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마음에 장식장으로 막아 두기는 했지만 힘에 부쳐 절반밖에 가리지 못했었다. 가구 자체의 무게가 있기는 하지만 들어 있는 물건도 적은데다 책 몇권을 제외하면 가벼운 것들이라 오웬이 전력을 다했다면 충분히 밀고 들어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지 않고 선물만을 놓아둔 채 얌전히 돌아간 그가 귀엽고도 기특했다.
프리아는 장식품을 창 아래로 가져와 쏟아지는 햇살 아래 두었다. 작은 새의 몸체로 떨어진 빛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각도를 돌려가며 살펴보고 있는 사이, 옷을 가지러 갔던 유디스와 이사벨이 돌아왔다. 햇살 아래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종달새를 발견한 유디스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프리아 님, 그게 뭐죠? 어디서 찾으신 거예요?”
어머, 귀여워라. 손바닥 위로 종달새를 올려놓은 유디스가 감탄했다. 뭔가 싶어 이사벨도 목을 빼고 쳐다보았으나 문진이라는 걸 알자마자 곧 흥미를 잃었다. 장식장에 원래 있던 물건이었다는 프리아의 주장에 유디스는 고개를 잠시 갸웃해 보였으나 결국 수긍했다. 어디 상자나 주머니 같은 데 들어 있어서 보지 못했던 거겠지.
“올가 님, 이것 좀 보세요. 너무 귀엽죠?”
티포트와 찻잔이 든 쟁반을 가지고 돌아온 올가에게 유디스가 말을 걸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달라진 프리아의 표정을 곁눈질하며 올가가 티포트를 들어 차를 따랐다.
“프리아 님, 두통은 좀 나아지셨나요?”
찻잔에 손을 가져가며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퍼민트의 상쾌하고도 화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뜨거운 물이 속을 데우자 기분 좋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응, 고마워. 올가.”
간밤의 발작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오웬이 두고 간 장식품 하나로 다시 둥둥 떠올랐다. 그런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설레 입술 끝으로 자꾸 웃음이 새어나왔다. 앙증맞은 디자인과 문진이라는 원래 용도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오웬의 행동이 기꺼웠다. 예전 같았으면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무슨 짓이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을 텐데. 프리아가 싫어하는 일은 이제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이렇게 지키는가 보다. 달라진 건 오웬뿐만이 아니었다. 그 서릿발 같던 황제를 귀엽다고 생각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차의 효과일까. 창백했던 얼굴에 안색이 다시 돌아왔다. 거울을 확인한 프리아가 유디스에게 돌려받은 종달새의 날개를 쓰다듬었다. 손끝이 차고 저리는 것은 그저 날씨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에 깃든 불안을 떨쳐냈다.
“바렌의 장인이 만들었군요. 오래전부터 공예가 발달한 곳입니다.”
바닥에 새겨진 바렌 왕가의 문장을 확인한 기르가 프리아에게 장식품을 돌려주었다. 보나마나 황제가 주었군. 남편인 바렌의 왕과 함께 조카 소피아가 궁을 찾았다는 소식을 어제 시종장에게서 들었다. 이렇듯 세심한 크리스털 공예품은 왕가 전속의 장인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었다.
‘무척 예뻐하시던 조카 아니십니까? 장성하신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예쁘게 잘 컸겠지. 그 아이도 벌써 중년이 되었군.’
‘직접 뵙고 안부를 전하시면 무척 반가워하실 텐데 그리하실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어릴 적 사라졌던 숙부가 수십 년 만에 전혀 나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기절초풍할 것이다. 먼발치에서 얼굴이라도 보는 것이 어떠하냐는 시종장의 권유를 기르는 단박에 거절했다.
‘잘산다는 소식 들었으니 되었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가 아름다운 법이지.’
선황후의 성품을 닮아 다정하고 상냥하던 어린 소피아의 모습을 그리운 표정으로 떠올리던 기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사자인 기르보다 더 아쉬워하던 시종장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떠나실 때까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 그보다 자네의 도움을 구할 일이 있어 찾아왔네.’
‘언제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황실 서고에 들어가고자 하네. 가서 찾을 것이 있어.’
‘어려울 것 없지요. 지금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사람들 눈을 피했으면 해. 황제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군.’
‘그러시다면 밤에 오셔야겠습니다. 경비들이 있긴 하지만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편하신 날짜를 말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