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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56화 (356/394)

356화

[그래.]

[운전해 드릴까요?]

[됐어, 내가 알아서 갈게. 오늘은 가게 일찍 접자.]

거울에 비친 사람은 아까와 다른 남자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이결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등장하기만 해 줘도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

사마엘과 아자젤이 만들어 낸 저 미러 아이템은 한이결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꿈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꿈은 사마엘의 정신 지배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한이결이 사마엘과 칼리의 피가 섞인 액체를 마신 덕분이었다.

[괜찮지. 미안한데 먼저 퇴근할게. 가게 뒷정리 좀 부탁해.]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붙잡아.』

사마엘의 속삭임을 들은 한이결의 머릿속에 변화가 생겼다. 사마엘이 시킨 대로 꿈속의 고동주가 떠나가려는 한이결을 붙잡았다.

[형님.]

[왜.]

『한이결이 맞는지 확인해.』

[형님 성함이 한이결 맞습니까?]

[뭐?]

『책에 한이결이라는 이름이 나오는지도.』

[테이블에 놓인 책에 한이결이 나옵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 몰래 읽기라도 했어?]

책에도 한이결이 나온다라. 가면의 입가를 쓸어 만진 사마엘이 아자젤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녀도 이번에는 추측하기가 쉽지 않은지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한이결의 머릿속에서 나온 저 책이 세계를 잇는 통로라면, 그곳에는 한이결이라는 이름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럼 대체 눈앞에 있는 이 한이결은 누구란 말인가. 책에 나오는 ‘한이결’과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건가?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했다.

『이름을 물어봐.』

[형님 이름이 뭡니까?]

사마엘을 따라서 거울 속 남자가 입을 연 그때였다.

파지직!

파열음과 동시에 거울 표면에 금이 갔다. 아이템을 올려다본 아자젤의 시선이 이내 한이결에게로 향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신이 연결된 상태에서 아이템을 부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잠깐.’

아니면 설마… 아이템이 한이결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는 건가? 고작 A급의 기운을?

한번 정신이 연결되면 아무리 SS급이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한이결이 먹은 건 무려 칼리와 사마엘의 피가 섞인 액체였다. 그걸 거부하고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세계를 관리하는 쌍둥이 형제 말고는 없을 텐데, 어째서…….

『책을 준 놈의 정체를 알아내.』

사마엘도 아이템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을 알아챘는지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그럼 저 책을 준 사람은 누굽니까?]

“……안 돼.”

한이결이 눈썹을 움찔 떨며 중얼거렸다. 미간에 힘이 들어가며 굳게 감겨 있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책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까? 형님에게 저 책을 준 남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쩌저적, 거울이 더욱 갈라지더니 한이결의 몸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빠르게 크기를 키워 나갔다.

[너 뭐야.]

거울 표면에 비친 남자가 멱살이 잡힌 그 순간, 거울 중앙 부분에 깊은 금이 가며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한이결에게서 강한 바람과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콰지직, 콰직!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부서진 미러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뒤에 떠 있던 붉은 보석도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쩌적 갈라졌다.

“으, 으윽!”

“무슨……!”

날카로운 파열음이 나며 미러 아이템과 붉은 보석이 산산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이결에게서 풍기는 기운을 버티지 못한 신도단이 허겁지겁 등을 돌려 도망쳤다.

한이결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던 사마엘이 강렬한 통증에 급히 손을 뗐다. 산발적이고 예리한 바람에 여기저기 베인 손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사마엘 님.”

아자젤이 사마엘의 앞을 막아서며 식은땀을 흘렸다. 한이결과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 내자 그 압박감이 피부로 닿아 왔다.

“아이템이 모조리 부서졌습니다. 일단 여기서…….”

“기다려.”

카각, 한이결의 바람이 사마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가면의 오른쪽 눈 밑이 깨진 것을 느끼며 사마엘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봐, 변하고 있다.”

“……!”

바람에 휘감겨 공중에 떠오른 한이결의 갈색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이 굵어지고 손에 흉터가 뒤덮였다. 온통 새까맣게 변한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이목구비가 좀 더 뚜렷해지고 턱선이 굵어졌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인상의 한이결은 사라지고 건장한 체격의 검은 머리 남자가 나타났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권세현에게 집중됐다. 그 속에서 권세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

의식이 선명해진 순간에 나는 심장에서 나오는 권세현의 기운을 알아채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강하게 느껴지는 거지? 등급 외 능력인 만큼 기운에서 느껴지는 크기나 힘은 SS급인 하태헌보다 훨씬 강했다. 오랜 시간을 반복하며 살아온 천사연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강해졌다. 심장 밖으로 새어 나오는 기운을 도무지 갈무리할 수가 없었다.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

‘보인다.’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개입 능력은 막힘없이 써졌다.

시야가 끝도 없이 넓어졌다. 마치 하늘 높이 날아오른 새처럼 서울 시내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권세현의 개입 능력을 쓸 때마다 겪었던 경험이었다.

그전에는 사마엘이나 아벨의 기운이 뻗어 있는 기운의 실을 찾았다면, 이번에는 다른 게 목적이었다.

몬스터를 계속해서 뱉어 내던 붉은색의 이동 아이템. 저걸 막아야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광화문 거리 곳곳에서 이동 아이템의 기운이 느껴졌다. 개수는 총 7개. 그나마 이주하의 빠른 전달로 발견 즉시 부순 덕분에 7개가 남은 거였다. 원래는 10개가 훌쩍 넘었으니 거기에서 쏟아져나온 몬스터의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이전에 싸울 때 봤던 기운의 실이 이번에는 아이템에서 뻗어 나와 하늘 저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총 7개의 붉은 실은 아마 게이트 내부에 있는 이동 아이템과 이어져 있겠지.

실은 아이템과 게이트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자, 아이템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근원이었다. 저걸 끊어 내면 아이템을 굳이 부수지 않더라도 몬스터를 이동시키던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다.

“하아…….”

차가운 숨이 입술 사이로 퍼졌다. 무너진 둑에서 물이 넘치는 것처럼 심장에서 권세현의 기운이 울컥 솟구쳤다.

기운을 조금 사용한 것만으로도 7개의 실이 아주 쉽게 끊어졌다. 저것도 붉은색인 걸 보면 칼리의 피를 섞어 만든 아이템인 게 확실할 텐데, 끊어 내도 아무런 충격이 오지 않았다.

아벨이 만들어 낸 공간 속에서 칼리의 피가 섞인 정신 지배의 기운을 끊어 냈을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기운 소모도 지금보다 훨씬 컸고, 심장을 내리치는 듯한 강한 충격으로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을 느꼈는데.

물론 지금은 기운의 숫자가 그때보다 훨씬 적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템이 제대로 망가진 것을 확인한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몸의 변화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제대로 알아보는 건 나중 일이었다.

개입 능력을 끄고 바라본 눈앞에는 아자젤과 사마엘, 대열이 흐트러진 프라우스 신도단이 보였다.

“하… 하하! 하하하!”

나와 눈이 마주친 사마엘이 갑자기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굽혀 가며 정신없이 웃던 사마엘이 돌연 천사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발, 천사연! 이런 걸 여태 숨기고 있었던 거야?”

자신들이 준비한 아이템과 계획이 모두 무너졌는데도 사마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힘이면 등급 외 능력자잖아? 그래, 그러니까 내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은거군.”

“…….”

“어때, 한이결. 우리 쪽에 붙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탐났는데, 설마 이런 재밌는 모습까지 숨겼을 줄은 몰랐어.”

예상을 뛰어넘는 뻔뻔한 제안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내 과거 기억을 자기 멋대로 주무른 주제에, 뭐?

“한번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피로 물든 찢어진 장갑을 벗어 낸 사마엘이 신도단에게 새 장갑을 건네받아 끼며 말을 이었다.

“네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건 다 얻어 냈으니 이젠 살릴 필요 없거든.”

“잘됐네.”

머리가 차갑게 식고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 나는 거리낌 없이 후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나도 머리 아픈 고민을 더 할 필요가 없어져서 반가운 참이었으니까.”

내 본모습과 능력을 숨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어느 게 좋은 선택일지 갈등하고, 결국 사람의 목숨과 미래를 저울질하게 됐다.

“나를 살릴 필요가 없다고?”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훨씬 더 편했다. 이왕 들킨 거, 닥터와 아벨과 싸웠던 것처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천제헌.”

일부러 사마엘이 아닌 본명을 언급하자 새 장갑을 낀 사마엘의 손끝이 한순간 움찔 떨렸다.

“이제 끝을 보자.”

땅에 발을 딛자마자 손을 휘둘렀다. 내 몸을 휘감고 있던 강한 바람이 파도처럼 정면을 덮쳤다.

동시에 내 뒤에서 익숙한 기운이 확 풍겼다. 그걸 느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 신호를 바로 알아들을 거라고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다.

중앙에 나를 두고 양옆으로 천사연과 하태헌이 빠르게 뛰어나갔다. 그 뒤를 거대한 늑대로 변한 우서혁과 박건호, 김우진이 따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주하와 앨리스, 살아남은 로헌과 레퀴엠 길드원들이 프라우스 신도단과 격돌하는 것을 보며 그들을 향해 바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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