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천사연의 집은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는 터라 박건호가 사 온 도시락으로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현재 얘기 나온 이슈 목록은 이 정도입니다.”
“으음…….”
계란말이를 입에 넣으며 우서혁이 건네준 태블릿PC를 받아 들었다.
화면에는 국내외에서 떠들썩한 문제나 비공개 사건들이 열 가지 정도가 나열되어 있었다.
“딱히… 쓸 만한 사건은 없네요.”
“예.”
이번 미술관에서 겪은 일로 아벨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고 아자젤 또한 공간 이동 아이템으로 사라졌으니 프라우스 신도단을 찾을 만한 새 단서가 필요했다.
저번처럼 대놓고 초대장을 보내는 짓을 해 올 수도 있겠지만, 언제 올지 모를 초대장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아자젤이 김우진에게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단서를 빨리 찾아야 해.’
김우진은 퇴원하는 대로 우리에게 아자젤이 했던 말을 상세히 전해 줬다. 그중에서 가장 거슬리는 건 아자젤과 사마엘의 통화 내용 중 사마엘이 한 말이었다.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만들고 있으니까.
프라우스 신도단이 칼리의 피를 거리낌 없이 여러 곳에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칼리의 피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 텐데.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프라우스 신도단인 만큼 그 꼬리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우서혁이 조사해 온 사건들을 읽어 봐도 의심 가는 건 딱히 없고.
“난감하네요.”
그때였다. 내 옆에 앉아서 함께 태블릿PC를 보던 에드워드가 어느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엇, 이건 저도 알아요.”
에드워드가 짚은 건 네 번째 게이트 관련 사건이었다.
근래 들어서 소속이 정해진 게이트에 접근하여 관리자에게 한두 시간만 빌려줄 수 있겠냐며 부탁과 협박을 일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들어 본 적 있습니까?”
“네. 근데 한국은 아니에요.”
깔끔하게 비운 도시락에 뚜껑을 덮은 에드워드가 설명을 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일정이 있어서 호주에 잠시 들렀었는데… 거기도 비슷한 얘기가 뉴스에 나왔어요. 게이트를 한두 시간 정도 빌려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호주? 한국과 호주의 공통점이… 있나?
“혹시 호주에는 빌려준 사람이 있습니까?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다거나.”
“몇 번 있나 봐요. 근데 소속 길드로 보내는 정식 요청이 아닌 관리자한테 뒷돈 주고 빌리는 거라 불법이니 조심하라고 국가에서 경고하더라고요.”
“왜 빌리는 건지 이유는요?”
“글쎄요. 듣기로는 그냥 구경했다고 하던데…….”
게이트 내부를 구경하려고 뒷돈까지 주면서 빌렸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꺼림직했다.
나와 에드워드의 대화를 듣던 하태헌이 입을 열었다.
“게이트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면 능력자일 텐데, 시도하는 자들의 신원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게… 한국 같은 경우는 모든 능력자가 국가에 등록되어 있고, 길드와 함께 관리되고 있지만 해외는 그러질 않아서요. 특히 호주 같은 경우는 땅이 너무 큰 데다 자잘한 게이트의 수도 많아서 세세한 관리가 힘든 모양이에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찜찜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천사연에게 시선을 보냈다. 눈이 마주친 천사연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곧장 우서혁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번째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국내보다는 해외에 초점을 맞춰서.”
“알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라. 에드워드가 알려 준 이 사건이 프라우스 신도단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
아침 식사 후 에드워드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우리를 레퀴엠 길드로 이동시켜 준 엘로힘도 엘라하가 있는 신전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레퀴엠 길드 23층 방으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다. 소파에 앉아서 우서혁이 새로 준비해 준 서류를 보고 있는 내게 김우진이 다가왔다.
“어때?”
“글쎄…….”
천사연의 명령대로 국내보다는 국외를 중심으로 정리된 자료는 이제껏 몰랐던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 사건은 호주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에 걸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호주처럼 땅이 커서 게이트 관리가 어려운 나라일수록 그 빈도수가 더 잦다고 한다.
‘관리의 허점을 노리는 거겠지.’
게이트에 들어가서 한두 시간 동안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문제였다. 특히 게이트 관리에 철저한 한국에서도 저런 요구를 해 온 사람이 있었다고 하니까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아직 국내는 알아낸 게 없으니까 애매하네. 그리고 이 사건이 프라우스 신도단이랑 관련이 있는지도 확실치가 않고.”
김우진의 분신이 옆에 앉으며 내게 찰싹 붙었다. 자연스럽게 김우진과 김우진 분신 사이에 낀 나는 허리에 감겨 오는 분신의 팔을 익숙하게 토닥이며 보고 있던 서류를 김우진에게 넘겨줬다.
“그러네. 이것만으로는 프라우스 신도단이랑 연관 짓기 어렵겠어.”
“응. 그래도 제일 의심스럽긴 하니까 계속 알아보긴 해야 해.”
아무래도 천사연은 이 사건이 제일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하태헌이 있는 로헌은 다른 사건을 찾아보고 있었다. 제이나도 도와준다고 했으니 프라우스 신도단과 관련성이 있는 사건이 좁혀지면 그때 도움을 청해도 좋을 듯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우서혁이 해외의 사례를 알아보는 동안 국내를 중심으로 알아볼 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최소한 게이트를 빌려 가려던 사람들이 누군지 파악하고 싶었다. 약간의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신원을 알아낸다면…….
‘잠깐. 불법적인 수단?’
그때, 머릿속에 제법 괜찮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마침 김우진도 바로 옆에 있으니 가능한지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김우진.”
떠오른 김에 바로 얘기하려고 고개를 든 나는 김우진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로 머뭇거리던 김우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맞춰 왔다. 입술에 닿아 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빼자 분신이 허리를 붙잡은 팔에 힘을 줬다.
“갑자기 무슨…….”
“…하면 안 돼?”
당황한 내 눈치를 살피던 김우진이 시무룩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면 안 되냐고? 키스하고 싶다는 건가?
안 된다고 하기에는… 김우진은 저번에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상태라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에 김우진이 재차 입을 맞춰 왔다. 가볍게 맞췄다가 떨어진 입술은 저번에 내가 한 것처럼 곧장 깊이 맞물렸다. 천천히 들어온 김우진의 혀가 입천장을 쓸고 혀를 부드럽게 꾹 눌러 왔다.
“흐읏…….”
반사적으로 멀어지려는 내 상체를 단단히 받친 분신 때문에 도망칠 구석이 없다. 김우진과 녀석의 분신 사이에 완벽하게 끼여서 키스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자꾸만 묘해졌다.
입 안을 서툴게 헤집어 오는 김우진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흥분이 되는지 숨소리가 자꾸만 거칠어졌다. 점점 뒤로 밀리는 내 몸에 맞춰서 소파에 누운 분신 또한 내 목덜미에 제 입술을 자꾸만 비비적거렸다.
뜨거운 체온이 앞뒤로 전해져서 나까지도 얼굴에 열기가 올라왔다. 귓가에 울리는 질척한 소리에 등줄기로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으… 그만…….”
키스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는 건 무리였다. 한계까지 치달은 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비틀며 입술을 피하려고 하자 김우진의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나 얼굴을 붙잡았다.
피하는 내 얼굴을 붙잡고 이어지는 키스에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생소한 자극에 눈이 돌아간 김우진의 모습에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혀를 살짝 힘줘서 깨물었다.
“아, 미, 미안…….”
혀에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에 어깨를 흠칫 떤 김우진이 그제야 눈을 뜨며 입술을 뗐다. 기분 좋은 기색으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김우진이 엄지손가락으로 잔뜩 젖은 내 입술을 쓱 훑었다.
“괜찮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내 뒤에 자리한 분신은 여전했다. 쪽쪽 거리며 목덜미에 뽀뽀를 퍼붓던 분신이 이제는 이를 세워서 가볍게 깨물기까지 했다.
‘김우진 이 자식이…….’
설마 처음부터 이러려고 접근한 건가? 분신까지 내 뒤에 놔둔 게 엄청 의심스러웠다. 아무튼 이대로 계속 둘 수는 없으니 낑낑거리며 분신에게 기대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미안, 숨 막힐 줄은 몰랐어.”
힐끔거리며 내 상태를 살피던 김우진이 사과를 해 왔다. 하지만 말과 달리 반짝거리는 두 눈동자나 상기된 뺨을 봐서는 미안함보다는 들뜬 마음만 느껴졌다.
하긴, 김우진 입장에서는 이런 스킨십은 다 내가 처음이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짜증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굳이 분위기 깰 필요가 있나.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김우진의 볼을 손으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됐어. 일부러 나 죽이려고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으응… 다음에는 조심할게.”
다음? 다음이 또 있는 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래, 조심해. 이래야 하나?
…차라리 그냥 대화 주제를 돌리자.
“김우진. 아까 하려던 부탁인데, 들어줄 수 있어?”
“부탁?”
“너 예전에 게이트 관련 정보 알아봐 주던 지인 있잖아.”
“아아… 기억나. 걔는 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알아봐 줄 수 있나 해서. 국내 한정으로 아주 자세하게.”
불법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알아봐 줄 수 있겠냐는 뜻을 담아서 묻자 한 번에 알아들은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근래에는 연락을 안 해서 해 줄 수 있는지 확인은 해 봐야 해. 근데 아마 해 줄 거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찾아 준다면 물론 좋지만…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어. 어차피 기본적인 건 우서혁 씨가 알아보고 있으니까.”
“응. 지금 바로 전화해 볼까?”
“그래 주면 좋지.”
김우진이 소파 앞 테이블에 놔둔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잠시간 이어진 끝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뭐야. 김우진, 너 살아 있었냐?]
가벼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 왔다. 김우진이 나와 대화를 나눌 때는 보여 주지 않는 심드렁한 표정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연락 안 하면 뒤진 거냐?”
[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긴 해.]
김우진의 싸늘한 대꾸에도 상대방의 장난기 가득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 짧은 대화에도 정보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만만찮은 성격인 게 티가 났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