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기절한 김우진을 품에 안고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손바닥을 온통 적시는 피와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피 냄새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입술을 깨물고 신도단들이 쓰러져 있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마음은 급한데 안겨 있는 김우진에게 무리가 갈까 봐 차마 뛸 수가 없었다.
김우진이 갇혀 있던 지하 3층에서 올라와 지하 2층 끝에 있는 통로로 빠져나왔다. 23층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즉시 레퀴엠 병동으로 김우진을 데려갔다.
“위급 환자입니다!”
“의사는 현재 대기 중입니다.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보호자 분은 이 서류를 작성해 주세요.”
천사연의 명령으로 김우진을 기다리고 있던 병동 직원들이 한꺼번에 달려왔다. 내 품을 벗어나 의료용 침대에 누운 김우진은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김우진의 보호자로서 서류를 작성해서 넘긴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김우진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마스터, 의사는 준비가 됐지만… 부상이 심해서 힐러가 필요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힐러 등급이 어떻게 되지?”
“B급 한 명과 C급 두 명입니다.”
직원의 대답을 들은 천사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바로 로헌 길드에 힐러 지원을…….”
“제가 할게요.”
천사연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병실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민아린이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웃은 민아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민아린 씨, 왜 여기에…….”
“계속 기다렸어요. 우진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운을 심하게 소모해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다른 힐러가 기운을 어느 정도 채워 줬다고 해도 몸과 심장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을 텐데.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민아린 힐러.”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나와 마찬가지로 민아린의 상태를 손쉽게 눈치챈 천사연의 만류에도 민아린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기운이 부족하다 해도 다른 힐러들보다 강한 치유의 힘을 가진 제가 우진 씨를 치료해야 해요.”
지친 기색과 달리 김우진은 자신이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민아린의 두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났다.
“다른 사람에게 우진 씨를 맡기고 싶지 않아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드물게 단호한 민아린의 모습에 결국 천사연도 허락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마음 편하게 민아린을 보낼 수가 없었다.
민아린이 이번에 또 무리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민아린이 피를 토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결 씨.”
무어라 얘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망설이는 내게 민아린이 미소를 짓고서 손을 잡아 왔다.
“걱정하지 말아요. 저랑 우진 씨 모두 괜찮을 테니까.”
“…….”
다정한 위로에 뜨거운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두 눈을 꾹 감고 눈물을 겨우 참아 낸 나는 시선을 들어 천사연에게 허락을 구했다.
굳이 설명이 없어도 내 생각을 이미 알고 있던 천사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린 씨.”
나는 천사연에게 받은 후로 중국을 떠날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빼지 않았던 팔찌를 풀어 민아린의 손목에 채워 줬다.
A급 기운 회복 아이템. 내 손목보다 희고 가는 민아린의 손목 위로 은색 팔찌가 빛났다.
“부탁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담담한 태도를 보이고 싶었지만 표정에서 드러나는 참담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민아린 또한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소리 낮춰 씁쓸하게 대답했다.
“다녀올게요.”
***
김우진의 상태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힐러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재생 능력자도 수술실로 들어가야 했다.
양 손톱과 발톱이 강제로 뽑힌 것을 포함해서 온몸에 고문의 흔적이 선명했다. 몸에 직접적으로 가해진 충격으로 안구, 고막, 폐에 문제가 생겼고 곳곳에 화상 자국도 빼곡했다.
김우진을 치료하는 동안 민아린은 정말 많이 울었다. 김우진의 상태를 살피면서 민아린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힐러와 재생 능력자가 붙고도 수술 시간은 5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6시간이 채워질 때쯤 수술이 끝나고 김우진은 병실로 옮겨졌다.
천사연과 우서혁, 박건호는 길드 일을 뒷수습하러 갔으며 하태헌은 호출을 받고 로헌으로 돌아갔다. 민아린은 수술이 끝난 즉시 다시 쓰러졌고, 권정한은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난 혼자서 김우진의 병실을 찾아갔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병실 안 침대에는 김우진이 누워 있었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스탠드 전등만이 유일하게 빛났다.
침대 옆에 앉은 나는 침대 위에 올려진 김우진의 손을 붙잡아 끌어왔다. 손톱이 강제로 뽑혀서 피로 물들었던 손은 치료를 통해서 원래의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부상은 치료해도 기억까지는 없애지 못한다.
김우진은 오랫동안 이번 일을 기억하고 고통받겠지. 기억까지 없애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언제나 따듯했던 김우진의 손이 지금은 놀랄 만큼 차가웠다. 그게 싫어서 조금이라도 따듯하도록 김우진의 손을 꾹꾹 주무르던 그때였다. 잡고 있는 김우진의 손끝이 움찔 떨리더니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김우진?”
흐릿한 눈동자를 하고서 눈꺼풀을 몇 번이나 깜빡이던 김우진이 나지막이 대답해 왔다.
“응.”
벌써 깨도 되는 건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안색이 조금 창백하긴 해도 더 아픈 곳은 없어 보였다.
“여기 레퀴엠 병실이야. 마지막에 나 만났던 거 기억해? 민아린 씨가 치료도 다 해 주셨어.”
“으응… 기억나.”
김우진의 시선이 내가 붙잡고 있는 손으로 향했다. 그가 내 손을 강하게 잡아 오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잠깐만, 일어나지 마. 너 치료받은 지 이제 1시간도 안 됐어.”
“괜찮아. 나 멀쩡해.”
겉으로는 치료를 받아서 멀쩡하겠지만 속은 그게 아닐 텐데. 내 만류에도 녀석은 기어코 상체를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앉았다.
“한이결, 넌? 괜찮아?”
“나야 당연히 괜찮지. 다른 사람들도 다 괜찮아.”
“쉬지도 않고 나 구하러 왔잖아.”
“…바로는 못 갔어. 대가를 치러도 네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설명을 하면서도 입 안이 썼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걸 알면서도 그게 정말 최선이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서 고문을 견뎠을 김우진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내 얘기를 듣던 김우진이 입을 열었다.
“날 데리러 와 줄 거라고 믿었으니까 아픈 건 상관없었어. 내가 무서웠던 건…….”
“…….”
“버티지 못해서… 그래서 한이결, 널 두 번 다시 보지 못할까 봐… 그게 무서웠어.”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김우진이 하고자 하는 말에 담긴 뜻을 바로 이해했다. 나로서는 어떤 답을 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김우진.”
“한이결, 나는 널 좋아하고 있어.”
안 돼, 김우진.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김우진을 진심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아니, 오히려 소중해서 그의 감정을 허투루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그게 더 큰 상처가 될 테니까.
“김우진, 난…….”
“알아. 네가 나를 연애 상대로 본 적이 없다는 거.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고.”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시선을 내리자 김우진의 손에 잡혀 있는 내 손이 보였다.
김우진이 깨어나기 전에는 분명 내가 먼저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커다란 김우진의 손안에 내 손이 들어가 있었다. 그게 꼭 나와 김우진의 모습 같았다.
“내 감정을 받아 달라는 게 아니야.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어느새 김우진의 귀는 발갛게 변해 있었다. 목소리도 아까보다 훨씬 긴장된 게 느껴졌다.
“난 그저… 네 곁에 계속 있고 싶어. 억지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겨우 듣게 된 김우진의 진심 어린 속마음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 또한 아벨이 만든 공간 속에서 김우진의 감정과 내 감정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나는 김우진의 친한 친구이자 형이 되고 싶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살아온 김우진이 등을 기댈 수 있는 그런 상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김우진은 아니었다. 그가 바라던 미래와 내가 바라던 미래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저 서로 달랐을 뿐인데… 김우진에게 그 감정은 잘못된 거니까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그거면 돼?”
“어?”
“그거면 충분하냐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는 이번 사건으로 김우진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러니 김우진이 곁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나도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됐다.
질문을 들은 김우진은 설마 내가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지 크게 당황했다.
“추, 충분… 할지는… 나도 잘…….”
김우진이 내게 주는 감정을 그대로 돌려줄 자신은 없었다. 김우진 또한 나를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보답받지 못할 상대 곁에 남아 있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
그러니 나는 김우진이 상처받고 떠나지 않도록 원하는 건 다 들어줄 생각이다.
“제대로 얘기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면 할 테니까.”
“…….”
자신 없는 기색으로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던 김우진이 한참 뒤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스, 스킨십…….”
“뭐?”
“키스…해 주면…….”
키스를 해 달라고? 기껏해야 퇴원할 때까지 옆에 있어 준다거나 같이 데이트를 하는 정도를 예상했던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키스라면…….’
저번에 천사연과… 했던 그거 맞겠지? 나도 잘 못하는데, 큰일 났네. 새파랗게 어린애랑 입을 맞추게 된 상황이 굉장히 난감했다.
내가 이마를 긁적이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자 김우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휙휙 저었다.
“미, 미안. 그냥 해 본 말이었어. 안 해도 돼…….”
“음…….”
이러면 냉정하게 거절하기 힘든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키스해 주는 거로 김우진을 내 곁에 둘 수 있다면 나로서도 나쁜 건 아니었다.
“그래, 알겠어.”
“으응?”
김우진이 앉아 있는 침대를 짚고서 상체를 숙였다. 끼익, 매트리스가 작게 소리를 내며 푹신하게 들어갔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김우진과 얼굴을 마주하자 녀석의 볼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타올랐다. 아까 창백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았다.
“…….”
“…….”
“…눈 감아.”
내 한마디에 기다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김우진이 황급히 눈을 감았다. 스탠드 불빛이 김우진의 옆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눈썹 아래에 박혀 있는 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살짝 거친 김우진의 입술이 닿아 왔다. 입술이 맞닿자 뻣뻣하게 앉아 있던 김우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잠깐 떼었다가 다시 부딪쳤다.
내가 먼저 키스를 하는 건 처음이라 제법 어색했다. 천사연이 내게 했던 그대로 김우진의 입술 안쪽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읏…….”
혀로 김우진의 입천장을 쓸어내리자 그가 이불을 꾹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질척한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서 그대로 입술을 뗐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붉어진 김우진의 얼굴과 목덜미가 유독 눈에 띄었다.
“김우진.”
“…….”
“김우진, 정신 차려.”
넋이 나간 김우진 앞에 손을 휙휙 흔들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손으로 가렸다.
음… 입원한 애한테 자극이 너무 심했나?
‘나중에 해 줄걸.’
도저히 진정하지 못하는 김우진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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