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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41화 (341/394)

341화

86. 꼬리 잡기

하여간 성격 참 화끈하다니까. 걸레짝이 돼서 바닥에 널브러진 철문을 내려다보다가 거친 욕설에 고개를 들었다.

“이, 이 새끼들 뭐야?”

“시발, 깜짝아!”

문짝이 나가떨어지는 천둥 같은 소리에 적잖이 놀랐는지 건물 안에 있던 남자들이 다급히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넓은 컨테이너 내부에는 갖가지 옷이나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있어서 소규모 장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데서 남자 다섯 명이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네 명의 얼굴부터 살펴봤다. 하이드가 찾아 준 자료와 동일했다.

‘한 명은 숨었나.’

기운 자체는 멀어지지 않은 것을 보아 컨테이너 안에 있는 건 확실했다. 일단 우리가 들어온 입구 말고는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 보이니 앞에 놈들부터 처리하고 찾아봐야겠다.

“야, 이 새끼들 두 명밖에 없는데?”

“좆같은 놈들이 간땡이가 처 부었나.”

그사이에 자기들도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남자들이 슬금슬금 대열을 맞추며 우리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각자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총을 들고 와도 하품 나올 판인데 칼이라니. 심지어 제대로 쓰지도 못할 잭나이프?

‘10분도 안 걸리겠네.’

상대도 우리가 자기네들보다 등급이 높은 걸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설마 SS급이 왔을 줄은 몰랐겠지. A급 두 명이면 B급 네 명과 C급 한 명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니까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것이다.

“뒤져, 멍청한 새끼들아!”

내 앞을 막아선 하태헌의 손에 새까만 먼지가 몰려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능력으로 검고 기다란 몽둥이를 만들어 낸 하태헌이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미친, 무슨… 아악!”

퍼억, 퍽! 빠악!

“끄아아악! 자, 잠깐만…!”

쿠웅, 콰직! 쿵!

남자들의 비명과 경쾌한 매타작 소리를 들으며 아까 하태헌에게 받았던 막대 사탕 포장지를 하나 더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한 복숭아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선생님, 잠깐만요! 그, 그건 내려놓으시고 우리 대화를… 악!”

뒤늦게 하태헌의 실력을 파악했는지 얻어맞던 남자들이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저런 거로 하태헌이 봐줄 리가 없었다.

남자들이 보여 준 양아치 같은 모습은 하태헌이 정말로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어비스’ 소설에서도 그는 저런 놈들 상대로 언제나 냉정했으니까.

하태헌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공중을 휙휙 날아다니는 남자들을 보아하니 내 짐작대로 10분도 안 걸려서 정리될 것 같았다. 하태헌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바람만 사용하고 있는 나는 완벽한 구경꾼이 되었다.

피이익…….

투명화 상태로 어깨 위에서 같은 광경을 지켜보던 여우가 낮게 울었다. 녀석도 나처럼 하태헌에게 맞고 있는 남자들이 슬슬 불쌍해지는 모양이다.

불쌍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쓰러트려서 끌고 가야 하니까.

그 짧은 사이에 세 명이 쓰러졌다. 동그란 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하태헌을 구경하던 그때였다.

“시, 시발! 개새끼들아!”

먼지 쌓인 상자들을 헤치고 남자 한 명이 내게로 뛰쳐나왔다. 숨어 있던 마지막 B급 능력자 한 명이었다.

‘이럴 것 같았지.’

처음에야 다른 목적으로 숨었겠지만, 같은 팀이 반항 한번 못하고 지는 걸 보고 난 뒤에는 기습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뻔하다면 뻔한 계획이었다.

피하지 못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운 것도, 날카로운 공격도 아니었기에 일단 바람부터 끌어 올렸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상대해 주기도 전에 하태헌이 엄청난 속도로 내 앞에 끼어들었다.

나를 노리고 휘둘러진 잭나이프를 본 하태헌이 상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주먹을 가차 없이 휘둘렀다.

뻐억, 호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하태헌의 주먹에 맞은 남자가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한 대 맞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름 힘 조절을 해 온 하태헌이 마지막 남자는 기절할 정도로 세게 때렸다.

기절한 남자가 놓친 잭나이프를 한 손으로 우그러뜨린 하태헌이 그것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예민해진 하태헌의 모습에 눈치가 보였다. 아예 뒤로 빠져 있을 걸 그랬나.

“감사합니다.”

어쨌든 구해진 건 구해진 거니까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내 생각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하태헌이 아주 살짝 무섭기도 했고.

“이제 다섯 명 다 끌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목적지는 레퀴엠이었다. 내 말에 하태헌이 인벤토리에서 은색 수갑 다섯 개를 꺼냈다. 능력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챙겨 온 셔터 아이템이었다.

피떡이 된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다섯 명을 바라보다가 바람으로 수갑을 움직였다. 저놈들을 직접 만지는 건 좀 싫었다.

기절한 다섯 명은 내 바람이 움직이는 대로 두 팔에 수갑이 채워졌다.

***

미리 얘기를 나눠 둔 대로 레퀴엠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에 띄지 않도록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주차장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던 우서혁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와 하태헌을 반겼다. 차에서 내리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핀 우서혁이 물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그럼요.”

하태헌이 뒷좌석에 대충 구겨져 있던 다섯 명을 한 명씩 멱살 잡아서 끄집어냈다. 무슨 짐짝처럼 지하 주차장 바닥에 던져진 다섯 명이 기절한 와중에도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우서혁이 눈짓하자 뒤로 물러나 있던 경호팀이 다가와 남자들을 끌고 갔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서 피떡이 된 사람들을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끌고 가는 광경은 어딘가 섬뜩했지만, 범죄자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다른 분들은요?”

“준비를 끝내고 두 분 도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지하 3층 가장 안쪽에 있는 훈련실로 향했다. 여기 훈련실은 이전에 마약 사건 때 이수진을 심문했던 장소기도 했다.

그간 쓸 일이 없어서 잠가 뒀던 이 훈련실을 이번에 다시 연 것이다.

“형, 왔어요?”

훈련실 앞 복도에 서 있던 권정한이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번 이수진 심문 때 제 역할을 제대로 해 준 권정한이 이번 심문도 맡아 줬다.

한 명이라서 부담이 덜했던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명을 동시에 통제해야 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가 흔쾌히 받아들여 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정말 괜찮겠어?”

“그럼요. 형이 걱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리고…….”

권정한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수행원이 하나둘 훈련실에 도착했다. 수행원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온 남자들의 겉모습을 확인한 권정한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저런 상태면 반항할 위험도 적고요. 골고루 적당히 잘 패 놨네요.”

골고루 적당히 잘 패 놨다니… 칭찬인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어색하게 웃어 줬다.

수갑이 채워져 있지만 혹시 모르니 발목까지 추가로 묶어 준 수행원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훈련실을 나갔다.

이수진 때는 의자라도 줬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이 다섯 명 다 차갑고 딱딱한 훈련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래저래 취급이 참 안 좋았다.

안전을 위해 나와 하태헌, 우서혁은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다섯 명의 실명을 미리 알아 둔 권정한이 그들 앞에 섰다.

“일단 깨울게요.”

권정한이 가장 앞에 있는 남자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 거침없는 몸짓에 오히려 내가 깜짝 놀랐다.

“으으…….”

하태헌한테 실컷 얻어맞고 끌려와 정강이까지 추가로 맞게 된 남자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래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닌지 굳게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뜬다.

“안녕하세요.”

“허억…! 시발, 뭐야?”

눈앞에 있는 권정한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가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정한은 들고 있던 서류를 넘기며 자기 할 말을 이어 갔다.

“어디 보자. 음… 최진태 씨? 맞나요?”

“뭐? 뭐 하는 새끼야, 너!”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그냥 본인이 맞나 확인하는 건데.”

권정한이 상처받은 듯이 눈썹을 아래로 내리자 당황하던 남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이런 시팔! 당장 이거 풀어, 이 좆만 한 새끼야!”

“자꾸 욕을 하시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뒤지고 싶어? 어?”

남자는 계속해서 권정한을 향해 저급한 욕설을 뱉었다.

권정한한테 가려져서 우리가 안 보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해서 상대 구분도 못 하고 마구잡이로 기어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권정한인데.

“딱 봐도 비리비리한 새끼가, 내가 묶여 있다고 만만해 보이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무심한 표정으로 남자가 꽥꽥거리는 소리를 듣기만 하던 권정한이 이내 서류를 접으며 뒤를 돌았다. 내게로 걸어온 권정한이 서류를 넘겨주며 입을 열었다.

“얼굴이랑 이름은 모두 매치 완료했어요. 다 외웠으니까 서류 가지고 잠시만 나가 계세요.”

“나가 있으라고? 혼자서는 위험해.”

“위험요? 제가요?”

되묻는 말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그제야 나는 싸늘하게 웃고 있는 권정한의 얼굴을 마주했다.

“…나가 있을게.”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치 빠르게 훈련실을 빠져나온 나는 소름이 돋아난 양 팔뚝을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무섭다, 무서워…….’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인상을 가진 권정한이 능력을 제대로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배로 무서워졌다. 부디 적당히 하기를 바라며 권정한이 심문을 끝낼 때까지 밖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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