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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94화 (394/394)

394화

사락, 입구를 가리는 천을 걷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작은 발소리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가까이 다가선 상대가 손으로 내 뺨을 천천히 쓸어 만져 왔다. 자는 척을 하며 타이밍을 재고 있던 나는 그 손을 재빨리 잡아챘다.

“……!”

“오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깨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주춤 뒷걸음질하는 상대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로 상체를 일으키며 협탁에 놓인 전등을 켰다. 어두운 방 안에 노란 불빛이 켜지며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팀장님.”

“…깨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제대로 기습당한 박건호가 시선을 피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내게 손이 잡혀도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전과 달리, 지금은 꽤 불편한 기색이라 잡은 손은 우선 놔주었다. 굳이 손을 붙잡지 않아도 박건호는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아까 깼습니다. 천사연 마스터가 보고 갔는데, 전달 못 받으셨나 봅니다.”

“…개인 병실에 있다가 바로 온 거라.”

하긴. 내가 깨어나서 천사연과 대화를 나눴을 때가 늦은 밤이었고, 지금은 새벽이었으니 소식을 듣지 못 할 만했다. 박건호도 크게 다쳤었으니 여태껏 치료받고 쉬었을 거고.

“몸은…….”

박건호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물어 왔다.

“전 다 회복했습니다. 듣기로 먹었던 석류알이 장기를 녹였다고 하던데, 괜찮으신 겁니까?”

“나도 잘 치료받은 덕분에…….”

박건호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애써 웃고 있던 표정이 확연하게 티가 날 정도로 굳었다.

전등 빛에 얼굴 절반이 드러난 박건호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는 힘겹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가는 어쩔 수 없이 일그러졌다.

“미안, 한이결.”

“예?”

“내가 잘못 생각했어.”

제어하지 못한 날것의 표정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지, 박건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설령 너와 멀어진다 해도 그 석류알을 먹으면 안 됐어.”

언제나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던 박건호가 죄책감에 잔뜩 지친 모습을 하고서 속삭였다.

“내가 너무… 너무 쉽게 여겼어.”

“팀장님.”

“미안하다.”

죄책감이 가득 묻어 있는 음성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따끔한 통증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팀장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가 왜 나에게 사과하고, 죄책감을 느끼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와 별개로 이건 박건호의 잘못으로 벌어진 사고가 아니었다.

“팀장님의 문제가 아니에요.”

혹여라도 박건호가 가지고 있을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덜어 주고 싶어서 이 새벽까지 그를 기다렸다.

박건호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는 내게 무기를 휘두른 죄책감과 책임감을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제게 알려 주셨잖아요.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싸워 나가는 팀이라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팀장님 앞을 막으면서까지 강제로 먹도록 만든 석류알의 위험성을 진작 눈치채고 개입 능력을 써 봤어야 하는 건데.”

물론 박건호가 먹은 석류알처럼 생긴 아이템은 발동되기 전까진 내 개입 능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험하긴 했지만 결국 다 잘 됐으니… 팀장님?”

졸지에 팀원을 검으로 찌른 경험을 하게 된 박건호가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라며 얘기하던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시선을 들었다.

투명한 물방울이 얼굴을 가린 커다란 손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게 박건호가 흘린 눈물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나아.”

“티, 팀장님.”

“아직도 널 찌른 감각이 이토록 선명한데…….”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던 나는 그 말에 멈칫했다.

“내 자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다치게 했다는 사실이 끔찍해.”

박건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쏟아지는 눈물의 양도 많아졌다.

이걸 어떡해야 하지? 설마 박건호가 내 앞에서 울 줄은 몰랐던 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을 닦아 줘야 하는 건가, 진정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줘야 하는 건가.

“그, 음…….”

당황한 채로 박건호와 마주 서 있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박건호를 품에 안았다.

자신을 안아 주는 내 행동에 어깨를 작게 움찔 떤 박건호가 곧장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커다랗게만 느껴졌던 박건호가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작게 느껴졌다.

‘박건호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에 많이 알아 가네.’

내게 있어서 박건호는 좀 장난스럽고 냉정하지만 제 사람에게는 어른스럽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그는 유치한 질투를 하고 불안과 죄책감에 눈물짓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데, 왜 몰랐을까.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되어서 미안했다.

‘위로를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는 박건호가 신경 쓰였다. 서럽기는 단단히 서러웠는지 어느새 내 허리를 껴안고 있는 두 팔에는 힘이 제법 들어가 있었다.

위로에는 영 재능이 없는데. 어떻게 달래 줘야 상태가 괜찮아질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박건호가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않나?”

“예?”

“내가 무섭지 않나?”

“무슨…….”

“아무리 정신 지배에 당한 상태였다지만 내가 널 검으로 찌른 것은 달라지지 않잖아.”

설명을 듣고서야 그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걸 알게 되자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설마요.”

옅게 웃으며 나 또한 박건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안 그래도 무서운 게 많은 세상인데, 팀장님을 무서워하겠습니까.”

“…….”

지금은 이렇게 울고 있는 박건호를 웃으면서 달래 주고 있지만,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계획에 따라 살아남은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좋은 거였다.

천사연이 말했던 대로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게 늦어졌거나 치료해 줄 힐러가 부족했으면 난 그대로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속이 무거워졌다.

‘만약 내가 죽었으면 박건호는…….’

살아서 다행이었다. 살아서 박건호를 안아 주고 달래 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팀장님이 제가 겁먹을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저도 똑같이 팀장님이 걱정스럽습니다. 이번 일이 팀장님께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아서요.”

내가 긴장을 푼 것을 박건호도 느꼈는지 어딘가 허탈한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찔린 사람이 할 소리야?”

“왜 그런 마음인지는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어 말했다.

“권정한을 방패로 세워 두고 아자젤을 죽였으니까요. 이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남아 있겠죠. 권정한을 볼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를 거고.”

“…….”

“그래도… 괜찮습니다. 권정한이 어떤 각오로 제 앞을 막아 줬는지 압니다. 그러니 팀장님도 그런 걱정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내가 박건호를 무서워한다고?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나는 닥터가 만들어 낸 공간 속에서 악의를 갖고 날 죽인 놈을 다시 만났을 때도 공포 따윈 느낀 적 없으니까.

그런 내 진심이 통했는지 박건호가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위로가 너무 서툰 거 아닌가?”

미소를 지은 박건호의 눈가는 발긋했고 아직 채 닦지 못한 눈물에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서툰 위로 듣고 기분 풀렸으면서 뭘 투덜거리십니까? 이제 그만 우세요.”

“우는 건 아까 끝났어. 고개를 안 든 건 쪽팔려서 그런 거지.”

평소처럼 농담을 던진 박건호가 이내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못난 모습을 보였군.”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가 팀장님보다 1살 연상입니다. 자꾸 까먹으시는 것 같네요.”

“음, 그건 그렇지.”

뭐가 그건 그래. 매번 까먹고 어린애 취급하면서. 하여간 이것도 다 한이결 외모 때문이다.

“아무튼 진정되셨으면 허리 좀 놓으시죠.”

“먼저 안아 줬으면서 매정하긴.”

실컷 운 얼굴을 하고선 장난은 왜 이렇게 치는 거야.

혹시나 해서 허리를 붙잡고 있는 박건호의 팔을 밀어 냈지만 이 자식이 힘을 주고 버텼다. 진짜 뭐 하는 거냐고.

“놓으라니까요.”

“한 번만 더 안아 보고 싶은데.”

“될…….”

될 리가 있냐고 따지려다가 박건호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내 쪽으로 상체를 살짝 숙이고 있는 그의 자세 때문에 검은 눈동자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노란 전등 빛에 드러난 눈동자에 적나라하게 담긴 감정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안 되나?”

“…….”

박건호가 숨길 노력도 하지 않으며 재차 졸라 왔다. 하필 꿈속에서 그와 입을 맞췄던 기억까지 떠오르며 목덜미로 뜨거운 열기가 훅 치솟았다.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거절하라고. 심지어 방금 박건호가 처음으로 우는 걸 봤는데.

“안기만… 하는 거라면…….”

고민 끝에 허락을 내리자 박건호가 내가 했듯이 나를 품에 안았다. 아니, 안겼다.

상체를 있는 대로 수그려서 내 어깨에 재차 이마를 기댄 그가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며 작게 속삭였다.

“이거면 충분해.”

“…….”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본 듯한 속삭임이었다.

‘박건호 눈에 비친 그 감정은…….’

가슴 속이 다른 의미로 복잡해졌다. 박건호가 충분하다고 했으니 오늘은 뭔가를 더 하진 않겠지만…….

결국 난 복잡한 마음을 하고서 손을 들어 박건호를 마주 안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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