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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46화 (346/394)

346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우서혁에게 붙잡힌 채로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창문 밖에서 내게 손을 내밀었던 앨리스 또한 놀란 눈으로 우서혁을 바라봤다.

“…위험합니다.”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숙인 우서혁이 거친 목소리로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앨리스 부마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요구는 자제해 주십시오.”

“아, 아니. 전 괜찮…….”

“한이결 씨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으신 거면 옥상 정원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흠…….”

묘한 표정으로 우서혁을 보던 앨리스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창틀에 걸터앉으며 싱긋 웃었다.

“우서혁 비서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이결 능력자와 훠얼씬 친한가 봐요?”

‘훨씬’에 강조를 주는 앨리스의 말에 우서혁의 굵은 눈썹이 움찔 떨렸다.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앨리스와 굳어 있는 우서혁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날카롭게 부딪쳤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사이에 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응접실 문 앞에 서 있는 앨리스의 비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서워라, 지금 저 노려보는 거예요? 등급도 높은 늑대가 연약한 백조한테 이러니까 너무 겁나네요.”

우서혁의 차가운 눈길을 여유롭게 받아 내던 앨리스가 본인의 양 팔뚝을 쓸어 만지며 상처받은 척 가증스러운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이결 능력자는 괜찮다는데 왜 우서혁 비서가 나서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막 험악하게 노려보기까지 하면서.”

“저는 지금 한이결 씨를 보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무리한 요구는 제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 한이결 능력자는 무소속인 줄 알았는데… 레퀴엠에서 S급 보호자도 붙여 주고. 듣던 대로 한이결 능력자가 천사연 마스터랑 아주, 각별한, 사이인가 보네요?”

앨리스가 리듬을 타며 비꼬듯 질문하자 우서혁의 미간 사이에 그림자가 짙게 졌다. 험악해진 응접실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내 신세야…….’

얌전한 우서혁이 앨리스랑 싸울 줄이야. 생각해 보면 우서혁은 박건호와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 비슷한 계열의 사람들하고는 다 상극은 건가?

“두 분 그만하세요.”

설마 이 둘을 상대로 이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천사연이랑 하태헌이 으르렁거릴 때마다 말리는 것도 피곤한데, 이젠 이 둘도 문제라니.

“앨리스 부마스터, 제 능력을 자세히 확인하고 싶으시면 우서혁 씨가 제안한 대로 길드 옥상 정원이 훨씬 더 나아 보입니다. 괜찮으시면 자리를 이동할까요?”

“흠… 좋아요. 어차피 우서혁 비서가 저렇게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서 여기서는 더 뭐 하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내 부탁에 앨리스가 순순히 창틀에서 일어섰다. 급한 대로 상황이 일단락돼서 안도의 숨을 내쉰 그때였다.

“응?”

얼굴을 번쩍 든 앨리스가 갑자기 창문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동시에 우서혁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잠깐, 뭔가 이상해요. 이건…….”

다시 창문에 다가선 앨리스가 접고 있던 날개 끝을 파르륵 떨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어딘가를 집요하게 노려보던 그녀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창틀을 밟고 올라섰다.

“제가 잘못 느낀 게 아니에요. 저쪽에서 분명…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져요.”

“예?”

“바로 가 봐야겠어요. 테오!”

앨리스의 외침에 묵묵히 서 있던 테오가 눈을 깜빡였다.

“혹시 모르니까 나 대신 여기 남아 있어. 알겠지?”

“예.”

명령을 들은 테오가 대답하자마자 앨리스가 미련 없이 큰 날개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아올랐다.

빠르게 멀어지는 앨리스를 바라보다가 급히 우서혁에게 물었다.

“몬스터라니… 정말입니까, 우서혁 씨?”

“희미하지만 느껴집니다.”

A급인 나를 제외한 우서혁과 앨리스가 느꼈다면 거리가 제법 있는 건가? 아무리 거리가 있다고 해도 여긴 강남 한복판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몰려왔다.

“우서혁 씨, 우리도 가 봐요.”

안 되겠다. 앨리스를 뒤따라가서 몬스터의 기운이 어디에서 느껴지는 건지 직접 알아봐야겠다.

창틀을 밟고 올라서서 우서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앨리스와 달리 사람 한 명쯤은 쉽게 안고 갈 수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몬스터의 위치를 알아내려면 우서혁이 필요했다.

“…….”

우서혁이 내 손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앨리스를 노려볼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우서혁 씨?”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부름에 정신을 차린 우서혁이 느릿한 몸짓으로 내 손을 맞잡았다. 내 손보다 훨씬 커다란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바람을 몸에 휘감았다.

우서혁과 단둘이 있을 때 능력을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체로 손을 잡고 이동했던 경험만 있는 우서혁은 어딘가 뻣뻣한 상태로 내게 몸을 기대 왔다.

“제 어깨를 한쪽 팔로 안으시면 좀 편할 거예요.”

설명을 덧붙이자 우서혁이 머뭇거리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 또한 가까이 붙어 선 우서혁의 허리를 끌어안고 바람의 강도를 높였다.

앨리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곧장 날아가자 사람들의 비명과 자동차 경적이 시끄럽게 들려왔다. 올림픽대로 앞,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사이로 찌그러진 자동차와 도망치는 사람이 보였다.

크르르륵!

“으, 으아아악…!”

가로등만 한 크기의 거대한 지네가 곳곳에서 바닥을 뚫고 튀어나와 사람들을 덮치려고 했다. 급히 높이를 낮춘 나는 우서혁을 놔주었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착지한 우서혁이 순식간에 양팔을 변화시켜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은 발톱에 몸이 꿰뚫린 몬스터가 짙은 초록색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나도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몬스터의 머리와 몸통을 바람으로 뜯어내서 분리했다.

‘B급 정도인가?’

쿠웅! 죽은 몬스터의 몸에서 흘러나온 초록색 피가 바닥에 퍼지자 치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단순한 피가 아닌 산성이 포함된 액체인 모양이다.

“한이결 능력자.”

우리 기운을 느꼈는지, 옆 건물에서 앨리스가 날아왔다. 그녀 손에는 아까는 보지 못했던 총이 들려 있었다. 저건… 혹시 산탄총인가?

‘천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면서 무기는 샷건을 사용한다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법 멋있게 느껴졌다.

“건물 뒤쪽은 모두 처리했어요. 남은 게 몇 마리인진 자세히 모르겠지만요.”

“대충 눈에 보는 것만 세 봐도 숫자가 꽤 되는군요.”

앞을 가리는 자욱한 연기를 바람으로 치워 내자 도로에 가득 찬 지네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비명도 여전했다.

‘대체 어디서 기어 나온 놈들이지?’

이 주변에 있는 게이트에서 폭주라도 일어난 건가? 하지만…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뭐 알고 있는 거 있나요?”

앨리스가 묻는 말에 손톱에 묻은 피를 털어 낸 우서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근처에 존재하는 게이트에서 폭주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은 게 없습니다.”

“그럼 몬스터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죠?”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쿠구궁, 바닥이 짧게 울리며 여기저기에서 지네가 튀어나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냈다. 다행인 건 모조리 B급이라 우리끼리 처리하는 게 가능했지만…….

“저놈들 몸에서 흐르는 피가 심상치 않아 보이네요.”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등급이 더 높아서 괜찮지만, 일반인도 많은 이곳에 피가 마구잡이로 뿌려졌다간 2차 피해가 생길 위험이 컸다. 몬스터들이 흘리는 피가 바닥을 녹일 정도로 강한 산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조심하는 게 맞았다.

‘하필 이럴 때…….’

신체 부위를 변화시켜서 싸우는 우서혁과 총을 쓰는 앨리스가 몬스터의 피가 퍼지지 않도록 전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바람으로 피가 멀리 퍼지지 않도록 서포트해 주면 되겠지만, 그럼 전투에 끼기가 쉽지 않다.

망가진 자동차에 깔린 채로 살려 달라고 소리치거나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몬스터만큼이나 많았다. 어떻게 해야 몬스터를 처리하고 저들을 구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한이결 씨!”

“……!”

내가 딛고 서 있는 바닥이 작게 흔들리더니 눈앞에서 몬스터가 불쑥 솟구쳤다. 우서혁이 나를 껴안은 동시에 뜨거운 불길이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윽, 무슨…….”

“한이결?”

불에 바싹 타오른 몬스터가 아래로 쓰러지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마주한 나도 놀라서 입을 열었다.

“차수연 씨?”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아, 그러고 보니 레퀴엠 길드도 이 근처였지?”

몬스터 시체를 밟으며 내게 걸어온 차수연이 주변을 가볍게 둘러봤다.

“인터뷰 끝내고 길드로 돌아가는 길에 시끄러워서 와 봤더니 이 지경이잖아. 너도 그래서 온 거야?”

“네. 차수연 씨뿐만 아니라…….”

저 멀리서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익숙한 차가 가까운 곳에서 멈추어 섰다.

“다른 분들도 소식을 듣고 온 것 같습니다.”

차 문이 열리고 천사연이 싸늘한 표정으로 내렸다. 이어서 그 옆에 멈춰 선 두 번째 차에서는 하태헌이 내렸다. 둘 다 곧장 내게로 걸어왔다.

“……?”

몬스터의 피가 퍼지지 않도록 상대할 수 있는 차수연과 천사연이 와 줘서 반가운 마음이 든 것도 잠시였다. 천사연과 하태헌에게서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한이결.”

인벤토리에서 S급 검을 꺼내 든 천사연이 내 곁에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우서혁 뒤로 가 있어. 얼굴 내밀지 마.”

“…뭡니까?”

“조용히.”

천사연과 하태헌이 어깨를 맞대고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쁜 예감이 몰려와 고개를 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연기 너머로 드러난 하늘에서 우리를 카메라로 찍고 있는 헬기가 보였다.

얼떨결에 우리 곁에 붙어 선 차수연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눈가를 좁힌 채로 한마디 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러게요.”

근래 들어서 기분이 가장 저조해 보이는 천사연이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그었다. 새빨간 피가 흩뿌려지면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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