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저 몸을…….”
어느새 침의 속으로 들어온 손길이 프리아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갔다. 밀려 올라간 침의를 내리려 애쓰며 프리아가 주춤 뒤로 물러서자 오웬이 허벅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몸을 좀 씻어야… 할 것 같은… 어어엇!”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려져 다시 침대 위에 놓였다. 뒤이어 침대로 올라온 오웬이 프리아의 발목을 잡아당긴다. 상체는 눕혀져 시트 위로 놓이고 하체는 끌려가 오웬의 무릎 앞에 놓였다. 다시 내려와 허벅지를 덮은 침의를 오웬이 거친 동작으로 걷어 올렸다.
“폐하, 저 땀이 나서 몸을…….”
다리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에 당혹해하며 프리아가 오웬의 팔을 붙잡았다.
“하고 나서 땀이 나면 또 씻으려고?”
씻고 나와 일을 치르면 다시 땀이 날 테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목욕은 다 끝내고 하는 게 좋다, 이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왕 이렇게 된’ 것일까. 분명 진지하게 자신의 병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분위기로 흘러 버린 것인지 프리아는 오웬의 변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그러면 향유라도, 폐, 폐, 폐하! 무슨!”
황제의 무지막지한 크기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 프리아가 향유라도 써 줄 것을 요구했다. 향유를 보관한 상자까지는 고작해야 열 걸음 정도였으나 한창 발동이 걸린 젊은 남자에게는 아득히 먼 거리였다.
거듭되는 후궁의 제지에 안달이 난 황제가 입술을 아래로 가져간다.
“폐하! 거긴 안! 하, 하지 마. 읏, 그, 만, 이상……. 아!”
세상에, 말도 안 된다.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곳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프리아가 허리를 뒤틀었다. 자꾸 움직이는 다리로 인해 방해를 받은 오웬이 프리아의 양 허벅지를 움켜잡고 단단하게 붙들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은 오웬의 머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서도 현실감을 느낄 수 없는 프리아가 흐느끼듯 신음을 터트렸다.
“그만! 제, 제발! 그만! 아, 그, 그만! 싫! 어, 으응…….”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며 이상한 감각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고통 하나 없이 오로지 부드러운 침입만이 있을 뿐인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자꾸 정신이 아득해진다.
폐, 폐하… 제발, 으흑……. 제발 그만……. 싫어요.
굳이 향유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녹진해진 밀부가 오웬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고개를 든 오웬의 입술이 젖어 있는 것을 본 프리아가 수치를 감당하지 못해 눈을 감았다.
이런 건 그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에 찾아본 음서에서도 앞의 물건에 대한 애무만 언급할 따름이었다. 뒤쪽이라니.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하의를 벗을 여유도 없어진 오웬이 허리춤만 끌어내린 채 하반신을 전부 드러낸 프리아와 급하게 몸을 겹쳤다. 흥건해진 밀부로 오웬은 자신을 밀어 넣었다.
“폐하, 아, …읏.”
오웬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후궁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 그 얼굴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아, 폐하… 으응…, 하아… 폐, 하…….”
어딜 가나 듣는 폐하 소리, 오웬은 후궁이 잠자리에서까지 자신을 그 호칭으로 불러 대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름, 이름으로 불러.”
“폐하, 폐…….”
들리지 않는 건가. 오웬이 프리아의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얼굴로 가져가 가볍게 뺨을 도닥였다. 열에 들뜬 눈동자가 한 박자 느리게 오웬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이름을 불러, 내 이름.”
“제가, 제가 어찌, 하아.”
하여간, 한 번 말해서는 잘 듣지도 않는다. 벌을 주는 것처럼 오웬은 거친 동작으로 파고들었다.
“폐하, 아, 아읏. 아아!”
반쯤 울며 신음하는 후궁의 귀로 오웬은 다시 한번 달콤하게 속삭였다.
“이름.”
“폐하… 앗. 오, 오웬…, 오웬, 오웬, 오웬!”
드디어 후궁의 입에서 터져나온 자신의 이름에 만족하며 오웬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오웬… 오웬, 흐윽. 오웬 제발 그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웬의 난폭한 움직임에 휩쓸려 울음을 터트리면서 프리아는 제발 그만둬 달라며 빌었다.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만 같다. 숨을 제대로 뱉어 낼 틈도 없이 신음이 터져 나온다.
“하아,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몸이 제어가 되지 않는다. 쾌감으로 신음하며 오웬은 그저 본능을 쫓아 움직였다. 저 표정은 진짜다, 연기로 나올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후궁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오웬은 벅찬 만족감을 느꼈다.
정신없이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올 때면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시트를 쥐고 있는 후궁의 손이 떨리고 있기에 붙잡아 깍지를 끼었다. 깊고 아득한 절정 속으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함께 뛰어내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침대를 벗어났던 오웬이 곧 돌아오자 프리아는 항복을 선언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할 기운도 없어 시선으로 호소한다.
‘더는 못 합니다.’
축 늘어진 나신으로 물에 적신 수건이 와 닿았다. 프리아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오웬이 몸을 닦을 수건을 적셔 온 것이다. 불경이고 뭐고 간에 황제의 수발을 받아들이기로 한 프리아가 안심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언제부터지?”
언제부터냐니 무슨 소리일까. 눈으로 묻는 프리아의 표정에 오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네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믿기 어려워.”
하긴 쉽게 믿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프리아 자신도 본인이 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게 대체 무슨 병이냐며 상대에게 반문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우신 게 당연하지요.”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지?”
“꽤 오래전부터요.”
달아올랐던 피부를 닦아 내는 물수건의 감촉이 시원하고 상쾌해 프리아는 얌전히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오래전이라고 한다면…….”
첫 밤부터인가. 아니다. 오웬이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자신과 후궁의 첫 만남은 그런 간지러운 감정이 피어날래야 피어날 수 없는 최악의 밤이었다.
“지병이라 익숙합니다. 불편한 게 몇 가지 있지만 감수할 만해요.”
익숙할 정도인가. 대체 언제부터. 반한 상대가 생기면 바로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바이런만 봐 왔던 오웬에겐 묵묵히 혼자 감내해 온 후궁의 감정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불편한 게 있으면 말을 해. 여기에서 나가게 해 달라는 것만 빼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완성되기까지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후궁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는 버릇이 되어서 괜찮아요.”
“버릇이 될 정도로 그렇게 오래 전부터? 최근에 시작된 게 아닌가?”
바로 얼마 전까지 사내와는 그런 관계가 될 생각이 없다던 후궁이 아니었던가.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에 감정이 생겨났다고 해도 그걸 버릇이라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제국에 오기 전에, 오래 전에 발병했어요.”
쓸쓸한 목소리로 프리아가 대답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날 알았다는 건가? 내 모습을 본 적도 없으면서?”
“예?”
뜬금없는 화제 전환에 놀라 눈을 뜬 프리아가 오웬을 쳐다보았다. 대화가 어딘가 어긋나는 것 같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프리아는 황제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폐하를 모를 수가 없지요. 보내 주신 초상으로 먼저 뵙기도 했고요.”
초상을 보고 그때부터 나에게 마음을?
고작 초상 하나 본 것만으로도 일방적인 연모에 빠져 자신을 은애한다며 가슴앓이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오는 귀족 소녀들이 있다고는 들었다. 자신의 후궁들 역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으면서 그저 폐하의 사랑만을 원할 뿐이라고 대공들의 입을 빌려 호소했다. 오웬은 그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그래서 내 그림을 보고 싶어 한 거로군.”
갑자기 왜 또 그림 이야기지? 황제의 초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프리아가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충분히, 원 없이 보았습니다. 앞으로 보고 싶어지면 이걸 볼게요!”
목에 걸린 로켓을 흔들어 보이며 프리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제 하도 봐서 눈을 감아도 떠오를 지경이다. 얼굴뿐 아니라 몸까지 다 외웠다.
“그래?”
이상한 후궁이다. 실물을 보면 될 것을.
후궁의 연심을 의심하는 오웬의 추궁이 이어지려고 하던 찰나, 프리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티타임 전에 잠들어 저녁까지 거른 후궁을 음식도 먹이지 않고 지나치게 몰아붙인 것이 아닌가.
‘식사량을 늘리고 몸을 움직여 체온을 올리도록 해 주십시오. 체온이 낮은 편이시니 몸을 따뜻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태의의 말대로 몸을 움직이게 하고 체온도 올려 주었다. 밤이 깊었지만 황제의 명령이라면 곧 산해진미가 준비될 것이다. 오웬 역시 긴 정사로 인해 체력을 소비한 상태였다. 오웬은 시종장을 부르기 위해 내실로 나가 설렁줄을 당겼다.
‘왜 소식이 없나 했더니.’
한참을 불러도 오지 않는 시종장을 찾으러 내려온 오웬은 공식 침실에 놓인 장의자 위에서 코를 골며 잠에 빠진 노인을 발견했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 설명에 온 힘을 다한 까닭에 기력을 소진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설렁 소리에 바로 정신을 차렸을 것이나 좀처럼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시종장을 깨우는 대신 침실 앞을 지키고 있는 시종에게 지시하기 위해 문으로 향하던 오웬이 걸음을 멈췄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 내실을 지나 다락방으로 향한다. 먹을 걸 가져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던 오웬이 빈손으로 등장하자 프리아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폐하?”
옷을 가져와 자신에게 입히기 시작하는 오웬의 행동에 놀란 프리아가 오웬에게 물었으나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신발까지 신겨 빈틈없는 차림새를 완성한 오웬이 만족한 표정으로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이 밤중에 어딜 나가려고?’
“폐하, 산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은……. 폐, 폐하!”
오웬에 의해 허공에 들린 프리아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 내려 주십시오! 제발로 걸어가겠습니다!”
걸어갈 기운이 없을 것 같아 어깨에 메고 가려고 했는데 내려 달라 호소하는 후궁의 저항이 완강했다. 바닥에 내려놓자 씩씩한 태도로 항의를 늘어놓는다.
“폐하, 제가 멧돼지나 산양도 아닌데 들처업으려 하시다니요.”
“소리칠 기운은 있나 보군.”
“이 밤중에 어딜 가시려는 건데요?”
“따라와.”
설명도 없이 오웬이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뒤따라 걸음을 내딛으려던 프리아가 금세 풀리는 다리로 인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리는 칠 수 있지만 걷지는 못하는 건가.”
누구 때문인데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하체에 힘을 주려 애쓰며 프리아가 오웬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온 오웬이 등을 돌린 자세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설마 업히라는 건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는 프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어렸을 때는 업히는 게 좋아 기르에게 종종 졸라 댔지만 머리가 굵어지게 된 이래로는 누군가에게 업힌다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기다리던 오웬이 고개를 돌려 도리질하는 자신의 후궁을 쳐다보았다. 하나하나 손이 가는 귀찮은 녀석이다. 순식간에 프리아의 팔을 잡아 어깨에 두른 오웬이 힘든 기색도 없이 일어났다. 허공에 뜨게 된 프리아가 놀라 오웬의 목을 잡고 매달렸다.
“폐하아!”
업힌 이의 허벅지 아래 손을 밀어넣으며 오웬이 무심하게 말했다. 시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