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에 당황한 프리아가 말까지 더듬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저, 저기. 폐하? 왜, 왜 우시는 겁니까?”
설마, 아파서, 아파서 우는 걸까? 그동안 당한 걸로 치자면 뺨 두 대로는 성이 풀리지도 않거늘.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맘 편히 못 잔다고 좌불안석, 바늘방석,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 없었다.
“아프십니까? 많이 아프셨습니까?”
소리만 크게 났지 그렇게 세게 때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두 뺨이 제법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피는, 피는 어디에서 묻은 거지? 정수리인가? 이마 쪽인가? 뒤통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자신을 살피는 프리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오웬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처럼 까맣고 큰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울지 마세요. 네? 이런 분 아니시지 않습니까.
‘날 보고 어떡하라고.’
조카 마티아에 꼬마 공녀님들까지, 어린아이 달래는 일에는 이골이 나 있는 프리아였으나 이렇게 다 큰 사내는 달래기는커녕 우는 모습조차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고정하시옵소서.”
차라리 화를 내!
갑자기 쳐들어온 것도 그쪽이고, 제멋대로 몸을 취한 것도 그쪽이고, 심지어는 죽이려 들기까지 했건만 어째서 내가 저를 달래 줘야 한단 말인가. 사탕 과자 한 줌이면 배시시 웃는 저잣거리 꼬마애도 아니고 예쁘다, 예쁘다 쓰다듬어 주면 만족하는 강아지도 아닐진대 무슨 수를 써야 이 울음을 멈추게 한단 말인가.
“폐하…….”
한숨을 내쉰 프리아가 오웬의 눈가로 엄지를 가져갔다. 손이 닿자 눈동자를 깜빡이는 통에 속눈썹에 맺혔던 눈물이 프리아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손목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의 온기에 우습게도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용기가 솟아났다.
그대로 손을 내려 어깨 위에 두었다. 살짝 힘을 주자 유순한 아이처럼 오웬이 몸을 기대 왔다. 더듬거리며 등을 감싸자 오웬이 온전히 몸을 맡겼다.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폐하, 안심하소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오웬의 눈이 감겼다.
젖은 옷을 벗기고 수건을 가져와 몸을 닦아 주고 비록 사이즈는 맞지 않지만 여분의 침의를 가져와 옷까지 갈아입혔는데. 다시 깨어난 황제는 통 잠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얌전히 누워 있지도 않았다. 황제의 혼 대신 강아지 새끼라도 들어앉은 걸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누운 프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끙끙거리며 달라붙었다. ‘착하지.’ 강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재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쓰다듬어 주기를 원하는 부위가 머리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프리아의 허벅지에 맞닿은 물건이 착실히 부피를 늘려 가고 있다. 강아지 앓는 소리를 내며 끙끙거리는 황제의 표정은 가련했으나 도저히 쉽게 허락해 줄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프리아 또한 사내인지라 이 모든 사정事情을 다 알면서 사정射精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고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명색이 자신은 황제의 후궁이 아니던가.
‘처음도 아닌데 뭐.’
그러나.
‘약 먹고 한 적은 없었잖아?’
게다가.
‘이 자식 정신이 과연 그 일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상태인가.’
하지만.
‘풀어 주지 않으면 한밤 내내 저럴 텐데.’
후딱 해치우고 재우리라. 고민하던 프리아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 손이 좋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입술을 노려보는 프리아를 오웬이 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표정과 거시기가 아주 딴판이다. 내키지는 않으나 1차 도전은 손으로, 그러고도 잠잠해지지 않는다면 금단의 음란 비법, 구음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유디스가 제 멋대로 빌려온 이국의 음서淫書에서 읽었던 내용이었다. 입술의 압력과 혀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상대를 일순간에 극락으로 보낼 수 있다 했다.
침의 속으로 손을 밀어 넣자 오웬이 얼굴을 찡그리며 허리를 뒤로 물렸다. 짐작은 했지만 크기, 경도, 온도, 모든 면에서 오싹할 만큼 위험한 물건이었다. 서툰 동작으로 더듬거리며 접근하는 프리아의 손을 오웬이 잡아 왔다. 손을 떼어내 다시 침의 바깥으로 쫓아낸다.
“싫어.”
오웬이 아이 같은 말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으십니까?”
“싫어.”
손장난은 취향이 아닌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본인의 취향을 어필하는 뻔뻔함이 묘하게 황제답다는 생각이 들어 심술이 솟아났다. 저가 더 괴롭지, 내가 괴롭나.
등을 보이며 돌아누운 프리아의 뒤로 다시 오웬이 달라붙었다. 뜨거운 숨결이 프리아의 목덜미로 쏟아진다. 욕망은 있으나 해소할 방법을 모르는 백치처럼 오웬이 끙끙거리며 몸을 부딪쳐 왔다. 약 기운이 언제 가실지도 모르는데 아침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역시 금단의 그것을 시도할 때가 온 것인가.’
참다못해 비장한 결심을 한 프리아가 몸을 일으켜 천장을 향하도록 오웬의 어깨를 밀어 눕혔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프리아를 올려다보던 오웬이 갑자기 말려 올라가는 자신의 침의를 급히 시선 내려 바라보았다. 다리 사이로 침입한 프리아의 머리를 본 오웬이 기겁하며 허리를 다시 뒤로 물렸다.
‘어딜 도망가.’
오기가 생긴 프리아가 오웬의 허벅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론은 완벽하게 익혔다. 할 수 있어.
“어쩌라고! 밤새 이러고 있을 거야?”
버둥거리던 오웬의 발길질에 턱을 얹어 맞은 프리아가 급기야 인내심을 잃고 소리쳤다.
“싫다고!”
고집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빽 소리를 지른 오웬이 볼멘 표정으로 입술을 굳게 닫았다.
하이고야, 망나니 도련님 같으니.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본 유모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 시절 유모의 심정에 비한다면 자신 쪽이 몇 배는 더 억울했다. 자신은 고작해야 씻지 않겠다고, 채소는 먹지 않겠다고 투정했을 뿐이다. 이처럼, 달아오른 몸을 어쩌지도 못하면서 잠 못 들게 사람 괴롭히는 짓은 생각해 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다.
“나도 싫어. 싫다고.”
거부를 표하는 프리아를 바라보는 오웬의 표정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반칙이다. 사람 마음 약해지게 왜 또 이러시나. 울어서 해결될 문제라면 자신이야말로 울고 싶었다. 평소엔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더니 정말 왜 이러는 것이야.
“어중간한 자극으로는 괴로워지기만 할 뿐이라구요. 우리 그냥 후딱 끝내요.”
지친 표정을 한 프리아가 오웬을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금방 끝납니다. 아프지 않게 할게요.”
“싫다고 했잖아.”
미약한 음성으로 대답한 오웬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유라도 들어 봅시다. 대체 왜 싫은 겁니까?”
“……무서워.”
“무서워요?”
지금 내 앞에서 무섭다고 하셨습니까? 어이없네. 첫날밤부터 맞고 범해지고 급기야 폐하에게 목이 졸려 죽을 뻔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내가.
싫어, 하고 오웬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약 먹은 사람과 논리를 따져 봤자 무얼 하겠는가.
“좋아요, 그럼. 난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폐하가 한번 알아서 해봐요.”
이렇게 된 이상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먼저 옷을 벗어 던진 프리아가 거친 손길로 오웬의 침의를 벗겼다. 그러고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당차게 침대 위로 사지 벌려 누웠다. 늘 교합하던 상대와 평소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도 표정이 다르기 때문일까, 상대가 망설이고 있기 때문일까. 전혀 다른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아오른 뺨을 한 오웬이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몸을 부딪쳐 왔다. 뜨거운 몸이 그저 맞닿아 있기만을 소망하는 것처럼 서툰 교합을 시도한다. 맞닿은 오웬의 다리 근육이 팽팽히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프리아 자신도 잠시 숨을 멈추고 다가올 통증을 예감했다.
“…….”
없던 밤 기술이 하룻밤에 생겨날 리 없으니 평소처럼 그저 무력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땀을 흘리며 오웬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앗, 아!……”
프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픈 신음에 오웬이 동작을 멈췄다. 아픔은 사라졌지만 이래서야 밤을 꼬박 새워도 색사 한 번 시원하게 치러 내지 못할 것이다. 막막함을 느낀 프리아가 입술을 사리물더니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하세요, 폐하.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프리아의 말에 오웬이 반론을 제기하듯 입술을 열었다.
“그러면.”
다음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오웬에게서 흘러나왔다.
“네가 아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