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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39화 (339/394)

339화

“다음에 또 봐요.”

부자연스럽게 끝난 회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내게 연락하겠다며 인사를 남긴 앨리스는 비서인 테오와 레퀴엠을 떠나갔다.

회의실에 팀원들만 남게 되자 입가를 매만지던 천사연이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이결을… 잠시 로헌에 맡겨야 하나?”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로헌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천사연을 타박하며 한숨을 내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얼굴을 굳히고 있던 민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동의해요.”

“네?”

“나쁘지 않은 방법 같습니다, 마스터.”

“뭔… 팀장님까지 왜 이러세요.”

천사연의 헛소리를 대충 넘길 줄 알았는데 동의한다니? 당황한 나를 두고 민아린이 보기 드물게 음성을 높였다.

“이건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에요!”

“역시 민아린 힐러는 나를 이해해 주는군.”

“물론이죠. 앨리스 부마스터의 취향까지 알게 됐는데 어떻게 이결 씨를 가만히 놔둘 수가 있겠어요?”

“예? 저요?”

앨리스의 취향과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어이가 없어진 나를 두고 심각해진 팀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위험해 보이더군.”

“하태헌 부마스터에게 연락하면 로헌에서 형을 잠깐 맡아 주시지 않을까요? 앨리스 부마스터가 로헌에 갈 일은 없으니까요.”

“아예 보낼 필요까지 있습니까? 낮에만 잠깐 가 있고 밤에는 방으로 돌아오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그래야 저녁밥도 먹고 잠도 잘 테니까.”

내가 뻔히 중앙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자기네들끼리만 떠드는 꼴이 정말 기가 막혔다.

“제 거처를 왜 여러분들이 정하세요. 저는 싫…….”

“게다가 중요한 건 또 있어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아린이 손바닥으로 회의실 책상을 탕, 두드리면서 외쳤다.

“앨리스 부마스터의 취향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결 씨 취향이에요.”

“미, 민아린 씨?”

“모두 잊으신 건 아니겠죠? 이결 씨 취향이 청바지에 흰 티가 어울리는 청순한 사람이라는 걸.”

“자, 잠깐만요. 대체 언제 적 얘기를…….”

“이런. 그거 정말 큰일이군.”

“그러고 보니 청순한 여자가 취향이라는 말을 예전에 했었지. 그 취향이 아직도 이어지다니.”

“아니…….”

“앨리스 부마스터는 이결 씨 취향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되더라고요.”

“…….”

나만 빼놓고 모두가 진지한 이 상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뜩이나 제어가 안 되는 놈들만 있는데, 대체 어떤 부분에서 버튼이 눌린 건지 나와 앨리스를 두고 열기 가득한 토론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정상인의 위치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민아린조차 지금은 내 편이 아니었다.

“이결 씨가 앨리스 부마스터에게 넘어가서 호주로 가 버리기라도 하면…….”

“그만하시죠.”

민아린이 눈물을 닦는 척하며 장난스럽게 훌쩍거리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중재했다. 내버려 뒀다간 하루 종일 할 기세라 이쯤에서 대화 주제를 돌려야 했다.

“앨리스 부마스터가 알려 준 정보를 고려하면 프라우스 신도단이 게이트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인지 확인해 볼 수는 없습니까?”

“완벽히는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취향 토론에 말 한마디 없던 우서혁이 내 질문을 듣고 곧장 대답을 해 왔다. 천사연이 방금과는 달리 흥미가 뚝 떨어진 태도로 심드렁히 명령했다.

“국내는 로헌이 맡게 됐으니 해외는 우리가 계속 담당하는 게 낫겠지. 리오 길드에서 있었던 사건을 한 번 더 자세히 확인해 보도록. 사마엘이 개입한 게 사실인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앨리스가 핵심적인 정보를 넘겨준 건 맞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하이드가 국내 게이트 관련자를 찾아보는 동안 시간이 비니까 재확인 정도는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는 로헌에서 소식이 들어오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하태헌 씨가 저에게 따로 연락을 주실 것 같네요. 받는 대로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하겠습니다.”

“좋군.”

“더 할 말 없으면 회의 끝냅시다.”

여기 더 있어 봤자 내 취향이 어쨌다느니 하면서 쓸데없는 대화나 할 게 뻔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사람들도 나를 따라서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섰다. 하여간 이럴 때만 말을 잘 듣는다니까.

“우서혁 씨.”

다 같이 회의실을 나선 나는 앞서 걸어가는 팀원들을 두고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해서 뒤로 빠졌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우서혁의 소매를 붙잡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우서혁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소리 낮춰 물었다.

“혹시 앨리스 부마스터가 제게 만나자는 연락을 보내오면 몰래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앨리스와의 만남을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그녀가 회의에서 설명해 준 게이트 불법 거래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대답해 줄지도 모르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 낼 가능성도 있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겠다고 한 걸 보면 아마 레퀴엠 길드를 통해서 만나자고 할 텐데, 천사연이 숨길 수도 있으니 우서혁에게 따로 부탁해 두는 게 안전했다.

우서혁은 아까 회의실에서 취향 얘기가 한창 나올 때도 끼어들지 않고 조용했으니 더 믿음이 갔다. 하지만 당연히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우서혁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예?”

“한이결 씨가 어떤 목적으로 만나려고 하는지는 이해합니다만, 앨리스 부마스터는 이제 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안된다고? 단호한 거절에 당황한 내게 우서혁이 말을 이었다.

“앨리스 부마스터는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집요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괜히 접근했다가는 귀찮아지실 겁니다.”

“아무에게나 다 집요하게 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한이결 씨는 능력이 특별하니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리오 길드는 90% 이상이 변신 능력자라고 하셨잖아요. 무엇보다 앨리스 부마스터처럼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에겐 제 능력이 그렇게 크게 와닿진 않을 겁니다. 그런 문제로 만나지 않기에는 그분이 가진 정보가 너무 아깝습니다.”

열심히 설득해도 우서혁은 재차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앨리스 부마스터에게 정보를 더 얻어 낼 필요를 느낀다면 저나 마스터가 직접 움직이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서혁만큼은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터라 너무나도 아쉬웠다.

천사연이나 우서혁이 직접 움직이겠다는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어서 어깨를 살짝 늘어뜨리자 잠시간 내 눈치를 본 우서혁이 덧붙였다.

“앨리스 부마스터도 중요하지만 며칠 뒤에 소식이 들려올 국내 상황도 중요해 보입니다. 저희가 최대한 서포트할 테니 우선은 국내부터 알아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는 우서혁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요.”

그래.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하이드가 알아봐 줄 정보를 기다리는 게 우선이었다.

***

로헌에 소속된 하이드에게서 의뢰했던 결과를 받은 건 회의가 있고서 이틀이 지난 뒤였다.

[보기보다 실력이 괜찮더군.]

하이드로부터 자료를 전달받은 하태헌이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평소에 저런 말을 잘 하지 않는 하태헌의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하이드의 실력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겨 있다.]

“그거 다행이네요.”

하이드는 국내에서 불법적으로 게이트에 접근한 일당의 신상 정보와 그들이 접근한 게이트 주소를 상세히 알아봐 주었다.

표적이 됐던 게이트는 H37 구역으로 동해 쪽에 있는 B급 게이트였다. 센트라고 불리는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작은 게이트였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등급은 다른 B급 게이트와 비슷하지만 내부가 넓지 않아서 숫자가 적다고 한다. 다만, 이곳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몬스터가 있었다.

“트래퍼요?”

[그래. 여러 가지 트랩을 바닥에 까는 몬스터라고 하는군. 크기가 워낙 작아서 몬스터를 발견해 처치하는 게 쉽지 않고, 가만히 놔뒀다간 폭탄과 덫을 계속 설치해서 상대가 까다롭다고 한다.]

나는 이틀 전에 회의 내용을 하태헌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걸 들은 하태헌은 하이드에게 표적이 됐던 게이트에서 제일 문제 되는 몬스터가 무엇인지도 알아봐 달라고 추가로 부탁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바로 저 트래퍼라는 몬스터다. 바닥에 무한으로 트랩을 까는 몬스터라.

‘리오 길드의 경우에는 독기 액체를 퍼뜨리는 다크 하이퍼 몬스터였다고 했지.’

독기 액체와 부비 트랩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지? 앨리스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몬스터 체액을 통해 무언가를 제작하고 있을 거로 추측했는데, 트래퍼는 어디에 쓰려고 한 건지 도통 감이 안 왔다.

‘…트래퍼가 아닌 다른 몬스터가 목적일 수도 있고.’

뭔지 모를 때는 직접 움직여 보는 수밖에. 생각을 정리한 나는 하태헌에게 물었다.

“게이트에 접근했다는 사람들을 바로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럴 줄 알고 이미 일정을 빼 뒀다. 지금 레퀴엠 앞으로 갈 테니 나와.]

“그럼 저도 사람들한테 통화 내용 전달하고 내려가겠습니다.”

[그냥 와도 된다. 이미 내가 전달했으니까.]

“네?”

[아주 흔쾌히 데려가라더군. 너만 괜찮으면 로헌에서 며칠 지내도 괜찮다고 하던데.]

재밌다는 듯 짧게 웃은 하태헌이 놀리듯 말했다.

[이번에 외국에서 온 손님이 널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지?]

“…….”

상상도 못 한 놀림에 버티지 못하고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그새 하태헌한테 공유한 거냐고.

아니, 그것보다 로헌에 잠깐 맡겨야겠다던 말이 진심이었을 줄이야.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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