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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30화 (330/394)

330화

“에드워드 씨는요?”

천사연과 하태헌의 말다툼을 끊어 낼 겸 궁금했던 질문을 하자 우서혁이 천사연 대신 대답해 줬다.

“지금 오고 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수행원이 이곳으로 안내해 줄 예정입니다.”

“그럼 에드워드 씨만 오면 바로 출발하면 되겠네요.”

천사연을 통해 내 제안을 받은 에드워드는 굉장히 좋아하며 꼭 참석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듣기로 다른 일정까지 미뤘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모임이 아니라 조금 머쓱하긴 했다.

“와, 우진 씨. 이게 다 요리 재료예요?”

“네.”

“우진 씨가 만든 요리를 먹을 생각 하니까 벌써 기대되네요.”

주방에서 민아린과 김우진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민아린이 힘든 와중에도 자신을 치료해 줬다는 얘기를 내게 전해 들은 김우진은 전보다 훨씬 더 유순해진 태도로 민아린을 대했다.

민아린과 김우진뿐만 아니라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볼수록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듯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거실 끝에 서서 팀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옆에 새하얀 빛이 반짝하고 생겨났다.

“……?”

눈송이처럼 작은 크기의 하얀빛은 이내 커다랗고 둥근 타원형 통로로 변했다. 곧이어 환한 빛을 뚫고 통로 너머에서 엘로힘이 나타났다.

“엘?”

“안녕, 세현아.”

뜬금없는 등장에 놀란 나를 보며 살짝 웃은 엘로힘이 품에 안고 있는 여우를 놔주었다. 피이익! 애처롭게 울은 여우가 단숨에 날아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여우!”

피이익! 픽! 피이익!

많이 걱정했던 여우가 드디어 돌아왔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장막 기운에 노출돼서 상태가 안 좋았다는데 지금은 괜찮아진 건지 꼼꼼하게 살피는 동안에도 여우는 계속 울며 내게 꾸역꾸역 안겼다.

“아이가 널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조금 이르지만 데려왔단다. 몸은 다 낫긴 했는데, 휴식은 좀 더 필요하니 네 곁에 두면서 쉴 수 있게 해 주렴.”

“감사합니다. 엘은 몸이 좀 어떠십니까?”

“뭐… 나도 그 아이랑 비슷하지. 나쁘지 않단다.”

여우의 상태를 설명해 줄 때보다 지나치게 간략했다. 정말 나쁘지 않은 거 맞나?

내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도 엘로힘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띤 낯을 유지했다. 하긴, 내 생각이 뻔히 다 보이는 상대를 의심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긴 하지.

“작정하고 나타나셨군요.”

팔짱을 낀 채로 우리를 쳐다보던 천사연이 딱딱한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그러면 안 되니?”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부끄럽지도 않으신가 봅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니.”

천사연이 걸어오는 시비를 부드럽게 받아친 엘로힘은 곧장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현아.”

“예?”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능력이 아주 많단다.”

“예? 아, 네. 그렇죠.”

“그중 하나가 천사연의 집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지.”

“……예?”

당황한 나를 두고 엘로힘은 입가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어디 보자. 흠… 통로를 열어 주는 대가는 이번 파티에 나도 끼워 주는 거면 충분하겠구나. 어떠니?”

헉. 대가라는 단어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설마 엘로힘이 이 모임에 끼고 싶어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물론 오셔도 괜찮습니다만… 대가가 겨우 그거로 되는 겁니까?”

“대가의 무게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단다. 지금은 거리도 가깝고 급한 일도 아니며, 내가 아니더라도 천사연의 집으로 갈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충분하니까. 파티 초대 정도면 통로를 열어 주는 대가로 충분하지.”

그런 거라면… 엘로힘이 열어 주는 통로를 이용해도 좋아 보였다.

어차피 대가가 아니더라도 엘로힘이 원하면 초대해 줄 의향은 얼마든지 있었고, 하태헌이랑 박건호에게 운전을 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부탁드립니다.”

“에드워드라는 아이가 도착하면 열어 주도록 하마.”

엘로힘이 대답을 하고선 천사연을 향해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걸 본 천사연도 짜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저 둘이 싸우네.’

하태헌하고 싸운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조용히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행원이 우서혁에게 보고를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에드워드가 방으로 찾아왔다.

“한이결 씨!”

현관문을 열어 준 우서혁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거실로 들어온 에드워드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쪼르륵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에드워드 씨.”

타이밍에 맞춰 팔을 벌려 주자 에드워드가 거리낌 없이 안겨 왔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아까 내게 안겨 오던 여우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는 팀원들이 조금이나마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자리인데, 다들 이렇게 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여 주니 뭐라고 반응을 해 줘야 할지 슬슬 알 수가 없었다.

“하하… 저희를 도와주셨는데 당연히 초대해야죠.”

어색한 웃음과 함께 가장 무난한 대답을 해 주자 에드워드가 감동을 받았는지 커다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음, 망했군.

***

엘로힘이 열어 준 통로를 통해 곧장 천사연의 집 거실로 도착한 우리는 파티 준비를 바로 시작했다.

가장 넓은 거실에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박건호가 챙겨 온 술병들을 그 위에 진열했다. 김우진은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김우진 혼자서 여러 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건 힘든 데다 어린 에드워드도 있으니 치킨과 피자를 추가로 배달시켰다. 에드워드는 술 대신 음료수를 줄 생각이다.

주방 근처를 서성이며 김우진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엘로힘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구나.”

“그렇습니까?”

나야 아직 재료를 다듬고 있는 김우진의 모습만 보이지만, 엘로힘은 그가 떠올리고 있는 생각을 모두 알고 있으니 이따가 완성될 요리를 미리 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흠, 나도 좀 도와줄까?”

“엘이요?”

“물론 고기가 들어간 건 해 주기 어렵다만… 샐러드나 파스타 정도는 가능하지.”

“하고 싶으시면 하셔도 됩니다.”

천사연의 주방에서 김우진이 사 온 재료로 내가 이런 허락을 해 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둘 다 관심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끼어든 처지이니 요리 한두 개 정도는 내가 책임지마.”

고민하던 엘로힘은 결국 주방으로 들어갔다. 양파를 썰고 있던 김우진이 엘로힘을 힐끔 본 것도 잠시, 금방 관심을 끄고 양파를 마저 썰었다. 저럴 줄 알았다니까.

주방은 둘에게 맡겨 두고 다시 거실로 나오자 그사이 테이블에 올려진 술병이 더 늘어난 게 눈에 들어왔다. 대체 술을 이만큼이나 사 온 이유가 뭐지? 심지어 보드카와 위스키, 양주까지 있었다. 누구 한 명 죽이려고 하는 건가?

생각보다 많은 술병에 넋이 나간 내 뒤로 통화하러 방에 잠시 들어갔던 하태헌이 나왔다. 길드 일로 전화한 것 같던데.

“하태헌 씨, 괜찮으십니까?”

“뭐가 말이지?”

“제가 바쁜 와중에 괜히 놀러 오라고 한 것 같아서요.”

“레퀴엠 마스터도 저렇게 노는데 내가 바쁠 게 뭐가 있나.”

그건… 그렇네.

내 곁으로 걸어온 하태헌이 노란색으로 빛나는 양주병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예?”

“주량이 얼마나 되지?”

주량이라. 한이결 몸 기준으로 말해 줘야겠지?

“아마 소주 기준으로 1병도 채 못 마실 겁니다.”

한이결이 되고 나서 술을 제대로 마신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그때도 취하긴 했지만 자고 일어나서 기억이 다 났던 걸 보면 심하게 취한 건 아니었다.

‘난 제대로 취하면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니까…….’

주량 자체는 권세현 때보다 약해졌어도 술버릇은 똑같은 거 같은데. 뭐라 추측하기엔 술을 마신 경험이 너무 적어서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몸은?”

“다른 몸이라면… 제 본래 몸 말씀입니까?”

“그래. 주량 같은 사소한 부분도 바뀐 건가?”

“네. 아무래도 한이결보다는 잘 마시죠. 일도 했으니까요.”

덧붙인 말에 하태헌이 그제야 공간 속에서 만났던 권세현을 떠올렸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은 소주 1병으로 취하는 상태라는 거군.”

“맞긴 한데, 사실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여기 온 후로 각 잡고 제대로 술을 마셔 본 경험이 없어서요. 어쩌면 오늘 제대로 된 주량을 알게 될지도 모르죠.”

“짐작 가는 술버릇이라도 있나?”

“음…….”

짐작 가는 술버릇이라. 물론 있긴 하다. 박건호랑 우서혁 앞에서 덥다고 옷을 벗으려던 내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니까.

‘취해서 그때랑 똑같은 짓을 하면…….’

창피해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여긴 보는 눈도 많은 데다가 여자인 민아린과 어린아이인 에드워드도 있었다. 이 두 명 앞에서 술 취해서 옷을 벗으면… 그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절대 취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컨디션도 준수하니 맥주나 마시면서 철저하게 조절하면 그런 끔찍한 사고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마음을 굳게 먹으며 빽빽하게 세워진 술병들 틈에 세워진 맥주병을 찾기 위해 열심히 뒤적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봐도 내가 찾는 술은 나오지 않았다.

‘뭐야? 왜 맥주가 없어?’

보이는 거라고는 소주, 소주, 양주, 보드카, 위스키, 양주, 보드카… 미친 거 아니야?

“맥주는 안 보이더군.”

술병을 뒤적거리며 경악하는 나를 잠자코 지켜보던 하태헌이 한마디 던졌다. 하태헌도 같은 말을 하는 거면 내가 못 찾는 게 아니라 정말 없다는 건데.

“박건호 팀장님, 미쳤어요?”

“음?”

때마침 배달 온 음식을 받아 건달 같은 걸음걸이로 거실을 향해 설렁설렁 걸어오는 박건호에게 따지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확실히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긴 하지.”

“헛소리 마시고, 술을 이렇게 준비해 오시면 어떡합니까? 주량이 약한 사람들은 어떡하라고요?”

“음……?”

내가 한가득 놓인 술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타박하자 묘한 기색으로 입가를 매만진 박건호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주량 약한 사람들 생각해서 준비해 온 건데?”

“뭐라고요?”

“봐, 여기 소주 있잖아.”

“…….”

당당하게 소주병을 가리키는 박건호의 행동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소주가 어떻게 주량 약한 사람들을 위한 술입니까? 최소한 맥주 정도는 돼야…….”

“맥주라고? 맥주 마실 사람이 있나? 저번에 권세현 씨 가게에서 보니까 민아린 힐러도 소주 잘만 마셨고. 에드워드 제작자는 음료수를 주면 되는… 아.”

어리둥절해하며 말하던 박건호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커다란 손을 턱 얹고는 상쾌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한이결 능력자는 특별히 소주에 콜라를 타서 주도록 하지. 5:5 비율로! 그럼 되겠지?”

“……때려치웁시다.”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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