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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40화 (340/394)
  • 340화

    피익! 피이익!

    여우가 내 옷에 발톱을 박아 넣은 채로 서럽게 울어 댔다. 대롱대롱 매달린 여우가 다칠까 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달래듯 말했다.

    “금방 갔다 올 거라니까.”

    피익! 피익!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원래는 내가 어딜 나가든 얌전히 기다리더니.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단 채로 칭얼거리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어쩔 수 없지. 여우를 품에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는 투명화 절대 풀면 안 돼. 알겠어?”

    피익!

    재빨리 내게 덥석 안긴 여우가 꼬리를 살랑였다.

    하긴, 요 며칠간 너무 바빠서 여우를 방에 두고 자리를 비운 일이 많았다. 혼자서 많이 외로웠나 보다.

    오늘은 김우진과 민아린, 권정한 모두가 자리를 비웠다. 각자 소속된 팀에서 호출이 온 상황이라 드물게 방이 한가한 날이었다. 그래서 여우가 데려가 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투명화한 여우를 어깨에 얹은 채로 방을 나섰다. 길드 건물 앞으로 나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태헌의 차가 바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하태헌 씨.”

    조수석에 올라타며 인사를 보내는 내게 하태헌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종이봉투를 내 다리 위에 놔주었다.

    “이게 뭡니까?”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뭔가 싶어서 봉투를 열자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토스트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저만 먹어도 되나요?”

    “난 출발하기 전에 먹었다.”

    안 그래도 김우진이 없어서 여태 한 끼도 못 먹은 참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토스트를 하나 들자 어깨에 앉아 있는 여우가 투명화를 풀었다.

    피익!

    토스트 냄새를 맡은 여우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앞발을 뻗었다. 어딜 봐도 토스트를 탐내는 몸짓이라 토스트 하나를 아예 넘겼다. 종이봉투 안에는 토스트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여우와 사이좋게 토스트를 나눠 먹는 동안 차는 게이트에 불법적으로 접근했던 이들이 사는 주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표적이 되었던 H37 구역 게이트는 동해 근처라 직접 가기는 힘들었지만, 불법을 저지른 이들은 서울 외곽에서 살고 있으니 찾아갈 만했다.

    “언론에 공개된 사람들은 아닌 거죠?”

    “그래.”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불법적인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러 정보를 찾아본 우리만 알고 있었다.

    ‘뭐, 길드 관리 본부는 알면서 모른 척하고 넘어갔겠지만.’

    토스트를 배부르게 먹은 여우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내 다리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나 또한 토스트 봉지를 치우고 대신 서류를 들었다.

    H37 구역 게이트를 소유하고 있는 센트 길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게이트에 접근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이 사건을 숨겼다.

    그간 게이트 관리 문제로 여러 차례 경고를 받은 상태라 한 번 더 걸리면 게이트 관리 소유권을 완전히 박탈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H37 구역 게이트는 위치가 좋지 않은 데다 별다른 이점이 없는 작은 게이트였다. 그런 게이트를 맡겠다고 나서는 길드는 없었다. 센트에게서 소유권을 박탈해 봤자 일만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길드 관리 본부는 이 사건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 적당히 넘어간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서류에도 이 부분은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관리 본부는 게이트에 불법적으로 접근한 일당이 있다고 해도 문제 삼을 만한 사고가 터진 건 아니었으니 조용히 덮은 거겠지.

    사건을 해결할 사람은 우리 말고 없었다. 앨리스가 알려 준 정보를 토대로 프라우스 신도단의 꼬리를 조금 잡아냈으니,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서울 외곽에 위치한 산업 단지에 들어선 하태헌이 회색빛 컨테이너 건물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건물과 그 주변이 유난히 어두웠다.

    “여깁니까?”

    “별일 없으면 저 안에 있겠지.”

    “기운은요?”

    “다섯 정도 느껴지는군.”

    그 말에 나 또한 집중해서 건물 안을 살펴봤다. 서류에 나와 있는 일당의 숫자는 총 다섯 명이고, 각각 C급 한 명과 B급 네 명이었다. 나 또한 하태헌과 마찬가지로 다섯 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다섯 명 다 등급이 낮아서 위험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프라우스 신도단과 연관이 있다면 이동 아이템을 소지했을 가능성이 컸다. 겨우 잡은 단서를 허무하게 놓칠 수는 없으니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낫겠다.

    “여우.”

    피익!

    차에서 내리며 다시 투명해진 여우가 내 부름에 소리 높여 울었다.

    “확인 좀 해 주고 올래? 아이템을 가졌는지 알아봐 줘.”

    내 부탁을 들은 여우가 건물로 곧장 날아갔다.

    투명화에 벽을 뚫을 수 있는 데다 날 수도 있는 여우는 건물 안에 상황을 쉽게 확인하고 와줄 것이다. 기운에 예민한 아이니, 아이템이 가진 미약한 기운도 알아챌 거고.

    하태헌과 차 안에서 여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 가득히 들어찬 먹구름이 음울한 분위기를 더했다.

    만약 저들이 이동 아이템을 갖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러 가지 대처법을 떠올리며 고민하는데, 정장 재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하태헌이 그걸 내밀었다.

    “먹어라.”

    “네?”

    뭔가 했더니 막대 사탕이었다. 포장지에 그려진 복숭아 모양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복숭아 맛 사탕이야? 레퀴엠 대표실에서 겪은 악몽 같은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 잠깐만… 이거 설마?’

    나와 키스하고 실실거리며 웃던 천사연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하태헌 씨.”

    “말해.”

    “혹시… 천사연과 따로 연락하셨습니까?”

    “하긴 했지.”

    하태헌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물었다.

    “복숭아 맛 사탕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

    천사연, 이 미친놈이…….

    하태헌에게 내가 복숭아 맛 사탕을 좋아한다며 신나게 떠들어 댔을 천사연의 모습을 떠올리자 주먹이 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욕설을 꾸역꾸역 삼켜 낸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으럼요, 저 복숭아 맛 사탕 좋아해요.”

    대답을 들은 하태헌이 어딘가 뿌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더 있으니까 다 먹으면 말해라.”

    “예에…….”

    연한 분홍색 복숭아가 그려진 포장지를 벗겨서 사탕을 입에 넣자 대표실에서 먹었던 사탕과 비슷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이러다가 복숭아 맛에 트라우마라도 생기겠네.

    하태헌이 준 사탕을 먹으면서 천사연과 했던 그런… 짓을… 떠올리고 있자니 양심이 어마어마하게 아파졌다. 쓸데없는 짓을 한 건 천사연인데 왜 내가 양심이 아파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먹어서 해치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탕을 전투적으로 강하게 씹었다. 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딱딱한 사탕을 마치 천사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씹어 먹자 하태헌이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새 사탕을 꺼내 줬다.

    ‘왜 자꾸 먹을 게 나오는 거지?’

    오늘 나랑 만나면 그간 못 먹였던 걸 다 먹이겠다는 각오라도 하고 왔나?

    거절하기에는 이미 양심이 아픈 상황이라 최소한 하태헌의 기분이라도 맞춰 줘야겠다. 새 사탕을 받기 위해 손을 뻗은 그때였다.

    사탕을 쥐자마자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감촉이 볼에 닿아 왔다.

    “……?”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서 그대로 굳자 하태헌이 사탕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붙잡은 채로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 오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잠깐…!”

    사탕과 함께 손이 붙잡힌 채로 뽀뽀 세례를 고스란히 받게 된 나는 열심히 고개라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사탕은 미끼였던 거냐고!’

    하태헌이 이런 식으로 나를 꼬실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귓가에 울리는 낯간지러운 소리와 감촉에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쿵, 버티지 못하고 버둥거리자 무릎이 여기저기 부딪혔다.

    차가 덜컹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뽀뽀하던 하태헌이 마지막으로 내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어 왔다. 입술에서 퍼지는 아릿한 고통에 어깨를 흠칫 좁힌 그때였다.

    피이익! 피익!

    짜증이 가득 담긴 여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쏜살같이 날아와 차 안으로 들어온 여우가 제 머리를 하태헌의 가슴팍에 들이박았다.

    “쯧…….”

    자기 손에 이빨을 박고 매달린 여우를 본 하태헌이 혀를 차며 내 쪽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를 바로 세웠다. 털을 바짝 세우고 하태헌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물던 여우가 내 품으로 후다닥 안겼다.

    픽! 피이익! 피익!

    내게 안긴 채로 하태헌에게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는 여우는 충격이 상당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천사연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방해받을 줄이야.”

    여우의 난입으로 스킨십이 끊긴 하태헌은 진심으로 아쉬워 보였다.

    “전 방해받아서 다행인데요… 놀라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한두 번도 아니고.”

    “…….”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니까 되려 할 말이 없네.

    아무튼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분노로 털을 세우고 파르르 떠는 여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안에 잘 보고 왔어? 다섯 명 있는 거 맞아?”

    픽!

    여우가 노발대발한 와중에도 착실하게 대답을 해 왔다.

    “아이템은?”

    피익.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서류에 적힌 다섯 명이 다 있으면서 아이템은 없다는 건가. 우리로서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아이템은 없다고 하니까 걱정 없이 쳐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시작하지.”

    하태헌과 같이 차에서 내려서 건물 입구 앞에 섰다. 커다란 컨테이너 철문은 쇠사슬로 여러 겹 둘려 있었다. 하태헌은 맨손으로 종이 찢어 내듯 굵은 쇠사슬을 단숨에 뜯어냈다.

    “보조하겠습니다.”

    C급 한 명에 B급 네 명이라 하태헌 혼자서도 충분했다. 오히려 내가 나서 봤자 방해만 될 테니 적당한 거리에서 바람으로 서포트하는 편이 나았다.

    하태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철문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콰앙! 땅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발에 걷어차인 철문이 찌그러진 채로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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