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중요한 날에 레온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낯선 이들로 북적이는 궁정의 복도에서 아이의 자취를 찾으며 프리아는 먼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레온보다 더 몸집이 작았던 어린아이 시절, 프리아는 툭하면 벽장이나 옷장에 숨어들어가 몸을 숨기곤 했다.
‘그렇게 무서워하시더니.’
프리아를 찾아 헤매느라 지쳐 있던 유모가 당황한 표정으로 흘렸던 말을 기억한다. 분명 더 어릴 적엔 옷장문만 열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음을 터트렸던 것 같은데 어둡고 좁은 그곳은 어느샌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설레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리아 님, 왜 이런 곳에 숨어 계십니까? 잘못되기라도 하셨을까 봐 제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잠이 덜 깨 반쯤 감은 눈을 깜빡이면서 어렸던 자신은 친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래 친구를 만나기 어려웠던 외로운 성에서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비밀친구를 만들었던 것이리라. 먼 기억을 떠올리던 프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방에는 계시지 않는 게 확실한가요?”
뒤따라오던 유모를 돌아보며 프리아가 묻자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계실 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옷장이나 벽장 안도 다 살펴보셨어요?”
“그런 곳에 계실 리가…,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유모는 오던 길을 되돌아 레온의 처소로 향했다.
“이사벨, 가서 부인을 도와드려. 나는 다른 곳을 찾아볼게.”
“예? 프리아 님, 혼자 계시면 아니되세요. 곧 연회에도 참석하셔야 하고….”
프리아의 지시에 당황한 이사벨이 난색을 표했다. 그녀의 등을 떠밀며 프리아가 단호하게 답했다.
“후궁이라 해도 나는 사내인데 너희보다 약할 리가 없잖아. 지금은 레온…, 황자를 찾는 게 우선이야. 올가도 말만 전하고 다시 올라올 테니 걱정할 필요없어.”
“그래도…, 저는 황자님이 어떻게 생기신지도 모르는걸요.”
“키는 이 정도.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이 검은 색이야. 눈동자도 까맣고 커. 그리고 오웬을 닮았어. 귀엽고 착한 아이야.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거야.”
프리아가 손으로 가리켜보이는 아이의 신장을 눈에 새기며 이사벨이 마지못해 유모의 뒤를 따랐다. 갈색머리에 갈색눈 만큼은 아니지만 흑발흑안 또한 황족에게선 흑히 볼 수 있는 조합이었다. 황제를 많이 닮지 않은 이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후궁의 수행시녀인데 왜 아이찾기에 동원되어야 하는 건지. 유모를 쫓아가던 이사벨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인파를 헤치며 사내후궁이 급히 뛰어가고 있었다. 뭘 저렇게 열심일까. 말하는 투로 봐서 황자와도 이미 친분이 쌓인 사이 같았다. 황제도 이름으로 부르더니 황자까지. 호되게 야단맞을 일이었으나 후궁을 훈계하고 행동을 바로잡아줄 황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내후궁이 오웬이라 부를 때마다 부드럽게 풀어지던 황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사벨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황후까지 되는 건 아니겠지.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떠올린 이사벨이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서둘렀다.
황궁은 넓고 내실의 수 또한 끝이 없었다. 황손 찾기에 동원된 시종들이 방문객에 섞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프리아는 눈에 들어오는 내실마다 들어가 방안을 샅샅히 살폈다. 빠른 동작으로 구석에 놓인 옷장을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이런 곳에 숨었다하여 레온 역시 같은 행동을 보일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다만, 오웬과 레온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사용하지 않아 텅 빈 옷장 안을 보며 한숨을 내쉰 프리아가 다시 문을 닫았다. 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던 프리아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조금 전, 무심코 눈을 들어올렸을 때 보았던 것.
프리아는 창문앞에 바짝 다가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랗고 흰 깃털 몇 개가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한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창문 위쪽을 올려다보던 프리아가 빠르게 방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있다. 방의 창문마다 거미줄에 걸린 흰 깃털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떨어졌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인위적인 풍경이었다. 누가 성의 지붕 위로 백조나 거위를 데려와 잡은 뒤, 그곳에서 털을 뽑아 흩뿌리지 않는 이상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에게 계시를 받는 장면을 연출할 거래.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프리아는 오웬에게서 스치듯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천사로 분장하기 위해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성위에서 대기하고 있는걸까.
‘천사….’
깃털, 천사 그리고 레온의 실종. 언뜻 보기에는 접점없는 일들이었으나 이상하게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프리아는 지금껏 아이의 눈으로 돌아가 레온이 몸을 숨긴 장소를 유추해보려했었다. 다자라 어른이 된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비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옷장에서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던 어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였던 그때의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날개는 어디 숨겼어?’
‘레온 저하, 우리 친구할까? 비밀친구가 되는 거야.’
‘마티아, 다음에 또 만나러 와줄거예요?’
‘꼭 만나러 와야 해.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