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길 바라기는 했으나 막상 그리 나오니 이번엔 오웬의 말문이 막혔다. 바이런에게 근신 처벌을 내린 것은 그가 어서 자신의 후궁에게서 떨어져 다시는 접근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후궁에 대한 처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머릿속이 부글거리기만 할 뿐 어떻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할 말을 잃은 오웬의 시선이 프리아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위장을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평범한 사내의 옷차림이다. 드레스를 걸친 모습보다는 평복을 입은 지금의 모습이 오웬이 보기에 좋아 보였다.
아래에서 다시 올라온 시선이 후궁의 흰 얼굴에서 멈췄다. 눈물이 고인 눈 위로 드리워진 금빛 속눈썹,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새가 날갯짓하듯 살짝 치켜 올라간 연한 눈썹이 흰 이마 위로 내려앉았다. 저 이마, 저 흰 이마에 바이런이 입맞춤을.
어느새 뻗어 나간 오웬의 손가락이 프리아의 이마에 닿았다. 타인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를 지우려는 듯 엄지가 거세게 이마 위를 왕복했다. 힘주는 대로 자국이 남아 금세 붉게 일어나는 흰 살결이 마치 복숭아 같다.
뺨으로 내려온 손이 피부 위로 일어난 잔솜털을 매만졌다. 머리 위로 올라온 손에 또 때리려는가 싶어 질끈 눈을 감았던 프리아가 맨살 위로 느껴지는 생경한 감촉에 다시 눈을 떴다.
‘지금 뭐하는 거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황제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입술을 매만지던 손가락이 아랫입술을 눌러 틈새를 만들어 냈다. 살짝 열린 입 속으로 엄지손가락이 들어온다. 따뜻하고 붉은, 젖은 점막에 휘어 감긴 손가락이 느린 동작으로 입 안의 살을 쓸었다.
‘…….’
당황한 프리아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발갛게 귓불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백치라도 눈치챌 것이다. 이 느릿한 동작에 서린 욕망을, 맞부딪혀 오는 검은 눈동자에 담긴 열띤 갈망을.
황제에게서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거센 비가 쏟아붓던 밤, 약에 취해 막무가내 아이처럼 굴던 그때와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들어간 오두막 집 벽난로 앞.
뚜껑이 열리는 소리에 긴장한 프리아가 오웬의 아래에서 몸을 떨었다. 병에서 빠져나온 액체가 다리 사이를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 고인다. 기름 적신 손가락이 유연하게 프리아의 몸을 따라 내려갔다. 미끌거리는 손가락이 휘저을 때마다 앓는 듯한 신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웬의 어깨 너머 벽에 걸린 사슴의 머리를 프리아가 열에 들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름내 저장해 두고 먹기 위해 말려 둔 식품들이 선반 위로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비좁은 오두막이 열기와 젖은 신음으로 가득 찬다. 황제와 그의 후궁이 이런 곳에서 정사를 나눌 것이라 그 누가 짐작했을까.
이윽고 풀어져 내린 틈새로 단단한 것이 와 닿았다. 프리아의 떨리는 허벅지를 오웬이 강한 힘으로 움켜잡았다. 하체가 뭉개진 진흙처럼 짓눌린다. 헉 하고 터져 나온 뜨거운 숨이 순식간에 여름 공기에 섞여 사라진다. 어느 순간 교차된 발목이 오웬의 허리를 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아팠지만, 여전히 아팠지만 어떤 종류의 아픔은 너무나 뜨겁고 달콤해서 계속 맛보고 싶어진다는 것을 프리아는 깨닫게 되었다.
축 늘어져 가쁜 숨을 쉬고 있는 프리아의 어깨로 끈적한 손이 와 닿았다. 장난치는 것처럼 둥글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더니 피부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꾹꾹 눌러 가며 아래로 내려간다.
뭐하는 건가 싶어 뒤를 돌아본 프리아가 등줄기로 느껴지는 저릿함에 짧은 신음을 흘렸다. 녹인 밀랍 위로 인장을 찍는 것처럼 오웬이 입술을 움직여 붉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궤도에 오른 장작불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처럼 벽난로 속에서 타닥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 오웬이 프리아의 뒷머리를 잡아당겨 그대로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프리아의 입 안을 점령한 오웬의 혀가 엄지가 스쳐간 자리, 입술과 혀, 흰 치아와 입천장, 안쪽의 연한 살을 모두 맛보았다.
이 자리에서 뼈까지 발라 모두 먹어치우고 싶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허기가 허리 아래에서 올라왔다.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오웬이 자신의 후궁을 탐하기 시작했다.
황실 예절교육은 다 헛것이로다.
황제의 격랑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면서 프리아는 생각했다. 침대가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바닥에서 일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러그의 잔털들이 두 사람의 무게에 눌려 오래도록 제 형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웬의 손이 프리아의 옷 속으로 들어와 등과 허리 그리고 옆구리를 두서없이 쓸어내렸다.
앞자락을 여몄던 단추들이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러난 배 위로 오웬이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프리아가 긴장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부드러운 살결을 매만지던 오웬이 배꼽 위로 입술을 내렸다. 마른 우물 위로 단 비가 내린다.
“아, 간지…, 읏”
배꼽을 듬뿍 적신 젖은 혀가 붓처럼 프리아의 흰 피부 위를 채색해 나갔다. 잘근 씹어 내는 거친 동작에 허리가 제멋대로 떨리며 발끝이 굽어든다.
“아, 아읏, 하!”
눈앞에서 솟아난 돌기 위로 손가락을 덧그리던 오웬이 다시 입술을 내렸다.
“아, 아파!”
잇자국이 남은 살점을 위로하듯 잔입맞춤을 퍼붓는다. 프리아가 허리를 물려 도망칠 때마다 오웬의 입술이 빠르게 뒤를 쫓았다.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던 프리아의 고개가 오웬의 손바닥 위로 놓였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칼의 감촉이 느껴진다. 힘을 주자 가는 실타래가 손가락 사이로 엉기며 손등을 간지럽혔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오웬이 입을 열었다.
“바이런과는 만나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지?”
“……그 자와는.”
나른한 목소리로 프리아가 대답했다.
“산책을… 하고.”
“산책을 하고?”
프리아의 말을 따라하며 오웬이 자신의 몸 아래 갇힌 몸체 위로 천천히 힘을 주었다. 압력에 밀려 다시 벌어지기 시작하는 맨다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차를 마시고…….”
“차를 마시고 또?”
“……함께 책을 봤어요.”
산책과 차와 책. 평소 알던 바이런의 종목에서 연회와 살롱이 빠지고 장서관이 추가되었다. 바이런이 귀한 의학책을 수소문해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꽤 색다른 인물을 만났구나 싶었는데 후궁의 거짓말에 놀아난 것이라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그런 거라면 다른 사람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바이런이지?”
“친구가 되어 준다고 했으니까…….”
나른하게 말을 이어 가던 프리아가 덧붙였다. 이 말을 들으면 황제의 오해도 풀릴 것이다.
“저는 사내와,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사내뿐 아니라 여인과도 연인이 되고 싶지 않다. 남겨질 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사내와 말이지?”
싸늘해진 오웬의 말투를 눈치채지 못한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연모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렇군.”
프리아에게서 몸을 떼어 낸 오웬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옷을 꿰어 입는 오웬을 따라 프리아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자신의 상의로 손을 뻗었다. 빠르게 옷을 낚아챈 오웬이 벽난로 앞으로 걸어갔다. 영문을 몰라 하는 프리아의 앞에서 난로로 내던져진 옷가지에 불이 붙었다.
“폐하?”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황당한 표정을 한 프리아를 바라보며 오웬이 입을 열었다.
“너를 후궁전으로 돌려보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예?”
“사내는 그런 대상이 되지 못해도 여인은 가능하겠지. 네가 이번엔 여인과 친구가 되고 싶을지 누가 알겠느냐.”
“예?”
지금 나에게서 공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 가두겠다는 거야? 얼토당토않은 의심에 기가 찬 프리아가 입을 벌렸다.
“폐, 폐하!”
자신을 부르는 프리아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오웬이 빠른 속도로 걸어가 벽 앞에 섰다.
“폐하!”
설마 그대로 가 버리는 건 아니지?
호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프리아의 시선을 느낀 오웬이 다시 돌아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의도 집어 벽난로 안에 처넣었다. 불꽃이 타닥, 피어오르는 소리가 프리아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한 발짝도 허락 없이 옮겨서는 안 된다. 내 말을 어기고 밖으로 나갔다간 다신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아. 이게 내 처분이다.”
프리아가 달려가 황제를 부르며 닫힌 벽을 두드려 댔다.
거짓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