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거실로 돌아오자 팀원들은 저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건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알아낸 김경욱에 대해서 더 조사해 본다고 해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
“프라우스 신도단과의 연결점만 확실해졌을 뿐이네요.”
박건호의 한탄에 민아린이 침울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트북을 정리한 우서혁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게이트 뒷거래 현장을 잡아내는 방법이 아니면 프라우스 신도단을 직접적으로 막는 건 힘들어 보입니다.”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실상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 많은 게이트를 일일이 알아볼 수는 없으니까요.”
“김경욱에 대한 정보를 들어오면 표적이 되었던 게이트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겠습니다.”
모두가 한마디씩 주고받는 와중에도 천사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턱을 괸 채로 꺼진 TV만 응시하는 모습이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이걸 어떡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긴, 하태헌이 눈치챌 정도였으니…….’
나중에 시간 내서 대표실로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바로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 일단 천사연을 제외한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해 상황을 정리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하태헌 씨가 오늘 내로 자료 보내 줄 겁니다. 그거 보고 문제가 있으면 내일 다시 모입시다.”
“그게 낫겠군.”
“이결 씨. 곧 저녁 식사 시간인데 다 같이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을까요?”
“맞아요. 이왕 모인 거 회의 끝났다고 그냥 흩어지기엔 아쉽잖아요.”
“아뇨, 저는…….”
민아린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다가 딱히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서 순순히 털어놓았다.
“천사연 마스터와 따로 시간 좀 갖겠습니다.”
“……!”
내 말을 들은 민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민아린뿐만 아니라 뒤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중에는 천사연도 있었다.
대체 이 반응은 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게 그렇게 놀랄 말입니까?”
“음, 어, 조금요?”
“그냥 대화 좀 하려는 겁니다.”
“그럼 다 나가 있어야 해…?”
“당연히… 아니, 일단 여긴 내 방인데.”
“들어온 지 1시간도 안 된 거 같은데. 대화 좀 하겠다고 나가라니… 너무하네.”
“두 분이 침실로 들어가셔서 대화하면 안 돼요? 아니면 형, 우리가 침실로 들어가서 기다릴게요.”
“제발 다 나가세요.”
누구 한 명이랑 대화 한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미련 가득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김우진과 박건호부터 현관문 밖으로 내쫓았다.
“이것 참 미안하군. 우리 이결이가 나랑만 저녁 식사하고 싶나 봐.”
가뜩이나 저녁 식사 같이하자고 들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려서 미안해 죽겠는데, 내쫓기는 팀원들을 천사연이 약 올리기 시작했다.
“좀 조용히 하세요.”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이럴 때면 꼭 한마디씩 얹는다니까.
“하, 한이결. 내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연락해. 알겠지?”
“이결 씨, 맛있는 거 사 올게요. 이따 봐요!”
안 나가려고 버티는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서 처리하고 뒤를 돌아보자 팔짱을 낀 채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천사연이 보였다.
‘미친, 재수 없어.’
재밌어 죽겠다는 것처럼 살짝 올라간 입매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몰려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히 우울해 보였는데? 사실 하태헌과 내가 오해를 한 건 아닐까? 천사연 저 새끼는 그저 꺼진 TV 화면을 보면서 멍하니 딴생각을 했을 뿐인데, 나랑 하태헌이 지레짐작으로 오해한 거 아니냐고.
“…….”
“…….”
닫힌 현관문 앞에 서서 천사연을 한참 노려봤다. 녀석 또한 웃는 낯을 하고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쫓아내자.
“너도 나가.”
“대화하자고 하지 않았나?”
“대화할 필요 없어진 것 같아.”
“장난 그만 치고 빨리 들어오도록.”
“…….”
실소를 흘린 천사연이 먼저 등을 돌려 거실로 돌아갔다.
누구보고 장난이래, 완전 진심인데. 기가 막히다 못해 억울할 지경이다.
떨떠름한 상태로 거실로 돌아가자 천사연이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은 채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걸 무시하고 오른편 소파에 앉았다.
대표실 소파에서 천사연이 내게 했던 파렴치한 행동을 난 아직 잊지 않았다. 저 양심 없는 놈. 옆자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앉지 않을 거다.
옆자리를 피하는 나를 잠시 묘한 눈빛으로 보던 천사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하려는 얘기가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천사연에게 재차 물었다.
“뭐가 문제야?”
“문제? 내가?”
“영상 보는 내내 표정이 안 좋았잖아. 끝나고 나서는 더 안 좋았고.”
제대로 따지면 게이트 뒷거래 사건이 프라우스 신도단의 소행이라는 게 확실해진 직후지만.
제법 정확히 짚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천사연은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아니라고?”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난 그저 영상에 찍힌 놈들과 프라우스 신도단의 연관성을 생각했을 뿐이라.”
예상과 다른 대답에 눈가가 절로 좁아졌다. 내가 먼저 물어보면 솔직하게는 힘들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줄 알았더니…….
‘아닌 척 시치미를 떼겠다는 건가?’
속으로 혀를 차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천사연이 웬만한 말로는 절대 넘어오지 않을 놈이라서 더 머리 아팠다.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 본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구경하던 천사연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옆으로 가 봐.”
“……?”
천사연의 다리를 툭툭 쳐서 소파 가장자리로 보냈다. 소파 구석에 밀어 넣고 그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힘으로는 녀석을 절대 이길 수 없으니 심리적인 압박감이라도 줘야겠다.
어마어마하게 좁아진 자리에 다소 불편한 자세가 된 천사연이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자, 다시 대답해 봐. 내가 정말 오해한 거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던 천사연이 이내 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번처럼 키스할 속셈으로 슬슬 달라붙어 오는 천사연의 입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기다려. 이러려고 옆에 앉은 거 아니야.”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천사연, 잘 들어.”
한숨을 삼켜 내며 입을 가로막았던 손으로 천사연의 뺨을 붙잡았다.
“나는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너 붙잡은 거야.”
가까운 거리에서 보이는 천사연의 눈이 놀란 듯 살짝 커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아까 회의할 때 정말로 아무 문제 없었어? 다 내 착각이야?”
“…….”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억지로 쓰고 있던 가면이 없어지고 드러난 표정은 무척이나 씁쓸해 보였다.
“…쓸데없이 눈치가 참 빨라.”
불만이 담긴 중얼거림에 나 또한 쓰게 미소 지었다.
“나만 눈치챈 줄 알아? 하태헌 씨가 먼저 너 챙겨 주라고 한마디 하고 갔어.”
“이런.”
설마 하태헌도 알아챘을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찌푸린 천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실수한 거군.”
“그걸 왜 실수라고 표현해.”
나 또한 자연스럽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불안해하는 마음을 들킨 것을 ‘실수’라고 정의하는 천사연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속상해졌다.
“이젠 숨기지 않아도 되잖아. 적어도 나한테는.”
단순히 천사연이 겪은 과거를 알아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책을 보고 나서 천사연과 단둘이 대화를 나눴던 그때, 나는 천사연과 그 어떤 때보다 깊이 교감했다고 느꼈다.
남에게 쉽사리 보여 줄 수 없는 치부도 서로라면 보여 줄 수 있다고 여겼다.
“그것도… 내가 혼자 착각한 거냐?”
그만큼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았고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게까지 숨기려고 하는 천사연의 태도가 솔직히 섭섭했다.
차분하게 묻는 목소리에서 미처 없애지 못한 서운함 묻어났다. 천사연도 그걸 느꼈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만들어 낸 그림자에 검은 눈동자가 가려졌다.
“나는…….”
한참을 침묵한 끝에 천사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어.”
“…….”
“설명하지 못할 일로 힘들어해 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으니까.”
천사연은 시간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 프라우스 신도단과 충돌하면서 생긴 고통스러운 기억은 공유할 사람 없이 오직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다.
“내가 나쁜 버릇이 들은 거야.”
천사연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내 손에 제 얼굴을 기댔다.
“네가 착각한 게 아니야, 이결아.”
그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진심을 털어놓은 천사연은 눈을 깜빡이는 간단한 행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지쳐 보였다.
나는 천사연에게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어느 게 제일 두려워?”
“……다.”
천사연의 상체가 천천히 기울었다. 내 어깨에 제 이마를 기댄 그가 낮고 거칠게 속삭였다.
“모든 걸 다 잃을 것 같아서 두려워.”
“…….”
서글픈 감정이 목 끝까지 울컥 치솟았다. 그걸 힘겹게 삼켜 내며 천사연의 등을 끌어안았다.
모두와 함께해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두려웠다.
이 완벽하지 못한 행복이 어느 한순간에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보잘것없는 내 힘으로는 지켜 낼 수도, 되돌려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무척이나 불안정했다. 당장 칼리가 천사연의 시간을 돌리면 모든 게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한이결의 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죽을 거고, 천사연은 무너져 가는 세계를 혼자서 마주하겠지. 절망에 이성과 감정이 모조리 잡아먹힌 채로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함께 떠들고 웃는 와중에도 천사연은 혼자서 시도 때도 없이 그 지옥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미 수십, 수백 번 시간이 돌아간 천사연에게 그 미래는 허황된 상상이 아닌 당장 내일이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현실이었다.
“괜찮아.”
하태헌은 내게 천사연을 위로해 주라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어떤 게 좋은 위로고 도움이 되는 말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대신 맹세했다.
“괜찮아질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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