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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52화 (352/394)

352화

“이런 미친, 지원 요청! 동상 앞쪽 지원, 아아악!”

“도, 도망쳐!”

프라우스 신도단이 이동 아이템으로 만들어 낸 입구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길드원들이 순식간에 나타난 몬스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뒤로 와! 이쪽으로 빠져!”

이주하가 급히 총을 쏘며 길드원들을 대피시켰다. 나 또한 사람들이 더 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바람을 끌어 올리려던 그때였다.

쿠웅!

“으윽……!”

어딘가에서 날아온 물체가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간 내 몸을 하태헌이 가까스로 잡아 줬다.

사마엘 뒤에 있던 수십 명의 프라우스 신도단이 공격을 해 온 것이다. 정신없이 밀려오는 몬스터에 신도단 공격까지 받아 낸 우리의 주변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천사연!”

모두가 도망치는 와중에서 천사연만이 홀로 프라우스 신도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비틀거리는 나를 박건호에게 맡긴 하태헌 또한 SS급 검을 들고 황급히 천사연의 뒤를 쫓았다.

“이결 씨, 피가……!”

“지금은 허억, 안 됩니다.”

오른쪽 눈가가 축축했다. 아무래도 방금 폭발로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민아린을 뒤로 보내며 시야를 방해하는 피를 대충 닦아 내고 바람을 끌어 올렸다.

내 바람을 받은 천사연과 하태헌이 몬스터를 베어 내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천사연의 몸에서 시작된 불꽃과 하태헌에게로 몰려드는 검은 먼지가 대비를 이뤘다.

‘너무 많아.’

하지만 프라우스 신도단이 가려질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몬스터의 숫자와 빗발치는 공격 때문에 SS급인 둘마저도 뚫고 나아가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지금 이때에도 보석으로 열린 입구에서는 여전히 몬스터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보석들이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을 보면 저걸 깨부숴야 입구도 사라질 것 같았다.

“큭, 지원은? 지원팀은 어떻게 된 거지?”

입을 쩍 벌리고 펄쩍 뛰어오른 몬스터의 머리에 정확히 총알을 박아 넣어 터뜨린 이주하가 외치자 그녀 곁에서 힘겹게 싸우던 로헌 길드원이 참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 올 수 없다고 합니다.”

“뭐?”

“클리어가 완료된 구역에서 다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화문 일대를 모두 재점검하고 있어서, 여기 보낼 인력이 없, 크헉!”

보고하던 직원이 하늘에서 내려온 몬스터의 발톱에 어깨를 찔렸다.

독수리 발톱처럼 생긴 몬스터 발톱에 양어깨를 꿰뚫린 길드원이 그대로 끌려갈 뻔한 것을 앨리스가 재빨리 날아와 총을 쏴서 구해 줬다.

그걸 기점으로 하늘을 가득 채운 비행형 몬스터들이 미사일처럼 아래로 내려와 우리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마어마한 몬스터 숫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비행 몬스터의 공격까지 받게 되자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했다.

“으, 으악! 끄아악!”

“히이익, 저, 저리 가…! 저리 가!”

“시발! 도망가지 말고 싸워! 싸워야 살 수 있다고!”

인력이 부족해서 길드 소속 능력자가 모두 모인 만큼 어수룩한 사람들과 경력자들이 한데 뒤섞여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한이결, 일단 빠져.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해.”

몬스터와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 박건호가 나를 잡아끌었다.

“자, 잠깐만요. 아직 두 사람이…….”

지금 상황이 우리에게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안다. 이러다 자칫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죽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앞장서서 싸우고 있는 천사연과 하태헌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지금 여기서 둘에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이결!”

최대한 빨리 둘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내 몸에 바람을 휘감자마자 기운을 감지했는지 허공을 날아다니던 비행 몬스터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하강했다.

몬스터가 순식간에 코앞까지 거리를 좁히자 박건호가 나를 품에 안았다. 동시에 짐승 울음소리가 천둥같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늑대로 변한 우서혁이 몬스터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러자 단체 행동하는 놈들인지, 똑같이 생긴 몬스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우서혁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우서혁이 몬스터들보다 등급도 체격도 훨씬 더 컸지만 열 마리가 동시에 공격해 오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혀를 찬 박건호가 쇠구슬을 들었지만 몬스터와 우서혁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능력을 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민아린과 권정한을 지키던 김우진이 분신을 보냈다.

우서혁을 돕다가 몬스터 발톱에 복부가 뜯겨 사라지는 김우진의 분신 뒤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에 누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들이 슬로 영상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귀에 들려오는 소리까지 물에 잠긴 것처럼 희미해졌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것은 뒤엉켜 있는 몬스터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가면이었다.

내가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사마엘이 손을 들어 올리자 입구가 사라졌다. 공중에 떠 있던 보석 속에서 반짝이던 빛도 사라졌다.

깨진 둑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끝도 없이 나오던 몬스터가 뚝 끊기자 주변을 가득 메웠던 비명이 조금 잦아들었다. 쉴 틈 없이 검을 휘두르던 천사연과 하태헌도 상황이 변한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흠, 생각보다 너무 지루해서 잠이 올 지경이야.”

사마엘이 매고 있는 흰 넥타이가 바람결에 흔들거렸다. 나는 허탈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주변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몬스터에게 죽어 버린 일반인 시체 위로 지원 나온 능력자들의 시체가 뒤덮였다.

바닥을 적신 붉은 피를 응시하며 나는 이전에도 몇 번이고 했던 번민에 다시 빠졌다.

‘내가… 나섰어야 했나.’

프라우스 신도단, 특히 사마엘에게 내 본래 모습이 들키더라도 권세현으로 변해서 능력을 썼어야 했던 걸까. 개입 능력이 저 아이템에도 통할지는 모르지만, 시도 정도는 해 봤어야 했던 걸까.

권세현으로 새 능력을 얻게 된 이후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항상 하던 갈등이고 번민이었다. 나는 팀을 포함한 사람들의 목숨과 내 능력의 중요성을 저울에 올려 두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죄책감은 커다란 짐이 되어서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다. 무의식적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한이결.”

그런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사마엘이 나를 불렀다.

“나하고 거래 하나 할까?”

“……뭐?”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 주면 여기 있는 이동 아이템을 모두 넘겨주도록 하지.”

“…….”

“부숴도 좋고, 써먹어도 좋고. 마음대로 해. 너만 내 말을 잘 따라 주면 이동 아이템을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을 거다.”

이어지는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사마엘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내게 말을 걸었던 것도 다 계획된 거였다. 나를 끌어내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있다.

“어떻게 할 거지?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아.”

내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마엘은 여유가 가득했다. 이성을 다잡기 위해 뻐근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부상을 입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계까지 싸운 이주하와 앨리스, 바닥에 깔린 시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태에서 다시 아이템이 가동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방법이 없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싸움은 우리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뭐든 받아들여야 했다. 썩은 동아줄이라 하더라도.

팀원들에게 보냈던 바람을 갈무리하고 능력 사용을 멈췄다. 그리고 사마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 안 돼요. 이결 씨!”

“한이결…!”

민아린과 김우진이 부름이 내 발목을 잡아 왔다. 그걸 애써 외면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 우서혁과 박건호를 지나쳐 계속해서 걸었다. 멀리 보였던 사마엘 모습이 점차 가까워졌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섬뜩한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사마엘이 과연 내게 어떤 요구를 해 올 것인지, 그걸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몬스터 시체와 뿌연 연기를 헤치고 나오자 동상 앞에 사마엘과 수십 명의 프라우스 신도단이 서 있었다. 저 앞으로 혼자 가야 했다. 시야에 가득 찬 새하얀 가면과 검은 가면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다.

“이결아.”

천사연과 하태헌의 사이를 지나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차가운 체온이 내 손목을 붙잡아 왔다.

“가지 마.”

천사연이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손목을 붙잡은 천사연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가지 마…….”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나는 그 말 한 번에 버티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글픈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천사연과 사마엘 사이에서 지금껏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서 더 착잡했다. 천사연을 두고 사마엘에게 가야만 하는 이 상황 또한 너무나도 비참했다.

“…괜찮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이것뿐이었다. 손목을 잡고 있는 천사연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 냈다. 그 간단한 거절에도 천사연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천사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마엘 앞에 멈춰 서자 방금 들었던 천사연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흰 가면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똑똑하네, 한이결.”

천사연을 의식해서 일부러 내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쓰는 사마엘의 행동에 소름이 끼쳤다. 새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이 느리게 다가왔다.

“윽……!”

뺨을 쓰다듬었던 손이 그대로 위로 올라가 단번에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따가운 통증에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아 냈다.

머리채를 잡아서 나를 억지로 무릎 꿇린 사마엘이 즐거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거래를 해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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