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리타 (27)화 (28/237)

귓가에 와닿는 호흡이 열을 뿜어냈다. 맞닿은 피부도 불같이 뜨거웠다. 태산처럼 프리아를 막아선 오웬의 몸체가 신열로 들끓고 있었다.

프리아는 눈물 맺힌 눈으로 오웬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되 보지 않는 눈동자. 반쯤 열린 오웬의 입술에서 희미하게 독초, 나포닌의 향내가 풍겨 왔다.

사랑의 묘약, 연인들의 꽃이라 불리는 나포닌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적당히 복용하면 체온을 올리고 혈류를 증가시켜 색사의 흥을 돋우지만 허용량을 과다하게 넘어서면 사정을 방해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흥분 상태를 지속시키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느 나라에서는 고문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풍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대체 어디 가서 뭘 주워 먹고 온 거야.’

연회에 간다더니 술이라도 잘못 받아 마신 걸까. 황제를 유혹하고자 마음먹은 누군가가 쳐 놓은 덫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이왕 걸렸으면 그 덫에 머물 일이지. 어쩌자고 이곳까지 꾸역꾸역 찾아드냔 말이다.

‘아시겠습니까? 프리아 님은 절대 드시면 안 되는 독초입니다. 이 세상 빨리 하직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만 드세요. 속성으로 저승에 데려다줄 테니.’

‘먹었으면 어떻게 해?’

‘제 말을 귓등으로 들으셨습니까? 프리아 님이 드셨다가는 심장이 터져 죽습니다.’

‘아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먹었으면 어떻게 해?’

‘다른 사람을 먹이실 건가요? 그것도 안 됩니다. 체력이 받쳐 주질 않으시잖아요.’

‘기르가 실수로 먹을 수도 있잖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만에 하나 제가 먹게 된다면 미련 없이 거세를 하겠지만 젊고 건강한 사내라면 손장난이나 원 없이 하도록 버려 두는 게 낫겠죠. 누가 먹었다 싶으면 당장 자리를 떠서 도망가세요. 뒷감당을 하다 앓아눕느니 그편이 낫습니다.’

도망은 이미 글렀다.

손장난, 뒷감당, 거세.

마음 같아서는 잘라 버리고 싶지만 황제의 귀한 물건을 그리할 수 없으니, 뒷감당을 하거나 손장난을 유도해야 한다. 잠시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천천히 잡혀 있던 한쪽 손을 빼냈다. 맞닿은 하체로 숨어들던 프리아의 손목을 오웬이 다시 낚아챘다.

어째서지? 어째서야!

해소되지 않는 욕망에 오웬이 신음하며 아랫도리 가득 힘을 주었다. “아야!”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손안에 무언가가 쥐여 있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누군가의 팔목이다. 흠칫 놀라 내팽개치자 신음이 이어졌다.

오웬에게서 벗어난 프리아가 자유로워진 손목을 살피며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최음 효과에 더해 괴력까지 선사받은 모양이다. 손자국이 난 손목이 시큰하게 아려 왔다. 내일이면 황제가 물어뜯은 목덜미 또한 볼만할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단 말인가. 약의 효과가 지속되는 한 황제는 날뛸 것이고 자신의 고통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곳은 어디인가.

자신은 분명 재정 대신의 생축연에 참석하기 위해 궁을 나섰다. 축하 인사와 함께 술을 주고받으며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이어지는 다음 술자리는 거절하고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낯선 곳에 몸을 뉘운 그의 의식 속으로 악몽이 찾아왔다.

형, 아서를 땅에 묻던 그날처럼 사내가 뱀처럼 징그럽게 자신의 몸을 감아 왔다. 뿌리치려 했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은 이제 성년이 되었거늘. 힘없는 황손이 아니라 제국을 손에 쥔 황제가 되었거늘. 어째서 또 그자의 마수 아래 놓여 농락당하고 있는 것인가.

“……요난나.”

황제다. 가벼운 고갯짓 한 번으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요망한 망령이다.”

더는 네가 무섭지 않아. 너는 죽었어. 이미 죽은 자다.

생시 그대로 요사스러운 웃음을 날리는 사내를 잡아 내동댕이쳤다. 올라타 목을 조르자 아래에 깔린 사내가 발버둥치며 용서를 구해 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호위병이 축 늘어진 사내를 끌고 나갔다.

……침입자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폐하! 시종관이옵니다! 폐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어찌 이런 일이! 무슨 일이더냐! ……입구를 봉쇄하고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라! 폐하를 모셔라!

죽었다.

죽였다.

죽었어.

심장이 쿵쾅대며 거세게 뛰었다. 숨이 가쁘고 몸의 열기가 중심을 향해 솟구치듯 흘러갔다. 긴장된 몸뚱이가 흥분을 이기지 못해 덜덜 떨렸다.

‘폐하! 빗줄기가 거셉니다!’

‘폐하! 밤길이 어둡습니다! 날이 밝으면 환궁하시는 것이─.’

‘폐하!’

‘폐하!’

‘폐하!’

“……폐하?”

이 얼굴이다. 이 사내다. 쾌락을 갈망하는 육신이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했다.

“폐하, 젖으셨습니다. 우선 물기라도 닦아내심이─.”

나만을 위해 준비된 사내다. 본능처럼 사내의 흰 목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이를 세우자 품속의 사내가 도리질 치며 몸을 떨었다. 허리를 세우자 맞닿은 곳에서 열꽃이 피어올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

기쁨도 잠시, 극한까지 부풀려진 욕망은 수그러들 기세 없이 오웬의 정신을 한계로 몰고 갔다. 온몸의 혈관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어째서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오웬의 어깨를 누군가가 감싸 왔다.

“폐하, 정신이 드십니까?”

누구냐, 나를 방해하는 자가 누구야!

“태의를 불러야─.”

귓속에서 윙윙, 말벌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다시 뿌옇게 시야가 흐려졌다.

‘아직 사람을 죽이기엔 모자란가.’

죽여야 해.

백조처럼 희고 긴 목으로 두 손을 가져갔다.

‘날 해방시켜 주겠어?’

죽여야 해.

목이 졸린 사내가 몸부림을 친다.

사내의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금빛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아.”

죽었는데.

이미 죽여 버렸는데.

“어째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속에 있다.

수십 번을 되살아난다 해도.

죽일 것이다.

손아귀 가득 힘을 주며 오웬은 소리쳤다.

죽어.

겨우 벗어났다.

죽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자신을 덮친 황제의 몸을 밀어냈다. 손을 더듬어 집히는 물건을 사정없이 내리친 덕분에 이제야 겨우 주박이 풀렸다. 정말이지, 후궁전 침대 위에서 황제에게 겁간당하다 목 졸려 죽은 후궁으로 후세에 기록되고 싶지는 않았다.

욕지기가 섞인 기침과 함께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벌린 입으로 한꺼번에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막혔던 숨을 정신없이 들이마셨다.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통증이 폐로 느껴졌다.

숨이 부족해도 넘쳐도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 프리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어이없는 현 상황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이 터졌다. 이 꼴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밀쳐진 자세 그대로 쓰려져 있는 황제의 머리통이 보이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멱살을 잡아 끌어 올렸다. 젖은 상의가 프리아가 흔드는 대로 어깨 위로 반쯤 걸쳐 힘없이 흔들렸다. 풀린 눈동자가 프리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눈을 깜박여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

“……사라… 사라지지, 않… 는 거야. 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죽었… 잖아. 죽였는데……. 왜.”

죽긴 누가 죽었다는 거야. 설마 진심으로 죽일 생각으로 덤벼든 거야?

“작작 좀 해!”

생각보다 앞서 손이 나갔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황제의 뺨을 스친 제 손바닥이 더 아파 왔다. 그러나, 고작 한 대로 그치기는 억울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황제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꺾이어 돌아간다.

“술을 처먹었으면 가서 잠이나 자든가!”

“거시기가 섰으면 알아서 해결할 것이지!”

“왜 나한테! 나한테 이러는 거야!”

정말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인도 많고 사내도 많은 구중궁궐에 찾아갈 이가 그렇게 없는가. 제정신도 아닌 상태로 여기까지 오다니 평소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취해서도 악착같은 집착이라 해야 할지, 그저 무의식중에서도 발휘되는 악의라 해야 할지 프리아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뺨을 두 대나 때렸는데 시원하지가 않다. 속에 있던 말을 퍼부었는데도 개운하지 않았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을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저질렀기 때문일까. 내일이라도 정신을 차린 황제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해 내고 추궁을 해 온다면 어쩔 것인가. 동침 거부에 이어 폭행, 그리고 폭언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중죄였다. 자신만 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공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이성과 함께 두려움도 돌아오자 안위에 대한 걱정과 함께 황제의 몸 상태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쓰러진 자세 그대로 미동 없는 오웬을 곁눈질하던 프리아가 소심하게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폐하?”

반응이 없다. 고작 뺨 두 대에 다 큰 사내가 늘어져 있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이 내리친 두꺼운 양장본 모서리로 피가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손길 따라 맥없이 흔들리는 어깨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한 프리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폐하!”

조급한 마음에 힘이 들어간 탓일까, 프리아의 손에 잡힌 어깨가 들리며 순식간에 누워 있던 황제의 상반신이 따라왔다. “폐하!”를 외치며 얼굴을 가까이한 프리아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울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 황제가, 차갑고 사납고 제멋대로에 오만하기까지 한 황제가,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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