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70)화 (71/237)

여기쯤 넣어 두었던 것 같은데. 

바닥에 내려놓은 등불 빛에 의지하며 프리아가 손끝으로 마룻바닥 틈새를 더듬었다. 한참을 움직인 끝에 환약을 감싼 종이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프리아는 틈새에서 환약을 꺼내 가져온 주머니에 넣었다. 약도 찾았으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했다. 다른 연회도 아니고 탄신연, 그것도 생일 당사자이니 쉽게 자리를 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해 프리아는 빠른 동작으로 침대 밑을 빠져나왔다. 

침실 풍경이 밝다. 어찌된 일일까. 불이 켜진 여러 개의 촛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프리아가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런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언제 온 거지? 프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눈앞의 오웬을 올려다보았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좀 더 밤놀이를 즐길 것이지. 벌써 돌아오다니. 낭패다. 

“……폐하.” 

“좀 더 놀란 표정을 지었어야 했나? 그 비좁은 곳에 들어가서 기다리기 힘들었을 텐데.” 

프리아가 방금 빠져나온 어두운 침대 밑을 가리키며 오웬이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연회가 벌써 끝난 건가요?” 

“아직. 그렇지만 자리를 일찍 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가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야.” 

누가요? 설마 제가요? 프리아는 난감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제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당치도 않은 오해를. 

“집무실로 보낸 선물은 잘 받았어. 내 후궁의 마음이 거기까지인가 싶어 오해할 뻔했는데 진짜가 여기 있었군.”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유디스가 알아 온 다른 궁의 선물 명단을 참고해 최대한 무난하게, 묻어갈 수 있는 물품을 골라 시종장에게 보냈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사라질 수 있도록.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러고 있었던 거야? 시종장에게 귀띔을 해 줬더라면 더 일찍 돌아왔을 텐데.” 

이렇게 금방 돌아올 줄 몰랐다. 좀 더 빨리 출발할 것을. 가장 무도회 컨셉을 정해야 한다며 유디스가 밤늦게까지 놓아주지 않는 통에 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침의로 갈아입혀 주자마자 등 떠밀어 유디스를 침실 밖으로 내몰았다. 외투를 걸치기 위해 내실로 나갈 수가 없어 침의 차림 그대로 바삐 몸을 움직였다. 황제가 귀가하기 전에 약을 찾아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움도 느낄 겨를 없이 등불 하나 들고 어두운 통로를 걸어왔다. 

“아닙니다. 피곤하신 듯하니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푹 쉬세요.” 

자세를 굽혀 인사를 올린 프리아가 자리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몇 걸음 떼기 무섭게 황제에게 몸을 잡혀 그대로 침대로 끌려들어갔다. 자신의 몸 위로 자리 잡은 황제의 얼굴을 보며 프리아가 말을 이었다. 

“폐하! 시간이 너무 늦어…….” 

“내가 너무 늦게 와서 화가 난 거야?” 

“아닙니다!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아…….” 

“이게 내 휴식인데?” 

뭐라는 거야, 진짜. 능청스러운 오웬의 말에 프리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늦은 시간에 이런 차림으로 침실에서 기다려놓고선. 그냥 가겠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오웬이 프리아가 입고 있는 얇은 천 위를 더듬었다. 돌기 위를 덧그리는 동작에 프리아의 신음이 새었다. 

“……읏, 아, 폐하.” 

“그래도 몸으로 때우는 건 좀 성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성의를 좀 더 표현해 주면 어떨까.” 

어떻게요? 

새빨개진 프리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오웬이 입고 있던 자신의 옷 표면을 두드렸다. 

“그대가 말하다시피 나는 매우 피곤하여…, 누군가 알아서 행동해 줬으면 좋겠는데.” 

옷을 벗겨 달라는 건가. 지금까지 숱하게 잠자리를 함께했어도 이런 요구를 한 적은 없었다. 프리아의 옷을 벗기면 벗겼지 자신이 입은 옷은 알아서 벗어던지던 황제였는데. 

시종장의 옷시중을 받고 온 참이기에 황제 역시 가벼운 침의 차림새였다. 뭐 얼마나 피곤해서 저걸 못 벗겠다는 거야?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프리아를 지켜보던 오웬이 몸을 돌려 시트 위로 쓰러졌다. 

“보다시피 힘들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 

내일 상연된다는 연극은 황제가 나가 연기해도 될 것 같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다는 사람이 아래쪽은 잘도 일으켜 세웠다. 속이 비치는 침의 위로 드러난 것을 내려다보며 프리아가 긴장으로 숨을 삼켰다. 

누워 있는 사람의 옷을 벗기려면 우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무릎을 덮은 천 자락을 끌어올리자 탄탄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다리 사이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프리아가 오웬의 침의를 허리까지 끌어올렸다. 황제가 꿈쩍하지 않으니 이 다음은 진행하기 어렵다. 

“폐하, 허리를 좀 들어주십시오.” 

프리아의 말에 오웬이 허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걷어 올려 벗기는 손동작으로 인해 몇 겹으로 접힌 천이 등허리에 배겨 불편하다. 끙끙거리며 오웬의 옷을 벗기던 프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팔을 올려 주세요.” 

들어 올린 양팔로 소매가 빠져나오고 얼굴을 통과한 침의가 드디어 오웬의 몸에서 떨어졌다. 다리 사이를 가리키며 오웬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프리아가 한참을 망설이다 오웬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맞닿은 부위는 흘러내린 천으로 가려져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안 벗을 거야?” 

“저는 추워요.” 

“알았어. 그럼 입고 있어.” 

어차피 속이 비쳐 보이는 천이다. 긴장으로 솟아오른 가슴 위의 돌기가 천 위로 존재감을 알리는 광경을 오웬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은밀한 부위를 압박해 오는 황제의 뜨거운 하반신을 느끼면서 프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밤을 새우고 싶지 않으면 서두르는 게 좋을 텐데.” 

“……읏!” 

슬쩍 허리를 치켜올린 오웬의 움직임에 프리아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으시다면서요.” 

원망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프리아의 눈빛을 바라보며 오웬이 입을 열었다. 

“아주 조금, 회복이 되었어. 좀 더 노력해 줘.” 

자신의 몸을 피로회복제 취급하는 황제의 발언에 프리아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이 능구렁이 같은 자식. 

“빨리. 또 힘이 빠질 것 같아.” 

황제의 농을 참지 못한 프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리쳤다. 찰싹 하고 살이 부딪히는 소리에 놀란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내 엉덩이를 때린 건가?” 

늘 한 대 때려 주고 싶다고는 생각해 왔는데 설마 실행에 옮길 줄은. 당황한 프리아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폐하. ……손이 그만 미끄러져서, 미, 미끄러졌어요.” 

“미끄러진 거야? 난 내 후궁이 색다른 기술을 공부해 왔나 싶어 기대가 되는 참이었는데.” 

무슨 색다른 기술?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또 때리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프리아의 머릿속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오웬이 소리 내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마세… 아, 으읏.” 

오웬의 몸이 들썩여 예민한 곳을 자극받은 프리아가 허벅지를 떨었다. 몸의 무게가 더해져 평소보다 더 깊은 결합을 하게 된 육체는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입 밖에 낼 수 없는 저 깊고 은밀한 곳이 자꾸 욕심을 부리며 더 가득 채워 줄 곳을 요구해 온다. 프리아는 눈을 감고 감각이 시키는 대로 한껏 몸을 움직였다. 

“하아, 아……! ……폐하.” 

“내 이름 부르라고 했잖아.” 

그새 까먹었나 보군. 오웬이 벌을 주듯 세게 허리를 차올렸다. 

“아아아! 으흑… 오, 오웬.” 

그래, 그래야지. 

잔잔하고 뭉근한 움직임에도 등줄기를 떨며 프리아가 입을 벌리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오웬의 몸 위로 등을 세우고 앉은 프리아의 실루엣이 어두운 침실 아래 빠르게 솟아올랐다 다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촛불 빛을 가린 상체가 솟아오를 적이면 어둠이 짙어지고 여린 어깨가 내려앉을 때면 노란 빛이 붉게 물든 뺨과 자꾸 꺾이는 고개를 오웬 앞에 드러내 주었다. 예쁘게 색이 든 입술을 만지고 싶어 오웬이 흔들리는 프리아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오, 오웬?” 

그저 열에 들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예뻐서 오웬은 벌려진 입술 안으로 숨결을 밀어 넣었다. 맞닿은 가슴 너머로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들려온다. 

감질나서 안 되겠다. 천 아래 숨겨진 달아오른 피부를 남김없이 자신의 눈과 입술로 맛보지 않고서는 이 밤을 끌낼 수가 없다. 등허리까지 말려 올라간 프리아의 침의 자락을 잡아 위로 끌어올리며 오웬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성의는 잘 받았어. 이제 보답을 해 주도록 하지.” 

결합된 그대로 몸을 돌려 자세를 바꾸게 된 프리아가 새된 신음을 흘렸다. 성마른 손길로 프리아의 침의를 벗겨낸 오웬이 달디단 피부 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여린 살점을 씹어내는 이의 움직임에 작은 신음이, 거칠게 쳐들어오는 하반신의 공격에 큰 신음이, 숨 쉴 틈도 없이 터져 나온다.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쾌감이 이성을 밀어내며 그 자리를 잠식했다. 

오웬, 오웬… 오웬. 

오웬이 일으킨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가며 프리아는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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