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107)화 (108/237)

맞닿은 몸으로 단단한 육체의 양감과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오웬까지 전투에 참가하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바이런은 말했지만 전쟁이 벌어진다면 황제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수많은 이들의 목숨값을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자 자신의 마음까지 무거워져 프리아는 오웬의 허리를 붙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등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프리아의 손위로 제 손가락을 겹치며 오웬이 입술을 끌어올렸다. 대답 대신 가쁜 호흡만이 오웬의 등에 부딪쳐온다. 뛰어온 건가. 겹친 손가락이 얼어 있는 걸 느낀 오웬이 부지런히 제 손을 움직여 열을 전달했다.

“손이 왜 이렇게 차? 장갑이라도 끼고 오지.”

고개를 돌려 등 너머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오웬의 움직임을 눈치챈 프리아가 굳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등줄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것도 좋긴 한데 얼굴이 안 보이잖아. 얼굴 좀 보여 줘.”

등 뒤에서 고개를 흔드는 프리아의 움직임을 느끼며 오웬이 미소 지었다. 프리아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니 당혹스러우면서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허리에 교차된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몸을 돌리자 눈앞에 얇은 침의 하나만을 입고 있는 프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서늘한 지하의 기운을 몰고 온 여린 육체. 바람에 온통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추위로 발갛게 얼은 뺨 위를 덮고 있었다.

“이러고 왔어? 몸이 다 식었잖아.”

한기가 스민 얼굴과 어깨와 허리를 쓰다듬으며 오웬이 말했다. 이리 와.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와 몸짓에 프리아가 얌전히 불앞으로 끌려갔다. 벽난로 가까운 바닥에 프리아를 앉힌 오웬이 불쏘시개를 들어 장작을 들썩였다. 화력이 거세진 난로가 열기를 주위로 내뿜었다.

“이건 뭐지? 데려온 건가? 친구야?”

침의 자락에 붙어 있는 커다란 날벌레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프리아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벌레가 방 안을 맴돌다 열린 창으로 빠져나갔다. 그 김에 함께 일어난 오웬이 빠른 걸음으로 담요를 가져와 프리아의 어깨에 둘렀다. 다시 자리에 앉아 난로 불빛을 바라보며 오웬이 프리아에게 물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어?”

뻔히 알면서 묻는 오웬의 질문에 프리아가 시선을 회피했다. 붉게 물든 프리아의 귓불을 바라보며 오웬이 다시 물었다.

“또 술 마셨어?”

“안 마셨어요!”

그제야 돌아본다. 억울한 표정을 지은 프리아의 시선이 짓궂게 미소 짓고 있는 오웬과 맞부딪쳤다.

“오랜만에 와 보니까 좋지? 자주 놀러와. 옷만 좀 든든하게 입고.”

좋긴 뭐가 좋다고. 입술을 내민 프리아가 불쏘시개를 집어 애꿎은 장작만 다시 쑤석거렸다. 갑자기 튀어 오른 불꽃이 프리아를 향해 날아든다. 재빨리 프리아를 뒤로 물려 제 품으로 감싼 오웬이 조심하라, 주의를 주었다.

담요에 휘감긴 채 넓은 품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 조금씩 감기던 눈이 담요 속으로 들어온 오웬의 손동작에 크게 뜨였다. 처음엔 그저 손발을 녹여 주던 손길이었는데 어느새 옷 속으로 들어와 맨살을 만지고 있었다.

은근한 열망을 담은 손가락이 피부를 쓸어내리고 문질렀다가 부드럽게 잡아올 때마다 입술 밖으로 숨죽인 신음이 새었다. 프리아의 귓가로 바짝 다가온 오웬의 입술이 간지럽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오늘은 잠들면 안 돼. 나 많이 외로웠어.”

오웬의 입술에 물린 프리아의 귀가 더욱 발갛게 달아올랐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확실하게 프리아의 고개가 끄덕였다. 입술을 빠져나간 귀를 다시 따라가 오웬이 숨결을 불어넣었다.

“……읏. 폐하, 간지러워요.”

그새 까먹고 폐하라 칭한 얄미운 입술을 오웬은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치열을 더듬고 입천장을 두드리던 혀가 다른 혀를 만나 한 몸처럼 얽혀들었다. 벌을 주는 것처럼 예민한 곳을 꼬집자 튀어오르는 허리를 오웬은 허벅지로 단단히 가두었다.

살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침의에 거듭 두꺼운 천이 와 부딪쳤다. 탄탄한 허벅지가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프리아의 아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입은 막혀 있고 사지는 붙잡혀 그저 떨고 있는 육체를 가려 주고 있는 건 오직 침의 한 장뿐, 그마저도 어느새 말려 올라가 허리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갈 곳 잃은 프리아의 손을 붙잡아 한곳에 모은 오웬이 천 자락으로 겨우 가려진 아래에 끌어다 놓았다. 커다란 오웬의 손에 덮인 프리아의 손가락이 그가 이끄는 대로 여린 천 위를 쓰다듬다 이윽고 드러난 윤곽을 덮었다.

“…흣, 오웬…….”

희롱하는 것처럼 자극을 주는 움직임에 신음이 새어나왔다. 자유로워진 입술로 프리아가 거친 숨결을 토해내는 동안, 오웬은 남은 한 손으로 침의의 여밈을 마저 풀어냈다. 넓게 재단된 천을 끈으로 조여 묶는 방식이기에 매듭이 풀어지자 어깨가 드러날 정도로 벌릴 수 있었다.

드러난 어깨에 입맞춤을 퍼부었으나 곧 옷자락에 가로막혔다. 더는 내려갈 수 없다는 것처럼 위태롭게 등을 가리고 있는 침의를 오웬은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허리에 걸쳐 있던 아래 자락이 오웬의 손가락에 의해 끌려 올라갔다.

이건 입은 것도 벗은 것도 아니다. 착의와 탈의의 중간쯤에서, 침의의 앞섶은 다리 사이를 간신히 가리고 있었으나 뒷자락은 한껏 끌어올려져 온통 등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오웬이 등뼈를 하나씩 깨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천이 다시 미끄러져 내려와 오웬의 머리를 덮었다.

마치 짐승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기어코 아래까지 내려온 입술의 감촉에 프리아가 진저리를 쳤다. 버둥거리는 몸을 달래며 오웬이 프리아를 바닥에 눕혔다.

등을 보인 자세로 눕혀진 몸에 겨우 걸려 있는 침의를 오웬이 마저 벗겨냈다. 이제야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한 오웬이 셔츠와 바지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토정의 여운을 느끼며 달아오른 뺨을 마룻바닥에 대고 있는 프리아의 몸 위로 오웬이 내려앉았다. 전신이 오웬의 몸에 덮여 가려졌다. 기분 좋은 중압감이 느껴져 프리아는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몸을 그에게 맡기고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자세는 처음이었다. 한 번 읽은 것만으로 다 외워 버렸는지 붉은 책에 나와 있던 장면을 오웬이 재현하고 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어째서 기쁜 비명을 질러댔는지 프리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몸이 들썩거릴 때마다 거센 신음이 터져나왔다. 다른 곳은 자유로운 채 그저 몸의 일부분만 짓눌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한참 후, 거친 호흡과 함께 오웬이 프리아의 등에 몸을 기댔다.

“무거워…….”

장난처럼 꺼낸 말에 오웬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결합된 그대로 반 바퀴 굴러 자세를 바꾸었다.

“너는 좀 많이 먹어야겠어. 너무 가벼워.”

오웬이 장난하는 것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 위에서 함께 흔들리게 된 프리아가 아이처럼 실없는 장난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짐짓 노여움을 가장하며 뒤에서 뻗어나온 손이 맨살을 아프지 않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웬의 동작을 프리아가 잡아 제지했다.

“이 자세는…, 이 자세는 너무 이상해요. 천장만 보이잖아요. 얼굴 보고 싶어.”

“내 잘생긴 얼굴이 보고 싶어?”

평소에는 전혀 닮은 데라곤 없었는데 가끔 잠자리에서만은 능글맞아지는 것이 영락없는 바이런의 사촌이었다.

“왜 대답 안 해?”

옆구리로 옮겨간 손이 간지럼을 태우자 프리아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대로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가 오웬은 몸을 떼어냈다. 이틈을 타 프리아는 편하게 등을 대고 다시 누웠다.

몸을 섞는 사이에 한기는 물러가고 난로 앞은 여름날처럼 뜨거웠으나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땀이 흘러 젖은 몸에서 풍겨오는 체취도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웬이 손가락을 들어 프리아의 이마에서부터 코, 입술, 턱, 목과 가슴을 지나 배와 그 아래까지 쓰다듬었다. 은밀한 곳을 매만지는 그의 손길을 프리아가 허리를 움직여 피하자 오웬이 장난치는 아이처럼 소리내어 웃었다.

한참을 바닥에 쓸렸던 두 사람의 무릎이 붉게 변해 있었다. 프리아의 무릎을 쓰다듬던 오웬의 손바닥이 어느새 다시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허벅지를 벌려 아직 힘을 잃지 않은 하체를 맞부딪쳐왔다.

익숙한 자세에 안심하며 프리아가 팔을 벌렸다. 프리아가 뻗은 두 팔을 제 어깨에 둘러주며 오웬이 다시 웃었다.

“이게 좋아?”

“나머지는 나중에…….”

또 해요.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대신 다리를 들어 동작을 멈춘 허리를 재촉했다. 돌아온 것은 거친 응답이었다.

“오, 오웬! 너무…, 읏…, 아, 천천……. 제발.”

프리아의 호소에 잠시 느려졌던 움직임은 수분을 넘기지 못했다. 겨우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 가여워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오웬은 거친 기세로 다시 쳐들어왔다.

짐승이 된 것 같아.

오싹한 감각이 등줄기를 내달린다. 매달리듯 붙잡은 탄탄한 젖은 살이 미끄러져 내릴 때마다 프리아는 곱아드는 발등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이며 오웬의 등과 허리 허벅지를 마구 차올렸다. 이러다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열이 끓어올랐다. 몸은 잦은 경련을 반복했으며 맥은 지나가는 곳마다 미친 것처럼 날뛰며 박동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여러 번 불발에 그쳤던 밤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웬은 프리아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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