가 아니야.

아이를 다시 위로 올릴 힘이 절실했다. 그러나 붙잡은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힘도 없고 날개도 없는 나약한 인간. 그것이 자신이었다. 지독한 운명처럼, 징벌처럼 다시 암전이 찾아오고 있었다. 손에 쥔 무게가 사라지는 걸 어렴풋이 느끼며 프리아는 맥없이 눈을 감았다.

“레온이 없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중년 여인의 보고를 받은 오웬의 눈매가 대번에 매서워졌다.

“사람을 풀어 찾고 있으니 곧 무사히 발견되시리라 생각합니다. 프리아 님께서 황자 전하부터 찾으라 하시어 저만 내려왔습니다.”

“유모를 데려와.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부터 들어야겠어.”

“그리하겠습니다.”

오웬의 지시를 받은 여인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연회를 앞둔 본궁 마당은 초대받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 레온과 후궁들마저 내려와 착석하면 곧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가 울려 퍼질 예정이었다.

출정을 앞둔 귀족들을 격려하는 자리이기는 했으나 실상 오늘 연회의 또 다른 주인공은 레온이었다. 의식에 맞는 정복을 입고 이미 내려왔어야 할 레온이 늦어져 지시를 내리려던 참에 달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필시 투정을 부리거나 숨바꼭질을 해 유모의 애를 태우려는 장난일 것이다, 그리 짐작하면서도 오웬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을 굳힌 오웬을 바라보고 있던 린드가르트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폐하, 제가 올라가 보겠습니다. 주목받는 자리라 황자께서 부담을 느낀 모양이에요.”

망설임 없이 제 아들을 황자라 칭하는 린드가르트의 얼굴 또한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아서가 살아 있을 적엔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스스럼없이 말을 편히 하던 그녀였으나 남편이 떠난 후론 둘만 있는 곳에서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한때 누구보다 친한 누이였던 그녀를 바라보는 오웬의 시선에 온기가 깃들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나도 어렸을 땐 자주 그랬잖아. 형이 찾으러 올 때까지 몸을 숨기곤 했지. 그땐 그런 게 재미있는 놀이였거든. 사람을 풀었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린드가르트에게 건넨 위로의 말처럼 별일이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린드가르트를 볼 때면 형이 떠오르고 자연스럽게 그날의 악몽이 뒤를 이었다. 수백 번, 수천 번 후회하면서도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실수가 뼈아프게 되살아난다. 이 자리는 아서를 향한 작은 보상의 시작이었다. 오랜 기간 계획하고 기다려온 일이 이제 막 성사되려 하고 있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아직까지 레온을 찾지 못해 흙빛이 된 얼굴로 유모가 다가와 오웬에게 예를 표했다. 그녀의 뒤에 눈에 익은 프리아의 시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인의 모습을 찾기 위해 오웬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아이가! 지붕 위에 아이가 있어요!”

백작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를 따라 위로 모인 시선이 곧 처마 끝에 위태롭게 멈춰 있는 작은 인영을 발견해 냈다.

“저하!”

먼 그림자만으로도 유모는 레온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갓난아이 때부터 제 가슴으로 젖을 먹이며 소중히 키워온 황손이다. 비명처럼 내지른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레온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유모의 말을 들은 오웬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험한 줄도 모르는 것인지 작은 몸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레온이라뇨? 그 아이가 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린드가르트가 휘청이며 뒷걸음쳤다. 아이를 떼어 놓고 기른 탓일까. 유모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도 없었다. 정말 내 아이가 맞는가. 고개를 내젓는 그녀의 얼굴 위로 공포가 서렸다.

“저하! 레온 저하!”

건물 앞까지 뛰쳐나간 유모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러 댔다.

“어서 사람을 보내!”

먼 지붕 위로 시선을 고정하며 오웬이 소리 높여 지시를 내렸다. 금방이라도 달려가 레온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는 도중에 아이가 떨어진다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아래에서 대비해야 했다.

초조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는 오웬의 눈에 어느 순간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 선이 가는 몸. 자신의 후궁인 프리아였다.

‘프리아?’

어째서 저곳에. 도대체 왜?

“프리아 님!”

지붕 위에 있는 사내를 알아본 이사벨 역시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이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다.

“미쳤나 봐.”

설마 황자를 구하기 위해 올라간 걸까? 어느새 착석해 있던 후궁들이 일제히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 무용담을 그리 좋아하더니 본인이 나서 맹활약을 펼치기로 결심이라도 한 걸까. 놀란 레지나의 입도 크게 벌어졌다. 저 몸으로 아이를 업고 다시 위로 올라가는 건 무리다. 볼 때마다 나날이 말라 가던 프리아의 몸을 떠올리며 레지나가 고개를 저었다. 구조하는 이들이 갈 때까지 부디 두 명 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모두가 숨죽이며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먼 데다 처마를 장식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어 두 사람이 어찌하고 있는지 아래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이의 몸이 휘청하며 중심을 잃었다. 함께 있던 사내가 급하게 몸을 기울이는 것이 보였으나 힘이 부족했던 것인지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아이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새처럼, 작은 몸체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얼어붙었다.

우지끈,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잎이 무성한 소나무 위로 추락한 아이가 가지를 부러뜨리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쳐나간 오웬이 나무 아래로 향했다.

“레온!”

간절하게 뻗어 나간 손이 아이를 붙잡았으나 오웬은 쏟아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나동그라졌다.

“폐하!”

“레온 저하!”

달려온 시종과 시녀들, 귀족들이 오웬의 주위를 둘러쌌다. 땅에 부딪친 머리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아이를 받아 낸 팔에서 지끈거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오웬은 신음하며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유모가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레온은….”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태의가 오는 중이니 잠시만 버텨 주십시오, 폐하.”

오웬의 뒤통수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한 시종장이 손수건으로 눌러 지혈 중이었다. 아들의 추락을 눈앞에서 본 린드가르트는 혼절했으며 연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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