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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38화 (338/394)

338화

입이 절로 벌어지는 경악스러운 발언에 나도 모르게 천사연의 눈치를 살폈다. 천사연은 그 기가 막힌 장면을 턱을 괸 채로 구경하다가 혀를 쯧쯧 찼다.

“이럴 줄 알았지.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건가?”

“당연하죠. 당신 보러 여기까지 온 줄 알았나요?”

천사연의 타박을 들은 앨리스가 눈썹 끝을 한껏 내리며 대답했다. 가뜩이나 순한 얼굴로 저런 표정까지 지으니 천사연이 애꿎은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놈 같았다.

“우서혁 비서 그만 탐내고 앉지. 회의 진행하게.”

“굳이 말 안 해도 지금 앉으려고 했는데… 성격 급한 건 여전하시군요, 천사연 마스터.”

테오라는 비서와 나란히 자리에 앉은 앨리스가 천사연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마치 ‘가엾게도… 성질이 더럽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걸 알아챈 천사연이 질세라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급해도 앨리스 부마스터만 하겠나? 얼마나 급했으면 내 앞에서 비서한테 이적 제안을 하는지.”

“어머, 우서혁 비서님이 좋은 길드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계셨으면 저도 예의를 차렸겠죠. 하지만… 아닙니다. 굳이 제가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겠군요.”

서로 욕하는 천사연과 앨리스의 행동에 회의실 공기가 급격하게 서늘해졌다. 둘을 번갈아 보던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교류해 온 길드는 맞아도 좋은 사이는 아니라는 건가.’

천사연이야 워낙에 걸어온 시비를 그냥 넘기지 않는 타입이라 그러려니 해도 앨리스는 레퀴엠에 유감이 아주 많은 게 확실해 보였다. 아무래도 우서혁 때문이겠지.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티 낼 줄은 몰랐는데. 리오 길드는 내 예상보다 더 우서혁이 탐나는 모양이다.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천사연과 앨리스가 으르렁거리든 말든 관심 없어 보이는 우서혁은 담담한 태도로 회의를 진행했다. 그는 근래 호주와 한국에서 벌어진 게이트 불법 거래와 프라우스 신도단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흐음…….”

흥미 가득한 눈길로 우서혁이 진행하는 회의를 지켜보던 앨리스는 설명이 끝나자 곧장 입을 열었다.

“이제야 이해가 좀 되는군요. 프라우스 신도단이라. 그런 사이비 종교가 생겨났다는 건 우리 길드도 잘 알고 있어요. 설마 게이트로 접근할 줄은 몰랐지만요.”

“게이트 불법 거래와 프라우스 신도단이 관련 있다는 건 아직 추측 단계입니다. 증거들이 좀 더 모이면 확실해질 겁니다.”

혹여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우서혁의 설명에 덧붙여 얘기하자 앨리스의 검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그 시선에 조금 당황했다.

“그렇군요. 증거라면 우리가 도움이 좀 되겠네요.”

자연스럽게 내게서 고개를 돌린 앨리스가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낯선 자들이 게이트에 접근해 들어갔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건 오늘로부터 정확히 25일 전이에요. 우리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게이트 관리인과 게이트에 들어갔던 일당을 모두 잡아냈죠.”

앨리스의 얼굴은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로 변했다. 핵심 내용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 있는 목소리 또한 그녀가 괜히 부마스터 자리에 있는 게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사건을 겪은 다른 길드들은 게이트 관리인이 뒷돈을 받고 게이트를 열어 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린 달라요.”

“어떤 부분이 다릅니까?”

“표적이 됐던 게이트는 A급으로 우리가 굉장히 신경 쓰는 게이트 중 하나예요. 천사연 마스터, 당신은 알고 있겠죠. 호주 D157 구역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를.”

천사연을 돌아보자 표정을 굳힌 채로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다크 하이퍼라고 불리는 B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게이트다. 독기가 가득한 액체를 뿜어내는 몬스터로 액체가 퍼지는 범위도 넓고 속도도 빨라서 처리가 까다로운 몬스터지.”

“맞아요. 게이트 등급은 A급이지만 다크 하이퍼 때문에 클리어팀을 신중하게 선발합니다. 부끄럽지만 과거에 사상자가 한 명 나왔던 만큼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 정도로 관리하는 게이트라면 관리인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세웠을 것 같군요.”

“정답입니다. 실제로 관리를 맡아 준 길드원은 리오 길드 초기 멤버이자 저와 마스터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능력자였습니다. 연세가 좀 있는 분이라 본인도 관리직으로 넘어가기를 희망하셨죠. 그래서 맡겼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말을 이어 가던 앨리스의 표정이 아주 잠깐 슬픔을 담고 흐려졌다. 그만큼 게이트 관리를 맡아 준 이를 아끼는 거겠지.

“처음엔 우리도 배신한 줄 알았어요.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길드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관리인은 뒷돈을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또한 피해자였어요.”

“그 뜻은…….”

“정신계 능력에 당했다는 뜻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란 내가 되물었다.

“정신계 능력 때문에 타인에게 게이트를 열어 줬다는 겁니까? 혹시 그 관리인의 등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A급이에요. 당연히 변신 능력자고요.”

A급 능력자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 머릿속에서 새하얀 가면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몰려와 등줄기에 옅은 소름이 돋았다.

“더 중요한 건, 관리인만 정신 지배 능력에 당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게이트에 직접 들어갔던 세 명의 남자 또한 자신이 어째서 게이트에 들어갔는지 전혀 알지를 못해요. 며칠간의 기억이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관리인뿐만 아니라 게이트에 직접 들어갔던 일당도 정신 지배에 당한 상태였다는 거군요. 그럼 왜 들어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겁니까?”

“그 부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어요. 다만…….”

거기서 말을 멈춘 앨리스가 팔짱을 끼면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다크 하이퍼를 봤다고 했어요.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거 하나뿐이라고.”

그렇다는 건… 몬스터가 목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독기가 담긴 액체를 내뿜는 몬스터가 목적이라니… 액체로 뭔가를 만들기라도 하려는 건가?’

그간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걱정이 들었다.

B급 몬스터의 액체라 해도 다른 높은 등급의 몬스터 재료와 조합하거나 칼리의 피가 들어간다면… 어떤 위험 물질로 변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앞서 설명한 내용은 모두 진실이에요. 우리가 직접 전문 능력자와 함께 확인해 봤으니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앨리스가 다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 줄 마음은 없었는데… 우리도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서 얻어 가는 게 있으니 그만큼 돌려주는 겁니다. 프라우스 신도단은 알고 있었지만 떠도는 소문이 워낙 많아서요. 그리고 이번 일이 설마 그 사이비 집단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천사연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로헌과 협동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뭔가 더 알아내는 대로 전달 주도록 하지. 한국에는 이 주일간 있다가 돌아가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맞나?”

“맞아요. 이왕 올 거 휴가도 같이 썼거든요. 관광할 생각에 벌써 신나네요. 요즘도 홍대가 인기 많나요?”

“……글쎄.”

뜬금없이 튀어나온 홍대 발언에 천사연이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지목했다.

“이런 건 젊은 친구들이 잘 알겠지. 한이결, 요즘 홍대가 어떻지?”

“예?”

홍… 뭐? 홍대? 크게 당황한 나는 어버버 거리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런 건 저도 잘…….”

아니, 근데 잠깐만. 천사연의 말을 다시 떠올리고 기가 막혀서 따지듯 물었다.

“젊은 친구들이라뇨? 천사연 마스터도 29살이면서 무슨… 누가 보면 39살인 줄 알겠어요.”

“그래도 나보단 24살이 더 잘 알겠지. 요즘 24살이면 홍대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하지 않나?”

천사연이 턱을 괴며 싱긋 웃었다. 역시 일부러 나한테 물어본 거잖아.

손님이 보고 있으니 대놓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짜증 나서 눈빛으로나마 열심히 노려보고 있으려니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한이결 능력자는 내 생각이랑 제법 다른 것 같네요.”

“절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강남 사건부터 양손의 SS급까지, 화제가 많이 됐으니까요.”

“…….”

양손의 SS급이라니. 저 소름 끼치는 별명을 대체 얼마 만에 들어 본 건지 모르겠다.

별명이 생긴 원인이나 다름없는 천사연을 재차 노려보자 그가 고개를 숙이고 큭큭거렸다. 진짜 짜증 나네.

“좀 더 해맑은 성격일 줄 알았어요. 예상과 달라서 오히려 더 마음에 드네요. 대화도 몇 번 안 해 보고 얼굴 마주한 시간도 짧은 제가 이런 소리 하는 건 무례하지만요.”

“아닙니다. 좋게 봐 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혹시 괜찮으면 나중에 따로 시간 내서 만나 줄 수 있나요?”

“……네?”

물 흐르듯 나온 제안에 무심코 그러겠다고 대답할 뻔한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뭐지?’

갑자기 홍대가 나오지 않나, 이번에는 나랑 따로 만나자고 하지 않나. 무슨 대화가 이렇게 휙휙 변해?

옆에 앉아 있는 김우진의 눈꼬리가 실시간으로 치켜 올라갔다. 다행히 김우진 말고 다른 팀원들은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 끼어들거나 기분 나쁜 기색은 없어 보였다.

“아. 제가 너무 적나라하게 말했나요? 오해하지 말아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능력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니까.”

“능력 말입니까?”

“한이결 능력자는 바람 능력을 갖고 있죠? 그것도 몇 명을 띄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저에 대한 정보를 이미 봤을 테니 알겠지만, 저도 하늘을 날 수 있답니다. 등에 새 날개가 생기니까요.”

회의실에 오기 전에 봤던 자료에 첨부된 사진이 떠올랐다. 천사가 연상되는 커다랗고 새하얀 백조 날개가.

“하지만 저는 혼자만 날 수 있어요. 그게 제 한계예요. 저뿐만 아니라 새로 변신하는 능력자는 모두 똑같아요. 저는 그 문제를 돌파할 해결책을 찾고 있거든요.”

순하게 웃은 앨리스가 어깨를 가렸던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귀걸이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정말로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 취향이 굉장히 확고하거든요.”

내내 조용히 앉아 있던 민아린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취향이 어떻게 되시나요?”

“체격 좋고 키 크고 듬직한 남자요. 무심한 듯 다정한 성격이면 좋겠어요.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여도 사실은 다정하고 잘 챙겨 주는 성격 있잖아요. 그리고 무조건 잘생겨야 해요. 경험상 흑발이 섹시하더라고요.”

그런 완벽한 사람이 실제로 있나? 그보다 단순히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까지 이상형에 포함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신기한 기분으로 앨리스를 바라보던 나는 피부로 닿아 오는 시선을 뒤늦게 알아챘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내게 이목을 집중한 팀원들이 보였다.

‘뭐야……?’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방금과는 영 달랐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괜히 뒷머리만 긁적이자 천사연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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