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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57화 (357/394)

357화

90. 격돌

몬스터가 모두 죽고 오로지 능력자들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사마엘과 아자젤의 앞을 막아서며 대열을 갖춘 프라우스 신도단이 저마다 능력을 사용하며 우리와 부딪혔다.

우리 쪽도 인원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기에 나는 최대한 강도를 조절하며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바람을 움직였다.

수십 명의 능력자가 능력을 쏟아부으며 싸우는 사이에서 역시나 제일 눈에 띄는 이는 천사연과 하태헌이었다.

길을 방해하는 능력자의 팔을 순식간에 베어 내고 사마엘과 거리를 좁혀 가는 천사연과 그 뒤를 따르는 하태헌은 그 누구도 쉽사리 막아 내지 못했다. 특히 프라우스 신도단은 닥터와 아벨의 연이은 죽음으로 사마엘 말고는 SS급 능력자가 없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천사연과 하태헌을 본 사마엘이 손을 들어 올려 중지와 엄지를 붙였다.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이 딱 소리를 내며 핑거 스냅을 터뜨리자 근처에서 쌍검을 휘두르던 로헌 길드원 한 명이 움직임을 멈췄다.

따악, 딱, 손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핑거 스냅을 할 때마다 사마엘 주변에 있던 우리 팀 능력자가 몸을 멈칫하더니 같은 편에게 공격을 가해 왔다.

크르릉!

프라우스 신도단의 허리를 짓씹으며 이빨을 피로 물들인 우서혁도 정신 지배를 피해 가진 못했다.

S급이라서 그런지, 머리를 뒤흔들며 정신 지배에 저항하던 우서혁은 이내 제 옆에 있는 박건호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사마엘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박건호는 당황하지 않고 우서혁의 목을 붙잡아 공격을 막아 냈다. 박건호가 버텨 내는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나는 다시 개입 능력을 사용했다.

우리 팀에게 이어진 새하얀 기운의 실이 보였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사마엘의 기운의 실을 망설임 없이 끊어 냈다.

정신 지배가 끊어지면서 생기는 충격으로 여러 명이 쓰러졌고, 그중 일부만이 겨우 버텨 냈다. 우서혁은 거친 숨을 뱉어 내며 기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내가 정신 지배를 끊어 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는지 사마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자신의 능력을 타인이 강제로 없애 버렸으니 그 감각이 분명 사마엘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럼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깨달았겠지.

“몇 번이고 해 봐.”

보란 듯이 미소 지으며 사마엘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있는 한, 당신의 능력으로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을 테니까.”

당당하게 선언했지만, 온몸에 퍼지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차갑게 식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까부터 쉴 틈 없이 흘러나간 한이결의 기운 때문에 심장에서 통증이 퍼져 나갔다. 나도 슬슬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티 나지 않도록 고통을 참았다.

이 자리에 있는 팀원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단순히 길드 내 소속감 때문에 부상에도 버텨 가며 싸우는 게 아니다. 프라우스 신도단을 막고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였다.

광화문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금은 내가 아이템을 모조리 망가뜨렸지만, 이미 한번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후로도 언제든지 아이템을 써서 몬스터를 끌고 올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모조리 붙잡아야 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내리꽂히는 적의 공격을 날렵하게 피한 이주하가 말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의견이었다.

“네. 한 명도 빠짐없이 붙잡아서 끝내야 합니다.”

대답을 하며 몰래 볼 안을 짓씹었다. 기운을 쥐어짜 내느라 심장에서 퍼지는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끝이 떨리고 눈앞이 잠깐씩 흐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프다고, 몸이 한계라고 해도 포기하거나 쓰러질 수는 없다. 지금 여기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마엘이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이결 씨.”

부드럽고 작은 손이 내 왼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살짝 창백한 안색을 한 민아린이 나와 시선을 맞춰 왔다.

민아린은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신도단의 공격을 버텨 내던 아까의 전투에서 다쳤는지 얼굴 한쪽이 붓고 왼쪽 팔이 피에 온통 젖어 있었다.

지금껏 내 뒤에만 있어서 다친 줄도 몰랐다. 그 상태를 하고서 민아린은 싱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요. 제가 있잖아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맞잡은 손을 통해서 기운이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민아린의 어깨 너머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는 권정한이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다친 다리를 끌고 내 곁에 다가온 권정한의 얼굴에서 민아린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씁쓸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걸 보자 죄책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권정한의 잘못이 아니었다. 두 사람을 미처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둘이 저렇게까지 다칠 동안 상황을 저울질하며 본모습을 숨긴 내 문제였다.

목 끝까지 올라온 뜨거운 감정을 겨우 삼켜 내고 다시 앞을 돌아봤다. 민아린이 채워 준 기운을 고마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쏟아 냈다.

내 바람 능력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능숙하게 싸웠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색하게 바람을 받으며 열심히 싸웠다.

프라우스 신도단 측의 숫자도 적지 않아서 먼저 공격한 상황임에도 우리가 우세하진 못했다. 아까의 전투로 이미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고, 부상자도 많은데다 숫자도 비슷하니 승기를 가져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내 바람 능력으로 계속 도와줘야 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천사연이나 하태헌이 신도단의 방어막을 뚫고 사마엘과 아자젤을 붙잡아 줄 거라고 믿으면서.

밑 빠진 독처럼 미친 듯한 속도로 흘러나가는 내 기운을 채워 주는 민아린의 상태도 삽시간에 나빠졌다. 민아린이 기운을 채워 준다 해도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래 버티는 건 어려웠다.

이럴 때면 권세현의 가득한 기운을 한이결의 능력에 쓸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개입 능력이 엄청난 능력이고 많은 도움이 된 건 맞았지만, 자주 사용하는 바람 능력을 한정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했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같은 팀 사람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돕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민아린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그때였다.

“한이결!”

우렁찬 외침이 프라우스 신도단 끝에서 울려 퍼졌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피가 튀기고 능력이 쏟아지는 사이로 낯익은 붉은 머리가 흩날렸다.

“뭐야, 한이결 어디 갔어? 안 보이는데?”

“수연아, 위치 잡아.”

차수연의 뒤로 홍시아도 보였다. 홍시아가 붉은 채찍을 바닥에 내리치며 말했다.

“각자 전투 위치로! 눈앞에 저 사이비 새끼들을 모조리 잡아내!”

“네!”

홍시아의 명령에 제이나 길드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보자 목이 졸렸다가 풀려난 것처럼 숨이 탁 트였다.

“지원군이다!”

“지원군, 제이나 길드 도착했습니다!”

나처럼 제이나를 발견한 레퀴엠과 로헌 길드원들이 반가운 기색으로 소리쳤다. 팽팽하게 주고받던 전투가 지원군의 도착으로 승기가 단번에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반대로 프라우스 신도단은 우리와 지원군 사이에 끼면서 도망칠 수 없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사마엘과 아자젤의 바로 지척까지 도달한 천사연과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나눴다. 제이나 길드가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해 주면서 행운처럼 생겨난 기회였다.

‘지금을 놓쳐선 안 돼.’

이 타이밍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사마엘을 잡아내야 했다. 잡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여기서 놓치는 것만은 절대 안 된다.

“천사연……!”

다른 사람에게 가 있는 바람을 모두 끊어 내고 남은 기운을 모조리 천사연에게로 쏟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강한 바람을 온몸에 휘감은 채로 천사연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렸다.

목표는 단 하나, 사마엘. 천사연의 피가 묻어 있는 검날이 빛을 받아 위협스럽게 번뜩였다. 앞을 막는 방해물들을 베어 내고 녹여 내면서 거리를 좁혀 오는 천사연을 응시하던 사마엘이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새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에 들려진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물건이었다. 리모컨 같기도 하고 신호기 같기도 했다. 그 물건에 박혀 있는 조그마한 전구에서 초록불이 들어와 있었다.

“설마 이거까지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우리도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마엘이 물건의 중앙을 누르자 초록불이 빨간불로 변했다. 이윽고 삐이이익, 귀를 찌르는 소음이 넓게 퍼져 나갔다.

“무슨…? 으윽!”

“앗, 이결 씨!”

쿠구구궁!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땅이 거칠게 흔들리며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민아린을 잡아 주며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겨우 버텼다.

“하, 이번엔 또 뭐야?”

볼에 튄 피를 거칠게 닦아 낸 박건호가 짜증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로 투덜거렸다. 그게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강하게 흔들리던 땅속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불쑥 솟구쳤다.

“이 미친……!”

웬만한 건물보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애벌레 형태의 몬스터였다. 털이 숭숭 돋아난 애벌레 몬스터가 하늘 끝에 닿을 기세로 땅속에서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엄청난 크기를 가진 몬스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근처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나도 급히 민아린과 권정한을 끌어안고 몬스터를 피해서 도망가야 했다.

몬스터가 등장한 것을 확인한 사마엘은 들고 있던 물건을 미련 없이 바닥에 내던져 발로 밟아 망가뜨렸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사마엘의 인사와 함께 아자젤이 검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검은 구슬을 알아챈 천사연이 혀를 차며 달려갔지만 발동되는 이동 아이템을 막아 내지 못했다.

나도 개입 능력을 써 보려고 했지만, 정신없는 틈을 타서 공격을 해 오는 신도단에게서 민아린과 권정한을 지켜내느라 간섭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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