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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42화 (342/394)

342화

훈련실을 나왔을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권정한이 혼자서 상대하기를 원하니 그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굳게 닫혀 있던 훈련실 문이 열렸다. 혹시 모르는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자리를 비우지 않았던 나는 복도로 나오는 권정한을 살폈다.

“문제없었어?”

“그럼요.”

미소 띤 낯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네.

권정한의 능력이 대단하다 해도 상대는 5명인 데다 B급도 있어서 염려스럽던 참이었다.

훈련실 안으로 들어가자 묶인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아까와 별반 차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깨어 있었다. 우리가 들어와도 아무런 반응 없이 누운 채로 눈만 깜빡였다.

“저대로 둬도 되는 거야?”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은 조금…….”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고민하던 권정한이 곧 말을 이었다.

“감정을 많이 건드려 놔서 저러는 거예요. 상반되는 감정을 반복해서 느끼도록 능력을 계속 썼거든요.”

그제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다섯 명의 상태가 이해됐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폐인과도 같았다.

‘무섭긴 하네.’

권정한이 같은 편으로서 능력을 보일 때마다 큰 도움이 되는 건 맞았지만, 반대로 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오싹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다섯 명과 달리 멀쩡한 얼굴로 내 곁에 서 있는 권정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능력 부작용은? 너도 타격을 똑같이 받잖아.”

권정한은 능력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 데미지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의 감정을 건드린 권정한이 그 대가를 얼마만큼 돌려받았을지 염려스러웠다.

“네? 아아…….”

입가를 쓸어 만진 권정한이 머쓱하게 웃었다.

“멀쩡한 건 아니긴 한데… 심하진 않아요. 저 사람들은 저보다 등급이 낮고, 전 나름 훈련도 했으니까.”

“훈련이라면 감정 조절 훈련인가? 효과가 있어?”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질문의 대답은 한걸음 물러서 있던 우서혁에게서 나왔다.

“정신계 능력자에게 있어서 훈련은 필수입니다. 권정한 경호를 포함한 대부분의 정신계 능력자는 부작용이 심하니, 훈련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물리계 능력자들이 하는 훈련과는 많이 다른가 보네요.”

“예. 훈련실부터 훈련에 참여하는 담당자까지 모두 다릅니다. 정신계 훈련은 전문 기기와 전문의가 무조건 함께합니다. 상황에 따라 도움이 되는 아이템도 사용합니다.”

잠시간 권정한을 응시하던 우서혁이 덧붙여 말했다.

“권정한 경호는 일을 맡은 이후부터 훈련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여했습니다. 그러니 능력 활용에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능숙할 겁니다.”

“너무 띄워 주시는데요?”

아닌 척 자신을 칭찬하는 우서혁에게 권정한이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살짝 달아오른 권정한의 귀가 보였다. 무뚝뚝한 우서혁이 제 노력을 알아줘서 제법 기쁜 모양이다.

우서혁의 설명을 듣자 얼마 전에 권정한과 대화를 나눴던 순간이 떠올랐다.

-저는 형과 민아린 힐러님의 마지막 방패에요.

이미 각오를 마쳤던 권정한에게 차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씁쓸했었지. 아무리 그가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해도 우리 중에서 가장 어린 막내였다.

내 경호를 맡은 직후부터면 벌써 시간이 꽤 지난 일인데… 우리에게 티 내지 않고 뒤에서 얼마나 노력을 해 온 걸까. 진작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앞으로는 위험한 일이 없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가슴 한쪽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권정한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고생했어. 덕분에 정보를 쉽게 얻었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자 묘한 눈빛으로 날 보던 권정한도 이내 나랑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뭘요. 형 부탁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다섯 명의 상태를 확인한 하태헌이 입을 열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할 거지?”

“길드 관리 본부에 넘길 겁니다. 관리 본부는 게이트 뒷거래에 관심이 없으니 다른 이유를 내세워야겠죠.”

우서혁이 들고 있던 서류를 하태헌에게 넘겨줬다. 서류에는 다섯 명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 내역이 정리되어 있었다.

“본래는 범죄 이력을 만들어서 넘기려고 했습니다만, 찾아보니 굳이 그럴 필요 없더군요. 이 정도면 길드 관리 본부에서 잘 관리해 줄 겁니다.”

사람의 기억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고 저들을 이대로 풀어 줄 수도 없으니 가장 좋은 판단이었다. 이런 부분까지 미리 준비해 둔 우서혁의 실력에 감탄만 나왔다.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우서혁 씨.”

“예. 먼저 올라가 계십시오. 훈련실 CCTV 원본 영상을 가지고 뒤따라가겠습니다.”

***

미리 얘기했던 대로 23층 방에 모두 모인 우리는 노트북과 연결된 TV 화면으로 훈련실 CCTV를 시청했다.

CCTV 영상에 등장한 다섯 명은 권정한에게 감정을 심하게 조절당한 상태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힘겹게 대답을 뱉어 냈다.

[의뢰한… 놈들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야.]

[트래퍼가… 모여 있는 곳에 아이템을 떨어트리라고…….]

[시발, 우리도 목숨 걸고 한 거라고!]

영상 속 권정한이 입을 열었다.

[무슨 아이템입니까?]

[모르겠어… 부, 붉은색…….]

[붉은색의 보석같이 생긴…….]

붉은색 보석이라. 나와 같은 것을 떠올린 민아린이 말했다.

“칼리의 피로 만들어진 아이템일지도 모르겠네요.”

“예. 다른 색이라면 모르겠지만 붉은색이라서 더 의심이 가네요.”

확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니 영상을 좀 더 지켜봤다.

[누가 의뢰했죠?]

[의뢰한 당사자는… 만난 적 없어.]

[마, 맞아. 다른 놈이 대신 전달해 준 거야.]

[우리랑 같이 다니다가 손을 털겠답시고 빠져나간 새끼가 한 명 있어. 그놈이 갑자기 와서 돈 될 만한 일이 하나 있다고…….]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고개를 숙인 채로 한참을 침묵하던 남자가 겨우 대답했다.

[김경욱… C급 능력자야.]

[다른 특이 사항 더 없습니까?]

[트, 특이 사항? 안경을 끼고… 입가에 큰 점이 있어. 그거 말고는 몰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하태헌과 시선을 나눴다.

김경욱이라는 이름은 얼마 전에 본 적 있었다. 나와 하태헌이 직접 만났던 박병석과 마찬가지로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활동하다가 운 좋게 풀려난 이들 중 하나였다.

물론 이름만 같은 동명인일 수도 있지만, C급에다가 안경을 끼고 입가에 점이 있는 것까지 완벽하게 일치했으니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연결 고리가 이어지는군요. 김경욱이라는 남자가 정신 지배에 풀리기 전에 의뢰한 모양입니다.”

“지금쯤이면 길드에서 김경욱을 조사했을 거다. 돌아가서 관련 서류를 살펴보도록 하지.”

정신 지배에 풀려났던 사람들은 로헌에서 맡아서 살피고 있으니 김경욱이 정말로 저들과 같이 일했던 과거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조용히 영상을 보던 천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프라우스 신도단이 게이트에 무슨 짓을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군.”

게이트 뒷거래 사건에 프라우스 신도단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 된 천사연은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라 그가 이해됐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흔적을 찾는 동시에 그들의 계획을 이제라도 막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신도단과 또다시 충돌해야만 하는 현실이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천사연은 프라우스 신도단을 상대로 이미 많은 실패를 겪어 본 상태라 더 걱정됐다.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TV 화면을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짙어 보였다.

“일단 길드로 돌아가 보겠다. 김경욱의 자료는 내가 직접 확인해 본 후에 바로 연락하지.”

영상을 끝까지 모두 시청한 하태헌이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으로 걸어가는 하태헌의 뒤를 쫓아 인사를 보냈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태헌 씨.”

구두를 신고서 나를 잠시간 바라보던 하태헌이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자료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동안 위로라도 적당히 해 주고 있어라.”

“네?”

알 수 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해진 내게 하태헌이 벽에 가려진 거실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천사연이 앉아 있는 위치였다.

하태헌도 천사연의 기분을 눈치챘구나. 나만큼이나 천사연을 신경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노력해 볼게요. 제 위로가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요.”

“네가 하는 게 제일 나을 거다.”

혀를 찬 하태헌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네가 아니었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군.”

“음…….”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나는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천사연은 장난처럼 나를 리더라고 부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팀의 중심은 천사연이었다. 그가 무너지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프라우스 신도단을 상대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

“시간 내서 대화해 보겠습니다. 천사연 마스터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이제껏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던 하태헌이 신경 쓸 정도였으니 천사연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의욕적으로 말하자 그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

머리를 쓰다듬었던 손이 내려와 볼을 가볍게 훑고 떨어졌다. 따듯한 체온이 뺨에 흔적처럼 남았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하태헌이 방을 떠나갔다. 웃는 얼굴로 끝까지 하태헌을 배웅한 나는 눈앞에서 그가 사라지자마자 웃음기를 지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사연의 기분을 풀어 주라니. 하태헌에게 자신 있게 대답하긴 했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다.

애초에 천사연과 단둘이 대화할 자리를 만드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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