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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58화 (358/394)
  • 358화

    바로 앞에서 사마엘과 아자젤을 놓친 천사연은 지친 숨을 내쉬며 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 상체를 수그렸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몬스터는 하태헌의 몫으로 넘어갔다. 몬스터의 영향으로 발생한 지진이 방금까지 전투를 치르며 겨우 버티던 길드원들에게 예상보다 큰 타격을 가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이동을 도와줘야 했다. 모두가 온 힘을 다해 대피하는 와중에 하태헌 혼자서 검은 먼지를 두르고서 몬스터를 향해 뛰어갔다.

    “허억, 헉…….”

    민아린과 권정한을 안전한 곳까지 옮기고 나서 바닥난 기운을 겨우 긁어모아 홀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하태헌의 몸에 바람을 휘감았다.

    웬만한 건물보다 높고 큰 몬스터는 천만다행으로 A급이었다. 아무래도 사마엘이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몬스터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크르르륵, 크륵!

    하태헌의 날카로운 검날이 몬스터의 몸통 중앙을 정확하게 가로질렀다. 베인 살점에서 짙은 보라색 피가 흘러넘치며 몬스터가 몸부림을 쳤다.

    쿠구궁! 몸체가 워낙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주변에 모든 게 무너지고 부서졌다. 그걸 알아챈 하태헌이 혀를 차며 재차 휘두르려던 검 끝을 아래로 내렸다.

    내 바람 덕분에 허공에 떠 있는 하태헌의 등 뒤로 검은 먼지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그렇게 모인 검은 먼지는 곧이어 앞이 뾰족한 창 수십 개로 변했다.

    아주 예전, 하태헌과 함께 SS급 코트를 얻으러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봤던 장면과 비슷했다. 하태헌의 등 뒤로 생겨난 수십 개의 창이 그의 손짓 한 번에 순식간에 날아가 몬스터 몸통에 꽂혔다.

    키이이익!

    거대한 몸통을 가진 만큼 날아온 수십 개의 창에 빠짐없이 공격당한 몬스터가 울음소리를 내며 갈기갈기 찢어졌다. 후드득 쏟아지는 몬스터 시체와 보랏빛 피에 나를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어휴, 끝까지 이게 뭐야?”

    “그러게 말이야. 지금 입은 옷 다 버려야겠네.”

    차수연이 몬스터의 시체를 불로 태우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 옆에는 홍시아도 함께 있었다.

    “차수연 씨.”

    그들을 발견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길드원들을 이끌고 지원을 와 준 제이나 길드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제이나 길드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사마엘과 아자젤을 노려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테니까. 결국 둘 다 놓치고 말았지만.

    하지만 차수연과 홍시아는 내 웃음을 보고 왜 저래, 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심지어 차수연은 내게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당신은 누군데 나한테 말을 막 걸어요?”

    “아.”

    차수연의 질문을 듣고서 뒤늦게 지금 내 상태가 한이결이 아닌 권세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저렇게 낯선 사람 보듯이 본 거구나. 방금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프라우스 신도단이 남아 있는 장소인 탓에 그만큼 예민하기도 할 거고.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대뜸 내가 한이결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기엔 상황이 적절하지 않았다.

    “한이결은 어디 있는 거야, 대체. 아까부터 보이질 않아.”

    “…….”

    아까부터 열심히 나를 찾는 차수연에게 거짓말을 하기에는 양심에 좀 많이 찔리는데. 난감함에 식은땀만 흘릴 때, 의외로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

    “앞에 있는 남자가 한이결 능력자 맞아요.”

    머리 끈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이주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번 전투가 이주하에게도 큰 부담이었는지 창백한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네?”

    “뭐라고?”

    차수연과 홍시아가 동시에 놀랐다. 자신에게 꽂힌 두 쌍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주하가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이 남자가 한이결 능력자 맞다고. 겉모습이 변하는 걸 내가 직접 봤어요.”

    “네에? 으음…….”

    “아니, 겉모습이 변했다고…?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긴 한데.”

    이주하에게 꽂혔던 시선이 이젠 내게 꽂혔다. 의심 가득한 차수연의 눈동자와 흥미가 가득한 홍시아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저절로 부담감이 쌓였다.

    나를 한참 동안 빤히 살피던 홍시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역시 놀리는 거지? 이 남자가 한이결 능력자라고? 너무… 다르잖아.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도 A급은 절대 아니고.”

    “그게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주하의 배려를 무시하고 아닌 척할 수도 없다.

    망했네. 목덜미를 만지며 이 둘이 믿든 말든 대략적인 설명이라도 해 주려던 그때였다.

    뚜벅, 뚜벅. 구두 굽 소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확 풍기는 피 냄새에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마자 누군가가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당겼다.

    “……!”

    한걸음에 내게 달려온 천사연이 주저하지 않고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것도 잠시, 귓가에 들려오는 천사연의 안도감 어린 한숨 소리에 밀어 내려던 손을 멈췄다.

    내 어깨와 허리를 힘겹게 끌어안은 손이 티가 날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덜미에 닿아 오는 천사연의 이마가 놀랍도록 차가운 것을 알아챈 나는 아플 만큼 강하게 안아 오는 천사연을 차마 타박하지 못하고 그를 마주 안아 줬다.

    “괜찮아.”

    “…….”

    “나 여기 있어.”

    사마엘에게 거래를 제안받고 그에게 갔을 때, 내 손목을 붙잡아 오던 천사연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아팠다.

    여태껏 사마엘과 칼리를 포함한 신도단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던 천사연이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의도치 않게 트라우마를 건드려 버린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천사연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줬다.

    “헉…….”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사연 마스터가 저러는 걸 보면 한이결 능력자가 맞는 거 같기도?”

    “맞다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

    나와 천사연의 갑작스러운 포옹을 코앞에서 관람하게 된 차수연은 기겁했고, 홍시아와 이주하는 묘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꿋꿋하게 울음을 참아 가며 마지막까지 내 곁에 붙어 있던 민아린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진심으로 웃었다. 권정한도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온갖 먼지가 묻어 엉망이 된 안경을 벗었다.

    김우진은 겨우 유지하던 분신을 풀고 내게 비틀거리며 다가왔고, 우서혁은 변신한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박건호는 옆에 있는 길드원을 부축해 주며 생수를 건네줬다.

    “…….”

    그리고 하태헌은… 마지막으로 해치운 몬스터의 시체 앞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 끝을 아래로 내린 채 가만히 서 있는 하태헌에게선 전투가 끝났는데도 차가운 기운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로 나를 응시하는 하태헌의 두 눈동자는 너무나도 어두웠다. 평소와는 다르게 따스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비치지 않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

    이 싸움으로 우리는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정체가 프라우스 신도단에게 모두 탄로 나 버렸다는 것. 한이결에서 권세현으로 변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사마엘의 정신 지배까지 끊어 냈으니, 개입 능력까지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닥터에 이어서 아벨까지, 우리는 권세현의 모습을 목격한 상대를 운 좋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마엘과 아자젤을 놓친 데다 내가 권세현으로 변하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기까지 했으니…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음이 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도록.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야.”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수준인 건 확실했다.

    “잠깐만요, ‘두 가지 모습으로 두 개의 능력을 사용하는 능력자가 등장했다? 무소속자 한이결 능력자를 알아보자.’ 이거… 실제 기사 제목입니까?”

    “예.”

    서류에 첨부된 기사 자료의 제목을 읽고 경악하자 천사연 옆에 서 있던 우서혁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뭔 저딴 내용을 기사로 실어? 제목은 또 왜 이렇게 개판인 건데? 충격에 빠져서 입이 절로 벌어지는 나를 두고 천사연은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었다.

    “나가지 말라고 한 이유를 좀 알겠지?”

    “알았다고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서류를 내려놨다. 아직 다섯 장이나 남았는데, 설마 뒷장도 모조리 저런 자료로 가득한 건 아니겠지? 무서워서 확인을 못 하겠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프라우스 신도단이 내 정체를 알아낸 거라면, 국가적인 큰 문제는 광화문에 갑자기 등장한 몬스터 떼와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국가에서 도움을 청해 오기 전에 알아서 광화문에 길드원을 배치해서 사건 수습에 힘을 쓴 레퀴엠과 로헌, 제이나 길드는 어이없게도 국가에게 경고를 받았다. 몬스터로 인해 벌어진 사건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터무니없는 핑계였다.

    이번 사건은 엄연히 몬스터를 이용한 프라우스 신도단의 테러였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은 레퀴엠과 로헌, 제이나가 지게 됐다.

    그러나 천사연은 그 기막힌 결과에 반발하기는커녕 사건에 휘말려 죽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장례 비용을 부담하는 등, 회복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로헌과 제이나도 광화문 복구에 힘썼다.

    하지만 여전히 길드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거기에 나에 대한 추측이 쏟아지고 불러 대는 곳은 많으니 천사연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금도 일주일 만에 겨우 시간을 내서 만난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하태헌도 바쁠 것이다. 핸드폰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하고 있겠지. 분명 그렇겠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초조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에 답장이 왔는지 살폈다. 지난 일주일간 수십 번은 해 온 행동이었다.

    하태헌 씨

    많이 바쁩니까?

    괜찮으면 잠깐 대화 좀 하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얼굴 보면서요.

    하태헌과 나눈 메시지는 사흘 전에 보낸 내 메시지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메시지 옆에 떠 있는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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