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15화 (315/394)

315화

병사들을 이끌고 다 같이 도시 가장 북쪽에 있는 백작가 저택으로 향했다.

크고 높다란 건물 위로 보이는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밝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저택 주변은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그럴싸한 연출까지 해 두다니. 대단한데?’ 정도의 가벼운 감상을 하는 내 뒤에서 병사들이 겁먹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마, 마녀의 저주…!”

“날씨까지 건드리다니…….”

“…….”

역시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건 너무 불안했다. 적당한 곳에서 쫓아내고 우리끼리 가면 참 좋겠는데.

“정문은… 잠겨 있는 것 같네요.”

“공격해 오는 마녀의 수하도 보이지 않는군.”

저택을 살펴보던 민아린과 박건호가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가까이 접근했는데도 아무 반격을 하지 않는 데다 정문을 잠가 뒀다면 의도하는 바는 뻔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김우진에게 물었다.

“저택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정문 외에 없습니까?”

“아니, 뒷문이 있다. 그곳은 가는 길이 좁고 입구가 작아.”

역시 그런가.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민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곳 말고는 길이 없어 보입니다. 일단 가 보죠.”

우리는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가 무성한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뒤로 가자 김우진의 말대로 녹슨 철문이 나타났다.

천사연이 앞장서서 철문을 밀자 쉽사리 열렸다. 끼이이익, 쇠가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열린 철문 사이로 어두운 복도가 드러났다.

“들어가죠.”

내 말에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우진이 발걸음을 옮겼다. 천사연을 선두로 나와 김우진, 민아린, 박건호, 우서혁이 순서대로 진입했다. 그리고 뒤쫓아 병사들이 들어오려던 그때였다.

끼기긱, 철컹!

“으악, 뭐야!”

“헉!”

있는 줄도 몰랐던 쇠창살이 위에서 떨어져 입구를 막아 버렸다. 병사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자 바닥에 박힌 쇠창살이 철컥하며 잠겼다.

“이런 건 원래 없었는데.”

“마녀가 만든 건가 봅니다.”

당황한 김우진 대신 녹슨 쇠창살을 손에 쥐어 봤다. A급인 난 어렵겠지만 S급인 박건호나 우서혁 정도만 돼도 힘으로 충분히 벌릴 수 있을 만한 창살이었다.

하지만 굳이 쇠창살을 벌리면서까지 병사들을 끌고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렇게 병사들을 떼어 낼 기회가 찾아오다니.

“어쩔 수 없네요. 일단 들어가서 정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병사분들은 그걸 기다려 주세요.”

일부러 아쉬운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자 병사들이 김우진의 눈치를 봤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셰드 님?”

“그래. 다른 문을 찾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으로 보여.”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정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왕이면 전투가 벌어질 저택에서 멀리 떨어졌으면 더 좋겠는데, 그건 욕심이겠지.

병사들을 뒤로하고 불 한 점 들지 않은 복도로 진입했다. 그렇게 5분 정도 걷자 복도가 끝나고 저택 중앙 홀이 드러났다.

“잠깐만.”

천사연이 바로 뒤에 따라오던 나를 멈춰 세우며 홀 구석을 응시했다.

“시체야. 정확히는 망가진 인형이군.”

“인형이라고?”

천사연이 인벤토리에서 S급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제 손바닥을 베어 냈다.

천사연의 피를 머금은 검날이 환하게 타올랐다. 그 상태로 홀 구석을 밝히자 정말로 망가진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에 마스크를 낀 인형은 상반신이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오, 꽤 실력자인데?”

검은 천을 헤치고 잘린 부위를 본 박건호가 간략한 감상평을 남겼다. 그 의견에 나도 동의했다. 이 정도면 장검을 꽤 잘 다루는 실력자가 분명했다.

“여기에도 마녀의 수하가 있어요!”

민아린이 다른 곳에 쓰러져있는 또 다른 인형을 발견했다. 남겨진 흔적은 비슷했다.

타오르는 검을 횃불 삼아 휘둘러서 인형 시체의 숫자를 확인한 천사연이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왜 아무 공격이 없나 했더니. 아무래도 저택 내에 있는 인형 대부분은 이미 당한 모양이군.”

“대체 누가…….”

쿠구구궁!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이 흔들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들려온 곳은 지하였다.

“지하에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본데.”

“바로 가 보죠.”

어차피 마녀에게 잡혀서 감금당해 있다면 그곳은 지하 감옥일 확률이 높았다. 김우진이 재빨리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찾아 열었다.

“이쪽이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굉장히 어두웠다. 계단 끝까지 내려가자 생각보다 넓은 내부와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여기는 다 감옥이야. 총 네 군데로 구역이 나뉘어 있어.”

넓은 데다 상당히 어두워서 갇힌 사람을 찾으려면 한참을 뒤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인원을 나누는 것보단 다 함께 움직이는 편이 안전했다.

“그럼 첫 번째 구역부터 차례로 확인합시다.”

북서쪽에 나 있는 길부터 가려고 발걸음을 막 뗀 그 순간이었다. 끼기긱, 뾰족한 무언가가 바닥을 끄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어둠 너머에서 들려왔다.

“잠깐만요, 저기…!”

민아린이 자신의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거대한 가위를 든 인형. 라푼젤에서 마주쳤던 그 인형이 가위를 바닥에 끌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셋이나 됐다.

“이쪽에도 오는데.”

반대편에 서 있던 박건호도 인형을 발견했다. 숫자가 열을 넘는 인형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심지어 우리가 내려온 계단에서도 인형이 나타났다.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이었다. 나는 급히 민아린을 등 뒤로 보내며 바람을 끌어 올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코앞까지 다가온 인형을 대비해서 전투 준비를 마쳤다.

‘인형이 지하에 이 정도로 모여 있다면 이곳에 정말로 감금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태헌과 권정한, 둘 다 여기에 있다면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가장 앞서 있던 인형이 가위를 번쩍 들어 올렸다. 끌어 올린 바람으로 그 공격을 막아 내고 허리를 단숨에 잘라 버리려는데, 인형 무리 뒤편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직, 콰지직!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강한 기운이 피부로 느껴졌다.

나를 죽이기 위해 몰려온 인형 무리가 뒤에서부터 검에 베여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인형 파편 사이로 아주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하태헌 씨!”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 앞에 인형들을 모두 베어 낸 하태헌이 곧장 내게 걸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하태헌을 만나다니! 너무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하태헌의 팔을 붙잡았다.

“하태헌 씨, 여기 계속 계셨어요?”

“그래.”

하태헌은 나와 달리 우리가 여기 올 거라고 이미 예상한 것처럼 여상한 태도였다. 중앙 홀에 인형 시체들도 모두 하태헌의 작품이었나 보다.

“죄송한데, 저도 있거든요.”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던 나는 등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상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뵙지만 안녕하세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능청스러운 인사를 보내오는 남자. 다름 아닌 권정한이었다.

“여기 갇혀 있길래 죽지 않도록 지켰다.”

“엄청 강하시더라고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태헌의 설명에 권정한이 고마움이라고는 조금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해 왔다. 다행히 하태헌은 그 뻔뻔한 태도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둘 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걱정 많이 했어요.”

“너도 많이 바빴던 모양이군.”

하태헌이 인형을 열심히 상대 중인 팀원들을 한번 휙 훑어봤다. 나와 하태헌, 권정한이 인사를 나누는 그 짧은 새에 인형을 처리한 천사연이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일부러 관심받으려고 이런 타이밍에 등장한 건 아니겠지, 하태헌 부마스터?”

“내가 그쪽처럼 유치한 줄 아나?”

마지막 인형의 목을 뽑아낸 박건호가 대화에 냉큼 끼어들었다.

“우리 갈색 머리 친구는 남자가 참 많네. 만나는 사람마다 죄 남자군.”

“…….”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건호 옆으로 김우진이 속상한 눈빛을 하고서 나를 노려봤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 나는 급히 주제를 바꿨다.

“그으…럴 때가 아닙니다! 지하는 위험하니까 인형을 다 처리한 이 틈에 다시 올라가야 해요.”

“저 두 분이 찾으시던 동료분들이 맞으세요?”

민아린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김우진에게서 나왔다.

“한 명은 모르지만 다른 한 명은 아니다. 저놈은 마녀가 등장하기 전에 내가 직접 감옥에 집어넣은 놈이니까.”

김우진이 짜증을 담아 얼굴을 찌푸리자 권정한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이런 지하 감옥에 갇힐 만큼 대단한 죄를 짓지는 않았잖아요. 그냥 셰드 님이 막무가내로 넣은 거면서.”

“뭐? 막무가내?”

“맞잖아요. 사람이 실수 좀 한 것 가지고 이런 지하 감옥에 가둬 두고… 이분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 텐데. 하아…….”

권정한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탄하자 김우진이 목덜미 부여잡았다.

“고의로 거짓말을 열 번도 더 넘게 해 놓고 실수? 실수라고? 양심이 있는 새끼야, 이거?”

“위기에 미리 대처하는 훈련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늑대가 왔다고 하도 거짓말을 해 대서 반성 좀 하라고 가둬 놨더니, 시발…….”

음. 대화를 들어 보니 권정한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쟁이 소년 역할인가 보다. 묘하게 어울리네.

“뭔가 거짓말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그런 기분이 드는데 어떡합니까? 해야지.”

김우진이 답답하다는 기색으로 가슴을 퍽퍽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정한은 시종일관 미소를 띤 얼굴로 해맑게 말했다.

“그래서 저 구하러 오신 건가요, 셰드 님? 이왕 오실 거면 진작 좀 오시지. 저 죽을 뻔했거든요.”

“닥쳐, 좀!”

“그만하고 올라가자…….”

나는 사이좋게 투닥거리는 김우진과 권정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로써 모든 팀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제 저택 어딘가에 있을 마녀만 찾으면 이 공간을 벗어날 해결책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15)============================================================

3