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103)화 (104/237)

오웬의 어깨에 들쳐업힌 채로 침실로 들어오게 된 프리아가 몸을 버둥거렸다.

“내려줘! 내려 달라고!”

프리아가 혹시나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오웬은 흔들리는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사냥터에서 여러 동물을 잡았으나 획득한 짐승을 수거하고 손질하는 것은 시종들의 일이었기에 오웬은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프리아는 오늘 오웬이 사냥한 것 중 유일하게 제 손으로 거둔 아름답고 커다란 짐승이었다.

“가만히 좀 있어, 주정뱅이야.”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솜털 하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오웬이 프리아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프리아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입을 삐죽이며 침대를 내리쳤다. 반동으로 솜과 깃털로 채워진 매트가 출렁였다.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처럼 다시 침대를 내리치는 프리아를 보며 오웬이 웃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사냥 후 이어진 연회에서 오웬도 포도주 두어 잔은 받아마셨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를 정도의 양은 아니었기에 백조궁으로 오는 동안 남아 있던 술기운도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오웬.”

프리아가 오웬을 부르며 다시 배시시 웃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름 부르는 것을 어색해하며 폐하라 칭하더니 술 좀 마셨다고 이렇게 태도가 달라질 줄이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 주는 것. 오웬이 바라던 일이기는 했으나 술의 힘을 빌려 이뤄지게 될 줄은 몰랐다.

“좀 허탈한데. 주정뱅이야, 얼마나 마셨어?”

오웬의 말을 들은 프리아가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설마 한 잔일 리는 없을 테고, 한 병인가? 오웬이 연회 식탁에 등장했던 손잡이 달린 커다란 포도주병을 떠올렸다.

“한 병?”

오웬의 말에 프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하나를 더 펼쳐보였다. 두 병? 이어진 질문에 또 다시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더한다.

“세 병? 세 병을 마셨다고?”

오웬의 눈이 놀라 동그래지는 모습을 본 프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세 잔이겠지. 그 모습을 본 오웬이 마음대로 프리아의 주량을 넘겨짚으며 안심했다.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왜? 왜 마시지 마?”

“식사 때만 조금 마시고 나머지는 내가 있을 때 마셔.”

오웬은 점잖게 타일렀으나 취해 버린 프리아는 말을 듣지 않았다.

“왜? 왜? 왜? 왜? 왜애?”

“왜냐니. 그럼 또 그렇게 마실 거야?”

다섯 살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연거푸 질문을 해대는 모습이 마냥 귀여우면서도 어이가 없어 오웬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 누가 웃으랬어? 웃지 마!”

오웬이 짓는 헛웃음에 기분이 상한 프리아가 불경하게도 손가락을 들어 황제의 입술을 찔렀다. 시녀들이며 시종, 돌팔이 의사 앞에서 연신 실없이 웃어댄 게 누군데 헛웃음 한 번 지었다고 이리 골이 난 걸까.

“네가 지금 취해서 모르나본데 화를 낼 사람은 나야. 그 돌팔이한테는 왜 자꾸 가서 안기는 거야? 그놈이 업어도 줬어?”

“돌팔이? 누구?”

짐짓 화난 시늉을 하며 추궁하는 오웬의 말에 눈을 굴리던 프리아가 누워 있는 채로 양팔을 벌렸다.

“오웬 나 업어줘. 응?”

“…참나.”

화난 척 하려고 했는데 자신을 부르는 프리아의 모습에 다시 오웬의 얼굴이 풀렸다. 점입가경이다. 지나칠 정도로 귀엽다. 뭐 이렇게 귀엽고 건방진 주사가 다 있지?

“너 원래 이런 성격이야? 어리광 좀 진작 부려보지 그랬어?”

“어린 건 너잖아.”

곁에 누워 머리를 쓰다듬는 오웬에게 프리아가 골난 얼굴이 되어 지적했다. 이 와중에도 저와 자신의 나이차는 또 잘도 기억하고 있나보다.

“누가 너라고 부르랬어? 이름 부르라고 했지.”

“오웬, 사냥은 잘 했어?”

냉큼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프리아의 태도에 다시 오웬의 웃음이 샜다. 후궁이 이렇게 건방지게 굴고 있으니 기분이 상해야 마땅한데도 자꾸 기분이 좋아졌다.

“네 겨울외투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야. 이제 그만 자, 주정뱅이야.”

취해 있으니 사냥의 성과를 자랑한들 기억이나 하겠는가. 너를 위해 이만큼이나 털 고운 동물을 잡아왔다 생색낼 생각이었거늘. 이대로는 일어나 봤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처음부터 재울 생각으로 침실로 데려왔던 오웬이 손을 들어 프리아의 눈을 감겼다.

“…오웬.”

한참 말이 없어 잠이 든 줄 알았는데 프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잠이 안 와?”

다정하게 묻는 오웬의 말에 프리아가 대답했다.

“더워. 나 벗을래.”

다시 보니 아까만 해도 하얗던 뺨이 열에 달아올라 붉게 익어 있었다. 눈을 덮고 있던 오웬의 손을 내린 프리아가 그 손을 자신의 옷 속으로 밀어넣었다. 뭐하는 거야. 맨손에 닿은 피부의 감촉에 당황해 빼려고 하는 오웬을 프리아가 다시 붙잡았다.

“벗겨줘.”

이건 뭐지. 또 다른 방식의 어리광인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웬을 쳐다보며 한숨을 쉰 프리아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했다.

‘앞으로 내손으로 벗겨주기 전까지는 함부로 벗지 마. 내 앞에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도.’

그제야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린 오웬이 여전히 프리아의 옷 손에 들어 있는 제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그런 말을 하기는 했는데. 그러니까….”

왜 어떤 말은 듣고 어떤 말은 듣지 않는 거야? 프리아의 선택적 순응에 어이가 없어진 오웬이 헛, 하고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웃음에 다시 프리아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이거, 옷을 벗겨주기 전까지는 계속 화내고 있을 것 같은데. 프리아의 표정을 보던 오웬이 할 수 없다는 듯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한 사람 데리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오웬의 손에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한 프리아의 옷이 침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드러난 알몸에 눈을 질끈 감은 오웬이 시트를 끌어와 프리아의 몸을 덮었다. 희기만 했던 피부가 취기에 달아올라 붉어진 모습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야하게 느껴졌다. 이러다 서 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술 취한 사람은 곱게 재우고 싶은 것이 오웬의 진심이었다.

“…더워.”

시트 속에서 꼬물거리던 프리아가 결국 인상을 썼다. 발로 냅다 차버린 시트를 다시 덮어주려던 오웬의 손이 멈췄다. 손을 잡아 제지한 프리아가 반쯤 시트에 휩싸여 오웬의 몸 위로 올라갔다.

“뭐 하는….”

이어진 뒷말은 프리아의 입술이 삼켜 버렸다. 입 안으로 파고드는 젖은 혀의 감촉을 멍하니 느끼고 있던 오웬이 침을 꿀꺽 삼켰다. 떨어지려 하지 않는 프리아의 입술을 간신히 떼어내자 이어진 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놀라 토끼눈이 된 오웬의 입술로 프리아가 다시 침입해 들어갔다.

아니 이러다가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은 오웬이 입술을 닫아걸자 프리아의 표정이 불만스러워졌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오웬의 얼굴 곳곳에 제 입술을 가져다댔다. 깜빡이는 두 눈과 숨을 멈춘 코, 고집스런 입술과 말도 못 알아듣는 양 귀에 이르기까지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오웬을 정신없게 만들고는 더 기절초풍할 말을 꺼냈다.

“하자. 하고 싶어.”

뭐? 놀라 벌어진 오웬의 입술이 다시 주도권을 빼앗겨버렸다.

‘이 주정뱅이.’

프리아가 맛본 과실주의 맛이 오웬의 혀로 전해진다. 덩달아 취해 버릴 것 같은 술 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옷 속으로 손이 들어와 마구 더듬는 서툰 동작에도 피부의 솜털이 일어났다. 오웬의 허벅지에 앉은 작은 엉덩이가 들썩이며 중심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 …이러지 마.”

등줄기를 더듬는 긴 손가락의 감촉에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러다가는 정말 참지 못하고 안아 버리게 될 것 같다. 프리아가 움직일 때마다 시트가 흘러내리고 동시에 오웬의 몸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리려고 뻗은 오웬의 손이 프리아의 작은 유실에 닿았다. 놀라 거두려는 동작이 오히려 거친 애무가 되어 찌푸린 얼굴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잠시 오웬을 애타게 바라보던 프리아가 여전히 가슴에서 멈춘 손가락을 끌어다 제 입에 넣었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입술에 휘감긴 오웬의 손가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프리아의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낭패다. 눈을 감으니 손가락의 감촉도 중심을 스치는 부드러운 엉덩이도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 아래가 솟아올랐다. 제 몸의 통제를 벗어난 오웬의 손가락이 프리아가 이끄는 대로 머물렀던 곳에서 빠져나와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다. 작은 턱에서 긴 목으로 부드러운 가슴을 지나 판판한 배와 작은 우물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더 내려가 깊은 곳에 닿았다.

“너…!”

갈라진 곳에 닿았으나 놀라 도망가기 시작한 오웬의 손가락을 프리아가 다시 붙잡아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았다. 다시 뜬 오웬의 눈이 어두운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자신의 일부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그만 해!”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프리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던 오웬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뒤로 물렸다.

“안 해?”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멈춘 동작에 골이 난 프리아가 오웬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걸까. 술에 미약이라도 들어 있었던 걸까. 고작 세 잔 마신 술에 이렇게 되다니. 오웬은 앞으로 금주령을 내려야 할지, 궁내 주조시설을 늘려야 할지 상반된 고민에 휩싸였다.

“왜 안 하는데?”

대답 없는 오웬을 재촉하며 프리아가 다시 물었다.

“네가 취한 상태에서 하고 싶지 않아. 너 내일 깨면 화낼 거잖아.”

더 이상 프리아에게 미움 살 만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숲에서 거칠게 안았던 일을 후회하고 있었기에 다시 안는다면 누구보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안아 주고 싶었다.

“원망 안 해. 하자.”

바짝 다가온 프리아의 몸을 오웬의 팔이 밀어냈다. 땀이 배어든 피부가 놀랍도록 촉촉하고 부드러워 무심결에 다시 만지는 오웬의 손동작을 프리아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진짜 안 해?”

“안 할…거야.”

뭐 대단한 결심이라고 한 사람처럼 오웬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미치겠다. 평소 예쁘다 귀엽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야하기까지 할 줄이야.

“하자, 응?”

그런 오웬의 입술에 달라붙어 프리아가 다시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새가 쪼는 것처럼 부드러운 입맞춤이었으나 오웬은 굳게 다문 입술을 열어 주지 않았다.

“치사해.”

뭐가 치사하다는 거지? 여전히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는 오웬이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해 줬는데.”

해 줬다니 무슨 말인가? 의문을 표하는 오웬의 얼굴에 프리아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뱉었다.

“예전에 약에 취했을 때, 나는 해 줬잖아요.”

“약이라니…. 언제.”

치사해, 치사해. 연거푸 중얼거리는 프리아의 투정을 들으며 생각하던 오웬이 먼 기억 속 비 오던 밤의 일을 떠올려냈다. 재정대신의 생일연에 참석했다가 질 나쁜 장난에 걸려들어 프리아의 처소를 찾았을 때의 일을.

할 말이 없어져 다시 입을 다문 오웬에게 이번에는 취기 없이 또렷하게 말하는 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으면 못 하니까. 그러니까 해요.”

목소리만 또렷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말이 이렇게 억지인데.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

기껏 꺼낸 억지가 너무나 귀여워서 오웬은 풋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웃다 고개를 든 오웬의 눈에 일렁이는 프리아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지금 우는 거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갑자기 바뀐 주사의 형태에 오웬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리광을 늘어놓고 그다음엔 하자고 덤볐다가 이제는 눈물이라니.

“이게 울 일이야? 왜 우는 거야?”

울지 마, 울지 마. 토닥이는 오웬의 손길에 프리아가 더욱 서러운 눈물을 터트렸다. 울면서도 다시 부딪쳐오는 프리아에게 입술을 내어주며 오웬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술은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어.

“네가 하자고 한 거야. 잊으면 안 돼. 아침에 기억해야 해.”

우는 프리아를 달래랴, 애무하랴 정신이 없던 오웬이 잦아든 울음에 진입을 시도했다. 지나치게 조용하다 싶어 위를 확인했을 때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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